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HR(인사·조직 관리)에 어디까지 써야 할까요?”
최근 기업 경영진을 만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함정이 있다. ‘어디까지’라는 프레이밍 자체가 AI 도입을 기술 범위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실제로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험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보면 기술을 많이 쓰는 조직일수록 HR의 핵심 의사결정에서는 오히려 분명한 선을 긋는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도된 전략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고민하는 사이 규제 환경은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U(유럽연합) AI Act는 채용, 인사관리, 승진에 활용되는 AI 시스템을 고위험(High Risk)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위험관리, 인적 감독, 기술 문서화, 설명 가능성 확보 등 핵심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위반 시 최대 3500만 유로 또는 전 세계 매출의 7%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되며 이 규정은 2026년 8월부터 전면 적용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1월 시행된 AI 기본법은 채용, 의료·금융 등 국민의 권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영역의 AI를 ‘고영향 인공지능’으로 규정하고 사업자에게 투명성과 안전성 확보 의무를 부과한다. 핵심은 AI의 판단은 설명 가능해야 하고, 사람의 관리·감독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HR에서 AI의 역할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전략적 HR 연구자들은 두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첫째, 이 의사결정이 얼마나 큰 책임 리스크를 낳는가. 둘째, 이 의사결정이 데이터와 규칙으로 얼마나 구조화될 수 있는가.
이력서의 자격 요건 확인처럼 구조화가 쉬운 업무는 AI가 비교적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지만 승진 후보자의 리더십 잠재력을 평가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정성적 판단이 요구돼 훨씬 어렵다. 이처럼 업무의 구조화 가능성과 책임 리스크 수준을 함께 고려해보면 인공지능 기반 인사관리(AI-HR) 의사결정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 경계가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책임 리스크가 낮고 구조화가 쉬운 영역일수록 AI 자동화는 빠르게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책임 리스크가 높고 구조화가 어려운 영역에서는 AI의 역할이 분석과 추천에 머물고 최종 판단과 책임은 인간에게 남는다. 글로벌 기업의 사례가 이 프레임워크를 뒷받침한다. 유니레버는 연간 약 25만 명의 지원자를 AI로 초기 선별하지만 최종 채용 결정은 인간 면접관이 내린다. IBM도 30만 명 이상의 직원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내부 이동을 추천하지만 실제 배치는 관리자와 HR이 결정한다. 두 기업 모두 AI를 자동 의사결정 도구가 아니라 ‘판단 지원 시스템’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경계 영역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AI가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과업을 먼저 처리하면 인간은 문제 정의나 아이디어 탐색 같은 고차원 활동에 더 집중하게 되고 창의적 성과도 높아진다. 이는 AI 도입의 본질이 단순 자동화가 아니라 과업 단위의 재설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AI 기술은 빠르게 평준화되지만 판단과 책임의 구조는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결국 AI 시대 HR 전략의 핵심은 세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첫째, 이 판단의 최종 책임자는 누구인가. 둘째, 그 판단을 구성원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 셋째, AI의 추천을 거부해도 불이익이 없는가. AI 시대 HR의 경쟁력은 기술을 얼마나 빨리 도입했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AI에 맡기고 무엇을 인간이 끝까지 책임질지를 먼저 정하는 데서 갈린다. 그 경계를 먼저 설계한 조직이 결국 앞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