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2년 11월 호에 실린 랙스세베니우스 관리 이사 데이비드 A. 랙스(David A. Lax)와 하버드경영대학원 경영 교수 겸 랙스세베니우스 사장 제임스 K. 세베니우스(James K. Sebenius)의 글 ‘Deal Making 2.0: A Guide to Complex Negotiation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 2012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shing Corp
규모가 큰 거래는 대개 여러 건의 작은 거래로 이뤄진다. 초대형 합병, 중대한 판매 거래, 인프라 프로젝트 등이 그렇다. 심지어 유엔 결의안 가운데도 여러 건의 작은 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있다. 다양한 당사자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나름의 관심사와 관련해 집중적인 협상을 벌인 결과가 바로 이런 거래다. 거래에 관한 조언은 대부분 퍼즐을 구성하는 각 조각에 적용하기에 적합한 전술을 선택하는 방법에 집중돼 있다. 애당초 각 조각을 찾아내는 방법은 고사하고 각 조각을 하나의 퍼즐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최고의 방법을 알려주는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확연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유럽 최대의 철강회사 아르셀로(Arcelo)를 인수한 미탈스틸(Mittal Steel) 사례를 생각해 보자. 미탈의 아르셀로 인수는 가치가 무려 331억 달러에 달하는 복잡한 거래였다. 미탈스틸 설립자 락시미 미탈(Lakshmi Mittal)이 인수 거래를 타결하기 위해 아르셀로 CEO와의 회의를 준비하는 것 외에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자. 미탈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주장을 했건 아르셀로가 퇴짜를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여러 소식통에 의하면 아르셀로 이사회와 CEO는 맨 처음에 미탈스틸의 제안에 단호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탈은 미탈스틸의 CFO를 맡고 있는 자신의 아들 아디티야(Aditya)와 함께 필자들이 ‘협상 캠페인(negotiation campaign)’이라 부르는 방법을 활용했다. 다시 말해서 여러 건의 금융 협정을 체결하고 룩셈부르크와 프랑스, 네덜란드, 캐나다에서 주주와 정계 인사를 상대로 포괄적인 교섭을 벌였으며 브뤼셀과 미국에서 규제 합의를 체결했다. 여러 건의 협상을 통해 충분한 지지를 확보한 덕에 미탈은 잠재적인 방해 요인을 극복하고 심지어 방해 세력이 더 이상 아르셀로 인수를 반대하지 않도록 변화시킬 수 있었다.
미탈의 인수 거래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거래 역시 다양한 전선(fronts·戰線)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신제품을 내놓으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지지를 얻고 고위급 경영진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과 부서가 참여하는 복잡한 사내 협상을 조직해야 한다. 새로운 기업을 설립한 사람은 상호 강화 작용을 하는 여러 건의 협상을 하나의 망으로 엮어야 한다. 가령, 적절한 자금원으로부터 적절한 조건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활동, 믿을 만한 인물을 협상에 참여시키기 위한 노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원과의 협정 체결, 전략적인 파트너와의 계약 이행 등을 모두 하나의 망으로 연결해야 하는 것이다.
포괄적인 상황을 구성하는 개별 거래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해결해야 하는 전술적 과제(tactical challenge)를 제시한다.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직접 협상에 익숙하다. 대신, 이들은 협상 테이블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전략적인 과제(strategic challenge)에는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편이다. 다시 말해서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결과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부족한 협상 자원을 배치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개별 거래의 순서를 배열하며 이 순서가 지켜질 수 있도록 충분한 지지를 확보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필자들은 이 과정을 일종의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협상을 수많은 당사자와 관련 있는 여러 개의 전선이 결합된 캠페인이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필자들은 수십 건의 복잡한 거래와 관련해 그동안 조언을 해온 경험과 분석 내용을 기반으로(또한 판매, 마케팅, 정치, 전쟁 부문에서 얻은 통찰력도 활용했다) 경영자들이 이런 캠페인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과 도구를 개발했다. 필자들은 본 논문을 통해 관련 있는 당사자를 찾아내고, 여러 전선을 정의하고, 각 전선을 상대하기 위한 순서를 정하고, 승리 연합 구축을 위해 여러 건의 복잡한 거래를 조직하는 방법에 관한 조언을 제시하는 등 캠페인 진행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지만 먼저 다중전선 캠페인(multifront campaign)의 정의와 직접 협상 방법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미 태평양 연안의 항만 운영자들이 불리한 입장에서 부두 노동자와 대면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살펴보자. (다양한 출처를 통해서 이 사례를 확인했다. 그중에서도 캐스린 맥긴(Kathleen McGinn)과 디나 위터(Dina Witter)가 기고한 하버드경영대학원(Harvard Business School) 사례를 집중적으로 참고했다.) 이런 유형의 노동 쟁의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태평양해운협회(Pacific Maritime Association·PMA)는 다중 접선 접근방법을 도입해 감당하기 힘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당사자에게 유익할 가능성이 큰 협정을 도출해내는 데 도움이 되는 다수의 유용한 원칙을 활용했다.
