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다리오 아모데이는 AI의 위험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인 동시에 AI 개발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이다. 그의 리더십은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로널드 하이페츠가 체계화한 ‘적응적 리더십’으로 설명된다. 적응적 리더십이란 리더가 구성원이 회피하고 싶은 현실을 직면하게 하고,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며, 공식적 권위보다 신뢰에 기반한 비공식적 권위로 변화를 이끄는 방식이다. 아모데이는 안전 조치와 상업적 압력 사이의 긴장을 숨기지 않은 채 전사 타운홀 미팅에서 공유하고, 슬랙 에세이로 정답을 주는 대신 집단 토론을 유도하며, AI 재앙 확률을 언급하거나 정부와의 위험한 계약을 거절하는 등 원칙을 제도화한다. 또한 ESG를 단순히 보고서가 아니라 AI 헌법, RSP(책임감 있는 확장 정책) 같은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구현한다. AI가 가져올 혁신과 위험을 동시에 직시하는 아모데이는 AI 시대 리더십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AI의 눈부신 발전 뒤에는 복잡한 사업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도 결국 투자 대비 수익(ROI)을 맞추기 위해 매출을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AI의 성능과 가능성을 최대한 강조할 수밖에 없다. 일부 기업은 직원들의 AI 활용 실적을 인사 평가에 적극 반영하며 이른바 ‘토큰 맥싱(Token Maxing)’ 문화까지 조성하고 있다. 토큰 맥싱은 AI가 텍스트를 처리할 때 쓰는 기본 단위인 ‘토큰’ 사용량을 극대화한다는 뜻으로 더 많은 업무를 AI에 맡기고 더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흐름을 가리킨다. 한동안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거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 마케팅’도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아직 생산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AI에 막대한 토큰 비용을 투입하느니 오히려 사람을 활용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는 반론이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도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자신의 전망에 대해 “내가 틀려서 기쁘다”고 말한 바 있다.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AI 열풍 속에서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만이 아니다. AI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 인간에게 실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역시 점점 현실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바로 AI를 개발하는 연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기술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이 딜레마의 중심에 AI 스타트업 앤스로픽(Anthropic)의 최고경영자(CEO) 다리오 아모데이가 있다.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AI 산업이 처한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엄청난 상업적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다른 회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안전장치를 적용하며 스스로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있다.”
이 한마디에는 AI 기업이 직면한 근본적인 긴장이 담겨 있다. 더 빠른 혁신을 요구하는 시장의 압력과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책임 사이에서 그는 어느 한쪽만 선택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생성형 AI인 클로드(Claude)를 개발하면서도 동시에 AI 안전 연구를 기업의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철학과 리더십으로 이처럼 상충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아모데이는 처음부터 AI만 연구해 온 인물이 아니다. 캘리포니아공과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 스탠퍼드대로 편입해 학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프린스턴대에서 신경회로 전기생리학을 연구하며 생물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복잡한 물리 시스템과 신경 시스템을 연구하던 그는 이후 바이두와 구글 브레인을 거쳐 생성형 AI 연구의 최전선으로 들어섰고, 오픈AI에서는 GPT-2와 GPT-3 개발을 주도했다. 하지만 AI 안전과 조직 운영 방향을 둘러싼 문제의식은 그를 새로운 선택으로 이끌었다. 그는 2020년 12월 오픈AI를 떠난 뒤 여동생 다니엘라 아모데이를 비롯해 오픈AI 근무 경험이 있는 연구자 7명과 함께 2021년 앤스로픽을 창업했다. 창업 후 불과 5년 만에 앤스로픽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AI 기업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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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속 성장의 배경에는 기술 경쟁과 AI 안전을 동시에 추구해 온 아모데이만의 경영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리더십을 적응적 리더십(Adaptive Leadership)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상충하는 가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목표를 조율하며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가는 리더십이다.
로널드 하이페츠의 적응적 리더십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로널드 하이페츠 교수가 체계화한 적응적 리더십(Adaptive Leadership)은 리더가 정답을 제시해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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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구성원들이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직면하도록 만들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변화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하이페츠에게 리더십은 답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려운 도전을 회피하지 않도록 움직이는 실천이다.
