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주역에서 말하는 경영의 핵심은 소통

305호 (2020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주역』은 중국 신화시대 3황5제 가운데 한 사람인 복희씨가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복희씨에겐 삼라만상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표시할 기호 체계가 필요했다. 내일 날씨가 어떨지, 비바람이나 우레가 칠 것인지 등을 예측할 수 있어야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국가 경영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 물(☵)과 불(☲), 산(☶)과 연못(☱), 우레(☳)와 바람(☴) 등 대표적인 자연현상 여덟 가지를 기호(상징체계)로 그렸다. 이것이 『주역』의 기초인 8괘다. 결국 『주역』의 출발은 경영이었던 셈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경영의 핵심은 소통이다. 『주역』에서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위에,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아래에 놓여 있는 지천태괘()가 태평성대를 뜻하는 것도 임금이 가장 높은 자리인 하늘을 백성들에게 내주고 자신은 가장 낮은 자리인 땅에 거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노자와 장자 사상에 천착해 온 박영규 인문학자가 이번엔 『주역』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만납니다. 역대 중국 황제들은 물론이고 조선의 임금들도 탐독해왔던 『주역』을 통해 현대 기업 경영에의 시사점을 제시합니다.

동양사상의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주역』은 그 출발이 경영이었다. 다소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주역』의 연원을 추적하다 보면 이런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주역』은 중국 신화시대의 복희씨가 처음으로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복희씨는 하늘(☰)과 땅(☷), 물(☵)과 불(☲), 산(☶)과 연못(☱), 우레(☳)와 바람(☴) 등 대표적인 자연현상 여덟 가지를 기호(상징체계)로 그렸는데 이것이 『주역』의 기초인 8괘다. 주나라의 문왕은 이 8괘를 아래위로 중첩시켜 64개(8*8=64)의 복합 괘를 만든 후 각각의 괘에 이름을 붙였고, 주공은 괘를 구성하는 단위 요소인 효(爻)에 의미를 부여했다. 전자를 괘사(卦辭), 후자를 효사(爻辭)라 한다. 괘사와 효사는 뒤에 붙은 사(辭)라는 글자가 말해주듯이 각각의 괘와 효에 담긴 메시지, 의미 체계를 뜻한다. 『주역』 공부나 주역점의 성패는 괘사와 효사를 삼라만상의 운행원리와 시공간의 변화에 맞게 얼마나 적절하게 잘 해석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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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경영의 관계

복희씨와 문왕이 괘를 만들 때 참고했다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주역』과 경영의 관계를 추론해낼 수 있다. 두 문건은 모두 강(江), 즉 치수(治水)와 관련이 있다. 하도의 하(河)는 황하강을 뜻하고, 낙서의 낙(洛)은 황하강의 지류인 낙수를 뜻한다. 고대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강물을 끼고 있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강물은 인류가 원시 상태에서 벗어나 문명적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였다. 수량이 풍부해야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었고, 농산물의 수확량에 비례해서 거두는 세금은 고대국가의 경제적 원천이었다.

문제는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강물의 범람이었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홍수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는데 문명의 태동기인 기원전 3000년경의 사정은 오죽했겠는가. 강물이 범람하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토지의 경계가 흐릿해져 소유권 분쟁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국가대로 애로사항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세금을 징수하는 기준과 근거, 대상이 뒤죽박죽됐을 것이고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8괘를 고안했다는 복희씨는 중국 신화시대의 3황5제 가운데 한 사람이다. 즉,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였던 셈이다. 그에게는 세금을 징수해 공동체의 살림살이를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책임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 어떤 형태로 홍수가 닥칠 것인지를 예측하고, 범람한 강물로 인해 흐릿해진 토지의 경계를 복원해 과세의 대상과 기준을 명확하게 하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국가적 과제였다. 그렇다고 주먹구구식으로 이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분쟁이 심해져 하루도 못 버티고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을 것이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시기, 별자리의 운행 등을 면밀하게 관측해서 과학적인 역법(曆法) 체계를 갖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자 역(曆)자를 파자해 보면 벼화(禾) 자가 두 개 있고, 그 밑에 날 일(日) 자가 있는데 고대의 역법이 왜 생겼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농사를 짓기에 적당한 날짜를 일러주는 것이 바로 역법이다.

『주역』도 이런 필요에서 시작된 것이다. 복희씨에게는 역법 체계와 함께 삼라만상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표시할 기호 체계가 필요했다. 내일은 날씨가 맑을 것인지, 아니면 비가 올 것인지, 바람이 불 것인지, 우레가 칠 것인지 등을 예측할 수 있어야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국가 경영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하에서 발견된 하도는 이런 기호 체계를 설계하는 밑그림이 됐다. 하도에는 1부터 10까지의 수를 나타내는 다이어그램이 동서남북 사방에 걸쳐 순환적 배열 구도로 그려져 있다. 복희씨는 이에 착안해 자연 만물의 순환 원리를 여덟 개의 기호로 그렸는데 이것이 『주역』의 기초가 되는 8괘다.

