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의 고객 패널 제도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허태영(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삼성화재는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보험에 컨설팅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체험 결과 그 수준은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40대 주부 한 명이 삼성화재 대표와 임직원 60여 명을 앞에 두고 던진 첫마디다. 2005년 9월 주부와 대학생으로 구성된 8명의 최초 ‘삼성화재 고객패널’은 4개월간의 삼성화재 문의, 가입, 체험 활동을 마친 뒤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했다. 발표회 날 삼성화재 본사 경영회의실을 가득 메웠던 삼성화재 경영진은 충격에 휩싸였다. 해당 프로젝트를 승인하고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던 이수창 당시 CEO 역시 다소 상기된 얼굴로 참담할 정도의 패널 발표결과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지났다.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4개월 혹은 6개월마다 새로운 패널들의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고 삼성화재는 패널제도 도입 전후 주춤하던 성장세를 다시금 이어갈 수 있었다. 독약처럼 느껴지던 고객들의 쓰디 쓴 목소리는 삼성화재의 ‘병’을 치료하고 ‘허약한 체질’까지 완전히 개선해 준 진짜 약이 됐던 셈이다.
1. 부동의 손해보험사 1위, ‘고객패널’이라는 초강수로 위기를 넘다
1991년 이후 손해보험 업계 부동의 1위는 삼성화재였다. ‘삼성’이라는 이름이 주는 ‘프리미엄’ 효과도 있었다. 실제 ‘한국안보화재해상보험’이라는 이름으로 1952년 설립된 회사였지만 1993년 삼성화재로 사명도 변경했다. 2002년 자동차 보험의 대표 브랜드가 된 ‘삼성 애니카’를 출시해 자동차보험의 브랜드화를 선도했고 이듬해인 2003년에는 국내 최초의 통합형 보험상품인 ‘삼성 Super 보험’도 출시했다. 2005년에는 세계 보험업계 최초로 중국 단독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누가 봐도 승승장구하는 것 보이던 바로 이때, 삼성화재에는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우선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최근까지도 지속되는 현상으로 2003년 삼성화재의 손해보험시장 점유율은 32.2%였으나 2006년에는 30.7%, 2008년에는 28.7%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반적인 시장의 경쟁상황이 치열해지고 외국계 보험사 등의 공격적 영업이 본격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삼성화재 입장에서 시장점유율 하락보다 더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만든 건 바로 ‘고객 수 답보현상’과 ‘세전이익 답보 현상’이었다. (그림 1, 2) 고령화시대의 도래와 사회안전망에 대한 욕구로 인해 보험 수요는 늘 수밖에 없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었고 이에 부응해 혁신적인 상품을 대거 내놓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 1위 보험사의 고객수가 답보상태라는 건 큰 문제였다.
1)고객만족도 조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기에 심각한 위기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삼성화재는 2004년부터 당시 처한 상황을 위기의 징후로 인식했다.
고객만족도 설문조사를 비롯한 각종 조사와 연구가 시행됐다. 부서별로, 상품개발·영업 담당별로 부진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단순히 고객에게 상품의 만족도, 가입 당시의 상황과 평가 등을 물어 통계를 내는 정량적 조사로는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드러나지 않았던 것. 이는 마케팅이나 고객만족도 조사를 위해 기본적인 도구로 쓰이는 정량조사가 갖는 기본적인 한계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때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대리였던 이주성 현 책임이다. 주부를 비롯한 일반인 10여 명을 패널로 선정해 삼성화재에 대한 모든 것을 ‘고객 입장’에서 조사해 발표하도록 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른바 고객패널제도‘라고 이름붙인 이 제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2005년 초 삼성화재 대리가 제안한 고객패널제도 운영방안>
(1)보험과 금융 분야의 대학생·대학원생, 그리고 자동차보험 가입 고객 주부 등을 포함해 남성 4명, 여성 4명을 패널로 선정한다.
(2)1회 활동기간은 4개월로 하며 1년에 두 번 운영한다.
(3)삼성화재에서 제시한 주제를 집중 연구하고 모니터링하도록 하고 불편·불만 요소와 개선사항을 도출한다.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활동에는 서비스 현장 체험, 고객 인터뷰, 온라인 정보수집도 포함된다.
(4)월 1회 활동결과를 발표하고 집단 토론을 실시한다.
(5)분기 1회 전체 경영진과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이주성 책임에 따르면 당시 고객만족도 조사와 같은 상투적인 방법으로는 고객의 목소리를 수동적으로 듣기만 할 뿐 고객의 진정한 니즈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고객패널과 같은 획기적인 정성적 조사방법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 책임은 “다양화되는 고객니즈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고객 니즈를 상시적으로 파악하고 전략적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며 “잠재니즈 파악이 어려운 정량조사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고객패널제도 도입’을 제안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미니박스 1 참조.) 때마침 경영계의 화두는 ‘고객주권시대’였기 때문에 고객의 목소리를 능동적으로 듣고 ‘고객참여경영’을 실시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상당히 고난도의 패널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만큼 60만 원 이상의 활동비와 상품권 등을 제공하되 선발과정은 엄격하게 진행했다. 선발공고를 낸 뒤 서류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들에 한 해 전화인터뷰와 직접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했다. 서류전형에서는 특히 ‘응모이유’ ‘패널 선발 후 활동 계획’ ‘삼성화재 광고평가’ 등을 기술하도록 했다. 활동의 적극성과 논리력, 분석능력과 보고 능력 등을 엄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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