이 이론은 조직이 마주한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면 어떤 리더십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이페츠는 조직의 문제를 기술적 문제(Technical Problem)와 적응적 도전(Adaptive Challenge)으로 구분했다. 기술적 문제는 원인과 해결책이 비교적 명확해 기존의 전문 지식이나 규정, 프로세스로 해결할 수 있다. 반면 적응적 도전은 문제 자체가 모호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해결을 위해서는 구성원의 가치관과 행동방식, 역할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그는 리더십 실패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적응적 도전을 기술적 문제처럼 다루는 것을 꼽았다. 가치관과 행동의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지침을 만들고 교육을 늘리거나 제도를 손보는 데 그치는 것이다. ESG를 보고서 발간으로 대신하거나, AI 시대의 불안을 교육 프로그램 하나로 해결하려 하고, 조직문화 문제를 제도 개편만으로 풀려는 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적응적 리더십에서 리더의 역할은 갈등과 긴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이페츠는 이를 생산적 불균형(Productive Disequilibrium)이라고 설명했다. 긴장이 너무 낮으면 사람들은 변화하지 않고, 반대로 지나치게 높으면 조직은 방어적으로 굳어버린다. 좋은 리더는 변화가 일어날 만큼의 압박과 조직이 버틸 만큼의 안정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보유 환경이다. 보유 환경은 조직이 갈등과 불확실성을 견디면서도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심리적·제도적 공간을 의미한다. 회의 방식, 타운홀 미팅, 토론 문화, 리더의 언어, 심리적 안전감 등이 모두 보유 환경이 될 수 있다. 리더는 갈등을 없애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그 갈등을 건강하게 견딜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다. 또 하나의 핵심 개념은 ‘발코니에 올라가기(Get on the Balcony)’다. 리더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조직 전체의 패턴과 권력관계, 반복되는 갈등, 회피되는 질문을 살펴야 한다. 동시에 관찰자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다시 현장으로 내려와 구성원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적응적 리더는 관찰과 개입, 실행과 성찰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이다. 하이페츠는 권위(Authority)와 리더십(Leadership)도 엄격히 구분했다. 권위는 직책과 직함에서 나오는 공식적 권위와 신뢰와 전문성, 품위를 통해 형성되는 비공식 권위로 나뉜다. 그는 특히 비공식 권위를 ‘더 강력한 통화(The Stronger Currency)’라고 표현했다. 직위는 조직이 부여하지만 신뢰는 구성원이 선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 상황에서는 공식적 권력보다 평소 쌓아온 신뢰와 전문성, 도덕성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진짜 자산이 된다. 조직은 리더에게 방향 제시와 보호, 질서 유지, 역할 배분, 갈등 조정, 규범 유지 같은 역할을 기대하며 권위를 부여한다.
하지만 적응적 도전 앞에서는 이러한 기대를 그대로 충족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은 리더가 정답을 주기를 바라지만 적응적 리더는 오히려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보호를 기대하지만 리더는 구성원들이 회피하던 현실과 고통을 마주하도록 만든다. 기존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대신 변화를 촉발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하이페츠가 말한 적응적 리더십의 본질이다.
권위에 따르는 기대를 어기는 순간, 리더는 공격받고 침묵당하고 배제당한다. 그러나 리더가 공식적 권위의 기대를 어기면서도 비공식적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탁월한 적응적 리더십이 발휘된다. 역사 속에서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은 공식 권위를 전혀 갖지 않았지만 가장 강력한 적응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거꾸로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도 구성원들이 회피하는 문제를 끝까지 외면하는 사람들은 권위는 있지만 리더십은 없는 셈이다. 리더십은 직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게 만드는 행위에서 나온다. 이 정의는 조직 내 비공식 리더나 소수 의견을 내는 구성원도 리더십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뜻하며 동시에 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력을 자기 보호에 쓸수록 리더십을 잃게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리더십 원칙 1
긴장을 숨기지 않고 조직문화로 만든다 다리오가 이끄는 앤스로픽의 긴장 요소는 ‘인류에게 위험할 수 있는 AI를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더 위험한 AI를 다른 누군가가 만들 것’이라는 인식이다. 아모데이는 이를 숨기거나 합리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의 존재 이유로 전면에 내세운다. 이 긴장의 뿌리는 그의 개인사와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모데이가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생물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던 2006년, 아버지가 희귀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불과 3~4년 뒤 당시 치명적이던 그 질환은 의학적 진전에 힘입어 치료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이 경험은 단순한 가족의 비극에 그치지 않고 그의 가치관에 영향을 줬다. ‘과학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기술이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이라는 가정은 기술 발전 속도에 대한 절박함을 심어줌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갖게 했다. 약이 빨리 나왔다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겠지만 그 약이 불완전했다면 결국 아버지는 그 약을 복용하고도 세상을 떠났을지 모른다는 이중적 가정이 그의 경영 철학의 한 축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모데이는 단순한 기술 낙관론자도, 단순한 기술 비관론자도 아니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의식하는 운전자에 가깝다. 이 이중성이 훗날 ‘안전을 이유로 오픈AI를 떠나 더 강력한 AI를 만드는 회사를 차린다’는 역설적 선택의 심리적 토대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애초 오픈AI의 공익성을 보고 합류했던 아모데이는 오픈AI의 상업적 가속화를 지켜보며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그가 여동생 다니엘라 아모데이와 함께 창업 팀을 꾸리던 2020년 말 최종 선택한 회사 이름은 앤스로픽이었다. 인간 중심이라는 뜻을 품은 회사명 ‘앤스로픽’ 자체가 ‘기술이 인간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회사의 철학을 담고 있다. 기술과 인간의 긴장을 유지하고자 하는 초심이 담긴 기업명이었다.
