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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신경생리학: 나는 확장되고 싶다

정재승 | 52호 (2010년 3월 Issue 1)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구와 함께 현재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순된 욕망을 갖고 있다. 미국의 과학소설가 닐 스티븐슨(필명 닐 스티븐슨)은 자신의 공상과학(SF)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 1992)>에서 가상의 나라 ‘메타버스’(Metaverse)를 창조하고, 메타버스에 들어가려면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야만 하는 세상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바 있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한 시절, 이 독창적인 이야기는 천재 과학자 필립 로즈데일에게 창조적 영감을 준다. 이 소설을 읽는 순간, 그의 뇌 속에는 이미 메트릭스 같은 세상이 통째로 들어섰다. 그는 정보기술(IT) 회사인 린든 랩을 세워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라는 3차원 가상 세계를 창조했다.
 
2003년 린든 랩이 처음 선보인 ‘세컨드 라이프’는 수많은 아바타들이 모여 사는 온라인 3차원 가상세계다. 우리는 그 안에서 나만의 아바타와 이름을 가지고 현실 세계와는 다른 두 번째 삶을 시작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꿈꾸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자신이 그 인물이 될 수도 있다. 그 안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고, 토지를 소유할 수도 있으며, 그 안에서 통용되는 전자 화폐를 현실 화폐로 환전할 수도 있다.
 
이 사이트는 처음 만들어지자마자 현실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많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세컨드 라이프’의 주민이 될 시간만 기다렸다. ‘세컨드 라이프’를 창조한 린든 랩은 21세기 가장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으로 떠올랐다. ‘세컨드 라이프의 조물주’란 별명이 붙은 로즈데일의 목표는 소설 <스노 크래시>처럼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이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을까? 지난 5년간 린든 랩이 벌어들인 돈은 큰 금액이 아니었다. ‘세컨드 라이프’는 세상의 기대만큼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현재 세컨드 라이프에 등록된 가입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1300만 명 정도. 이 중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가입자는 수십만 명에 불과하다. 한국 이용자는 3만∼4만 명 선에 머물고 있다. 린든 랩의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대만큼 폭발적이지는 못한 게 현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IT환경에 살고 있는 한국 사용자들을 공략하기에 ‘세컨드 라이프’는 문제가 많다. 가상공간 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한글 서비스’가 턱없이 미흡하고, 우리나라 사용자들에게 인지적으로 친숙한 환경도 아니다. 게다가 국내 게임산업진흥법은 온라인 게임에서 얻은 유무형 결과물의 환전을 금지하고 있어 ‘세컨드 라이프’와 ‘퍼스트 라이프’(First Life, 현실 세계) 사이의 관계는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세컨드 라이프’는 대중적 욕망을 정확히 포착한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아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사람들은 이미 수많은 온라인 게시판과 채팅방을 통해 ‘세컨드 라이프’적인 삶을 살고 있다. 3차원 사이버 공간과 아바타만 없을 뿐, ‘세컨드 라이프’에서 채울 욕망을 이미 수많은 온라인 게시판에서 풀고 있다. ‘세컨드 라이프’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기존 온라인 게시판과 채팅방, 블로그 등이 채워줄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필립 로즈데일은 현재 준비하고 있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아바타는 린든 랩의 ‘세컨드 라이프’에서만 활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는 컴퓨터에 접속하는 순간, 아바타가 나를 대신해 웹 페이지과 웹 페이지 사이를 이동하며 인터넷 스페이스를 활보할 수 있는 ‘가상공간 이동 프로그램’을 IBM과 함께 내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지금은 플랫폼이 달라서 아바타의 이동이 불가능하지만, 앞으로는 ‘세컨드 라이프’ 속 아바타가 네이버나 싸이월드 속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얘기다.
 
필자는 이 기술이 앞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사람들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터넷 안에서 진정한 ‘나의 분신’인 아바타를 만들 수 있게 됐으며, 본격적인 ‘세컨드 라이프’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바타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근사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다. 현재 사람들이 게임이나 특정 인터넷 공간에서 사용하는 ‘나의 아바타’에 옷을 입히고 아이템을 추가하고 근사하게 꾸미는 데 드는 돈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웹 공간을 마구 활보하는 아바타가 등장한다면 이 시장은 10배 이상으로 더 확대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가 만든 ‘아이디’ 하나만으로 새로운 인물이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활보하는 아바타가 나로 인식되는 순간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옷을 사고 화장을 하듯 아바타를 가꾸는 데 돈과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이 비즈니스 모델이 크게 성공할 것이라 전망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나와 늘 함께 할 수 있다면 쉽게 아바타를 ‘나의 확장된 자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나라고 인식할까? 나의 손을 어떻게 내 손이라고 인식하는 걸까?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고 눈이나 피부 등으로 감지할 수 있으면 나의 일부라고 인식한다. 예를 들어, 내 손을 붓으로 살살 간지럼을 태우면 간지럼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것이 내 손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신경과학자들이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피험자가 손을 투명한 상자에 넣게 한다. 그러나 상자 안으로 보이는 손은 내 손이 아니라 어설프고 둔탁한 마네킹 손이다. 피험자의 손은 상자 아래 부분에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피험자들도 그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 뒤 실험자가 붓으로 마네킹의 손을 살살 간지럽게 한다. 피험자는 그 상황을 보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때 상자 밑에 있는 피험자의 실제 손도 붓으로 간지럽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때 갑자기 마네킹 손에 전기 충격을 가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들은 순식간에 자신의 손을 상자에서 빼려고 한다. 피험자들은 그 마네킹 손이 자신의 손이라고 착각한다. 내가 보고 느끼는 상황에서 경험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아’라는 개념은 매우 쉽게 확장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진 않았지만, 아바타는 아주 자연스런 ‘확장된 자아’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고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바타와의 동일시를 통해 앞으로 온라인 상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이제 온라인 쇼핑몰이 유혹해야 할 대상은 ‘우리들의 아바타’다.
 
편집자주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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