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 12

운명을 지배하는 리더는 비르투스를 꿈꾼다

77호 (2011년 3월 Issue 2)


편집자주 15∼17세기 약 300여 년간 이탈리아 피렌체 경제를 주름잡았던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연구해온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메디치 가문의 창조 경영 코드를 집중 분석합니다. 메디치 가문의 스토리는 창조 혁신을 추구하는 현대 경영자들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피렌체의 국민장

1516 3 19, 피렌체에서 엄숙한 장례식이 개최됐다. 국민장(國民葬)으로 치러진 이 장례식의 주인공은 짧은 기간 피렌체를 통치하던 메디치 가문의 지도자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 Medici, 1479-1516)였다. 토스카나 지방의 싱그러운 봄을 보지 못하고 메디치 가문의 수장은 37세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폐결핵이 그의 목숨을 빼앗아가 버렸다. 줄리아노는위대한 자로렌초 데 메디치의 셋째 아들이자, 당대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이었던 교황 레오 10세의 동생이었다. 살아생전 그는 프랑스의 왕 프랑수와 1세로부터 느무르(Nemours)의 공작으로 임명돼 통상느무르 공작 줄리아노로 불린다.

피렌체 도심에 있는 메디치 궁전에서 출발한 장례 행렬은 메디치 가족 성당인 산 로렌초(San Lorenzo)를 향해 천천히 행진했다. 너무 많은 시민들이 장례행렬이 지나는 좁은 골목길로 몰려들어 압사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경찰의 보고가 접수될 정도였다. 3년 전에 교황으로 즉위(1513)한 레오 10세는 동생의 장례식을 주관하기 위해 취임 후 처음으로 고향을 찾았다. 검은 상복을 차려입은 피렌체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교황의 친동생이자 피렌체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줄리아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용히 지켜봤다.

당시 피렌체의 임시 시장이었던 마르첼로 아드리아니(Marchello Adriani)가 고인을 위한 추도사를 맡았다. 피렌체의 문학가이자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젊은 메디치 가문의 지도자를 애도하며, 피렌체를 이끌고 갈1 시민(principes)’인 메디치 가문의 사명에 대해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현직 교황을 포함한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아드리아니는 진정한 리더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웅변을 토했다.

리더의 사명은 비르투스(Virtus)

마르첼로 아드리아니는 리더의 사명을비르투스(Virtus)의 실천이라고 역설했다. 비르투스는 영어로 덕행, , 가치, 순결 등의 다양한 뜻을 가진 ‘Virtue’의 라틴어 어원이다. 고대 로마세계에서 덕()과 가치를 의미했던 이 단어는 남성다운 기질, 용기 등의 의미로 확대됐지만탁월함(Excellence)’이란 단어로 번역할 수 있다. 아드리아니는 비르투스를포르투나(Fortuna)’와 대비시켰다. 포르투나는 영어의 포춘(Fortune)에 해당한다. 행운으로도 번역할 수 있고 부()로도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아드리아니는 리더라면 포르투나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진정한 리더는 포르투나를 넘어서는 비르투스, 즉 탁월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들에게 포르투나는 우연의 산물이지만 비르투스는 용기를 통해 성취해야만 하는 탁월함의 품격이었다.1  탁월함의 추구는 최상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요구한다. 마르첼로 아드리아니는 줄리아노의 장례식에서 피렌체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메디치 가문을 향해서 용기를 통해 성취해야만 하는 탁월함의 품격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부와 명예의 축적은 포르투나의 영역이다. 그러나 한 시대의 정신을 이끌어 갈 탁월한 리더에게는 비르투스가 요구된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비르투스의 상징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영묘는 산 로렌초 성당의 신 성구실에 모셔져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 영묘를 조각한 사람은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다.2  미켈란젤로는 특유의 천재성을 발휘해 망자(亡者)인 줄리아노의 모습을 비르투스를 추구하는 리더의 화신으로 표현했다