아모데이는 자신의 시간 중 3분의 1, 많게는 40%를 앤스로픽의 문화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데 쓴다고 밝혔다. 그는 2주마다 전사 타운홀 성격의 ‘DVQ(Dario Vision Quest)’를 열어 제품, 경쟁, 지정학, 노동시장 영향 등 다양한 주제를 직원들과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우리가 이 일을 아주 잘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회사 전체가 사명을 느끼게 하고, 우리가 사명에 진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올바른 이유로 일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긴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집단적으로 직면하게 하는 방식이 앞서 소개한 적응적 리더십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리더가 상업적 긴장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모순을 공개적으로 직면하고 조직 전체가 이를 보유 환경으로 공유할 때 조직에는 스스로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동력이 생긴다. 바로 아모데이가 실천하고 있는 리더의 역할이다.
리더십 원칙 2
에세이로 토론하고 데이터로 설득한다 다리오의 리더십에서 가장 독특한 도구는 ‘글’이다. 그는 슬랙에 장문의 에세이를 정기적으로 올리고, 이 글들은 전사적 토론을 촉발한다. 앤스로픽의 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묘사했다.
“다리오는 정말 멋진 소통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에세이를 올리면 슬랙 전체에서 에세이 분량의 토론이 벌어집니다.” 아모데이는 2024년 10월 ‘사랑의 기계들(Machines of Loving Grace)’이라는 1만 단어가 넘는 장문의 에세이를 통해 AI가 향후 5~10년 안에 의학, 정신건강, 경제 개발 분야에서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 깨달은 것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나보다 훨씬 더 잘 쓴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명시하며 집단 지성을 요청하는 마지막 부분은 아모데이 리더십의 본질을 압축한다. 그는 AI를 몰라서 겁낸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겁내는 사람이다. 스케일링 법칙이 양면성을 가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일찍 봤기 때문에 그 가속도가 가져올 문제들 역시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 문제들을 조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글과 타운홀 미팅을 보유 환경으로 삼아 팀원들이 적응적 도전을 직접 대면하게 한다.
리더십 원칙 3
틀릴 권리를 제도화하다 아모데이는 자신이 이끄는 회사가 만드는 기술이 인류에게 재앙이 될 확률이 10~25%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일반적인 CEO라면 절대 하지 않을 발언이다. 그에게 이 발언은 ‘지적 정직성(Intellectual Honesty)’의 표현이다. 앤스로픽의 ‘AI 헌법(Constitutional AI)’, 즉 헌법처럼 정리된 원칙과 가치 기준을 바탕으로 AI가 스스로 응답을 수정하고 판단하도록 개발하는 방식도 안전을 중시하는 아모데이의 철학에서 나온다. AI 헌법에 따르면 앤스로픽의 AI는 개별 명령의 나열이 아니라 원칙 체계를 통해 스스로 판단한다. 물론 아모데이는 AI에 요구하는 규범을 자신과 조직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2026년 2월 앤스로픽은 미 국방 당국과의 계약 협의 과정에서 클로드가 대규모 국내 감시나 완전 자율 무기 운용에 사용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말만 원칙주의자인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금전적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훨씬 드물다. 2023년 오픈AI의 리더십 혼란 당시 아모데이가 오픈AI와의 합병 또는 리더 역할을 제안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앤스로픽의 독자 노선을 유지했고 이는 그의 리더십 서사를 더 강하게 만드는 배경이기도 하다. 리더가 원칙을 단기 이익보다 우선하는 이 선택이 반복될 때 팀원들은 회사의 사명이 구호가 아니라 실재임을 확인한다. 그래서 앤스로픽과 아모데이의 철학과 실행은 수많은 외부 도전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더십 원칙 4
ESG를 보고서가 아닌 의사결정의 DNA로 만들다 ESG는 오랫동안 기업들의 ‘보고서용 언어’에 가까웠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하며, 다양성 지표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실천됐다. 이 과정에서 ESG는 외부 규제와 투자자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앤스로픽의 접근은 다르다. 아모데이는 창업 첫날부터 AI가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긴장을 사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긴장을 관리하는 방식을 제품 설계와 조직 운영, 의사결정 체계에 녹여냈다. ESG가 사후 보고가 아니라 사업 모델 자체에 내재된 구조인 셈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거버넌스(Governance)다. 일반적으로 거버넌스는 이사회 구성이나 주주권 보호처럼 기업 운영 체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앤스로픽에서 거버넌스는 ‘AI 헌법(Constitutional AI)’이라는 기술 철학과 직결된다. AI 헌법은 개별 금지 규칙을 일일이 입력하는 대신 헌법과 같은 원칙과 가치 기준을 학습시켜 AI가 스스로 자신의 답변을 점검하고 수정하도록 훈련하는 방식이다.