해안가의 결전
PMA는 총 72개에 달하는 미국 해운 회사 및 글로벌 해운 회사로 구성된 협회다. 머스크(Maersk), 한진해운 등과 같은 대규모 해운 회사뿐 아니라 샌디에이고에서 시애틀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을 따라 늘어선 항만에서 터미널 운영을 맡고 있는 업체들도 해운협회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PMA는 국제항만노동조합(International Longshore and Warehouse Union·ILWU)과 3년에 한 번씩 계약 협상을 진행했다. PMA 회장으로 취임한 조셉 미니애스(Joseph Miniace)는 1999년에 회담을 진행할 당시 심각한 정체 현상을 겪고 있던 태평양 연안 항구의 비효율적인 운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IT를 도입하는 방안을 골자로 하는 합의를 도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미니애스는 노조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혔다. 노조가 당장은 일자리를 보장하지만 향후에 일자리 축소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방안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노조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다. 1950년대 이후 컨테이너화를 비롯한 기타 기술 변화로 인해 국제항만노동조합 서부 연안 지부 소속 노동자 수가 90%나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항만 노조는 미 서부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해상 무역(당시 가치로 1주일에 60억 달러 규모)에 대한 영향력을 적극 활용해 비공식적인 태업에 돌입했다. 물건이 가득 실린 컨테이너선이 항구에 길게 늘어섰고 공급망이 타격을 입었다. 월마트(Walmart), 델(Dell), 홈디포(Home Depot), 닛산(Nissan), 보잉(Boeing) 등 해양 수송을 통해 부품과 제품을 확보하는 기업, 쉽게 상하는 농산물을 수송해야 하는 농업 부문, 정부 등이 PMA와 노조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운송 관련 조직으로 구성된 분열된 조직에 불과했던 PMA는 이 같은 압박에 쉽게 굴복했다.
2002년 회담이 열리기 전, 미니애스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항만 정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문제를 다시 언급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미니애스는 노조의 반응을 우려했다. 노동 전문가 하워드 키멜도프(Howard Kimeldorf)는 “경제적인 영향력을 따지면 국제항만노동조합이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항만노동조합이 오랜 기간 협상력을 키워 온 결과가 노조원의 급여에 반영돼 있었다. 2002년을 기준으로 노조원 평균 급여(초과근무 수당 포함)를 살펴보면 항만 노동자가 연평균 8만3000달러, 사무원이 11만8000달러, 십장이 15만8000달러를 수령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미니애스에게 어떻게 협상을 하라고 조언을 할지 생각해 보자.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 흔히 제안되는 방법으로는 적극적인 경청, 신뢰 구축,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노력, 거절에서부터 출발하는 전략, 보디랭귀지 해석, 윈윈 방안 제안, 협상이 끝날 때까지 협상 당사자를 한 방에 넣어두는 방법 등이 있다. 이런 방법이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미 태업을 감행한 바 있는 국제항만노동조합이 1주일에 무려 60억 달러어치의 물품이 오고 가는 서부 연안 항만에서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전술은 먹혀들 리가 없었다.
이 같은 상황 판단을 바탕으로 미니애스는 PMA의 불리한 위치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방안을 도입했다. 2002년 회담이 열리기 한참 전부터 총 4개의 전선에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니애스가 계획한 캠페인의 목적은 항만 노동자들이 미니애스가 제안한 기술 도입 방안에 반대하지 않고 찬성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제1 전선: 내부. 미니애스는 가장 먼저 PMA에 주목했다. 내부 동조를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PMA 회원들을 방문해 끈기 있게 신기술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한편 대형 소매업체와 제조업체를 등에 업고 회원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이런 노력 끝에 미니애스는 협회로부터 이사회를 구조조정하고 이사회 규모를 줄여도 좋다는 승인을 받아낼 수 있었다. 미니애스는 구조조정을 통해 원활한 계약 협상 능력을 갖고 있는 노사 전문 경영자의 숫자를 줄이고 반복적인 양보가 초래하는 경제적 결과에 주목하는 운영 담당 경영자의 수를 늘렸다. 또한 PMA는 만장일치 모델에서 투표 모델로 전환하는 등 이사회의 의사결정 절차 변경에도 동의했다. 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델하에서는 운송량에 따라 가중치가 주어지기 때문에 가장 운송량이 많은 조직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제2 전선: 기업. 그런 다음, 미니애스는 국제소매협회(International Mass Retail Association)의 회장으로서 다수의 조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로빈 러니어(Robin Lanier)와 긴밀하게 협력했다. 러니어는 미니애스가 제시한 근거를 해운 회사, 제조업체, 월마트를 비롯한 소매업체에 전달했다. 이들이 제시한 조언과 의견은 PMA 내부 전선을 상대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됐다. 러니어가 접촉한 당사자들은 당연하게도 협회와 노조 간의 협상에 나름대로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물론 과거에는 PMA가 갖고 있는 이해관계가 전혀 활용되지 못했다.) 신기술이 도입되면 운송에 소요되는 시간이 줄어들고 화물을 좀 더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항만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방안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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