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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현대기아차 CASE STUDY

‘대범한’ 中國人 입맛에 과감히 맞췄다. 엘란트라 위에둥, 마음을 얻었다

김상훈 | 90호 (2011년 10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정태준 인턴연구원(홍익대 경영학과 4학년)이 참가했습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볼품이 하나도 없네요. 작고 뭉뚝한 게 만화에 나오는 강아지 코 같아요.”

범퍼는 왜 이렇게 투박하고 밋밋하게 만들었지요? 크기만 크고 장식은 하나도 없어서 허전합니다.”

콘솔 박스는 수납 공간이 넉넉하질 않군요. 트렁크도 입구가 좁아서 물건을 넣고 빼기가 불편할 것 같습니다.”

사이드 미러, 자동차 뒷유리 모두 너무 작아 보입니다. 불안해서 어디 마음 놓고 운전할 수 있겠어요?”


2006
6월 베이징현대가엘란트라(현대자동차아반떼XD’의 중국 내 통용 브랜드. 중국 내 명칭은 伊蘭特)’의 후속 모델(현대자동차아반떼HD’)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객 품평회(Product Clinic) 현장. 현대자동차가 2003년 아반떼XD 개발 후 3년여 만에 풀모델 체인지(Full Model Change)로 내놓은 신차였지만 중국 현지 소비자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베이징, 광저우, 항저우 등 3개 대도시를 돌아가며 품평회를 실시했지만 반응은 똑같았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소비자들의 지적 사항은 한마디로 요약됐다. 아반떼HD의 디자인이따치(大汎)’, 즉 중국인들의 대범한 기질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

베이징현대는 고민에 빠졌다. 혹평을 받은 자동차를 그대로 내놓았다간 시장에서 외면당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더욱이 2006년은 판매 실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될 정도로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아무리 시간에 쫓기더라도 어정쩡한 제품을 내놓는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일이 분명했다.

베이징현대는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현대자동차 역사를 통틀어서 지금까지 한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안이었다. 바로 중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현지 지역 시장에 특화된 전략 차종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현대자동차의 수출 전략은 상품성을 인정받은 차종을 거의 그대로, 혹은 약간의 부품 수정 정도만 거쳐 판매하는 식이었다. 현지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게 페이스리프트(Face Lift·프레임이나 범퍼 등 차체 디자인을 수정) 작업을 거쳐 개조차량을 판매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개조차량 개발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개발 기간이 길어져 자칫 신차 출시 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징현대는 이 정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전세를 역전시킬 만한 방도가 없다고 판단하고 전략 차종 개발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8 4월 예전보다 훨씬따치(大汎)’해진 아반떼HD의 개조차엘란트라 위에둥(悅動)’은 한때 업계 8(2007)로까지 추락했던 베이징현대를 단숨에 4(2009)로 끌어올리는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엘란트라 위에둥은 현재 중국 내에서 판매되는 250개 승용차 모델 가운데 판매 순위 1, 2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베이징현대 최초의 중국 현지화 모델인 준중형급 세단 엘란트라 위에둥의 성공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후발주자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베이징현대

현대자동차는 2002 10월 중국 현지 기업인 베이징기차투자공사와 5050 합작으로 베이징현대를 설립하고 그해 12월부터 본격적인 현지 생산에 돌입했다. 폭스바겐(1984), GM(1996), 혼다(1997) 1980년대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메이커들에 비하면 한참 뒤에 진입한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베이징현대는 초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경쟁사들을 따라잡았다. 차량 판매대수 기준으로 2003년 업계 12(52128, 시장점유율 2.4%)에 불과했던 베이징현대는 2005년 판매대수(233668)가 무려 4배 이상 늘며 업계 4(점유율 7.5%)로 급부상했다.

후발 주자임에도 베이징현대가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해마다 최신형 모델의 신차를 중국에 선보인 전략 덕택이었다. 한국에 아반떼XD를 내놓은 2003년 중국에도 엘란트라로 브랜드명만 바꿔 그해 12월에 내놓은 게 대표적 사례다. 서승현 현대·기아차 중국사업본부 중국경영전략팀 부장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GM, 도요타 등 대부분 글로벌 업체들이 몇 년 된 구형 모델을 중국 시장에 내놓고 팔았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최신형 모델을 중국에 출시해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다. 실제 엘란트라는 2004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 무려 10만 대 이상 넘게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시장 상황도 호의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차량 공급이 워낙 달리다 보니 차량을 만들기만 하면 무조건 팔리는 상황이었다. 서승현 부장은 “2003년 소나타 국내 가격이 대당 약 1600만 원 정도였는데 중국에서는 2600만 원 정도를 받고 팔았다글로벌 시장 가격에 비해 중국에선 평균 130% 높은 가격으로 팔아도 판매가 성사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제조 원가 생각할 것 없이 무조건 시장에 빨리 내놓기만 하면 됐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2006년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국 정부의 자주 브랜드 강화 정책에 힘입어 치루이(奇瑞), 지리(吉利), 화천(華晨) 등 저가의 중국 토종 자동차들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기존엔 값싼 가격만을 무기로 내세웠지만 글로벌 업체들과의 기술 제휴 등을 통해 역량이 다년간 축적되면서 품질이 날로 좋아지고 있었다. 여기에 적극적인 정부 지원까지 합쳐지자 이제는 글로벌 업체들을 위협할 정도로까지 세를 넓혀갔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그동안 높은 가격에 고사양, 고품질 차량을 주로 내놓았던 GM, 폭스바겐 등 글로벌 업체들까지 차량 가격을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중국 토종업체, 글로벌 메이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가격 인하 경쟁에 뛰어들었다. 더욱이 도요타와 폭스바겐은 각각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디자인에 적극 반영한 개조차량캠리파사트를 잇따라 내놓으며 중국인들 공략에 나서기 시작했다. 서승현 부장은당시 베이징현대는 밑에서는 중국 토종 업체들에, 위에서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에 치이는샌드위치신세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최초의 지역 특화 전략 차종 개발

