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혁신과 저항의 서사시

17호 (2008년 9월 Issue 2)

토머스 에디슨은 영화 제작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의 일부를 발명했다. 그러나 그는 영화 자체의 잠재력을 깨닫지는 못했다. ‘멘로 파크의 마법사’(역자주: 에디슨의 별명)는 영화란 큰 화면에 비춰서 대중이 보는 것이라기보다 ‘키네토스코프’(활동 사진 영사기)라고 부르는 박스를 이용해 조그만 구멍으로 혼자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디슨은 키네토스코프를 제작해 판매하는 수익성 높은 제조업체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콧 커스너는 저서 ‘영화 발명(Inventing The Movies)’에서 에디슨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가 제작한 핍쇼머신(peep show machine ·작은 구멍으로 훔쳐보는 기계라는 의미)은 많은 수익을 올리면서 대량으로 판매되고 있다. 대형 화면에 영사하는 기계를 내놓는다면 미국을 통틀어 10대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화면 영사기로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지 말자.”
 
에디슨만 이런 사고를 한 것은 아니다. 많은 기업이 현재의 기술을 혁신하고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반면에 커스너의 책에 서술된 바와 같이 유독 한 산업은 혁신과 기술 진보를 피하며 한 세기를 지나왔다.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혁신과 현상유지 간의 서사적 전투, 토머스 에디슨부터 스티브 잡스까지’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잘 자리 잡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세심하게 보호해 주는 산업에서 기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한 사례 연구를 담고 있다.
 
커스너는 그의 블로그‘시네마테크(Cinema -Tech)’와 할리우드의 오래된 정보지 ‘버라이어티’ 등에 기술이 영화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글을 자주 기고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가 소집한 작은 모임에 커스너가 초대됐고, 이 모임은 커스너가 ‘영화 발명’을 집필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커스너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작년 4월 한 화창한 토요일, 저는 차를 몰고 루커스의 4700에이커짜리 집의 정문을 지나갔습니다. 저는 누가 초대됐는지 알지 못했지만 2년 전에 루커스 감독이 비슷한 모임을 가졌을 때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틴 스코시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이 참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무척 긴장했습니다. 어떤 드레스 코드에 맞춰야 할지도 몰랐어요.”
 
고집쟁이 혁신가’인 루커스는 이 모임에서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

선구적 컴퓨터 애니메이션 기업인 픽사의 설립자인 에드 캐멀과 존 래스터, 영화 ‘백 투 더 퓨처’ 3부작의 감독이며 ‘포레스트 검프’로 오스카상을 받은 로버트 저메키스, 텍사스 출신으로 감독·카메라맨·작가·편집가이며 ‘신 시티’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를 찍을 때 필름 카메라가 아닌 디지털 카메라로 모든 촬영을 마친 로버트 로드리게즈, 흥행 마법사인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 등이 이 모임 참석자였다.
 
루커스는 이 모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려고 할 때 어느 산업에서나 혁신가들은 좌절감을 느낀다. 혁신가들은 색종이가 뿌려지는 퍼레이드가 아니라 적대감이나 무관심에 자주 직면한다. 때로는 현상 유지를 하려는 태도가 혁신적인 발상을 무마시키거나 적어도 그 도입을 지연시킨다”고 말했다.
 
커스너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고, 상영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모든 단계에서 할리우드는 이런 패턴을 반복했다.

영화 발명’은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방법서가 아니다. 이 책은 영화사의 상당 부분에서 발견되는 ‘변화에 대한 저항’과 관련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 운영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기술 변화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매우 유익한 내용이다.

혁신가 vs. 보호주의자
커스너는 기술적 변화에 직면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따라 사람들을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 혁신가는 신기술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 보호주의자는 변화를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 방관자는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은 기술 발전 역사의 상당수가 혁신가와 보호주의자 간의 투쟁으로 이뤄졌다고 가정한다. 혁신가는 전진을 하려하고, 보호주의자는 현상을 유지하려한다. 커스너는 이런 패턴이 영화 발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로운 발명품이 아무런 혼란 없이 할리우드 제작자들에게 채택된 사례도 있다. 스테디캠 카메라 고정 장치는 저항 없이 도입된 발명품의 대표적 사례다. 발전의 진정한 적은 기술 발전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발전의 진정한 적이다. 또 영화 생산과 배급에 사용되는 특정 기술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돈의 흐름에 대한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
 
영화 산업은 기술적 발전과 비즈니스 정체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커스너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 갈등은 영화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영화 산업은 예를 들어 보험 산업보다 더 다양한 요인을 갖고 있을 수 있다. 할리우드는 크고, 성공적이며,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산업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반응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잘 보여 줍니다.”
 
기술적 변화에 반감을 드러내는 비슷한 사례는 다른 산업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사진의 영향력을 무시하려 한 사진 필름 제조업자, 디지털 음악 파일의 배포에 저항하는 음반 산업도 대표적 사례다. 영화는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이 알려진 산업이다. 무수히 많은 기술이 영화의 창작과 배급을 지속적으로 가능케 한다. 그러나 영화 산업의 경제적 측면은 특히 새로운 시도를 저지한다. 주요 영화사에서 개봉하는 각 영화에 투자된 돈의 규모에 따라 현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지는 편이다. 신기술이 (매우 수익성 높은) 기존 방식을 뒤엎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커스너의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 두려움은 19세기 말 영화가 시작된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화 역사 전체에 퍼져 있다.
 
황금알 낳는 거위 보호하기
에디슨은 영화 산업의 긴 역사에서 ‘황금알 낳는 거위를 보호’하기 위해 열성을 다한 첫 번째 유명 인사였다.
 
