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 vs. 카이로스

97호 (2012년 1월 Issue 2)

 

 

헬라어로 시간을 뜻하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인크로노스(Chronos)’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인카이로스(Kairos)’. 크로노스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객관적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주관적 시간이다. 비록 찰나일지라도 구체적 사건 속에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시간을 가리켜 그리스인들은 카이로스라 부른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1980년대의 유명한 광고 문구가 시사하듯 카이로스적 순간은 일상적으로 의미 없이 지나가는 크로노스적 시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올 한 해가 벽에 걸린 2011년 달력을 2012년 것으로 바꿔달거나 일정을 관리하는 다이어리를 새롭게 장만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려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카이로스의 때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시간을 바라보는 개인의 자세다.

 

시간을 크로노스로만 받아들이면 시간의 노예로 수동적 삶을 살기 쉽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며 의욕에 넘치기보다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었다며 풀이 죽어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시간을 카이로스로 바라보는 이들은 시간의 주인으로서 능동적으로 삶을 영위하려는 자세를 갖추게 된다. 1, 1초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매 순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힘쓰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주인공은 바로 이들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2000년대 모 기업 이미지 광고의 구호도 시간을 카이로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세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일터에서 능동적으로 시간에 대처하는 자세를 갖기 위해선 개인 차원의 사고 전환 노력과 함께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조직 구성원들이 카이로스의 때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인생을 걸 만한 목표와 사명감,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조직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일이다.

 

아직도 국내 대기업 총수들 중에는 신년사를 통해매출액 OO억원 달성’ ‘영업이익률 OO% 개선등 재무적 성과를 새해 목표로 제시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무미건조한 목표가 조직 구성원들에게 감동을 줄 리 없다. 창의와 자율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21세기 지식경제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지난해 최고 베스트셀러로 꼽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펴낸 쌤앤파커스에는 신입 직원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사명 선언식이다. 수습 기간이 끝나면 누구나 자신이 출판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인생의 사명을 선언문 형태로 작성해 전 직원 앞에서 낭독해야 한다. “나의 사명은 빈부의 격차가 앎의 격차, 나아가 삶의 격차가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윤택한 정신세계를 가꾸도록 돕겠다등 신입 직원들의 사명 선언문은 이후 사무실 한쪽 벽면에 선배들의 사명 선언문과 함께 나란히 걸린다.

 

박시형 쌤앤파커스 대표는처음엔이게 뭐지하며 의아해하던 직원들도 이젠 사명 선언식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던 일 중 하나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자신의 삶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갖게 되면서 그들이 느끼는 감격과 변화는 실로 놀랍다고 전했다. 쌤앤파커스가 2006년 출범 이후 해마다 베스트셀러를 펴낼 수 있었던 비결은 이처럼 사명 선언식을 통해 전 직원들이 확고한 비전을 수립하고 공유하기 때문은 아닐까. 조직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조직원들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조직과 개인의 비전을 일치시키는 데 기여하는 지도자, 카이로스의 때를 만들어가는 리더들이 올 한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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