고대 로마의 늠름한 장군 복장을 하고 있는느무르의 공작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지휘봉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무엇인가를 신중하게 숙고하는 모습으로 앉아있다. 미켈란젤로는 그를 탁월함의 품격을 가진 진정한 리더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메디치 가문이 추구했던 탁월함의 덕목이었던신중한 사람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미켈란젤로는 줄리아노의 전신상 아래에 <> <>이라 이름붙인 두 개의 상징적인 인물을 배치했다. 부엉이와 노인의 얼굴 조각이 포함된 여인상 <>은 어둠 속에 얼굴을 묻고 있다. 몸을 틀면서 태양을 응시하고 있는 남성의 누드 <>이 그 반대쪽에 배치돼 있다. 이것은 마르첼로 아드리아니가 메디치 가문의 사명을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비유한 것과 연관있다.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고단했던 역사가 전쟁과 분열의 암흑 속으로 빠져들 때, 메디치 가문의 탁월한 지도자들이어둠을 밝히는 빛이 돼야 한다고 촉구했던 것이다. 메디치 가문에 요구됐던 비르투스는탁월함을 통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를 아십니까

줄리아노가 사망(1516)하자 이제 피렌체를 이끌고 갈 메디치 가문의 리더는우르비노의 공작으로 불리던 로렌초(1492-1519)밖에 남지 않았다.3  불과 21세라는 나이였던 로렌초는 삼촌 줄리아노의 뒤를 이어 비르투스의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하는 부담스러운 자리에 올랐다. 이런 불안하고 부담스러웠던 리더의 배후에 탁월했던 조언자가 있었다. 바로 <군주론>이란 책으로 현대 정치학의 시조로 불리는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 그는 자신의 <군주론>을 새로운 피렌체의 군주로 임명돼 비르투스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했다



이탈리아가 희망을 걸 곳은 오직 전하(로렌초 데 메디치)의 빛나는 메디치 가문뿐입니다. 전하의 가문이야말로 이탈리아를 구하는 데 앞장 설 수 있습니다. 전하의 가문은 성공적이고 유능하며 지금 교황 레오 10세께서 수장으로 계신 교회와 하느님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1469년에 피렌체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1498년에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찍부터 정치와 외교에 두각을 나타냈다.4  메디치 가문의 축출(1494) 이후, 혼란을 거듭하던 피렌체 정부는 메디치 가문의 과두정(寡頭政)을 청산하고, 공화제로 나라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바로 이 피렌체 공화정의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당시 29세였던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제2서기관으로 임명돼 국내 문제를 전담할 뿐만 아니라, ‘10인 전쟁 위원회의 위원으로 발탁돼 외교와 영토 방위의 중책을 맡았다. 젊고 머리가 비상했던 행정 관료 마키아벨리는 14년 동안 피렌체의 핵심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프랑스와의 군사적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루이 13세의 궁정으로 파견됐다(1500 7-12). 또 이탈리아 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하려던 교황 알렉산데르 6(1492-1503년 재위)의 아들이자발렌티노 공작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1507)와의 수교업무를 담당(1502 10)하면서 유럽 각국의 군주들이 선택하는 정책과 그들이 추구하는 권력의 속성을 면밀히 관찰하는 기회를 얻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임종하고 난 후 로마에서는 새 교황자리를 놓고 보르자 가문과 델라 로베레 가문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피렌체 대표로 로마에 체류하고 있던 마키아벨리는 권력 암투의 치열한 현장에서 인간과 권력의 속성을 냉정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유럽과 이탈리아 정치의 한복판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어떤 사람이 권력을 잡고, 어떤 사람이 어떻게 무참하게 권력의 희생양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지 지켜봤다.

승승장구하던 마키아벨리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새로 즉위한 델라 로베레 가문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후원을 받은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차지하고, ‘느무르의 공작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과두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피렌체 공화정 시절에 고위직 공무원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해임됐고, 정치와 외교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던 마키아벨리는 반역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당한다. 피렌체의 경찰서 겸 감옥이었던 바르젤로(Bargello)의 지하 감방에서 마키아벨리는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강제 퇴직의 불명예를 안고 시골마을로 돌아간다. 공직에서 쫓겨나 할 일이 없게 된 그는 자신의 딱한 신세를 한 친구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저녁이 되면 나는 (선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들어간다네. 문 앞에서 진흙과 먼지투성이가 된 옷을 벗고, 내가 궁정에서 입었던 깔끔한 관리의 옷으로 갈아입지. 이렇게 멋진 복장을 하고 나는 옛 조상들의 오래된 궁정으로 향한다네. 그곳에서 나는 옛 선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그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왜 그때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 그 행동의 이유를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네.”

