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2년 3월 호에 실린 개리 피사노(Gary P. Pisano)와 윌리 스(Willy C. Shih)의 글 ‘Dose America really need manufacturing?’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많은 미국 기업들은 ‘자국 내’라는 위치가 주는 잠재적인 전략적 가치를 무시한 채 재정적 기준에만 초점을 맞춰 어디서 생산할지를 결정한다. 공장 건설 계획은 다른 투자 계획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뤄지며 엄격한 수익성 기준이 적용된다. 이 과정에서 세무, 정부 규제, 지적재산권 및 정치적 사항들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임원들은 제조를 주로 원가 중심적으로 보기 때문에 아웃소싱이나 해외 소싱이 기업 혁신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간과한다. 사실 임원의 대부분은 제조가 회사의 혁신 체계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이전에 언급했듯 미국은 제조의 엑소더스를 겪고 있다. (HBR 2009년 7-8월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한다’ 참조) 이로 인해 창의력을 품질이 좋으면서도 가격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미국은 많은 분야에서 선두를 유지할 능력을 잃었다. 최근 수십 년간 평판 디스플레이, 차세대 전지, 공작기계 및 캐스팅, 스태핑, 냉각 단조와 같은 금형 산업, 정밀베어링, 광전자공학, 태양광, 풍력 터빈을 포함한 많은 산업에서 미국은 대가를 치렀다. 또한 생명공학, 우주항공, 고급 의학 장비와 같은 다른 산업에서도 주도권을 위협받고 있다.
문제는 제조가 혁신에 중요한 때와 원가 및 자본지출 절감을 위해 아웃소싱해도 괜찮은 때를 구별하는 것이 지독히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기업 경영인들과 정부정책 결정자들이 이런 이슈를 다루는 데 도움이 될 틀을 제공할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이 소싱과 관련해 더 나은 결정을 내려서 혁신 주도 경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기 바란다.
소싱 결정의 틀
생산기지를 자국의 R&D 조직에서 멀리, 지구 반대편으로 옮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의 혁신 능력을 해칠지, 아닐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R&D와 생산의 모듈화, 즉 이 두 과정이 독립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 그리고 생산기술의 성숙도를 살펴봐야 한다:
모듈화.R&D와 제조가 서로 독립적이면 제품의 주요한 성질(특징, 기능, 미적인 면 등)은 생산 공정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두 활동이 서로 멀리 떨어져 진행돼도 아무 문제가 없다. 반면 모듈화 정도가 낮으면 제품 디자인을 설명서로 완벽히 정형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디자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제조 과정이 미묘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영향을 받는다. 이럴 때는 생산기지를 R&D 조직 가까이에 두는 것이 좋다.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본 질문을 통해 모듈화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1. 제품 디자이너들이 생산 프로세스에 대해 얼마나 알아야 하는가?
생명공학이나 신소재 같은 분야에서는 모든 제품 디자인이 각각의 고유한 제조 프로세스를 필요로 한다. 디자이너들은 제조 프로세스를 깊이 이해해야만 그들의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품 혁신이 종종 프로세스의 혁신을 수반한다.
반대편 극단에는 어떤 제품 디자인이든 동일한 프로세스로 생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합당한 경우가 있다. 디자이너들은 제조 공정을 생각하거나 이해하지 않고도 그들의 일을 할 수 있다. 문인, 프로그래머, 작곡가 등이 이런 자유를 누리며 일한다. 어떤 산업들은 이 중간에 위치한다; 제품을 개발할 때 제조 프로세스를 고려하는 공식적인 접근법을 사용한다. 여기에는 ‘디자인 룰’이 정해져 있어 일련의 제품에 특정 프로세스 공식이 적용된다. 이 디자인 룰을 지키는 한 디자이너들은 제조 프로세스가 작동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제품 디자인이 이 룰을 벗어나려 하면 프로세스의 제약이 강해진다.
