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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6. 신약 개발의 기본을 망각한 ‘코오롱생명과학-신라젠’

데이터 의심 않고, 문제점 숨기고
바이오 시장의 신뢰를 저버리다

배진건,김윤진 | 287호 (2019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데이터가 의심이 들 때 철저히 의심하는 문화가 과학의 기본 바탕이다. 코오롱생명과학과 신라젠 사태는 신약 개발이라는 데이터 기반 과학을 하는 바이오 기업이 안이하게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고 충분히 의심하지 않은 결과로 초래됐다. 기업 내 다양한 분야 전문가의 크로스 체크(cross-check)와 회의적 시각을 존중하지 않고 투자 유치나 주가 부양 등을 목표로 비즈니스에만 신경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추고 투자자, 주주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도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두 기업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바이오 기업이 내부 프로세스를 잘 시스템화해 데이터를 다각도로 검증하고,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며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감지되면 이를 즉시 이해관계자에게 투명하게 공표하고, 진행 중인 파이프라인을 보류(hold)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2019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충북 오송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국가 비전 선포식’에서 “정부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3대 신산업으로 선정하고, 2030년까지 제약-의료기기 세계 시장점유율 6%, 500억 달러 수출, 5대 수출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통령이 직접 국가 비전을 선포하면서까지 제약-바이오산업에 힘을 실어줄 무렵, 한참 무르익어 꽃을 피우려 하던 신약 개발 업계에 악재가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업계에 찬물을 끼얹은 첫 번째 악재는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허가 취소’였다. 29번째 국산 신약이자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로 주목받던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의 주성분이 허가 당시 제출된 자료에 기재된 것과 다르다는 게 밝혀지면서 2019년 7월3일 품목 허가가 취소된 것이다. 이미 시중에 유통돼 3700명이 넘는 환자가 투여받은 약의 성분이 뒤바뀌었다는 소식이기에 충격은 컸다. 두 번째 악재는 신라젠의 ‘펙사벡 임상 실패’였다. 지난 8월2일, 글로벌 임상 3상이 한창이던 신라젠의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에 대해 미국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가 임상 중단을 권고한 것이다. 사실상 약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사망 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코오롱생명과학과 신라젠 사태 이후 국내 바이오 장(場)은 반 토막이 됐다.



바이오산업은 정말 위기에 봉착한 걸까? 바이오 업계는 앞서 설명한 두 기업의 실패와 몰락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 질문의 해답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박사의 촌철 명언에서 찾을 수 있다. 여러 대중 저작물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힘쓴 파인만 박사는 “종교는 ‘믿음’이란 문화에 바탕을 두고, 과학은 ‘의심’이란 문화에 바탕을 둔다(Religion is a culture of faith; science is a culture of doubt)”고 설명했다.1 가설에 대한 자기 확신과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여기에 반드시 합리적 비판을 덧입혀야 한다는 의미다. 데이터가 의심이 들 때 철저히 의심하는 문화가 과학의 기본 바탕이다.

신약 개발이라는 데이터 기반 과학을 하는 제약 바이오 기업이 안이하게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고, 충분히 의심하지 않은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꼭 탈이 나게 마련이다. 두 사태가 초래된 원인은 근본적으로 의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기업의 다양한 전문가의 크로스 체크(cross-check)와 회의적 시각을 존중하지 않고 투자 유치나 주가 부양 등을 위해 비즈니스에만 신경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추고 투자자, 주주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도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의심하지 않은 책임은 두 기업에만 있는 게 아니라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정부, 투자자, 증권업계 등 이해관계자 모두에 있었고, 이는 총체적인 바이오 신뢰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문제 요인

