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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리더가 : 유진녕 엔젤식스플러스 대표(전 LG화학 사장)

“결과 말고, 협업 과정을 평가하라”

장재웅 | 386호 (2024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38년 동안 R&D 분야에 몸담았으며 LG화학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낸 유진녕 엔젤식스플러스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임에도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한 리더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효율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자율과 창의가 흐르는 조직 문화가 중요함을 강조하며 ‘신뢰, 창의, 도전, 프로정신’이라는 공유 가치를 만들어 LG화학 기술연구원에 정착시켰다. 이를 통해 현재 기업의 성장 동력이자 캐시카우가 되고 있는 전기차용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를 비롯해 다양한 신제품 및 신소재를 개발해 LG화학을 세계적 소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협업을 강조하지 않는 리더는 없다. 하지만 지시만 할 뿐 협업이 일어나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러다 평가 기간이 되면 누가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등 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결과만을 놓고 평가한다. 결국 조직 내에서 협업을 불러일으키려면 리더가 부지런히 협업의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적절한 ‘성과 배분(Credit Share)’이 이뤄지도록 신경 써야 한다.”

LG화학의 R&D 전문가로서 LG화학이 글로벌 기술 선도 기업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유진녕 엔젤식스플러스 대표(전 LG화학 CTO)는 공학박사이자 평생을 기술 개발에 몸담은 ‘뼛속까지 엔지니어’이면서 과거 연구원장 재직 시절부터 조직 문화를 강조한 리더로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DBR과의 인터뷰에서도 상당 부분을 ‘왜 R&D 조직에서도 ‘문화’가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많은 경영자가 R&D 조직의 특성을 무시하고 R&D 조직에도 일반 경영의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세상을 바꿀 제품이나 소재가 나오지 않는 것”이라며 “한국 기업이 ‘퍼스트 무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R&D 조직의 특성에 맞는 ‘R&D 매니지먼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LG화학에서 이뤄낸 성과는 사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가 R&D 조직 수장으로 있는 동안 현재 LG그룹을 먹여 살리고 있는 전기차용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를 비롯해 편광 안경 방식의 3D 디스플레이용 광학 필름, OLED 디스플레이용 소재 등이 탄생했다. 또한 LG화학은 세계적인 소재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9년 LG화학을 떠난 유 대표는 이후 LG 출신 사장단과 의기투합해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기업 ‘엔젤식스플러스’를 설립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스타트업 자문 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산업기술진흥협회와 함께 ‘차세대 CTO 교육 과정’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리튬이온배터리 개발의 주역’으로 LG를 전 세계 2차전지 시장의 강자로 만든 유대표를 만나 국내 R&D 조직의 문제와 이상적인 리더십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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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LG화학의 R&D 수장으로 근무하면서 LG를 2차전지 업계 1위로 만든 주인공으로 불린다.

내가 혼자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평가는 부담스럽다. LG가 2차전지 업계 ‘퍼스트 무버’가 된 데는 여러 사람의 헌신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첫째로 최고경영자 등 톱매니지먼트의 헌신을 꼽을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LG가 전기차용 2차전지 개발을 선도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고(故) 구본무 회장의 철학과 뚝심 덕분이었다. 구 전 회장은 1992년에 이미 2차전지의 성장 가능성을 직감하고 영국 출장길에 2차전지 샘플을 챙겨와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 연구를 지시했다. 이후 1996년 연구팀을 LG화학으로 옮겨 1999년 대량 생산을 시작했지만 적자가 계속됐다. 한때는 2000억 원에 가까운 적자가 나기도 했다. 당시 LG화학 최고경영자들이 회장께 사업 포기를 강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 전 회장은 그럴 때마다 R&D 투자가 부족해서 성과가 안 나는 것 같다며 연구개발에 더 매진해 줄 것을 주문했다. 당시 구 전 회장의 결단과 뚝심이 없었다면 지금 2차전지 시장에서 선도 기업 역할을 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명 생각나는 사람이 전임 원장이었던 고 여종기 사장이다. 사실 여 사장이 연구원장으로 있을 때 소형 리튬이온배터리가 개발됐는데 그 기술은 이미 일본 기업들이 선도하던 분야라 경쟁력이 크지 않았다. 당시 전기차 시대를 내다보고 자동차 배터리에 도전해 보자고 했던 주인공이 여 사장이다. 여 사장이 4년 정도 추진하던 것을 내가 넘겨받아 5년 정도 더 연구해 최초의 양산 제품을 완성한 것이니 나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다. 이 두 분의 리더십에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2차전지 개발에 헌신한 연구원들의 노력이 모여서 지금의 LG 2차전지가 탄생했다.


