畫中有訓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 ‘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조선왕실의 교육용 그림책
일본 나라(奈良)에 위치한 야마토분가칸(大和文華館)에는 주옥 같은 우리나라 예술작품들이 여러 점 소장돼 있다. 여기서 펼쳐보는 그림이 그곳에 소장된 조선 후기 화첩의 한 면이다. 이 화첩의 이름은 ‘예원합진첩(藝苑合珍帖)’이다. 글과 그림을 합쳐놓은 보배로운 예술적 앨범이란 뜻이다. 모두 세 권이다. 그림과 글의 주제는 대개 옛 고전에서 추려내어 그 내용이 고상하고 교육적이다. 그림은 18세기 전반기 왕실에서 활동하던 여러 화원화가들이 나누어 맡아 화사한 채색으로 정성스럽게 그렸고 글은 대학자요, 명필가인 백하 선생 윤순(尹淳, 1680∼1741)이 도맡아 정갈한 해서체로 적었다.
여기서는 그중의 한 면, <양진각금(楊震却金, 양진이 황금을 물리치다)>을 펼쳐본다. 그린 이는 화원화가 장득만(張得萬, 1684∼1764)이다. 화면 상단 왼편에 ‘양진각금’이라고 써있다.
‘양진각금’
화면에는 평상복을 입은 두 인물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엉거주춤한 포즈로 서 있고, 또 한 사람은 앉아 있다. 앉은 사람은 두 손의 식지를 모두 세우고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을 하는데 한 팔은 번쩍 들어 위를 가리키는 중이다. 백색 옷자락을 활짝 펼치며 말을 하는 인물이 얼핏 보아도 한결 당당하고 의연해 보인다. 두 인물 사이의 탁자에는 소개한 그림의 제목에서 알아챌 수 있듯이 황금 덩어리가 흩어져 있다. 이 그림의 왼쪽 면에 적혀져 있는 글을 번역하여 옮기면 이러하다.
양진(楊震)은 자가 백기이며 관서지역 사람이다. 일찍이 군수가 되었는데 그 읍에 속한 령(令)이 황금을 품고 와서 주며 말하였다. “어두운 밤이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양진이 말하였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알지. 어찌 아무도 모른다고 하오.” 령은 부끄러워 돌아갔다. -<사기>
‘사지(四知)’를 경계하다
양진은 후한의 역사서 <후한서>의 열전에 소개된 인물이다. 양진이 동래태수가 돼 창읍을 지났다. 마침 창읍령은 양진의 천거로 벼슬을 받은 왕밀(王密)이었다. 왕밀은 밤을 틈타 양진을 찾아왔다. 왕밀은 황금 열 근을 품고 와서 꺼내 놓는다. 때는 어둠 속이라 정녕 이를 아는 사람은 오직 주는 자와 받는 자뿐이다. 왕밀은 양진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양진은 이를 받는 것이 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양진은 짐짓 호통을 치듯 단호하게 말했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그대의 말은 틀렸노라고. 여기서 ‘사지(四知)’라는 말이 나왔다. 하늘이 아는 천지(天知)·귀신이 아는 신지(神知)·내가 아는 아지(我知)·그대가 아는 자지(子知). 조선의 선비들은 행실이 투명하고 청렴한 관료를 일러 “사지를 알고 경계하였노라”고 높이 칭송했다.
깨끗한 마음[淸心]
다산 선생 정약용(丁若鏞)이 <목민심서>를 저술하며 「깨끗한 마음(淸心)」이라는 항목에서 양진이 황금을 물리친 이야기를 예로 삼았다. 깨끗하게 행실을 유지하려면 생활은 검소해야 할 터이다. “깨끗함(淸)은 자리를 지키는 근본이고, 검소함(儉)은 몸을 지키는 기본이다”라고 더하여 일렀다. 남을 속여 황금으로 주머니를 채우는 일은 곧 자신의 자리를 흔들고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일이다.
어둠과 황금의 메타포
어둠이란 은밀함이며 황금이란 재물이다. 어둠 속에서 황금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속이면서 자신의 재물을 증식하거나 욕심을 채우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 비유다.
황금빛 번쩍임은 아름답고 값비싸니 누구라도 거절하기 힘든 욕망의 상징이다. 황금의 갈취는 벌건 대낮에도 곧잘 이뤄진다. 극단적 이야기가 <여씨춘추>에 전한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시장바닥에서 한 남자가 황금을 훔치려고 손으로 움켜쥐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붙잡혔다. 이 도둑의 말이 어이없다. “내 눈에는 황금만 보였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소.” 다른 사람의 이목은 아랑곳하지 않고 황금빛 번쩍이는 곳으로 무리하게 돌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양진은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황금을 거절했다. 왕밀은 황금을 다시 품고 되돌아갔으리라. 양진과 왕밀이 각각 겪었을지 모르는 그들 내면의 심리적 갈등에 대해서는 윗글이 말해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판단이며 행적이다. 왕밀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천거해 준 양진으로부터 잊지 못할 가르침을 받아 가슴에 품었을 것이다. 그것은 황금 열 근보다 훨씬 무겁고 빛나는 것이 아니었을까.
현자의 유산
양진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의 소박한 삶은 자식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양진의 자식과 손자들은 고기밥을 못 먹고 나물밥을 먹고 다녔다. 양진의 맏아들이 장사밑천을 요구했다가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다. 양진은 말했다. “후세에 청백리(淸白吏)의 자손이라는 말을 듣게 하는 것으로써 유산을 남겨주는 것이 어찌 후한 유산이 아니겠는가.” 깨끗한 행적과 명예로운 이름의 유산, 그것이 후한 유산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소크라테스가 떠오른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벗 크리톤이 ‘어둠’을 틈타 소크라테스를 찾아왔다. 부자였던 크리톤은 이미 감옥수들을 모두 매수해놓은 상태였다. 크리톤은 다급하게 강권한다. 이미 독약이 이곳을 향해 출발했으니 오늘밤 이 감옥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또한 설득한다. 많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니 감옥에서 도망침으로써 그들의 바람에 부응하라고.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벗의 제안내용과 설득의 논리가 틀렸다고 말한다. 그는 악법도 법이기에 법을 어길 수 없다는 말을 한다. 따라서 그 자신은 아테네의 법에 순응해 죽는 것이 맞고, 그래야만 그의 자식들이 떳떳하게 아테네 시민으로서 남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죽음에 임박해 ‘어둠’ 속에서 받은 제안은 ‘황금’보다 귀한 목숨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거절했고 크리톤은 어둠 속 새벽으로 홀로 돌아갔다.
“한 바구니의 황금을 남겨주는 것보다 한 권의 좋은 책이 낫다”는 한나라 속담이 조선시대 문헌에 빈번하게 언급된다. 한 바구니의 황금과 한 권의 책을 금전적으로 환산해 비교하면 어떠한가. 자본주의 척도에서는 질문도 못 된다. 그러나 내가 아끼는 사람, 나의 벗, 나의 자식에게 나의 삶을 보여주고 남겨줄 것이 무엇이어야 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삶의 원칙과 인격의 수준이 여기서 형성된다. 옛 성현이 가르친 자기 성찰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결실을 맺는 지점이다.
고연희 이화여대 강사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대, 홍익대, 연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