베이징현대는 중국 시장 진출 후 EF쏘나타(2002 12),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XD, 2003 12), 투싼(2005 6), NF쏘나타(2005 9), 베르나(한국명 엑센트, 2006 3) 1∼1 6개월 주기로 최소 1대의 신차를 꼬박꼬박 출시해왔다. 초창기 내놓은 두 모델 EF쏘나타와 엘란트라는 꽤 성공적이어서 베이징현대의 업계 순위를 2003 12위에서 2005 4위로까지 수직 상승시켰다. 그러나 2005년 이후 내놓은 세 개 모델(투싼, NF쏘나타, 베르나)은 시장에서 참패를 당했다. ·대형차종인 투싼과 NF쏘나타는 글로벌 메이커 대비 브랜드 파워가 열악한데다 현지 고객 취향의 사양을 탑재하는 데에도 실패해 경쟁사 제품 대비 우위를 갖지 못했다. 소형차종인 베르나는 기능이나 사양 면에서 별 특징도 없는 상황에서 오락가락한 가격 정책으로 혼란까지 초래하며 소비자의 불신을 불러왔다. 서승현 부장은너나 없이 가격인하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베이징현대는 베르나를 출시하며 절대 가격을 인하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계속된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재고가 쌓이자 결국 2개월 만에 방침을 수정해 가격을 낮췄다고 털어놨다.


중국 현지인 대상 품평회 및 소비자 성향조사 실시

20066월 중국 3개 주요 도시에서 1000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엘란트라의 후속모델(한국명 아반떼HD)에 대한 고객 품평회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 진행됐다.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한 획기적인 신차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베이징현대 설립 후 최초로 실시하는 품평회였다. 현대자동차는 대개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한국에서 판매하는 모델을 거의 그대로 판매한다. 혹한, 혹서 등 지역별 기후 특성이나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 국가별 규제에 따라 약간의 부품만 수정할 뿐 엔진, 파워트레인 등 핵심 부품은 물론 기본적인 차량 골격을 이루는 프레임이나 범퍼 등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게 보통이다. 베이징현대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수요자의 니즈를 자동차에 반영하기보다 한국에서 판매하던 모델 그대로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했다. 따라서 이전까지는 현지 시장에서 품평회를 실시한다는 게 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현지 소비자들의 니즈를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게 베이징현대의 판단이었다. 더욱이 2008년 초에는 베이징현대 제2공장 완공이 예정돼 있었다. 당장 2008년부터 연간 양산 규모만 30만 대에 달하는 자동차 공장을 놀리지 않고 가동시키려면 안정적인 판매 물량이 확보되는 신차 생산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과거처럼 중국 시장에 대한 사전 시장조사 및 고객 취향 반영 등 제품 개선이 미흡한 상태에서 신상품을 투입해봤자 재고만 쌓일 게 뻔했다. 실패는 베르나 하나로 족했다

품평회 결과 중국 소비자들은 후속 모델의 외관 디자인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우선 라디에이터 그릴의 경우 좌우 폭은 좁고 상하 폭은 넓어서 전체적으로 전면 분위기와 부조화를 이룬다는 의견이 많았다. 범퍼는 앞뒤 할 것 없이 너무 단순하고 둔해 보인다는 지적이 압도적이었다. 특히 앞 범퍼는 크기는 크면서 장식이 없어서 밋밋하기 그지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후면부 디자인에 대한 혹평도 많았다. 예를 들어 리어램프는 헤드램프에 비해 너무 작아 약해 보이고, 리어윈드실드도 크기가 작아서 후방시야 확보가 어려워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차 앞 모양과 뒷모양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어서 조화롭지 못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 1)

품평회와 함께 추가로 실시한 소비자 성향 조사는 품평회에서 나온 소비자들의 의견을 해석할 수 있는 좋은 열쇠가 됐다. 조사 결과 중국인들이 자동차를 구입하는 동기 중 1순위는주위의 시선으로 드러났다. , 중국인들은 주변 사람과 비교해 그들보다 최소한 같거나 더 나은 제품을 구매하려고 하며 되도록이면 눈에 띄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시욕이 강하기 때문에 외부로 보여지는 부분에 상당히 민감하고 화려한 디자인을 선호한다. 또한 대다수 중국 소비자들은 주변 사람을 의식하는영조성 문화성향(남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경향)’까지 갖고 있어서 주위의 동료나 친구들에게 제품의 품질, 신뢰도, 기능 등에 관한 의견을 사전 탐문해본 다음 구매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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