R&D가 중요하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들은 관련 투자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바로 관련 비용을 줄이는 경영자들도 있는데.

항상 강조하는 R&D의 원칙이 있다. 바로 ‘R&D에 필요한 기간은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제품들은 R&D에 소요되는 기간도 짧다. 일례로 스마트폰은 라이프사이클이 짧다. 기술 개발 주기도 짧다. 그래서 매년 신제품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신소재나 신약 등은 개발에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또한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쳐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영자는 효율성에 집착해 인풋 대비 아웃풋으로 R&D를 평가한다. ‘3년 전에 투자를 했는데 왜 아무런 성과가 없지?’라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문 경영인 중 일부는 불황이 오면 R&D 비용을 줄이는데 인풋을 줄이면 바로 비용이 주니까 당장 실적이 개선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서서히 회사의 경쟁력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라이프사이클이 긴 제품이나 소재를 개발하는 기업의 경우 R&D 투자를 줄였을 때의 피해도 상대적으로 천천히 나타난다. 그래서 초기에는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은 이후 다시 투자를 늘려도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경영자라면 ‘네버 업 네버 인(never up never in)’이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골프 격언으로 ‘퍼팅 시 홀컵을 지나칠 정도로 치지 않으면 절대로 공을 홀에 넣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R&D에 대입하면 ‘제조 기업이 R&D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혁신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CTO 출신임에도 기술보다 문화를 강조하는 것이 흥미롭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많은 경영자가 기술 개발을 한다고 하면 기술 전략부터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전략을 짜고 그 일을 실행하는 것은 사람이다. 일하는 사람이 조직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낄 때 자신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 문화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다름 아닌 ‘리더십’이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내가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해 패스트 팔로워에서 업계 선두 기업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리더들은 여전히 효율 중심의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문화는 국내 기업들의 달라진 위상을 고려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즉, 과거의 성공 방식이 ‘성공의 덫’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업계의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효율 중심이 아닌 자율 중심의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R&D 조직은 일반 조직과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 R&D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연구원들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1997년 국내 경제지가 파이낸셜타임스에 실린 리더십 전문 컨설팅사 ‘블레싱 화이트’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연구원의 여섯 가지 특징’을 보도한 적이 있다. (그림 1) 기사를 보면 연구원은 자율적인 분위기를 좋아해서 관리자의 감독을 극도로 싫어하고 조직의 목표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방향이 잡혔다고 생각하면 무섭게 집중하는 등의 특징이 있다. 사실 일반 경영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연구원이 바람직하다고 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를 잘 활용하면 연구원들의 성과를 높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자율과 창의’라는 조직 문화다. 세계적인 경영 석학 게리 하멜은 그의 저서 『경영의 미래(The Future of Management)』에서 인간의 본성에 맞는 조직 운영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동안의 경영은 창의성, 열정 등 인간이 지닌 본래의 특성을 무시한 채 통제와 규제, 관리를 통한 경영으로 일관해왔다. 미래의 경영은 결국 인간의 본성에 기반해야 한다. 자율과 창의는 이런 생각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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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기업 문화가 잘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직 문화를 바꾸겠다며 특정 제도나 프로그램만을 도입하고 이를 실행하려고 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나 프로그램 이상의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이정표나 나침반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연구원장 시절 앞서 이야기한 연구원들의 특성을 반영해 ‘신뢰, 창의, 도전, 프로정신’이라는 공유 가치를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자율과 창의’를 조직문화로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가치를 공유 가치에 담도록 한 것이다. 