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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umn : Behind Special Report

홍합 홍합 홍합 홍합
왕밤빵 왕밤빵 왕밤빵

김성모 | 278호 (2019년 8월 Issue 1)



이대로 끝내기 아쉬워 노래 한 곡 추천한다. ‘형돈이와 대준이’의 ‘한 번도 안 틀리고 누구도 부르기 어려운 노래’다. 개그맨 정형돈과 가수 데프콘이 결성한 형돈이와 대준이가 2017년 초 선보인 곡이다. 나는 라디오에서 처음 이 곡을 접했다. 사실 가사를 거의 못 알아들었을 뿐만 아니라 웃느라 끝까지 듣지도 못했다. 라디오 DJ도 웃음이 터져 결국 진행을 못 하고 다음 곡을 틀었다. 정말 웃겼다. 가사를 찾아봤다.

“너를 처음 만난 그날은 /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 러시아 대통령 재임 시절 / 확률분포표상에는 / 있을 수 없는 청 단풍잎이 / 우거진 붉은 수수밭에서… 서로를 액자 속 사진 속에 / 왕밤빵을 나눠 먹으며 / 행복해했지 / 액자 속 사진 속의 그 / 홍합 홍합 홍합 홍합 /홍합 홍합 홍합 홍합 / 액자 속 사진 속의 그 / 왕밤빵 왕밤빵 왕밤빵 왕밤빵… 흥 따라 할 테면 따라 해봐 / 우린 절대 라이브 못하니까 / 야오 형돈이와 대준이”

의미가 있는 듯 없는 듯. 리듬을 타는 듯 안 타는 듯. 템포가 워낙 빨라 ‘한 번도 안 틀리고 누구도 부르기 어려운 노래’라는 제목이 실감 난다. 그런데 눈길을 잡은 대목이 있다. 라이브를 못한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튜브를 켜고 라이브 영상을 찾아봤다. 진짜였다. 영상마다 정형돈은 가사를 절었지만(절다: 랩 가사를 까먹거나 박자를 놓치다), 데프콘은 랩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정말 솔직한 가사였다.

그런데 더 재밌는 부분은 관객들의 반응이다. 정형돈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비장한 표정으로 나서지만 관객들은 마치 그가 노래를 틀릴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가사를 절 때마다 박장대소했다. 반면 데프콘이 어려운 가사를 박자에 맞춰 척척 부를 때는 환호성을 질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곡은 정말 잘 짜인 역할극에 가깝다. 개그맨인 정형돈은 음악을 파괴(?)하면서, 가수인 데프콘은 곡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관객의 만족도를 높인다. 사람들이 둘에게 기대하는 바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 ‘니가 듣고 싶은 말’ 등 형돈이와 대준이는 나름 히트곡 제조기다. 그런데 진정한 B급의 정수(精髓)는 ‘한 번도 안 틀리고 누구도 부르기 어려운 노래’인 듯하다. 병맛 같으면서도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들의 능력이 극대화된 느낌이랄까. 파급력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곡이 나온 뒤 사람들이 유튜브에 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수준급 가수나 아나운서들이 도전한 영상도 있다.

‘배달의민족’의 마케팅이나 하상욱의 ‘시’를 보면 B급 문화의 핵심 중 하나는 공감과 참여다. 단순히 찌질한 병맛을 지녔다고 다 같은 B급이 아니라는 의미다. 형돈이와 대준이의 노래가 인기를 끈 것도 결국 공감과 참여에서 비롯됐다. 일부 전문가는 ‘원초적 수준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경향’이 B급 열풍의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B급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휴가 가는 길. ‘한 번도 안 틀리고 누구도 부르기 어려운 노래’를 들어보고 따라 해보길 권한다. 고비는 10번 연속으로 ‘홍합’을 외쳐야 하는 부분이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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