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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로 재평가된 동양식 배려

김용성 | 42호 (2009년 10월 Issue 1)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민감한 소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회적 의사소통법을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백미(白眉)는 이웃 나라 일본이다. 일본인들은 우회적 의사소통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일본인의 완곡 어법은 그 난해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면 완곡한 대화를 100% 이해하지 못한다.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한 손님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과연 무슨 뜻일까?
 
“요즘 일기예보를 들으니 날이 점점 더워진다고 하네요.”
 
언뜻 듣기에는 단순한 날씨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는 창문을 열거나 에어컨을 켜달라는 부탁일 수 있다. 손님이 일기예보를 빌려 부탁을 하는 것은 집주인이 ‘손님을 더위 속에 방치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게 하려는 배려다.
 
일본 가정에서는 손님이 먼저 물을 한 잔 달라거나 에어컨을 켜달라고 하면 집주인이 손님을 방치해 큰 실례를 한 것으로 간주한다. 주인이 몹시 미안해하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집주인을 모욕할 의도가 없는 손님이라면 직설적인 요청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문화는 동아시아 국가 대부분에서 일반적이며, 언어에도 그런 전통이 반영돼 있다.
 
 

 
자기중심적인 서양의 언어
동아시아인들은 영어를 배울 때 누구나 부정 질문을 어려워한다.
 
“Haven’t you eaten anything yet(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어)?”
 
이 질문에 대한 2가지 답을 영어와 한글로 적어보면 분명한 차이가 보인다.
 
“Yes, I have(아니, 먹었어).”
 
“No, I haven’t(응, 안 먹었어).”
 
부정 질문에 긍정으로 답하면 논리적으로는 부정이 되는 게 맞다. 그러니 한글로 ‘응, 안 먹었어’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데도 영어론 “No, I haven’t”라고 말하는 것은 영어 사용자의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영어 사용자는 상대방이 긍정으로 묻건 부정으로 묻건, 내가 먹지 않았다면 무조건 ‘No’라고 말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어법을 강조한다. 물론 서양인도 조심스럽게 부탁할 때는 우회적인 표현을 쓴다. 식당 직원이 금연 구역인 줄 모르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손님에게 다가가 부탁을 할 때는 뭐라 말할까?
 
“Don’t smoke here, sir(손님, 흡연하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손님과 직원이 언쟁에 휘말릴 수 있다. 직원은 아마도 “We don’t smoke here, sir(저희는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우회적으로 표현한 부탁이다.
 
동양은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하고 오랜 기간 전제주의 국가 형태를 유지해왔다. 따라서 동양인들은 직설적 의사 표현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걸 예의로 여긴다. 특히 윗사람에게는 절대로 직접적인 반대 의사를 드러내지 않는 게 생활의 지혜다. 동양 국가에서 생활해본 서양인들은 친구들에게 동양인, 특히 부하 직원의 ‘예’가 사실은 ‘아니오’일 때가 많다고 조언한다.
 
자유방임의 대안으로 부상한 넛지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꼽는 서양인들은 누구든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 성인이 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동양에서 성인이 되는 것은, 맡겨진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의 일원이 됨을 뜻한다. 동양에서는 성인에게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회 구성원을 보살피는 책임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차이는 식습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서양의 스테이크는 칼로 고기를 원하는 만큼 잘라 먹는 요리다. 반면 동양의 고기 요리는 먹기 편한 크기로 잘려 나온다. 전문가인 요리사가 식사하는 사람을 배려해 고기를 잘라준다. 동양인은 상대방을 위한 이 같은 사전 조치를 배려로 받아들이지만, 평균적인 서양인은 간섭으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최근 서양의 행동경제학자와 정책 조언자들이 ‘개인 자유 극대화가 최선의 결과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반성하고 있다. 이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넛지(nudge)’다. 넛지란 원래 ‘팔꿈치로 민다’는 뜻으로, 특정한 선택을 넌지시 종용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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