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매대 없애고 매장 직원이 큐레이션
‘뜻밖의 책 발견’이 서점 찾을 이유 됐다
Article at a Glance
1990년대 미국 시장을 장악했던 거대 서점 체인 반즈앤드노블은 2000년대 후반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온라인 공룡 아마존 등장 이후 무리한 IT 투자를 한 데다 중앙 통제식의 획일적인 매장 운영, 출판사 광고 수익에 안주하며 경쟁력을 잃어갔다. 서점 본연의 도서 선별 기능을 상실한 결과, 30%에 달하는 기형적인 반품률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9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인수 후 구원투수로 등판한 제임스 던트 CEO는 서점을 ‘세렌디피티(우연한 발견)’의 공간으로 바꾸는 역발상 경영을 단행했다. 먼저 광고 매대를 통째로 없앴다. 중앙집권식 통제도 없앴다. 도서 매입과 진열 권한은 각 지역 매장에 넘겼다. 반면 본사 인력은 절반으로 줄였다. 현장의 서점 직원들과 틱톡의 독서 커뮤니티 ‘북톡’이 일으키는 바이럴을 거대한 마케팅 무기로 삼았다. 반즈앤드노블은 전국 740여 개 매장으로 몸집을 불리며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만큼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내년 상장 후 닥쳐올 실적 압박을 견뎌내고 혁신을 이어갈 수 있을지 여부가 향후 반즈앤드노블 도약의 관건이다.
미국 전역의 반즈앤드노블 매장 직원들은 매주 본사에서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이른바 ‘플래노그램(Planogram)’이라고 부르는 매대 진열 지침서다. ‘어떤 책을 언제까지 어디에 어떻게 진열할지’ 표시해 놓은 플래노그램을 본사가 내려보내면 전 매장은 예외 없이 기계적으로 이 지침을 따랐다. 뉴욕 어퍼웨스트사이드 매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빅토리아 하티 부점장은 PBS와의 인터뷰에서 그 시절을 떠올렸다. “서점 안에 어떤 테이블을 어떻게 꾸밀지, 테이블 위치를 어디에 두고, 심지어 몇 도로 각도를 기울여 놓을지, 할인가격을 얼마로 써서 붙일지까지 전부 지시를 받았어요. 직원들은 그저 지시를 이행할 뿐 더 나은 방식을 찾기 위한 ‘생각’이란 걸 전혀 할 필요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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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2000년대 미국 도서 시장에서 반즈앤드노블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미국에서 팔리는 책 여덟 권 중 한 권은 반즈앤드노블을 거쳤다. 매장 입구 테이블은 출판사가 수천 달러를 내고 자신들이 발간한 책을 올려놓는 광고판과 같았다. 반즈앤드노블 매장에 어떤 책이 어느 자리에 며칠간 놓일지는 출판사가 낸 광고비 액수에 따라 결정됐다. 매주 내려오던 플래노그램 한 장은, 결국 전국 서점의 매대를 자본의 논리에 따라 통제하는 ‘공간 임대 계약서’였던 셈이다.
2019년 제임스 던트가 반즈앤드노블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매대 진열 지침서를 없애 버린 것이다. 출판사가 서점의 명당자리를 돈 내고 사는 ‘코옵 광고(Co-operative Advertising)’도 전부 폐지했다. 20여 년간 이어오던 관행을 깨 버린 것이다. 서점의 가장 확실하고 든든한 수익원을 스스로 걷어찬 던트 CEO의 이런 행보는 미국 출판과 도서유통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던트 CEO는 “서점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의 발견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2026년, 반즈앤드노블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미국 곳곳에 신규 출점이 급증하면서 올해 매장 수는 740곳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을 목표로 영국 최대 서점 체인인 워터스톤즈와 묶어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만큼 재무적 상황도 개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