하나라 시대의 우임금이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낙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우임금이 치수를 잘해 왕이 됐다고 말한다. 우임금은 낙서에 표기된 다이어그램의 수학적 원리를 치수와 국가 경영에 적절하게 응용해 성공한 지도자가 됐으며, 훗날 주나라의 문왕은 낙서와 우임금의 경영 사례를 참고해 『주역』의 64괘를 그렸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뒤 글자 두 개를 따서 도서관이라는 용어가 생긴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두 문건은 학문의 모태이기도 하다. 하도의 다이어그램을 구성하는 수의 합계가 55이고, 낙서의 다이어그램을 구성하는 수의 합계가 45인데 이 둘을 합하면 만물의 완성을 뜻하는 100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하도와 낙서를 토대로 설계된 『주역』을 학문의 완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역』에서 말하는 경영의 핵심은 소통이다. 64괘 가운데 지천태괘와 천지비괘를 비교해서 보면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우선 지천태괘()는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위에 놓이고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아래에 놓이는 모양으로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하늘이 밑에 있고 땅이 위에 있으면 세상이 뒤집힌 것이다. 따라서 무질서, 대혼란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왜 태평성대를 뜻하는 태(泰)를 괘사로 삼았을까? 소통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하늘은 국가의 지도자, 군왕을 상징하고 땅은 그가 다스리는 백성을 상징한다. 임금이 가장 높은 자리인 하늘을 백성들에게 내주고 자신은 가장 낮은 자리인 땅에 거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양을 상징하는 괘가 지천태괘다.

이에 비해 천지비괘()는 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가 위에 놓이고 땅을 뜻하는 곤괘(☷)가 아래에 놓이는 괘가 천지비괘인데 평면적 시각으로 볼 때 이 모양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안정적인 상태이다. 하지만 『주역』에서는 이 괘의 괘사에 비(否)자를 붙이고 있다. 한자 否는 일반적으로 ‘아닐 부’자로 읽지만 『주역』에서는 ‘막힐 비’로 읽는다. 천지비괘는 임금이 자신의 자리인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양인데 지도자의 권위만 내세우고 아랫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꽉 막힌 상태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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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연산군의 차이

조선왕조 스물일곱 명의 임금 가운데 지천태괘의 괘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임금이 세종이다. 세종은 군주로서 권위를 내려놓고 신하들과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을 향해 쓴소리를 일삼는 신하를 향해서도 “기탄없이 말하라”며 마음을 열었고, 공법이라는 새로운 세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17만여 명에 이르는 백성들의 소리를 직접 들었다. 소통을 중시하는 임금의 리더십 덕분에 세종치세는 태평성세를 이뤘고 후세는 세종을 성군으로 칭송하고 있다.

연산군은 정반대의 사례다. 연산군은 임금의 자리에서 한 치도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황음(荒淫)과 사냥을 절제하고 국정을 제대로 보살피라는 신하들의 쓴소리에는 귀를 닫았고, 군주와 신하들이 소통하는 공간이었던 경연에는 빗장을 걸었다. 심지어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라는 정치적 변란을 기화로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신하들을 조정에서 몰아내고 목숨을 빼앗았다. 『주역』 천지비괘에서 말하는 꽉 막힌 소통 때문에 그는 결국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역사는 그를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을 창업하고 성장시킨 최고경영자(CEO)들의 행적과 경영 철학에서도 우리는 『주역』의 지천태괘와 천지비괘에서 말하는 소통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천재 중 한 명인 윌리엄 쇼클리는 천지비괘에 해당되는 사례다. 쇼클리는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에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은 쇼클리는 자신의 명성을 앞세워 기업을 창업했다. 하지만 CEO로서 쇼클리가 보여준 리더십은 낙제점이었다. 쇼클리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말이나 행동을 일절 용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직원들의 말을 도청하기도 했다. 소통에 실패한 쇼클리는 결국 실리콘밸리에서 퇴출됐다.

쇼클리가 세운 회사에서 핵심 엔지니어로 일하던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그곳을 탈출한 후 설립한 인텔은 정반대 사례다.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CEO와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자신들의 권위를 모두 내려놓고 직원들과 적극 소통했다. 조직 내 관료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했으며 민주적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이들 회사에는 지위에 따라 미리 정해진 주차공간도 없었고 호화롭게 꾸며진 회의실이나 개인 사무실도 없었다. 중간 간부를 줄줄이 세워놓고 실시하는 조회도 없었고 회의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떠들고 발언할 수 있었다.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소통한 두 창업자의 리더십 덕분에 인텔은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회사 설립 후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지천태괘에서 말하는 태평성세를 누리고 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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