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제1고객’ 상사 설득하기

35호 (2009년 6월 Issue 2)

직장인의 일상은 컨펌 받기의 연속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컨펌(confirmation)’은 업무 진행에 필요한 절차상의 승인, 허락, 확인을 뜻한다. 넓게는 의사결정자의 ‘예스(Yes)’를 가리키기도 한다.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모든 직장인은 이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업무를 진척시킬 수 있다.
 
컨펌의 주체는 상사와 회사
컨펌의 주체는 바로 상사, CEO, 그리고 회사다. 주체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컨펌은 불가능하다. 컨펌을 위해서는 먼저 회사가 바라보는 숲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 내가 기안한 내용이 조직의 방향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면 어떤 결과물을 내놓든 컨펌의 안전 범위 안에 들 수 있다.
 
항상 CEO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일의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게 좋다. CEO가 컨펌할 만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뛰어나고 회사의 비전과 일치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월마트의 후계자 결정 과정을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76년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이 은퇴를 앞두고 후계자로 데이비드 글래스를 임명했을 때, 언론은 물론 기업 내부에서도 깜짝 놀랐다. 이미 론 마이어라는 강력한 CEO 후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40대 초반의 마이어는 의욕에 불타는 천재였고, 모두 그가 차기 경영자가 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월튼은 마이어가 “월마트 문화에 스며들 수 없는 인재”라고 여겼다. 월마트의 기업 문화를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곤 했던 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월튼은 평범하지만 월마트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키려 노력하는 글래스를 선택했다. 글래스는 기업의 가치를 변질시키지 않고 “이 가치가 기업을 운영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월마트를 포천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으로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은퇴할 때까지 회사의 연 매출을 10배 성장시킴으로써 월튼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증명했다. 

이처럼 회사는 아무리 능력 있고 성과가 뛰어나도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나 비전에 공감하지 못하는 직원을 키우지 않는다.
 
당신이 몸담은 조직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라. 그리고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을 반영하라. “저 사람은 조직적인 관점이 있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해”라고 평가받는 사람은 상사뿐 아니라 회사의 신뢰도 얻는다.
 
컨펌 받지 못한 보고서를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 원 참, 조직이 안 도와주네.” 하지만 돌이켜보라. 내가 조직을 도와주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회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직원이 됐을 때, 회사는 알아서 당신을 도와주고(컨펌을 내려주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상사의 컨펌을 쉽게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진심으로 상사의 편이 돼야 한다. 그러면 벌써 일하는 자세부터 달라지고, 나의 성공이나 발전을 위해서도 더 좋다. 경영 컨설턴트 류랑도는 저서 <하이퍼포머(High Performer)>에서 “직장인의 제1 고객은 상사”라고 역설한다. 상사의 니즈를 채워주는 일은 비즈니스맨으로서 직장인이 수행해야 할 첫 번째 업무라는 뜻이다.
 
컨펌에는 스피드가 필요
컨펌 받을 준비를 단단히 한 뒤 컨펌을 받으러 들어간다. 이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스피드다. 실무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도 높은 멋진 기획서가 아니라 스피드임을 잊지 말라. 상사가 칭찬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것을 반영해 전체적인 틀만 잡아 신속하게 기획서를 제출하고 일단 컨펌을 받아라. 상사의 머릿속에 그 아이디어가 여전히 빛을 잃지 않았을 때 말이다. 일단 컨펌을 받은 뒤 실행해 나가면서 세부 사항까지 점검해 최종 계획을 멋지게 완성해도 된다.
 
