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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차원 다른 삶을 조망하는, 참된 휴식

최명기 | 65호 (2010년 9월 Issue 2)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은퇴 후에 쉬면 되니, 지금은 일을 해야 한다고 끝없이 자신을 채근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삶이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일까? 끝없이 높은 산에 오르는 이는 바다가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다를 보면서 그는 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휴식을 통해 우리는 삶의 또 다른 가능성에 눈길을 돌릴 수 있다. 진정한 휴식에는 일과 다른 차원이 존재해야 한다. 다른 차원에서 일을 조망하면서 삶의 또 다른 측면과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긴장과 도전에 중독된 이들에게는 다른 차원의 삶을 맛볼 수 있는 휴식이 필요하다. 언젠가 시간은 다하고 죽음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음을 인식하면서 시간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방법이다.
 
워커홀릭 김 이사의 후회
김 이사는 30대 후반에 외국계 투자은행의 이사가 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 지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 밖에 모르는 일중독자이지만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공부하는 것보다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집도 윤택했고 부모님도 자상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았다. 명문대는 아니지만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대학교 1학년 때 실연을 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명문대를 다녔던 남자친구는 매사에 그녀를 무시했고 결국 일방적으로 차였다. 한국에 있으면 마음 정리가 안 될 것 같아서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 유학 후 그녀는 바뀌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혼자 있으면서 치열하게 살았다. 영어를 익히기 위해 미국학생들과만 놀고 미국에서 취직하기 위해 최고 학점을 받았다. 취직에 성공한 후 그녀는 Top 10에 드는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했다. 유명 컨설팅 회사 미국 본사에서 일하다가 외국계 투자은행의 한국지사로 스카우트됐다.
 
나이가 들면서 주위에서는 결혼을 하라고 얘기했지만 나중에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와 달리 여자는 결혼 후 출산하면 공백이 생겨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최우선 과제로 사회적 성공을 들었다. 그녀에게 시간은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그녀에게는 일분일초의 자투리 시간도 아까웠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냥 만나는 법이 없었다. 네트워크를 만든답시고 온갖 사람들을 만나 술 마시고 골프 치는 남자 동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평소에 알아도 그 사람이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냥 알고 지낸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녀의 수첩에는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의 리스트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어느 날 김 이사에게 회사의 보스가 2년간의 미국 본사 근무를 권했다. 본사 근무지만 실상은 하는 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연수에 가까웠다. 그녀는 보스에게 가족이 있는 남자 임원들에게 기회를 양보하고 자신은 한국에서 일을 계속 하겠다고 했다. 보스는 겉으로는 웃지만 약간은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김 이사도 좀 쉬어. 그래야지 다른 사람들도 좀 편해지지”라고 말했다. 김 이사의 반응이 시원찮으니 보스는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김 이사 정도 실적을 올리면 사실 부사장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젊어. 주위에서 견제도 들어오고. 이렇게 일을 잘하는데 승진을 안 시키면 안 되는데, 지금 승진을 시키자니 말이 많고. 그러니까 본사에 연수 가서 한 2년 쉬다가 오면 그 다음에는 타이밍이 맞아.”
 
그녀는 보스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 이것이 자신을 밀어내기 위한 수순이 아닌가라는 의심도 들었다. 연수를 가면 2년간 일을 놓게 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녀가 업무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나 네트워크가 별 소용이 없게 된다. 이토록 열심히 일을 했는데 너무 잘 하니 억지로 쉬게 한다는 보스의 말에 속이 상했다. 자신이 인생을 쓸데없는 곳에서 허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처음으로 밀려왔다.
 