무성 영화 전성기에 “도대체 누가 배우가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하겠어?”라고 워너브러더스의 해리 워너가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라디오 개발은 유성 영화 활성화에 일조했다. 부분적으로는 라디오를 위해 개발된 오디오 기술이 소리 재생 기술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라디오는 엔터테인먼트를 가정으로 직접, 그것도 무료로 제공했다. 영화는 경쟁을 위해 발전이 필요했다.
 
이와 비슷하게 1920년대 초반에 할리우드가 시도하기 시작한 대형 화면 상영 방식은 스튜디오나 극장 소유자들로부터 큰 흥미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1950년대 초반 가정용 텔레비전이 영화 산업을 위협하면서 대형 화면 상영 방식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화 산업이 세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스튜디오들은 1948년 대법원에 의해 극장 체인을 해체했다. 영화 제작자와 극장 경영자 간의 이해관계가 빚은 갈등은 발전에 또 다른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영사 방식으로의 전환은 또 다른 당면 과제다.영화보급사들은 영화를 필름으로 만들고 보급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들인다.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디지털 방식 배급이 재무적으로 크게 유리하다. 그러나 디지털 방식의 영사를 위해 극장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는데 드는 비용은 상영관당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나 된다. 극장 경영자 입장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소식인 셈이다. 디지털 방식으로 변환하는 비용을 배분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이 스튜디오와 극장 경영자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극장 소유자들은 일반적으로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커스너는 “디지털 방식의 영사 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누가 무슨 비용을 지불하느냐의 문제가 디지털 상영관 계획을 실패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례는 영화계의 주요 기술 발전을 다룬 커스너의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의 일부다. 소리와 색채 도입, 대형 화면 방식부터 디지털 영사 방식, 디지털 카메라(필름에 기록을 하지 않는 필름), 월드와이드웹(www)으로 인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이르기까지 영화계의 주요 기술 발전이 커스너의 책에 등장한다.

미래에 대한 상반된 시각들
브로드밴드 방식 인터넷 접속의 활성화와 홈시어터 도입은 할리우드 비즈니스 모델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파일 공유 네트워크를 통해 불법으로 영화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돼 극장과 DVD 매출이 급감했다. 그러나 합법적인 다운로드도 할리우드의 전통적 비즈니스에 여러 문제를 안겨준다. 예를 들면 극장 상영의 축소, 극장 상영판 필름이 나오는 시기와 DVD 및 온라인 출시 시기 축소 등과 같은 문제가 있다.
 
블루레이와 같은 고화질 형태가 디스크 방식의 영화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미래에는 다운로드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라는 회사 이름은 영화 배달 산업이 결국 인터넷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최고경영자(CEO) 리드 해스팅스의 판단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넷플릭스는 고객들에게 우편으로 DVD를 대여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해스팅스는 2001년“우리는 다운로드 가능한 DVD가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우리의 10년 계획은 DVD 다운로드 산업에서 세계 선두 업체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공하는 방법은 기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선택할 때 인터넷을 애용하는 약 200만 명의 가입자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고객들은 바로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 볼 사람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 관계가 될 것이다.”
 
홈시어터 시스템의 유행도 큰 화두다. 적당한 가격으로 제공되는 홈시어터 시스템을 이용하면 끈적끈적한 바닥이나 비싼 스낵, 방해가 되는 다른 관객 등과 같은 극장의 단점은 해소하고 고화질, 큰 화면, 다채널 서라운드 사운드와 같은 장점을 누릴 수 있다. 실제 극장 관객 수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커스너는 다음과 같이 통계를 인용해 설명한다. “2005년에 14억 장의 영화표가 팔렸다. 199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AP통신과 AOL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성인 73%가 집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더 좋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 경우 기술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기술이 해결책을 제공할 수도 있다. 3D 영화에 대한 할리우드의 관심이 커지는 것은 상당 부분 최고의 홈시어터 시스템으로도 구현하기 어렵고,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동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텔레비전과의 차별화를 위해 대형 화면 상영을 추진한 것과 같이 할리우드가 3D에 진출하게 된 동기는 홈시어터와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의 수많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홈시어터로 봐도 따라올 수 없는 고유의 마법과 같은 무언가가 극장에 있다고 믿는다. 커스너는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M. 나이트 샤말란이 “극장에서는 관객들 간에 ‘집단적 감정’이 존재한다”라고 한 표현을 인용한다. “이상적인 형태는 극장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다른 방식을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발전하는 기술에 대한 수많은 의심(“도대체 누가 배우가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하겠어?”)처럼 샤말란의 말도 현상 유지를 위한 방어처럼 들린다.
 
루커스와 같은 일부 혁신가들은 현재의 기술적 변화에 대해 좀 더 긍정적 시각을 갖는다. 커스너에 따르면 루커스는 극장이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문화적 중심이 돼 만남의 장소가 되고, 사람들이 놀고 즐기는 곳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루커스는 극장과 집에서 새로 나온 영화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상황도 결국 가능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극장이라는 영화 상영 장소가 궁극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커스너에 따르면 루커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상황은 축구 경기에 비유할 수 있다. 축구팬은 경기장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리를 질러가며 응원을 할 수도 있지만 집에서 경기를 볼 수도 있다. 축구팬이 어느 선택을 하든지 내셔널 풋볼 리그(NFL)와 축구팀은 돈을 벌 수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루커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재탄생의 과정을 겪든지, 홈시어터에 대항해 살아남기 위해 노력을 하든지 결국 과거에 그랬듯이 할리우드는 영화 제작 사업에서 수익성을 확보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단으로가 아니라 개인적인 공간에서 영화를 보게 됨으로써 에디슨이 틀린 주장을 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