이 공유 가치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회사의 문화를 이해하고 스스로 의사결정이나 가치 판단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유 가치 중 신뢰는 기술, 경험, 지식을 공유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인간적인 신뢰가 없이는 협업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봤다. 도전을 공유 가치에 포함시킨 이유는 R&D 조직에서 도전을 하지 않으면 혁신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도전에는 필연적으로 실패가 따라온다. 많은 조직에서 도전 정신이 사라지는 이유는 도전 후 실패했을 때 그 결과만으로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성과는 과정도 같이 보고 평가할 때 의미가 있다. 실패를 했다고 해도 그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고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를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런가 하면 창의는 몰입의 다른 말이다. 똑똑한 사람이 창의적인 것이 아니다. 창의는 몰입하는 사람이 만들어 낸다. 마지막으로 프로 정신을 강조한 이유는 프로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높은 목표에 도전하고 연구에 몰입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조직이 되려면 스스로에게 엄격한 프로페셔널리즘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공유 가치를 만들고 원장인 나부터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원장도 공유 가치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무기명으로 된 ‘원장과의 대화’ 방에 언제든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프로그램를 통해 공유 가치가 꾸준히 조직 내 확산될 수 있도록 했다. 10년 넘게 일관되게 이를 지키고 유지하다 보니 구성원들도 믿고 따라줬고 그 덕에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협업을 강조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협업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기업들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R&D 조직의 경우는 협업의 중요성이 절대적이다. 다른 사람을 잘 도와야 자기도 필요할 때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원이나 엔지니어는 협업에 익숙하지 않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자칫 협업을 했다가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은 내가 다 했는데 공은 저 사람이 다 가져가네’라고 생각하면 협업이 좋은 걸 알아도 안 하게 된다. 그래서 리더가 개인별 공헌도를 꼼꼼히 파악하고 인정해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리더가 부지런해야 한다. 자기 부서에서 벌어지는 모든 프로젝트 과정을 꿰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떤 일의 성과라는 건 결과와 과정의 합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결과 자체만을 두고 성과를 이야기한다. 많은 국내 기업이 성과주의를 표방하지만 사실 대다수의 기업은 성과주의가 아닌 결과주의를 지향한다. 결과만 보면 맨 마지막에 아웃풋을 가져온 사람에게만 크레디트를 주기 마련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애써 협업에 나섰던 조직원들조차 협업을 외면하게 된다. 인정받지 못하는데 누가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겠나. LG화학에서 협업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리더가 부지런하게 움직여 성과 배분을 공정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구성원들 사이에선 ‘언젠가는 나를 인정해 준다’는 신뢰가 생긴다. 그 때문에 협업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말로만 협업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실제 직원들이 리더를 신뢰할 수 있도록 관심을 쏟아야 한다. 리더가 단순히 업무를 주고 평가 시즌이 되면 ‘너 뭐 했지? 결과가 뭐지?’라고 물어본 후 결과만을 두고 평가해 버리면 구성원들이 자기 실적 챙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최소한 내 직속 부하, 그리고 그 부하가 관할하는 조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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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재직 시절 협업을 이끌어내기 위해 시도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특히 ‘오픈 이노베이션’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고 생각한다. 오픈 이노베이션 이론의 창시자인 헨리 체스브로 UC버클리대 하스경영대학원 교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조직 밖에서부터 조직이 가지지 못한 기술을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런 ‘외부형 오픈 이노베이션’은 생각만큼 적용이 쉽지 않고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특히 LG화학처럼 개발 주기가 길고 높은 기술 전문성을 요구하는 B2B 산업에 속한 회사는 조직 내부에 산재한 기술들만 잘 발굴해 내도 큰 시너지를 얻을 수 있고 더불어 비용 문제나 보안 문제에서도 이점이 있다. 