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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까지 기다렸다 ‘한칼’에 손보겠다고?

박광서 | 5호 (2008년 3월 Issue 2)
‘갈수록 실적이 떨어지는군. 도대체 뭐가 문제지?’
한국그룹 전자사업부의 나한칼 부장은 최근 팀의 실적악화로 고민에 빠졌다.
 
그는 올해 팀장 5년차로 사내 ‘유명인사’다.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평가 스타일 때문. 나 팀장은 평소에는 부하 직원들의 업무에 일체 관여하지 않으며, 최대한 권한을 위임한 채 ‘방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다 연말 평가 때가 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것을 ‘한칼에’ 정리해 버리는 스타일이다.
 
이런 그의 인사고과 방식 때문에 수많은 과장, 차장들이 최하점수를 받고 충격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심한 경우 승진경쟁에서 밀려나 결국 퇴사한 사람도 있다.
 
나 팀장은 부하직원을 육성하고 성과 창출을 독려하기 위해선 ‘방임에 가까운 위임’ 과 ‘연말의 엄밀한 성과주의 평가’가 가장 우수한 방법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난해 초까지는 말이다.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2월부터였다. 3년 내내 사업부 수위를 달리던 그의 팀 실적이 하락세로 전환하더니 급기야 사업부 내 최하위권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 말 실시한 ‘조직 구성원 만족도 및 몰입도 조사’에서 그의 팀이 꼴찌에서 두번째 점수를 받았다.
 
충격이었다. 이후 열심히 반전을 시도했지만 실적은 계속 뒷걸음질을 했고,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본인만의 조직관리 비법도 더 이상 현장에서 먹혀들지 않았다. 올해 안에 성과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의 팀은 공중분해 돼버릴 것이다.
 
나 팀장은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겠다는 심정으로 창피함을 무릅쓰고 입사 동기인 그룹 인사팀 정훈수 팀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평가 본연의 목적은 무엇인가?
“내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정 팀장은 나 팀장의 목소리에서 그의 애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흠…. 대략 설명을 들어보니 자네가 처한 상황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진 않는군.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의 중간관리자들도 그런 실수를 많이 하거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정 팀장은 우선 실의에 빠져있는 나 팀장을 안심시켰다.
 
“자네처럼 부하직원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사실 아주 바람직한 태도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하직원들이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코칭해 주는 일이지. 생각해봐. 양떼를 그냥 풀어놓기만 하면 되겠어? 좋은 양치기는 물과 풀이 풍부한 곳으로 양떼를 몰고 가는 사람이야.
 
코칭은 중간관리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지.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평가라네. 지금 자넨 평가를 오직 ‘최종종착역’으로만 생각하고 있어. 과정은 각자가 알아서 하고, 팀장은 결과를 보고 평가만 하면 된다는 거 아냐? 그건 회사가 중간관리자에게 바라는 역할이 아니라네.”
 
정 팀장은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이어갔다.(그림 1)
“자, 이게 평가의 3가지 목적이야. 자네의 경우는 3가지 중 오직 ‘성과측정’에만 집중해오고 있었지. 3가지 목적이 모두 균형을 이룰 때 평가 본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동시에 구성원들의 사기를 진작해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법이야.”
나 팀장이 되물었다.

    
“어떻게 평가를 부하직원의 코칭, 피드백에 연결할 수 있지? 우리는 그냥 성과에 따른 평가만 최종적으로 하면 그만인 거 아닌가?”
 
“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우선 자네가 평가에 대한 기본 인식을 바꾸는 게 어떨까? 평가는 개개인의 실적에 대한 ‘심판 도구’가 아니야. 평가는 조직이 애초에 설정한 목표를 조직원들이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할 수 있어. 무엇이 잘못됐으며,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지를 알려주는 기능도 하지.
 
다시 말해 우리 같은 팀장들은 평가를 통해 목표의 달성 정도를 확인하는 거야. 애초 목표대로 가고 있거나 초과달성한 경우에는 문제가 없겠지. 하지만 실적이 목표에 미달할 때는 부하직원들과 함께 문제점을 진단해 보고, 개선책이나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는 거야.
 
이 부분에서 팀장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 자네가 부하 직원에게 고급정보나 업계의 최신 동향을 알려줄 수도 있을 거야. 부서 간 협조나 업무 노하우(know-how)가 필요한 경우 자네의 도움과 코칭이 부하 직원에겐 큰 힘이 되지.”
 
나 팀장은 약간 혼란스러웠다. 이전까지 본인의 신념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정 팀장은 이런 그에게 ‘펀치’를 하나 더 날렸다.
“그건 그렇고…. 후배들이 자네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생각해 봤나? 피드백이나 코칭 없이 질책만 하는 상사라. 부하직원들은 방향을 제시하거나 가르쳐주는 것 없이 평가만 하는 상사에 대해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해. 경력과 실력을 키워주지 않는 상사에게는 충성심도 떨어지고. 심한 경우 상사가 일을 시켜놓고 노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네. 나도 솔직히 자네가 그동안 뭘 했는지 궁금해.”
 
