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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olumn

인권경영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투자

서창록 | 377호 (2023년 9월 Issue 2)
2016년 유엔인권이사회가 개최하는 기업과 인권 포럼(UN Business and Human Rights Forum)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신기술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발표를 요청받고 참석했는데 무엇보다 포럼의 규모에 깜짝 놀랐다. 전 세계에서 1000개 이상의 개인과 단체가 참석해 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s)을 토대로 산업별 실사(Due Diligence)를 추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는 자리였다.

국제법에서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고 실현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 유엔인권기구들은 국가가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한다. 오랫동안 이런 국제인권보호 메커니즘의 일부였던 시민사회와는 달리 기업은 아직까지 인권의 주체로 여겨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필자는 이미 기업이 국제 규범의 형성에 주체가 돼가고 있음을 느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은 이미 자사의 인권 정책을 넘어서 유엔인권사무소(OHCHR)와 협력 관계를 맺고 국제 인권 기준과 기업 가이드라인 형성에 깊이 참여하고 있었다.

내가 한 번 더 놀란 사실은 그런 중요한 논의 자리에서 한국 기업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존재가 이곳에는 전혀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한 국내의 인식 역시 턱없이 낮다.

지난 6월 EU공급망실사법(CSDDD)이 EU 의회를 통과하면서 인권경영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듯하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의 특성을 감안할 때 올해 말쯤 입법 논의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EU실사법이 가져올 파장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이해와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ESG가 국제적인 트렌드가 되며 최근 다수의 국내 기업도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 등에 인권 항목을 포함하는 추세를 보인다. 하지만 EU 실사법의 시행 이후 각 회원국이 국내법으로 추진할 실사법 제정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독일 공급망실사법(2021년)을 면밀히 살펴보면 향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 기업들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가이드라인에서 의미하는 인권은 ESG ‘Social’ 부문의 한 지표로 분류되는 인권과는 개념상 큰 차이가 있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의 인권 개념은 기업이 사업 활동을 하더라도 최소한 사람과 사람의 생존에 토대가 되는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가장 필수적이고 근원적인 기업 경영 원칙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기업이 ESG를 제대로 수행한다는 것은 모순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국내 기업이 환경 실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인권 실사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부족해 실질적인 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의 인권경영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기업 인권 벤치마크(Corporate Human Rights Benchmark, CHRB)가 있다. 이는 주요 글로벌 투자사와 전문 연구기관, 학계, 시민사회 및 기업이 참여하는 WBA(World Benchmark Alliance)가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s) 등 국제 규범들을 기반으로 만든 대표적인 국제 인권경영 평가지표다. 특히 CHRB 유엔 핵심 평가지표는 인권 정책, 인권 실사, 고충처리제도 등 기업들이 유엔에서 제시한 이행 지침의 주요 기대 사항을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 해당 지표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EU가 유엔이행지침을 기반으로 입법화를 추진 중인 공급망실사법에 효과적으로 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서창록 서창록 |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휴먼아시아 대표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014년부터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 및 실무그룹 위원장을 지낸 인권 전문가이다. 2020년 국내 최초로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출됐으며 2023년부터 이 위원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인권 전문 NGO 휴먼아시아의 대표로 활동하며 인권 연구·교육·인권기반 국제개발협력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터프츠대 플레처 법률 및 외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crsoh@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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