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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의료 소비주의’ 시대, 의료의 리테일화

환자만을 위한 헬스케어는 옛말
‘개인 유전체 분석’ 등 신시장 후끈

최경환 | 296호 (2020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소비자들이 다른 산업에서 경험한 편리하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점점 헬스케어 산업에서도 찾기 시작하면서 의료 서비스 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의사나 상담사 등 전문 인력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이 의료 서비스의 범주에 속했지만 이제는 접근이 쉽고 저렴하면서도 건강 관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여러 서비스가 출현하고 있다. 이렇게 헬스케어의 최종 수혜자가 환자에서 소비자로 이동하는 ‘의료 소비주의’ 흐름 속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시장은 다름 아닌 ‘개인 유전체 분석’이다. 개인 유전체 분석 업계는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1) 킬러 콘텐츠 확보, 2) 유전형 데이터와 표현형 데이터 결합, 3) 비즈니스 확장 도모, 4) DNA 앱과 빅데이터, AI 기술의 접목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글로벌 감염병 위기, 인구 고령화 등 사회적인 격변을 겪으면서 더 나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의료 소비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부상했다. 의료 소비주의란 의료 서비스의 최종 사용자 또는 수혜자를 ‘환자’가 아닌 ‘소비자’로 바라보는 현상을 뜻한다. 환자가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라면 소비자는 능동적으로 건강과 관련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전자제품, 자동차, 정보통신, 소비재 등 다른 시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 및 헬스케어 시스템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 빨리, 더 쉽고 편리하게, 양질의 서비스를 누리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의료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점점 ‘리테일’에 가까워지는 현상, 즉 의료 소비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오늘날 소비자들이 의료의 접근 용이성, 가치 증대, 비용 절감 등 서비스 전반에 대한 더 많은 통제력과 건강 관리에 대한 더 많은 선택권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들은 획일화된 서비스가 아니라 개인화된 경험을 요구한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의료 및 헬스케어 시장 참가자들도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음의 요소들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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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성(Affordability)
먼저, 의료 소비주의의 흐름 속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요소는 바로 ‘경제성’이다. 서비스가 얼마나 경제적인지는 치료를 비롯해 건강 관리 관련 소비자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일상적인 의료 비용에 대한 염려는 줄어들고 있지만 장기 요양 등과 같은 비일상적 비용에 대한 염려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용을 절감하려는 이런 경향은 소비자들의 의료 접근성에 영향을 미쳐 소비자 자신이 정작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는 이유로도 작용한다. 개별 보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들을 봐도 보험 상품을 선택할 때 대부분의 소비자가 경제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으로 조사된다.

2. 연속성(Continuity)
둘째, 오늘날 소비자들은 건강 관리의 ‘연속성’을 고려한다. 그동안 의료기관과 헬스케어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건강과 의료 비용 등을 통합 관리해줄 수 있는 숱한 기회들을 놓쳤다. 개인정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건강 관리의 연속성을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매끄러운 서비스 제공을 위해 관련 기관이나 기업이 데이터, 시설, 제품, 서비스, 의료진 등을 효과적으로 교류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서비스 제공자 간 원활한 네트워크를 요구하는 소비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병원 등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모바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은 채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하는 수요도 높아지는 추세다.

3. 디지털(Digital)과 관계(Engagement)
셋째, 점점 더 많은 소비자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의료 및 헬스케어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 의료 및 헬스케어 산업은 보수적이라 다른 분야에 비해 디지털화가 더딘 편이지만 개인화된 디지털 솔루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및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소비자가 원하는 디지털 도구를 설계하고 개인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특히 소비자들이 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 자신의 요구에 맞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도록 이해 당사자들은 고객과의 소통 및 관계 개선에 더욱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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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리테일 시장에 뛰어든 글로벌 테크기업

