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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禮: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라

강신주 | 56호 (2010년 5월 Issue 1)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의를 중시한다는 자긍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공공 교통수단에는 어김없이 노약자 지정석이 마련되어 있다. 나이 드신 어른이나 임산부 등을 배려하는 제도이다. 그렇지만 때때로 과연 이런 제도가 윤리적인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윤리란 타인에 대한 주체의 애정이나 배려, 그리고 주체의 자율적인 결단을 전제해야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제도 자체가 타인을 배려하는 자율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이 제도는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윤리적일 수 없다.
 
어느 날 한 여학생이 지하철에서 비어 있는 노약자 지정석을 두고 식은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곁에 서 있던 필자는 여학생이 측은해서 노약자 지정석에 앉으라고 이야기했지만, 몸이 불편한 그 여학생은 얼굴만 붉힐 뿐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 전철 안에서 가장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이 노약자 지정석에 앉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여학생이 전철 안의 어른들의 시선, 특히 노약자 지정석에 미리 앉아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여학생이 노약자 지정석에 편안히 앉지 못하게 만든 것은, 그녀보다 나이가 든 우리 어른들이었던 셈이다.
 
간혹 필자는 노약자 지정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를 야단치며 그 자리에 앉는 나이 든 사람을 보게 된다. 이럴 때 이 노인들에게는 자신들 자리니까 젊은이가 앉아서는 안 된다는 당당함이 묻어 있다. 노인은 젊은이가 어디 몸이 불편한지를 헤아려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일어나라고 야단을 치는 노인이나 무엇에나 쫓긴 듯이 자리를 뜨는 젊은이, 어느 경우에나 윤리적이라고 헤아릴 만한 데가 전혀 없다. 두 사람 사이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애정은 눈뜨고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야단칠 때 “요즘 젊은 것들은 예의도 몰라”라고 혀를 끌끌 찬다. 이렇게 한탄하면서 그들의 뇌리에는 한 명의 사상가, 즉 공자(孔子, BC. 551BC. 479)가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논어(論語)>를 넘겨보면 공자도 자신이 살던 춘추시대(春秋時代)가 무례(無禮)한 사회, 즉 예가 없는 사회라고 탄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禮)를 중시했던 공자는 노약자 지정석에 피곤한 몸으로 앉아 있는 젊은이를 보고 어떻게 행동했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의문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구절이 <논어>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공자가 태묘에 들어갔을 때 일일이 물어보았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누가 저런 추인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했는가? 태묘에 들어가서는 일일이 묻고 있다니!”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태묘(太廟)란 예(禮)를 만들었다는 주공(周公)의 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공자는 예에 대해 가장 정통한 사람으로 중원에 이름이 높았다. 그럼에도 태묘를 참배할 때 그는 모든 참배의 절차를 태묘의 관리인에게 일일이 물어보았던 모양이다. 공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조롱했다. 예를 잘 안다고 해서 공자를 보러왔더니, 공자는 오히려 태묘 관리인보다 예를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자를 따르던 제자가 스승을 조롱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볼멘소리를 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태묘 참배 예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행동을 해서 저희를 창피하게 만드시는 겁니까?” 이때 공자의 대답이 압권이다. “태묘에 들어왔으면 태묘 관리인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것이 바로 예”라고 말이다.
 
바로 이것이다. 공자는 태묘 관리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했던 것이다. 분명 공자는 태묘 참배 예절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만약 자신이 알고 있던 예절을 태묘 관리인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고 한다면, 태묘 관리인의 입장은 무엇이 되겠는가? 어차피 태묘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공자가 아니라 그 관리인이다. 공자는 그가 자긍심을 갖고 태묘를 관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지엽적인 예식 절차보다 공자가 더 신경을 썼던 것은 태묘에서 만난 관리인에 대한 배려였던 셈이다. 이런 공자의 정신은 서(恕)라는 윤리 강령으로 요약된다.
 
자공(子貢)이 물었다.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바로 서(恕)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행하지 말아야 한다.”
-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공자에게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행동 강령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공자는 서(恕)라고 이야기한다. 서는 그가 부연한 것처럼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이다. 이제 우리는 공자가 참배 예절을 일일이 태묘 관리인에게 물었던 이유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먼저 공자는 참배 예절을 주관하는 관리인이 가장 싫어할 만한 일을 숙고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가 자신이 주관해야 하는 일을 자신보다 더 능숙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마치 관광 가이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자신이 소개해야 할 곳을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떠들어대는 여행자인 것처럼 말이다. 이제 분명해진다. 공자는 자공에게 알려주었던 서(恕)라는 행동 강령을 태묘에서도 그대로 실천했다.
 
공자에게 예절은 중요하다. 그는 꿈에서나마 예(禮)를 만들었던 주공(周公)을 만나기를 기대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에게 있어 타인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없다면, 예절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통찰 때문에 공자는 예절의 맹목적인 추종자가 아니라, 최초의 동양 철학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공자가 노약자 지정석이란 제도를 기계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품을까? 아마 그는 맹목적인 예절과 제도만이 있을 뿐,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섬세한 감수성과 애정이 보이지 않는 동방예의지국에 대해 서글픈 마음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동방‘서(恕)’지국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동방‘예의(禮義)’지국은 자랑이라기보다 우리의 치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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