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있는 그대로의 진실

295호 (2020년 4월 Issue 2)

“세계가 격하게 환영한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에서 후퇴할 것이다.”-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

“세계의 개방과 번영, 자유로움의 수준이 크게 위축될 것이다.”-로빈 니블렛 채텀하우스 소장

석학들이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최근 호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질 세계에 대해 남긴 전망 중 일부입니다.

‘코로나 쇼크’ 여파가 장기화되고 있는 요즘, 이 사태가 멀리는 세계 질서를, 가까이는 나의 일상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사실은 석학이 아니라도 체감할 수 있는 냉혹한 현실입니다. 개방과 공동 번영, 자유를 기치로 질주하던 인류의 시계가 불현듯 멈춰버린 지금, 그래도 오늘의 위기가 퇴보가 아닌 진보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지 않을까 합니다.

DBR 제작진이 독자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다시 한번 스페셜 리포트로 팬데믹 시대 전략을 긴급 편성한 이번 호에서 위기 극복 솔루션으로 지목된 키워드 세 가지는 ‘리더십’과 ‘애자일’, 그리고 ‘안도감’입니다.

리더십이 주요 키워드로 꼽힌 이유는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실 겁니다. 『캡틴 클래스』의 저자이며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인 샘 워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확산되면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자존심이 강하고, 정치적인 선출직 지도자보다 전문 관료가 ‘진짜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습니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의 정은경 본부장, 잉글랜드의 부(副) 최고의료책임자인 제니 해리스, 미국의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 등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이들 전문가가 존경받는 리더로 떠오른 이유는 ‘상황을 원하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바라봤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저서 『판단력: 위기에 빛을 발하는 리더의 첫 번째 조건』에서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 워런 베니스와 노엘 티시가 짚은 바로 그 덕목입니다.

두 번째 키워드인 애자일은 ‘잘 짜인 계획’이 의미를 잃은 전략 전면 수정기에 새로운 도전을 주도할 동력으로 꼽힙니다. 베인앤드컴퍼니와 BCG 등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은 “불확실성 상황에서 작은 시도라도 먼저 착수할 수 있도록 팀원들을 애자일하고 유연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하라” “코로나 사태에서 경험한 업무 지연 및 의사결정 공백 등의 교훈을 연구함으로써 자율성, 책임 의식 등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애자일 혁신의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합니다.

한편 기회가 위기 안에 있다는 취지로 “심각한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고 말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교훈을 곱씹다보면 이런 시대에 기업이 팔아야 할 키워드는 ‘안도감’입니다. 가장 먼저 코로나19가 강타한 중국에서 이미 검증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알리페이는 결제 내역과 바이러스 감염 지역 방문 정보를 활용해 가입자들의 건강 상태를 관리해주는 ‘알리페이 헬스코드’ 서비스를 내놓는 등 코로나 관련 건강, 뉴스, 위치 정보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고객 접점에 배치해 이용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AI 콜센터를 통해 고객이 코로나19 관련 증상을 원격으로 상담할 수 있게 한 핑안보험의 헬스케어 플랫폼 역시 혁신적입니다.

“흩어져야 살고, 뭉치면 죽는다”가 ‘코로나 명언’으로 회자될 정도니 ‘물리적 개방성’은 지역 사회에서나, 전 세계적으로나 당분간 위축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아르마니가 슈트 공장에서 기부용 의료 방호복을 제작하고, 디오르가 향수 생산 라인에서 손 세정제를 만드는 등 기업이 인류애에 기반한 선한 활동을 이어가고, 이를 대중이 칭송하는 모습을 보면 위기의 시대에도 기업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귀한 기회는 존재합니다. 물리적 단절 시기에도 ‘인간적 개방성’ 견지하기. 이것 역시 결국 기업과 인류를 구하는 값진 솔루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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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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