畫中有訓
Article at a Glance - 자기계발, 인문학
호접몽 “장주(莊周)는 칠원(漆園)의 관리가 되더니 일찍이 꿈에 나비(胡蝶)가 되어 나풀나풀 날아가는 나비였는데 잠시 후 깨어보니 놀라 있는 장주였다.”
- <남화경(南華經)> |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 ‘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다. 위 글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주가 곧 장자(莊子)의 본명이다. 장주(기원전 369∼286년)는 오늘날 안휘성에 있던 작은 몽(蒙)나라 사람이었다. ‘칠원’도 몽에 있었다. 장주는 가난했지만 사회적 성공보다 궁극적 진리를 추구했다. 그는 노자(老子)의 사상에서 진리를 찾았다. 장주의 언행이 실린 책은 오늘날 주로 <장자>라 불리는데 조선시대에는 <남화경>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렸다. 위 인용글은 ‘장수몽접’이 그려져 있는 <예원합진>의 왼쪽 면에 실린 글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장자>의 원문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이어진다. “장주는 알 수 없었다.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됐던 것일까. 나비가 꿈에서 장주가 된 것일까. 이를 일러 물화(物化)라 하노라.” 조선의 문인들은 이 꿈 이야기를 일러 ‘호접몽’이라 했다. 호접은 나비의 한자어다. 혹은 ‘장주몽’이라 했고, 혹은 ‘칠원몽’이라 했다.
물화
호접몽의 이야기는 아주 짧지만 학자들은 이를 들어 장자철학을 대표하는 일화로 꼽는다. 호접몽에서 깨어나는 순간의 혼동을 일러 장자는 ‘물화’의 깨달음으로 일갈했다. 인간이 나비라는 자연물로 ‘화(化)’한 경험을 말한다. 장자는 만물(萬物)이 하나의 이치라고 생각했다. 나비라는 곤충과 인간이 동일한 가치의 등가물로 서로 호환이 가능해지는 원리다. 인간이라고 우쭐대지 말고 대자연에 동화돼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했던 장자 철학의 핵심이 이 속에 압축돼 있다. 장자는 문명과 학문의 발달 때문에 인간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 잃고 말 것이라고 진심으로 우려했고 한편 조롱했다. 또한 절대 책으로 학습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책은 자연의 섭리를 접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라고 장자는 생각했다. 이 때문에 학문과 과학의 이상을 펼쳐나가는 사람에게 장자 철학은 온전히 수용되기 어렵다. 대개 사람들은 현실 속에 빠져든다. 장자는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와서 뒤통수를 툭툭 친다. 그의 제안은 거침없다. 이 보게 자네들! 나비 알지? 자네가 저 나비의 꿈속에 존재하는 환상일지 모른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양기성(梁箕星) 그림, ‘장수몽접(莊叟夢蝶, 장자가 나비를 꿈꾸다)’, 조선 18세기전반, 종이에 채색, 33.5x29.4㎝, 일본 야마토분가칸.
나비 꿈과 현실
‘장수몽접’을 보면 한 노인이 바위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있다. 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다 언뜻 잠이 든 모습이다. 노인의 머리 위로 노랑나비 한 마리가 펄럭인다. 노인이 나비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화가의 재치며 장자의 호접몽을 표현하는 옛 그림 속 코드다. 여기서 소개하는 ‘장수몽접’이 들어 있는 <예원합진>은 교훈적 고전의 명구와 그림이 주로 실린 책이다. 이 책은 묵직한 인내와 용기, 능력을 온축해 세상을 구하고자 꿈꾸는 포부 등 긴장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유교적인 자기단련이며 경세(經世, 세상을 다스림)의 지혜다. 이런 책 중간에 불쑥 노장사상을 대표하는 장자가 등장해서 보란 듯 낮잠을 자고 있다. <예원합진>을 펼쳐보는 왕족과 관료층에게 현실이란 엄연했다. 중국 황실에서 끊임없이 쏟아붓는 조공 요구에 영의정쯤 되는 대가들이 문장력을 발휘해 삭감이나 연기를 간청하는 공문을 지어 올려야 했고 신하들은 파를 갈라 상소문을 올려댔다. 현실이 그러한데 왕실용 교육서적 한 면에 그려진 그림이 봄날 한가로운 나비 꿈, 즉 현실의 망각이라니.