이런 협업 방식을 ‘내부형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내부적으로 정의하고 조직 내 이런 내부형 오픈 이노베이션이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힘썼다. 이 같은 내부형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탄생한 대표적인 혁신 기술이 바로 ‘편광 안경 방식의 3D 디스플레이용 광학 필름’이다. 쉽게 말해 3D TV용 광학 필름으로 개발 당시 세상에 없던 기술이었다. 이 기술개발에는 2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이렇게 단기간에 기술개발이 가능했던 것은 과거 기술연구원에서 7년간 개발을 수행했으나 상업화에 실패해서 연구소 내에 보존돼 있던 신물질 고분자 기술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꼭 R&D 조직이 아니어도 기업에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들이 암묵지 형태로 존재하는데 이런 지식이 내부에서 제대로 공유되지 않아 낭비가 발생한다. 실제 LG화학 같은 5000명 규모의 연구소에서는 비슷한 연구를 다른 부서에서 각기 진행하거나 예전에 연구했던 프로젝트를 다시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여담이지만 이는 외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15년 전쯤 연구원장 시절에 외국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 LG화학의 내부형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를 소개하니 그 회사 CEO가 깜짝 놀라며 ‘우리 회사에서 부서 간 협업을 하려면 전쟁과도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푸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실패가 자칫 회사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으로 실패를 장려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패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실패를 장려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해도 그 과정에 의미가 있다면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가능하려면 애초에 어느 정도 실패해도 되는 일과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R&D 조직의 경우 그래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혹은 향후 진행할 연구 프로젝트 중 조직이 감내할 수 있는 실패 수준을 정해 둘 필요가 있다. 실제 연구원장을 할 때 보면 모든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전부 세상에 없는 신기술일 수는 없다. 어떤 기술은 혁신성보다 수익성이 중요할 수도 있고, 또 어떤 프로젝트는 인하우스로 내부 연구 인력을 통해 개발하는 게 좋지만 다른 프로젝트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용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포트폴리오를 내부적으로 정해 놓는 것이 좋다. 회사의 큰 틀에 부합하는 범위에서의 실패를 용인하고 그 과정에서 배움을 찾는다면 그런 실패는 조직이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실패를 나쁜 것으로 보면 새로운 도전이 나타나지 않는다. 쉬운 예로 우리나라 R&D 국책 과제 성공률이 90% 이상이다. 대단한 업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그만큼 목표를 달성하기 쉽게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실패할 경우 5년 동안 같은 분야에 제안서를 못 내게 만든 제도 때문이다. 결국 실패가 중요한 이유는 실패 그 자체보다는 실패가 도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 좋은 리더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일하면서 많은 리더를 만났다. 그중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좋은 리더는 공통적으로 ‘정신적·물질적으로 밑질 줄 아는 마음’이 있었다. 이 마음은 쉽게 말하면 리더 자기의 영달을 위해서 구성원을 활용하지 않고 스스로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마음이다. 여기서 정신적 손해는 다른 이의 고충을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이고, 물질적 손해는 선뜻 부하 직원과의 관계를 위해 지갑을 열 줄 아는 것이다. 이렇게 밑지려는 마음이 있는 리더에게는 부하 직원들도 기꺼이 나서서 도움을 주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역량이 있다고 해도 기꺼이 밑지려는 마음이 없으면 괜찮은 리더일 수는 있지만 좋은 리더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한 가지는 정신적 유연성을 갖춘 사람이 리더로서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유연성은 중용을 지키는 것이 아닌 과감하게 사안에 따라 양극단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리더를 뜻한다. 다시말해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때로는 감성적인 어프로치도 할 수 있고, 매우 엄격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포용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래서 어느 한 곳에 딱 함몰하지 않고 사안에 따라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런 정신적 유연함을 가진 사람이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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