이는 “무엇이 올바른 의사결정인가”라는 거버넌스의 질문을 기업 운영을 넘어 AI 시스템 설계 단계까지 확장한 사례다. 외부의 감시와 규제로 행동을 통제하기보다 가치 판단의 원칙 자체를 기술 안에 내재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앤스로픽은 기업 거버넌스의 원칙을 AI 아키텍처로 번역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앤스로픽이 공익기업(PBC) 구조를 채택하고 자발적인 안전 기준을 마련해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은 기업 차원의 ESG, 특히 지배구조(G)의 대표적인 사례다. 앤스로픽은 설립 초기부터 ‘규모 확장뿐 아니라 안전도 함께 연구하는 연구소’를 지향했고 이러한 철학을 반영해 회사 형태 역시 공익기업 구조로 설계했다. 헌법 AI가 제품 차원의 ESG를 구현한 사례라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경영 독립성을 유지한 것은 회사 차원의 ESG를 보여주는 사례다.
2023년 구글은 앤스로픽에 3억 달러를 투자했고 이어 세일즈포스와 줌 등이 참여한 4억5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 라운드가 이어졌다. 같은 해 아마존은 최대 40억 달러(1차 투자 12억5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고 이후 추가 투자까지 포함해 2024년 말 기준 누적 투자 규모는 80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앤스로픽은 ‘장기 이익 신탁’ 제도를 통해 구글과 아마존 등 전략적 투자자에게 이사회 의석이나 지배적 통제권을 넘기지 않았다. 아모데이는 ‘규칙’보다 ‘가치’가 조직의 의사결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철학을 AI 시스템 설계와 기업 지배구조 모두에 일관되게 반영했다.
ESG의 사회(S) 축에서도 앤스로픽은 자사 제품의 사회적 영향을 스스로 측정하고 공개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안전이다. 2022년 앤스로픽은 첫 클로드를 학습시키고도 곧바로 공개하지 않았다. 더 많은 내부 안전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성형 AI 시장의 속도를 생각하면 이 판단은 사업적으로는 느리고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바로 그 지점이 앤스로픽의 기업 정체성을 만들었다.
2023년 처음 도입한 ‘책임감 있는 확장 정책(RSP)’은 위험 수준이 일정 기준을 넘는 AI 모델의 출시를 기업 스스로 제한하겠다는 자발적 약속이었다. 이후 오픈AI의 ‘준비 태세 프레임워크’와 구글 딥마인드의 ‘최첨단 AI 안전 프레임워크’ 등 주요 AI 기업들도 유사한 형태의 최첨단 AI 위험관리 체계를 잇달아 도입하면서 RSP 방식은 AI 안전 관리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2026년 공개된 ‘책임감 있는 확장 정책 3.0’에서는 기존의 일률적인 개발 중단 원칙을 유연한 위험 평가와 대응 계획, 정보 공개 체계로 개편했다. 이는 앤스로픽이 여전히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면서도 경쟁 심화와 규제 공백이라는 현실을 반영해 안전 정책의 운영 방식을 조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앤스로픽은 자사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연구에도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아모데이가 실천하는 ESG는 단순한 사회공헌이나 위험 관리가 아니라 기업의 존재 이유와 사업 운영을 연결하는 ‘사명 기반 ESG’에 가깝다. 그는 조직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긴장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조직 구성원과 사회가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경영하는 것을 기업의 중요한 역할로 보고 있다.