은둔생활을 하던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공직 경험과 고대 로마제국과 피렌체 역사에 등장했던 영웅들의 행동을 면밀하게 비교하면서 <군주론>을 집필했다. <군주론>을 읽었다는 사람은 많지만, 그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군주론>은 단순히 권력의 속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로마와 피렌체 역사에 나타난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과 권력의 본질에 대해서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글쓰기는 언제나 냉정한 현실과 교훈적인 과거와의 긴밀한 대화를 시도한다. 고대 로마의 역사나 피렌체의 역사에 대해 모른 채 <군주론>을 읽으면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메디치 가문의 사면을 받고 피렌체로 다시 돌아온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군주로 떠오르고 있던 메디치 가문의 수장우르비노의 공작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자신이 쓴 책을 헌정했다(1513).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책 <군주론>을 느무르의 공작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 Medici, 1478-1516)에게 헌정하려 했으나 그가 일찍 사망하자 이 책을 새로운 메디치 가문의 수장으로 떠오른 우르비노의 공작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했다.

<군주론>에 대한 오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온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읽는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에게 분노하거나 혐오감을 갖는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쟁취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냉혹한 권모술수를 부리라고 선동하는 악한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보편적 인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 냉혹하고 잔인한 방법을 공공연하게 제안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인간이란 매우 부드럽게 대해 주거나, 아니면 아주 강하게 짓눌러야 한다. 인간은 가벼운 상처를 입으면 복수하지만, 아주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감히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입혀야 할 경우에는 상대방의 복수를 염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주 철저하게 짓눌러야 한다.”

이 문장만 놓고 본다면, <군주론>의 저자는 나약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라고 부추기고 있다. 사악하게 행동해야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쓴 이 문장은 전체 문맥 가운데서 읽어야 한다. 이 글은 군주가 직접적인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예를 들면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식민지 주민을 통치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리적 이유 때문에 식민지에서는 현지인이 대리 통치자로 나서게 된다. 이렇게 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단호한 일벌백계(一罰百戒)를 통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주장을 편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이 말 역시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이다.

고결해 보이는 행동은 파멸을 초래할 수 있는 반면, 사악해 보이는 행동은 지위를 강화하고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의 리더에게 자비로운 군주가 되지 말고, 인색한 군주로 행동할 것을 주문했다. 만약 이 문장만 따로 본다면 마키아벨리는 지금 메디치 리더에게 사악함과 인색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문장 역시 전체 문맥에서 해석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오랜 정치 경험을 통해 군주가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자비로움과 너그러움은 대부분 허세나 자기 과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관찰했다. 군주는 무릇군주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시민들로부터 과도한 세금을 징수할 수밖에 없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것이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군주는 너그러움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너무 과다한 비용을 지불해 왔다. 허세를 부리기 위해 너무 많은 자원, 특히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차라리 군주가 처음부터 냉정하고 인색하게 군다면, 자원낭비나 과다한 세금징수가 필요 없게 될 것이고, 세금 부담 때문에 초래될 백성들의 저항 같은 파국을 미리 피할 수 있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판단이었다. 

 



, 군주의 너그러움은 자기 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한번 너그러움을 과시한 군주는 점점 더 너그러워지려고 노력하게 되고 결국 이것은 군주가 시민들로부터 멸시나 미움을 받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군주의 너그러움에 익숙해진 시민들은 점점 더 너그러운 혜택을 요구하고, 그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결국 백성들은 군주를 멸시하거나 미워하게 된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가 충고한 것처럼 아예 처음부터 너그럽지 못하다는 평을 받는 것이 나중에 백성들로부터 저항을 받고 국가에 혼란이 초래되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 아닐까?