때로 컨펌은 완성도가 아니라 ‘시간’을 평가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상사는 스피드를 컨펌하는 셈이다. 같은 맥락으로 컨펌을 위한 보고의 황금률은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의욕이 과해 준비한 자료를 죄다 설명하려 들거나, 인과관계를 이해시키겠다고 구구절절 복잡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듣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말을 못해?’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뭐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려던 상사도 짜증이 밀려와 괜한 트집을 잡으려 할지 모른다. 의사결정자를 사로잡고 싶다면 핵심 정보를 빼놓지 않으면서도 짧게 압축하는 내공이 필요하다. 결코 상사가 복잡한 문제와 넘쳐나는 자료 속에서 길을 잃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보고서의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
컨펌을 잘 받는 보고서는 따로 있다. 한눈에 내용을 쉽게 파악해 설득력을 높이는 보고서다. 그 수단으로는 ‘숫자’ ‘도해’ ‘비교 분석’이 있다.
 
첫 번째, 숫자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를 설득할 때 막강한 힘을 지닌다. 사람들은 수치적 데이터를 근거로 주장하면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숫자를 토대로 내린 결론이나 주장은 그것을 반증할 만한 숫자가 없는 이상 반박할 수 없다.

두 번째, 글의 내용을 그림으로 푸는 도해를 사용한다. 도형과 선, 화살표 등을 이용해 핵심 사항들 사이의 관계나 흐름, 추이 등을 한눈에 들어오도록 나타내는 방식을 말한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한 컷의 그림이 상대방에게 정보의 핵심을 이해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각적 자료는 결재 승인을 2배 빠르게 하고, 기억력을 5배 높이며, 시간을 80% 절약해준다’고 한다.
 
세 번째는 ‘똑똑한 비교’다. 사람들은 의사결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비교라는 잣대를 사용한다. 대개 먼저 접한 것이 다음에 접한 것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혼다에서는 영업 사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육을 시킨다. “저렴한 2도어 자동차를 사려는 고객이 있을 때는 시빅을 보여주기 전에 어코드를 소개하라. 어코드는 시빅보다 4000달러 정도 비싸기 때문에, 어코드의 가격을 듣고 난 다음 시빅에 붙은 가격을 보는 고객은 가격에 대한 불만(비싸다는 생각)을 덜 품게 된다.” 이처럼 적절한 비교를 통해 나타나는 ‘대조 효과’로 상대방을 보다 수월하게 설득할 수 있다. 상사를 설득하거나 컨펌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가진 패가 더 좋아 보일 수 있는 비교 대상을 찾아 함께 제시함으로써 상사가 상대적 호감을 갖도록 하라.
 
제안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라
이 모든 컨펌의 기술이 효과를 나타내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제안에 ‘특별한 가치’가 내재돼 있어야 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루스벨트의 선거 본부에서 사진과 연설문을 실은 홍보 팸플릿 300만 부를 제작해 배포를 앞두고 있었는데, 팸플릿에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진이 쓰인 것이다. 당시 저작권법에 따르면, 해당 사진의 저작권자가 사후에 저작권 사용료를 요구할 경우 팸플릿 한 장당 1달러까지 지불해야 했다. 당시 300만 달러는 지금의 6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300만 부에 달하는 팸플릿을 많은 돈을 들여 다시 찍거나, 저작권자로부터 사진 사용을 허락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저작권자에게 사진 사용료를 최대한 깎아달라고 사정하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러나 선거 본부장은 사진 저작권자에게 사정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선거 홍보 팸플릿 300만 부에 귀하의 사진을 실어 배포하는 것을 고려 중. 전국적으로 귀하를 알릴 수 있는 기회임. 홍보의 대가로 얼마를 낼 용의가 있는지 즉시 답변 바람.” 저작권자는 즉각 응답했다. “고맙습니다만, 250달러밖에 낼 수 없습니다.”
 
루스벨트 측의 선거 본부장은 자칫 큰돈을 주고 저작권 사용료를 지불할 뻔했으나, 시점을 바꿔 자신의 제안이 저작권자에게 가져다줄 특별한 혜택에 주목함으로써 오히려 선거 본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컨펌을 끌어냈다. 즉 자신의 입장만이 아니라 상대편의 입장에서도 손익을 계산해보면 의외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소(CenterWorld Corp.) 대표로 있으며,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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