아모데이의 리더십: 적응적 도전의 실천 앤스로픽이 직면한 과제는 단순한 기술 개발의 문제가 아니다. ‘AI를 더 빨리 개발할 것인가, 더 안전하게 개발할 것인가’ ‘상업적 압력과 인류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와 같은 질문은 정해진 규정이나 전문가의 처방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전형적인 적응적 문제다. 구성원 모두가 가치관의 충돌을 함께 감당하고 학습해야만 답을 찾을 수 있다.
아모데이는 AI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로 바라봤다. 그는 안전과 속도, 상업성과 사명, 기술 낙관과 위험 경고 사이의 긴장을 숨기거나 해소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조직문화와 의사결정 과정 안으로 끌어들였다. 2주마다 열리는 전사 타운홀 ‘DVQ’를 통해 구성원들이 어려운 질문을 공개적으로 토론하도록 했고 책임감 있는 확장 정책(RSP)의 핵심 조항을 직접 수정하면서 그 배경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는 하이페츠가 말한 ‘발코니에서 전체 패턴을 살피고 다시 현장으로 내려오는’ 적응적 리더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는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문제를 조직에 돌려준다. 자신의 에세이 한 편이 슬랙에서 또 다른 에세이 분량의 토론으로 이어지는 문화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또한 공식적인 권위에 기대기보다 AI 안전을 둘러싼 불편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조직이 회피하고 싶은 갈등을 직면하게 했다.
이러한 지속가능한 리더십의 핵심을 필자가 강조하는 여섯 가지 태도(LA6)로 정리해보자. 충직, 자존, 배려, 개방, 갈망, 단정…. 이 가운데 특히 개방과 자존은 하이페츠가 말한 적응적 리더의 핵심 역량과 맞닿아 있다. 개방은 불편한 반론을 받아들이는 태도이고, 자존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권위의 기대를 넘어설 수 있는 용기다. 아모데이가 공개 토론을 장려하고 스스로 정책을 수정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은 바로 이 두 태도를 실천한 사례다. 그의 철학은 다음 한마디에 압축된다.
“이 말을 AI 회사 CEO인 내가 하는 게 이상하지만 다음 단계의 위험은 AI 회사들 자체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AI 시대 리더십의 새로운 기준 물론 아모데이의 적응적 리더십 실행은 어느 리더에게나 이식 가능한 범용 모델이 아니다. 첫째, 이 리더십은 창업자의 비공식적 권위를 전제한다. 아모데이가 상업적 압력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안전을 이유로 오픈AI를 떠난 창업자이기 때문이다. 그 서사가 없는 리더가 동일한 발언을 한다면 무능함으로 읽힐 수 있다. 둘째, 글 기반 에세이 토론 문화는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 노동자 조직에서만 효과적이다. 대규모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맥락의 간극이 크다. 셋째, ESG 측면에서 앤스로픽을 포함한 AI 테크 기업들이 아직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영역도 있다. AI 연산의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발자국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이 환경 비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투명하다는 비판은 앤스로픽뿐만 아니라 AI 업계 전체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아모데이는 AI 시대 리더십의 새로운 기준을 쓰고 있다. 젠슨 황이 ‘고통’을 조직문화로 만들었다면 다리오 아모데이는 ‘긴장’을 조직문화로 만들었다. 고통은 개인의 서사에서 출발해 조직의 에너지로 전환되지만 긴장은 사회적 맥락에서 출발해 조직의 책임감으로 전환된다. AI 시대의 리더에게는 두 가지 리터러시가 동시에 요구된다. 기술을 이해하는 AI 리터러시와 그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읽는 ‘사회적 리터러시(social literacy)’다. 아모데이는 두 가지 모두를 리더십의 언어로 번역한다. 그는 2026년 선보인 에세이 『기술의 부재(The Adolescence of Technology)』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AI를 개발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덜 안전하게 개발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완벽하지 않다.” 이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전진하는 것, 나아감의 과정을 사회와 공유하는 것, 이 두 가지가 AI 시대 지속가능경영의 새 기준이 되고 있다. 세상을 바꿀 엔진을 만든 사람이 그 엔진에 브레이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가장 크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침을 구호가 아니라 조직의 DNA로 새기는 사람이 바로 다리오 아모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