그녀는 중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외국에서 큰 병을 앓으면 안 된다는 부모의 성화 때문에 미국으로 가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위내시경도 하고, 자궁암 검사, 유방암 검사도 받았다. 그런데 유방암이 발견됐다. 그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금의 시간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지고 온 서류들도 손에 잡히지 않고 책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간단한 수술이니 얼마 안 있어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항상 시간이 모자라서 아득바득 살아왔는데 막상 남아도는 시간을 마주하게 되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다가 보고 싶다던 아가가 막상 엄청난 수평선의 바다를 보게 되자 압도가 되어서 들어가지도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병원 정원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별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일분일초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 삶이 사실은 일에만 매달려서 허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결국은 그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더 잘난 것도 없고, 더 못한 것도 없는 그냥 하나의 삶, 하나의 인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면 천국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환상이었을까.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정작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깊은 무덤을 만든 건 아닐까라는 자괴심도 들었다.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시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얼마 전 토크쇼를 보는데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자신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가 너무 힘들어서 누워 있는데 유명한 댄스 가수 겸 영화배우인 선배가 들어왔다. 그 선배는 지독스럽게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였다. 그 선배는 아이돌 그룹에 화를 내면서 죽으면 계속 누워있을 수 있으니까 지금은 빨리 일어나서 연습하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 중에는 나중에 쉬면 되니 지금은 일을 해야 된다고 하면서 끝없이 자신과 타인을 채근하는 이들이 있다. 주변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삶이 시간을 잘 활용하는 인생일까?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고 밥 먹는 시간을 빼면 모두 일을 한다는 이들이 있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만나야 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고 폭도 늘어난다. 회의에 참가하기만 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쉬는 시간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 시간이 가장 희소한 자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자투리 시간도 목적을 위해서 활용한다. 휴대전화로 하루 종일 보고를 받고 지시한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있기에 하루 종일 필요한 정보를 검색한다. 어떤 이는 이동을 하는 사이에 새우잠을 자는 것으로 잠을 대신한다고 한다. 그런 이는 잠이라는 휴식마저 자신의 삶에서 추방해버린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것은 은퇴에 대한 환상이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혹은 더 이상 일이 의미가 없게 되면 그 때부터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어떤 이들은 놀 때는 확실하게 놀고, 일을 할 때는 확실하게 집중해서 일을 한다. 지겨우면 지겨울수록 집중해서 빨리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겹고 힘든 일을 끝냈기 때문에 스스로 보상을 주어야 한다. 그 보상이 바로 신나는 여흥이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신나게 놀아재낀다. 일이 지루하기에 노는 것은 더 화끈해야 한다. 그래서 익스트림 스포츠가 더욱 인기다. 머리를 쓰는 지루한 일에 대비되는 짜릿하고 색다른 액션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번지점프를 하고, 행글라이더를 타고,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머리만 쓰는 지겨운 일과, 몸을 쓰는 화끈한 액션이 오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다. 이런 삶은 일도 하고 쉬기도 하니까 후회가 없을까? 이러한 삶은 어떤 점에서 휴식이 노동을 닮아가는 꼴이다.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일에 대비되어서 요철처럼 맞아 떨어지는 휴식인 셈이다. 휴식마저 일처럼 조직화해 간다.
 
진정한 휴식에는 일과 다른 차원이 존재해야 한다. 다른 차원에서 일을 조망하면서 삶의 또 다른 측면과 가치를 상기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진정한 휴식을 통해 우리는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내 안에서 꿈틀대면서 자신을 봐달라고 하는 재능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휴식을 통해 우리는 삶의 또 다른 가능성에 눈길을 돌릴 수 있다.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시험하는 삶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후회를 동반한다. 이것을 했더라면, 저 실수를 안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인생을 살다보면 순간순간 닥친다. 그때의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몰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휴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유 있는 삶이 무조건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괴로운 일이 있으면 시간이 안 지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시간이 홱 지나가게 마련이다. 매우 지겨운 영화를 볼 때는 상영시간이 두 시간이지만 마치 네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그날 24시간이 아닌 26시간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으로 그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축구에서 단지 지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대패를 당하고, 선제골을 넣은 후에 단지 지키겠다고 생각하면 역전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인생에서도 생긴다.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데 나 혼자 훌륭한 사람이라고 아무리 합리화해도 소용 없다. 하지만 성공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도 아니다. 권태에 빠진 이에게는 긴장과 도전이 필요하고, 긴장과 도전에 중독된 이들에게는 다른 차원의 삶을 맛볼 수 있는 휴식이 필요하다. 결국 일에서 벗어난 휴식을 통해 우리는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끝없이 높은 산에 오르는 이는 바다가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다를 보면서 그는 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끝없이 넓은 바다를 헤엄쳐 건너는 것만을 추구하는 이는 높은 산을 한번 돌아봐야 한다. 그는 그러면서 바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시간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책도 많고 강연도 많다. 하지만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도 때로는 우리 인생에 필요하다. 때로는 생각지 못한 질병, 실패, 사고로 의도하지 않은 휴식을 가질 수도 있다. 그 때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대신 그것을 하늘이 준 소중한 기회로 받아들여보자. 시간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과 맞서 이길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언젠가 시간은 다하고 죽음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니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시간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편집자주  DBR이 기업을 운영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계신 독자 분들에게 상담을 해드립니다. 최명기 원장에게 e메일을 보내주시면 적절한 사례를 골라 이 연재 코너에서 조언을 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소속과 이름은 익명으로 다룹니다. 이번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들입니다.
  • 최명기 | - (현) 정신과 전문의·부여다사랑병원장
    - 경희대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임교수
    myongki@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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