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은 공자가 태어난 중국 산둥성 중부의 곡부에서 동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명산이다. 높이는 1545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역대로 중국 황제들이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 지내는 봉선(封禪) 의식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이 산은 중국인들에게 민간 신앙의 중심지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중앙의 숭산(崇山), 서쪽의 화산(華山), 남쪽의 형산(衡山), 북쪽의 항산(恒山)과 더불어 중국의 오악(五嶽) 중에 동쪽에 있는 산으로 그 상징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느 날 공자는 그 태산에 올라가 이렇게 외쳤다.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구나! 등태산소천하(登泰山小天下)라!’ 공자는 태산에 올라가서 천하가 작다는 것을 보았다. 공자의 눈에 비로소 천하(天下)가 들어온 것이다.
태산에 올라가기 전까지 공자는 향곡지사(鄕曲之士)에 불과했다. 향곡(鄕曲)은 시골 동네란 뜻이다. 공자는 시골 동네 지식인으로 글로벌한 마인드를 갖추지 못했던 그런 인물이었다. 공자는 인생을 살면서 56살에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동안 자신을 등용하여 높은 자리에 올려준 노(魯)나라 국왕인 정공(定公)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는 대사구(大司寇) 자리에서 물러나 14년간 천하를 떠도는 방랑 생활을 시작한다. 공자는 제자들과 방랑의 기간 중에 태산에 올랐고, 그 태산 위에서 외쳤던 말이 바로 ‘등태산소천하(登泰山小天下)’였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인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경험을 하곤 한다. 공자는 처절한 방랑의 기간에 비로소 천하(天下)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눈을 떴다. 이후 공자의 관심은 천하(天下)의 문제로 넓어졌다. 석가가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예수가 광야에 나가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었듯이 2500년 전 공자는 태산에 올라가서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깨달음을 얻었다.
동양 철학에서는 이 같은 인식의 전환점을 다양한 각도로 묘사한다. <장자(莊子)>에는 대붕(大鵬)의 이야기가 나온다. <장자> 첫 편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대붕(大鵬)이라는 새는 구만 리 높은 허공을 차고 올라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미지의 남쪽 세계로 날아간다는 전설 속의 새다. 대붕은 원래 곤(鯤)이라는 이름의 물고기였다. 북쪽 바다에 사는 이 아주 조그만 물고기가 어느 날 대붕이 돼 3000리 파도를 일으키며, 9만 리 창천(蒼天)을 날아갔다. 이 순간 바다라는 공간을 벗어나 천하(天下)라는 세계로 들어서는 극적 전환이 일어난다. 명(明)나라 때 육방호(陸方壺)라는 시인은 대붕(大鵬)의 세계를 이렇게 시로 읊었다.
‘진의천인강(振衣千仞岡) - 천 길 벼랑 위에 서서 옷깃을 날리고,
탁족만리류(濯足萬里流) - 만 리 흐르는 강물에 발을 씻는다.
대장부불가무차기절(大丈夫不可無此氣節) - 대장부가 이런 기개와 절도가 없을 수 없도다!
해활종어략(海闊從魚躍) - 바다는 광활하여 물고기가 뛰어놀 수 있도록 하고,
천공임조비(天空任鳥飛) - 하늘은 텅 비어 있어 새들이 나는 대로 맡겨둔다.
대장부불가무차도량(大丈夫不可無此度量) - 대장부가 이런 도량이 없을 수 없도다!’
앞으로는 세계라는 공간에서 옷깃을 휘날리고, 우주라는 공간에서 은하수 강물에 발을 씻을 수 있는 민족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될 것이다. 공자가 태산에 올라가 천하가 작다고 외쳤듯이,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대붕(大鵬)이 되어 구만리 하늘을 차고 올라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났듯이, 대장부로 거듭나 저 넓은 바다로, 저 넓은 하늘로 차고 오르지 않으면 결국 더 큰 세계를 보지 못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야 비로소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