아마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이 헬스케어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는 것도 이런 의료 소비주의 트렌드와 무관치 않다. 이미 대형 체인들의 합종연횡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약국 체인인 CVS헬스는 의료 보험사 애트나(Aetna)를 인수했고, 아마존과 버크셔 해서웨이, JP모건은 새로운 헬스케어 회사인 헤이븐(Haven)을 설립했다. 이 헤이븐은 해당 회사 임직원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직원들의 보험료를 낮추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애플 역시 의료 클리닉 네트워크와 협업을 개시했다. 이런 움직임은 테크 기업들이 매년 3.9%씩 성장하는 미국 헬스케어 시장이 열어줄 새로운 기회에 눈독을 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9년 기준 미국의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3조7000억 달러에 달하며, 미국인 1인당 약 2만 달러를 헬스케어에 소비하고 있다. 특히 노령 인구의 비율이 높아 GDP 대비 헬스케어 지출 비중이 16.9%에 달하는데 이는 OECD 평균인 8.8%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헬스케어 사업 영역에서 쉬지 않고 페달을 밟고 있는 아마존의 행보가 눈에 띈다. 2016년 아마존은 보스턴 어린이 병원과 팀을 이뤄 어린이의 건강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는 AI 기반 음성 서비스 알렉사(Alexa)의 기능을 개발했으며, 최근에는 HIPAA(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의 규정을 준수하면서 알렉사를 통해 개인 처방전 모니터링, 인근 긴급 치료센터 예약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건강 관련 작업을 목적으로 한 환자 개인의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진 것이다. 2018년에는 약 10억 달러 규모의 필팩(PillPack)을 인수하며 의약품 배송 서비스에 진출했고, 약을 유통할 수 있는 라이선스와 고정 고객을 확보했다. 또한, 아마존은 메디케어 수혜자인 고령층을 중심으로 프라임 할인을 제공하며 이들의 프라임 멤버십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헬스케어를 매개로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했더라도 결국엔 전자상거래를 비롯해 식료품 배송, 오프라인 매장 등 다양한 아마존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마존의 헬스케어 진출이 궁극적으로 프라임 생태계 확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애플 역시 헬스케어 시장의 기회를 인지하고 있지만 아마존과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의료 소비주의 패러다임에 접근하고 있다. 애플은 개인의 건강 관리에 집중하면서 이를 위한 앱과 서비스, 그리고 웨어러블 개발을 전략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리서치 키트(Research Kit)와 케어 키트(Care Kit)를 통해 개인의 건강 관련 데이터를 기록하고, 이를 활용해 클리닉과 의료 기기 등을 포함한 헬스케어 영역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애플이 규제가 많은 헬스케어 시장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테크 기업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애플이 지배했던 영역이 잠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건강 관리라는 포인트를 살려 제품 및 서비스를 차별화하고 더 높은 마진의 하드웨어를 판매하겠다는 게 애플의 구상이다. 또한 전환 비용을 높여 이미 구축된 생태계를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클라우드, 앱스토어 등 서비스 범위를 확대해 개인 건강 관리라는 핵심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려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우버는 환자 운송 서비스인 우버 헬스(Uber Health)를 출시해 미국 내 100여 개 의료기관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우버 헬스는 기존의 우버 택시 서비스를 의료기관 전용으로 만든 것으로 병원, 재활센터 등 의료기관에서 진료 예약 환자의 우버 탑승을 예약하면 우버가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서비스다. 우버는 미국 내에서 교통수단 부족 등의 문제로 진료 시간을 놓친 환자 수가 연간 약 360만 명에 달하고, 이에 따른 진료 손실액이 크다는 점에 착안해 서비스를 고안했다. 이러한 글로벌 테크 기업의 헬스케어 산업 진출은 환자와 의료기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과 시스템을 편리하게 간소화하는 데 목적을 두며, 기술 개발을 통해 소비자가 자신의 건강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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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경환kyounghwan.david.choi@gmail.com

    최경환 박사는 건국대에서 의학공학을 전공하고, 아주대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골재생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마크로젠, 굿젠, 테라젠이텍스,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등 유전체 기업들에서 IPO(기업공개), 전략기획, 사업개발, 마케팅 등 업무를 두루 경험했으며, 현재는 SK증권 ECM(주식자본시장)팀에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들에 대한 IPO 및 직간접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 중이다. 유전체 비즈니스와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해 연구하고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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