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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필립스의 턴어라운드 전략

유럽의 자존심 필립스, 전자를 뺐다 포트폴리오?프로세스 몽땅 바꿨다

조진서 | 140호 (2013년 11월 Issue 1)

 

 

2013 5,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전자기업인 필립스전자(Royal Philips Electronics)는 사명(社名)을 바꾼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제전자는 빼고 필립스(Royal Philips)로 불러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자료를 보고 한국의 몇몇 언론은 ‘122년 명가의 굴욕이라는 기사를 냈다. 세계 전자산업의 리더로 군림했던 필립스가 이젠 한국, 일본, 중국과 대만 회사들에 밀려 간판 사업인 전자사업을 접고 이름마저 바꿔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석과 달리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현재 필립스는 굴욕이 아니라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위기가 왔던 것은 사실이다. 사업 부진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연간 매출이 2001 324억 유로에서 2009 201억 유로까지 30% 이상 줄어들었다. 하지만 구조조정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며 매출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2년에 248억 유로를 기록했고 2013년은 여기서 5% 정도 더 성장한 약 260억 유로( 38조 원)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업이익률 역시 제조업에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인 12%대가 목표다. 경쟁사인 독일 지멘스의 2012년 영업이익률 9.9%보다 높고 업계 리더인 삼성전자의 14.4%에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장밋빛 분위기는 지날 9월 프란스 반 하우튼 CEO의 자사주 매입 발표와 함께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주식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무려 15억 유로( 22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약속했다. 결국 올초의 사명 변경은 10여 년에 걸친 필립스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 성공적으로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CEO의 자신감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필립스 부활의 교훈이라는 기사를 싣고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이 필립스의 사례를 교과서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1

 

필립스가 어떻게 아시아 업체들의 공세에서 살아남았는지, 또 기술발전과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빠른 전자업계에서 120년 이상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뭔지 알아보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본사와 에인트호벤의 연구센터를 찾았다.

 

1891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필립스는 1891년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벤에서 창립됐다. 창업자 헤라드 필립스(Gerard Philips)는 인근의 델프트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으며 당시 막 발명된 전구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사업 다각화는 1918 X선 투시기의 개발과 함께 시작됐다. X선은 원래 독일의 지멘스가 의료기기로 처음 상용화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과의 국경이 폐쇄되자 네덜란드의 병원들이 부품을 수입할 수 없었다. 병원들은 전구 공장을 갖고 있는 필립스에 X선 튜브도 만들어 달라고 권유했고 실제로 X선 튜브의 자체 개발에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체 투시기 완제품 사업에까지 뛰어들게 됐다. 1920년대 초에는 역시 전구와 구조 및 제조 방식이 비슷한 진공관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갖췄다. 이를 이용해 십여 년 만에 세계 1위 라디오 제조사가 됐다.

 

이후 약 70년간 필립스는 TV와 영상/음향장비, 전자회로와 반도체로 사업을 넓혀가며 승승장구한다. 특히 2차대전 이후 서구 사회의 경제발전과 가구 소득 향상에 발맞춰 새로운 가전제품과 영상, 음향기기들을 만들어냈다. 1963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오디오 카세트테이프와 1983년 소니와 공동개발한 콤팩트디스크(CD)로 음악의 대중화도 이끌었다.

 

하지만 1990년 중반부터는 인건비가 비싼 유럽에 기반을 둔 필립스가 일본, 한국, 대만,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그나마 기댈 수 있었던 R&D 역량의 우위 역시 줄어들었다. 전자/반도체 업계 전반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수익성은 계속 하락했다. 닷컴 버블이 꺼지며 세계 경제가 출렁했던 2001년에는 14억 유로( 2조 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었다.

 

턴어라운드 전략 1: 포트폴리오 조정

 

변화를 이끄는 중책은 새로 임명된 CEO 제라드 클라이스터리가 맡았다. 전기공학도 출신으로 필립스에서 20년 넘게 근무하고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은 클라이스터리는 CEO 임명 직전까지 대만과 중국 법인장으로 일하며 아시아 업체들의 무서운 성장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취임 첫해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필립스의 경쟁력 부재를 다음과 같이 통렬히 지적하고 바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우리의 프로세스 중 일부는 업계 표준에 미치지 못하고 우리의 조각난 조직구조는 인프라와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또 우리는 너무 많은 저성장, 저수익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들이 우리 포트폴리오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가전사업은 지난 몇 년간 좋은 실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런 진단에 따라 클라이스터리는 부임하자마자 비디오 플레이어(VCR) 제조를 일본의 후나이, 휴대폰 제조는 중국의 CEC로 아웃소싱하고 컴퓨터 모니터 사업은 2005년 중국의 TPV사에 넘겼다. 그룹의 핵심사업 중 하나였던 반도체도 NXP테크놀러지라는 회사로 분사한 후 2006년 아예 팔아버렸다.

 

클라이스터리의 뒤를 이은 현 CEO 프란스 반 하우튼은 포트폴리오 구조조정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는 가전사업 중에서도 상징성이 큰 TV사업을 2011 TPV사에 사실상 매각2 했고 오디오, 스피커, 헤드폰, DVD플레이어 등을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5년 반 동안 필립스 브랜드 사용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2013 1월 후나이에 15000만 유로( 2200억 원)에 팔았다.

 

 

10년 넘게 차근차근 진행된 포트폴리오 조정에 따라 2000 7개였던 사업부는 <그림 2>처럼 3개로 단순화됐다. 조명(전구) 부문, 헬스케어(의료기기, 서비스) 부문, 그리고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소형가전) 부문이다. 구조조정에 들어가던 2000년 당시에는 이 세 사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이들 3개 사업부는 각각 최소 1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내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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