마키아벨리의 주장 중에서 도덕철학자들이 특별히 싫어하는 구절이 있다. 바로존경의 대상이 되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 역시 오해를 받아왔다. 이 말은 신생국가에서한시적으로요구되는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원래 의도는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만, 이 둘을 동시에 성취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쪽을 선택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신생국가의 국민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피렌체 같은 신생국가의 백성들은 원래 변덕스러운 충성심을 보이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행동해 왔다. 새로 생겨난 국가에서는 나라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에 백성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기회주의자가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라가 처음 생긴 단계에서는 강력한 처벌의 두려움을 증대시켜 이기심과 기회주의 때문에 초래되는 혼란을 미리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초기의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존경의 대상이 되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놀라운 천재성이 드러난다. 지도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절대로 증오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주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백성들을 겁주고,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면 군주는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권력과 물질에 욕심을 부리는 군주는 자고로 백성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위해 누군가를 처벌해야 한다면 정확한 명분과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군주는 곧바로 증오의 대상이 된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다른 사람의 재산에 손대지 말라고 조언했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유명한 구절을 덧붙였다. “인간은 자기 아버지의 죽음보다, 자기 재산을 빼앗긴 것을 더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 구절은 아마사자의 힘과 여우의 교활함을 동시에 구비하라는 노골적인 요구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군주는 여우와 사자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반해,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으며, 늑대를 물리치려면 사자가 되어야한다. 여우를 완벽하게 모방하는 자들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여우다운 기질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 군주는 능숙한 사기꾼이자 위선자여야 한다. 자비롭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보이는 동시에, 정직하고 경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할 경우 이것과 정반대로 행동할 준비를 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군주론>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문장 역시신생국가군주의 경우에 그러하다는 문맥에서 읽어야 한다. 신생 군주가 등장하면, 일반 백성이나 소수의 귀족들은 언제나 반역을 꿈꾸게 마련이다. 그들은 다른 왕조를 지지할 수도 있고, 외국군대의 힘을 이용해 신생 군주를 타도할 수도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헌정했던 로렌초 데 메디치가 바로 그런 경우에 처해 있었다. 프랑스, 스페인, 베네치아 공국 등과 언제든지 정치적 협상이 가능한 상태에서 피렌체 백성들은 신생국가의 군주인 로렌초에게 어느 때라도 등을 돌릴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로렌초가 당면하고 있는 실제 정치의 유동성을 염두에 두고, 이런 무시무시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을 한 것이다.

21세기의 리더에게 주는 마키아벨리의 교훈

마키아벨리의 교훈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는, 그가 인간을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바라보라고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자신의 운명을 아는 사람이고, 그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탁월함을 추구하는 존재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자하는 현명한 리더는 고상한 이론보다 냉정한 현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 냉혹한 현실의 필요성에 따라 신속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현명한 지도자는 올바른 정책을 고수해야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필요한 경우올바르지 않게 행동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라면 마키아벨리는 그 냉정한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라고 조언한다. 개인적인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집단을 이끌기 위해 이런 냉정한 상황 판단력은 리더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마키아벨리는 숨 막히는 정치 현장과 숱한 권력 투쟁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언제나 유동적이었음을 관찰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가뜩이나 유동적인 상황에 노출돼 있는 21세기의 리더를 향해 늘 현실에 맞게 행동하고, 구태의연한 원리주의자가 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시의적절하고 결과를 산출하는 사업상의 조언을 구하고 있는 CEO들에게도 마키아벨리는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남겼다. 주위에 좋은 참모나 탁월한 견해를 가진 부하직원을 두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CEO들의 바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참모를 곁에 둘 것인가? 탁월한 조언은 어떻게 구할 것인가? 어떻게 아첨꾼을 멀리하고 진실을 말하는 유능한 참모를 곁에 둘 수 있을 것인가?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아첨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군주가 진실을 듣더라도 결코 화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참모의 직언에 화 내는 CEO는 결국 아첨꾼에게만 곁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다. 직언하던 참모가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논의가 끝났다면 마키아벨리는 일반적인 도덕론자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만약 누구든지 군주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군주에 대한 존경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현명한 사람들을 신하로 선택해 그들에게만 솔직하게 말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오직 군주가 그들에게 요청했을 때에만 그렇게 하는 것이지 아무 때나 허락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 군주는 아첨꾼들 사이에서 결국 파멸하거나, 상반된 조언으로 자신의 결정을 자주 번복하게 된다. 그 결과 군주는 아무런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군주는 항상 귀를 열어 두어야 하지만, 다른 자들이 조언을 해주고자 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조언을 들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CEO들의 영원한 필독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르투스를 추구하는 21세기의 리더에게 마키아벨리는당신이 바로 당신 운명의 주인공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및 에모리대에서 석사 학위,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SK케미칼 고문도 맡고 있다. <르네상스 창조 경영>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14권의 책을 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sk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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