2. 제품 디자이너가 생산 프로세스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프로세스 기술의 영역은 순수예술에서 순수과학까지 넓게 퍼져 있다. 순수예술 영역에 위치한 프로세스 기술의 요건은 불명확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건을 꼼꼼히 봐야 하는데, 설사 이해한다 하더라도 재현하기 힘들 수 있다. 제품 혁신을 위해서는 제품 개발과 프로세스 개발을 오가며 반복하고 실제 생산 단계에서 피드백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성숙도.이는 기술이 얼마나 오래 됐는지보다는 프로세스가 얼마나 진화했는가를 뜻한다. 기술의 역사와 프로세스의 진화가 서로 연관돼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직 성숙되지 않은 프로세스라면 개선될 여지가 아주 많다. 1960년대에 듀퐁사 소속 과학자들이 방탄복과 기타 고장력 용품에 쓰이는 폴리아라미드 섬유인 케블러를 발견한 후 듀퐁사는 15년에 걸쳐 5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제조 프로세스를 상용화하고 이 물질의 방적 방법을 익혔다. 프로세스가 성숙하면 대개 개선의 기회도 증가한다.
제조 기술이 미숙하다면 기업들은 프로세스를 개선해 번창할 수 있다. 1980년대 초,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미국 경쟁사들이 놓친 제조기술의 개선을 통해 메모리칩 분야에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했다. 오늘날 차세대 평판디스플레이나 바이오의약품, 신소재 같은 분야에서 최첨단 프로세스 기술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다. 따라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세계적 수준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모듈화와 프로세스의 성숙도라는 기준으로 보면 제조와 혁신의 관계는 네 개의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모듈화-성숙도 매트릭스’ 참조).
순수한 제품 혁신:이 영역에서는 제품 혁신과 제조를 결합시킬 유인이 적으며 프로세스 혁신의 기회가 거의 없다. 제조를 아웃소싱하는 것이 옳다. 반도체 산업의 많은 분야가 이 영역에 해당된다. 제품 설계만 하고 생산시설은 없는 퀄컴 같은 회사들이 있는 반면 TSMC처럼 생산만 하는 회사들도 있는 이유다.
순수한 프로세스 혁신:이 영역에서는 프로세스 측면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많고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이는 제품 혁신과는 별 관계가 없다. 디자인 룰이 충분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직적 통합이나 R&D 시설과 생산시설의 근접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특화된 하청 제조업체가 디자인에 중점을 둔 업체를 위해 주문생산을 하는 방법이 적합하다. 하지만 생산을 아웃소싱하기 전에 프로세스 개선이 상당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아이패드의 회로판처럼 전자 부품들을 연결하는 고밀도 연성회로가 바로 이 영역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각각 다른 층의 전선을 연결할 작은 구멍이 수천 개 있다. 이 미세한 배선과 구멍들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연성회로의 생산규격으로 구현된 디자인 룰이 있어 디자인과 제조는 독립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프로세스에 포함된 혁신:이 영역에서 프로세스 기술은 성숙했지만 제품 혁신에 필수적이다. 프로세스에서의 작은 변화는 제품의 특성이나 품질에 기대 이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프로세스를 수정하면서 제품의 혁신이 점점 늘어난다. (와인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러므로 이 영역에서는 R&D와 생산시설을 조직적으로 통합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이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 고급 패션과 같은 많은 전통적인 크리에이티브 산업이 여기 해당한다. 천을 어떻게 자르고 솔기를 어떻게 꿰매는지에 따라 옷이 걸쳐지는 느낌이 미묘하지만 유의미하게 달라진다. 우리가 연구한 유럽의 어떤 명품 의류업체의 경우 디자이너가 원단 납품업체의 엔지니어와 수시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국의 원단 납품업자들과만 일을 했다.
프로세스가 주도하는 혁신:최첨단 과학으로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분야에서는 프로세스 혁신이 빠른 진화를 겪고 있다. 프로세스에서의 아주 작은 변화도 제품에 주는 영향은 막대하므로 R&D와 생산 시설을 가까이 통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둘을 떨어뜨려 놓을 때 감수해야 할 리스크도 크다. 관리자나 투자자, 애널리스트들은 이런 위험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종종 제조작업을 하찮으면서도 자본을 갉아먹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제조를 아웃소싱하거나 R&D 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원가를 낮출 수 있는 곳으로 옮긴다. 이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제조기능을 잃게 되면 상용화할 만한 새로운 제품을 창조할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생명공학이 좋은 예다. 유전공학기술로 만들어진 의약품은 한 세기 넘는 역사를 지닌 화학합성법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복잡한 단백질 분자로 이뤄진다. 동물세포 대량 배양기술과 같은 프로세스상 큰 발전이 없었다면 암젠사의 빈혈 치료제인 에리스로포이에틴이나 제넨테크사의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과 같은 블록버스터급 신약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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