나비의 메타포
조선시대 문인들은 문장력을 키우기 위해 ‘장마(莊馬)’를 필독했다. ‘장마’란 <장자>와 사마천이 쓴 <사기>를 말한다. 엄격한 유학자의 글에도 장자의 호접몽은 즐겨 인용됐다. ‘나비’로의 환생은 그 자체로 오묘한 흡입력이 있었다. 다양한 생명체들 가운데 장자가 하필 ‘나비’를 택한 이유였을 것이다. 나비는 감질나게 나풀대는 작고 가벼운 곤충이지만 예로부터 남성의 로망이었다. 적어도 로망의 상징이었다.
“바라노니 칠원의 꿈을 빌려 꽃가지를 빙빙 돌다, 꽃술을 붙들었다 내 맘대로 날아오라.” 나풀나풀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는 나비를 상상하는 일. 공기는 따스하고 향기는 진동하리라. 나이 들어 힘 빠지면 나비 같은 옛 시절이 더욱 그립다. 꿈이라도 꾸고 싶다. 이 시구는 바랄 것 없이 영화를 누린 서거정의 시다. 정약용도 노래했다. “만물이 모두 왔다가건만 그 누가 죽음과 삶을 알리. 그윽한 근심이 한 바탕의 꿈을 이루니 나비가 가볍게 날갯짓하는 듯.” 나이 들어 몸이 무겁고 죽음이 두려울 때 꿈에서라도 나비가 돼 가뿐해지고 싶다. 나비 꿈의 상상, 그것은 퍼뜩 나비가 돼 치마폭을 노닐고 싶은 장춘(長春)의 꿈이었다.
나비란 사랑을 찾아가는 마음이며 몸짓이다. 왕에 대한 충심을 ‘사미인(思美人)’으로 노래하던 조선 문사들에게 나비 꿈은 애군(愛君)의 메타포로 빈번히 넘어가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조광조다. 그는 유배시절 나비가 되고 싶노라 노래했다. 임금 계신 궁궐 위를 훨훨 날고 싶어서다. 꿈속에 나비돼서 궁궐을 날아다닌 조광조의 꿈은 노래로 만들어져 인구에 회자됐다. 사신으로 북경에 간 관료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나비 꿈에 기탁했다. 꿈에 나비돼서 한양의 궁궐에 가 용안을 배알했노라 노래했다.
사랑을 찾아가는 나비의 꿈. 관건은 나비가 되는 순간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현실을 잊고 꿈에 빠져들면 현실과 꿈이 공존하면서 소망이 실현된다. 상대가 여인이든, 임금이든 나비라는 메타포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엄격한 유학자들도 사랑을 위해 작고 작은 나비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장자의 전략이다. 다만 이 전략에만 머문다면 <장자>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현실의 관조
장자의 나비 꿈은 본질적으로 현실을 관조하고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나비를 꿈꾸듯 혹은 나비가 나를 꿈꾸듯 서로 다른 생명체의 꿈이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게!” 이것은 장자가 혜자에게 한 말이다. 논변에 빠져들면 처음을 잊곤 한다. 누구든지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를 처음 들은 순간이 있다. 그것이 처음이다. 그 순간 현실이 아득하게 멀어지며 머리가 맑아지는 ‘거리’의 발생을 느꼈을 것이다. 현실로부터의 부상(浮上)이며 현실을 관조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에 존재론적 성찰이 꿈틀댄다.현실에 매몰돼 그 현실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다 보면 자신을 잊고 대의와 선의까지 잊는다. 그런 사람은 다음에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성찰하지 않는 사람들의 위험한 성공이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 있다. 현실 밖에서 현실을 바라보고 나를 떠나 나를 바라보는 여유는 장자의 주장에 접근한다. 영화 ‘메트릭스’의 첫 장면에 장자의 나비 꿈이 등장한다. 현실과 다른 현실의 존재를 암시하는 복선이다.
유교국가의 왕실에서 엮은 <예원합진>에 장자의 나비 꿈이 실린 것은 성찰에 대한 요구다. 꿈에서 나비가 되는 환상은 자기관조의 첩경이다. 가끔은 삶의 현장에서 떨어져라.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라. 성찰은 현실과의 ‘거리’를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하다. 말하자면 이 그림의 기능은 간단하다. 그림 속에 잠든 장자를 보며 상상한다. 꿈속에 나비가 된다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비가 나를 꿈꾼다면 그 ‘나’는 어떤 인물인가.
고연희 이화여대 강사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 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대, 홍익대, 연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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