[DBR TIP] 한국 직장인들, 중간관리자의 조직원 육성 역량에 불만
 
중간 관리자의 ‘조직원 육성 및 팀워크 관리 역량’에 대한 한국 직장인들의 만족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이는 타워스페린이 지난해 하반기 조사해 발표한 ‘2007 글로벌 인적자원 보고서(2007 Towers Perrin Global Workforce Study)’의 주 내용이다. 조사에는 한국 직장인 1000명을 포함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인도, 일본, 멕시코, 러시아 등 세계 18개국 직장인 8860명이 참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글로벌)에서는 응답자의 57%가 ‘나의 상사는 부하 직원을 존중한다’고 응답했다. 한국의 경우 4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상사가 명확하고 개방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항목에 대해서도 글로벌 응답자(51%)와 한국 응답자(39%)의 차이가 컸다. ‘효과적으로 부하직원을 코칭한다’는 응답에서도 작지 않은 격차가 났다.(표 1 참조)
 
이는 한국의 중간 관리자들이 △정확한 성과 측정 △부하직원 및 조직의 역량·성과 향상 △코칭 및 피드백 제공이라는 평가 업무의 기본적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선진 기업으로의 도약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간평가를 실시하라
“그 말은 좀 심한 것 같구먼. 내가 챙겨야 할 일이 많은 것은 정 팀장도 잘 알잖아. 그렇잖아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어떻게 수시로 부하직원들 일까지 일일이 신경을 쓸 수 있겠어?” 나 팀장이 따지듯 물었다.
 
“그런 경우도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거지. 여유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정 팀장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네 팀에 우선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의견교환 문화야. 그래야 부하직원들이 팀장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올 수 있고, 중요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실을 알려주거든. 이렇게 되면 팀장이 일일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주요 사안을 다 챙길 수 있어.
 
일반적으로 부하직원들은 자기들의 과오는 되도록 마지막에 보고하려고 해. 그래서 나중에 문제를 발견하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아.”
 
나 팀장이 뭔가 깨달은 듯 말했다.
“음. 전에 우리 팀원 중 한명이 계약을 잘못 처리하는 바람에 막대한 손해가 난 적이 있었어. 이 친구는 마지막 순간에야 실토를 했고. 결국 경쟁사에 입찰을 뺏기고 말았지. 대략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는군.”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네 팀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중간관리자인 자네의 코칭이 절실하게 필요해. 그리고 바쁘더라도 짬을 내서 중간평가와 점검을 하는 게 좋아. 자네는 중간평가가 가진 엄청난 장점과 효과(그림 2)를 알아야 해.” 

정 팀장에 따르면 중간평가는 중간관리자와 구성원을 위한 정보 소통의 장이 돼 준다. 이를 통해 해당 사업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 수 있을뿐더러, 실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구성원 개개인의 위기관리 능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또 목표와 달성률의 차이(gap)를 파악한 후, 성과 미달자를 독려하고 지도함으로써 개인과 팀뿐만 아니라 전사적인 성과 향상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는 곧 평가라는 한 가지 도구를 통해 전체적인 성과관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네도 알다시피 직장에서의 업무는 여러 명이 함께 달성한다는 점에서 축구나 야구와 닮았어. 왜 축구에서도 전반전이 끝나고 난 다음에 라커룸에 들어가 전술 회의를 하잖아. 감독과 코치가 중간점검을 해 뭘 잘했고, 무엇이 부족한지 말해줘야 선수들이 후반전에 더 잘 뛸 것 아니야? 마찬가지로 회사에서의 중간점검 역시 ‘코칭과 피드백’이 핵심이 되는 거지. 자네 팀은 중간평가를 해본 적이 있나? 한번도 그런 얘기는 못 들어본 것 같아서 말이야.”
나 팀장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아니. 아직 한번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거든.”
 
정 팀장은 중간평가 단계를 그려놓은 그림을 나 팀장에게 보여줬다.(그림 3)
“올해부터라도 이런 프로세스를 거쳐 꼭 시행해 보길 적극 권장하네. 자주 하면 좋겠지만, 분기별이나 또는 우선 상반기 이후 한 번만 실시해도 큰 효과가 있을 거야.
평가 기간은 형식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최대한 여유 있게 배정해 봐. 부서 내 정보공유 차원에서 워크숍 형태로 해도 좋아. 올 2분기 초에 인사팀에서 주최하는 중간평가 관련 세미나가 계획돼 있으니 꼭 참석해 봐.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먼저 부하직원들에게 다가가라
대화를 마친 후 나 팀장의 표정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이때까지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이 많은 것 같군.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팀을 재정비하고 다시 도전해봐야겠어.”
 
다시금 자신감을 얻은 나 팀장은 그날 저녁 부하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 책상에 앉아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나 같은 중간간부는 단순한 관리자를 넘어서, 부하직원들의 진정한 멘토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부하직원들이 다가서기 힘들어하는 상사였다. 우리 팀에는 나를 지나치게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앞으로는 중간평가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후배들이 스스로 업무 보고를 하거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 일단 나부터 지나친 권위를 벗어던지고 부하직원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나 팀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평가를 중간관리자의 무기로 생각하거나, ‘무능한’ 부하직원을 응징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과오를 다시는 범하지 않게 됐다. 평가는 조직성과 관리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이자, 부하직원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개인성과가 조직의 성과와 일치하도록 인도해주는 유용한 도구임을 깨달은 것이다.

  • 박광서 | - (현) 페이 거버넌스 아시아 총괄 부회장
    - (현) 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 TOWERS PERRIN Managing Principal (Global)
    - 아모레퍼시픽과 고려제강 상임고문 역임
    - 한국 인사관리학회 부회장
    ryan.park@towersperr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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