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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의 공포에서 탈출하기

최명기 | 49호 (2010년 1월 Issue 2)
해운회사에서 일하는 김 팀장은 올해 초부터 불면증이 생겼다. 세계적 불황으로 회사의 구조조정 이야기가 돌면서 자신이 정리해고 명단에 들어갈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팀장급을 물갈이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팀장급 중 하나가 경영진과 식사라도 한 번 하면, 줄을 대려고 접대를 했다는 둥 고가 선물을 줬다는 둥 소문이 돌았다. 회사가 잘 안 돌아가자 대주주들도 서로 ‘네 탓’만 했다. 이런 책임 떠넘기기 속에서 구조조정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 김 팀장도 명단에 오른 것 같다는 얘기가 들렸다. 김 팀장은 그냥 자기 일만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이런 이야기를 듣자 불안이 엄습해왔다.
 
김 팀장은 처음엔 애써 객관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외국계 회사에서 맞벌이하는 부인과 함께 열심히 노력해서 집을 장만했고, 채무를 제외한 금융 자산도 꽤 있었다. 실직을 한다고 해도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면 갈 곳이 많았다. 빈말인지는 몰라도 언제든 오기만 하면 환영한다는 회사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뭔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위 살생부에 이름이 올랐다고 소문난 동료들은 휴게실에서 서로 마주치면 “빵집을 열어야 하나, 고깃집을 열어야 하나”하며 잡담이나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팀장은 회식 때 술을 좀 하고 집에 들어가 자다가 새벽에 깨서 날밤을 새우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불면증은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졌다. 얼핏 잠이 들어도 악몽에 시달렸다. 이런 밤이 더 이상 계속되면 미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신과에 가서 수면제라도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병원에 들르려던 그날 정식으로 구조조정 명단이 발표됐다. 다행히 김 팀장은 살아남았고, 불면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무리에서 떨어져나가는 공포
실직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공포에 시달린다. 그 이유로는 무리에서 떨어져나올 때 느끼는 영장류 공통의 불안감과 그에 따른 분노, 자책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직장에서 위기를 겪게 되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개인적 문제가 함께 불거져나온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가 기다리고 있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가, 고등학교 다음에는 대학교가 기다리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시기와 장소는 다르지만 저마다 어딘가에 취직을 한다. 한 무리에서 떠나면 다음에 속할 또 다른 무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년에 들어서서 무리에서 떠나게 되면 처지가 달라진다. 사자가 사냥할 능력이 떨어져 무리에서 이탈할 때와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이 때 사자는 동료 사자들과 함께 사냥할 때와는 달리 혼자서 사냥을 해야 한다. 무리가 사냥을 할 땐 내가 사냥감을 놓치면 동료가 잡아 나눠 먹을 수 있다. 혼자 사냥을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사냥이 안 되면 굶어죽는 수도 있다. 따라서 두렵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견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실직을 한다고 해서 당장 굶어죽을 정도의 절대 빈곤에 빠지진 않는다.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그 정도는 된다. 하지만 실직은 곧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라는 게 문제다. 새로 들어갈 또 다른 무리를 찾든지 아니면 혼자 사냥을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새로운 무리에서 내 지위는 과거와 같진 않을 것이다. 그 수모를 참아내기도 쉽지 않다. 기껏 수모를 참아냈다고 해도 다시 밀려날까 두렵다.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적응을 못할지도 모른다. 기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두려움, 새로운 무리에 다신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실제보다 상황을 더욱 부정적으로 보게 만든다. 그것은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던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와 처음 집단을 이뤄 살던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녀온 본능적 두려움이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마을에서 쫓겨나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자연에 맞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서울과 같은 대집단을 만들었지만 인간의 마음은 아직 그만큼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다. 따라서 불안하고 두려운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본능적 감정을 배제한다면 실제 상황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낫다.
 
실직의 불안에 대처하기
실직의 불안에서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런데 실직을 당할지도 모르는 두려운 상황에 놓이면 대인관계가 위축된다. 인간에겐 일이 잘 풀리면 쓸데없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정작 일이 안 풀려서 남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청개구리 같은 습성이 있다. 이는 무리를 지어 살아가던 동물 시절부터 비롯된 습관이다. 동물이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위험을 뜻한다. 병들고 나약해져 무리를 쫓아가지 못하면 혼자 남게 된다. 따라서 동물의 세계에서는 힘이 약해지고 곤경에 처하면 옆에는 아무도 없다.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 도와줄 이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강아지는 몸이 아파서 죽음을 예감하게 되면 집에서 달아나 낯선 곳으로 가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쇠약해지는 순간 어차피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혼자 있고 싶어지는 것은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회피본능은 인간 세상에서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잘 나갈 때는 사람들을 피하는 게 낫다. 그때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아 적을 만드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당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한다.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위로받는 게 좋다. 위축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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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명기myongki@chol.com

    - (현) 정신과 전문의·부여다사랑병원장
    - 경희대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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