먼저 인보사 사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7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산 신약 29호로 허가받은 세포유전자 치료제 인보사K의 성분은 크게 1액과 2액으로 구성돼 있다.
1액은 사람의 연골세포(HC)이고, 2액은 ‘세포조직을 빨리 증식하게 하는 유전인자(TGF-β1)’가 삽입된 형질전환세포(TC)다. 문제는 허가받은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이 2액 성분이 허가 당시에 제출된 서류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식약처는 2액의 성분이 유전자가 포함된 연골세포임을 전제로 허가를 냈는데 실제 유통된 제품에서는 이 성분이 유전자가 포함된 신장세포(GP2-293)였다. 유전자 전달 매개체를 만드는 데 사용된 신장세포가 섞여 들어가 연골세포를 대체한 것이다. 올해 미국 3상 임상시험 진행 도중 최신 유전자 정밀 성분분석 기술인 STR(Short Tandem Repeat) 검사로 확인된 결과였다. 원래는 2액을 제조할 때에는 신장세포를 사용해 TGF-β1 유전자를 만든 뒤, 이 신장세포에서 TGF-β1 유전자를 분리 정제해 연골세포에 삽입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분리 정제가 미비한 나머지 신장세포의 일부가 혼입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임상 완료 후 허가받은 신약의 성분이 새롭게 밝혀진 경우는 전 세계에서 인보사가 처음이다. 그러나 세포가 뒤바뀐 문제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기업의 도덕적 해이다. 식약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오롱생명과학은 2017년 3월 이미 싱가포르에 위치한 인보사 위탁 제조사로부터 2액 성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받았다. 위탁 제조사가 자체 생산 능력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STR 검사를 통해 2액 성분이 바뀌었음을 포착, 코오롱생명과학에 공식 통지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코오롱 경영진의 책임은 시작된다. 무려 사건 2년 전부터 성분의 이상을 알았던 셈이기 때문이다. 2017년 5000억 원에 인보사를 기술 이전했던 일본 미쓰비시다나베제약이 계약을 파기한 것도 제품의 이상 징후를 발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코오롱생명과학은 2017년 7월 허가에 필요한 일련의 서류를 제출하고 생산을 밀어붙였다. 서류 작성 과정에서도 고의적 은폐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회사는 아직까지 고의적 은폐를 부인하고 있지만 문제의 인지 및 발표 시점에 간극이 있었다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인보사 사태에 있어 기업과 허가 당국 모두 ‘의심의 문화’에 대한 각성이 없었다. 2액의 성분이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로 확인된 즉시 식약처에 보고하고, 투자자에게 알리고, 임상을 중단해야 했다. 데이터를 대외적으로 공표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신약 파이프라인이 많지 않아 제품 하나에 의존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약의 결함을 인정하는 순간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기에 이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아무리 자사 제품이라도 이렇게 환자에게 영향을 미칠 만한 빨간불이 크게 켜진 이후의 결정은 경영진의 단순 실책이라고 보기엔 법적, 윤리적 책임이 엄중하다.

신약 개발을 무조건 끝까지 끌고 가야 할 필요는 없다. 도중에 보류(hold)하는 것도 용기다. 그런데 국내 바이오 벤처들의 경우 파이프라인이 적다 보니 쉽사리 보류를 못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외국의 대형 제약기업의 경우 ‘붉은 깃발(red flag)’을 휘날리며 진행 중이던 신약의 문제를 알리고 파이프라인을 중단시키는 부서에 보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성공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인센티브를 부여하지만 경우에 따라 프로젝트를 멈출 때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매몰비용이 큰 신약 개발의 특성상 실패를 인정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이 몰락한 까닭도 바로 기업의 주요 파이프라인을 보류하지 못한 데 있다.

환자들의 안전성 이슈와 직결되는 신약의 품질 평가에 있어서는 의심의 문화가 필수다.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발생하는 실수를 최소화하려면 다중의 검사 프로세스를 통해 일부 중복되는 한이 있더라도 크로스체크가 가능한 시스템이 요구된다. 코오롱 사태를 돌아보더라도 앞으로 기업이나 정부는 관련 연구를 추진, 승인함에 있어 STR 검사를 비롯한 각종 기술을 확대 적용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동안 허가 당국인 식약처는 회사가 자체 개발한 유전자 치료제에 대해서는 STR 검사 결과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유전적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모든 유전자 치료제에 STR 검사를 적용하고, 이를 교차, 대조 검토의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미국 FDA가 보인 태도다. 인보사 성분이 뒤바뀐 것을 파악한 뒤에도 임상 절차의 ‘완전한 종료(termination)’가 아니라 임상 절차의 ‘보류(clinical hold)’ 명령을 내린 것이다. FDA는 2019년 5월 코오롱생명과학에 임상을 보류하겠다는 공문을 보낸 뒤 9월에는 자료 보완을 먼저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는 비록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향후 임상 3상을 재개할 수도 있는 여지를 아직 열어 두고 있다는 의미다. 성분이 달라지고 데이터가 바뀌었더라도 신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은 오로지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가치 판단과 별개로 유익성-유해성(benefit-risk) 평가에 충실한 판단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다른 업종과 달리 환자가 중요한 이해관계자이자 소비자로 있는 제약 바이오 기업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코오롱생명과학도 이렇게 소비자인 환자를 최우선에 두고 의사 결정을 했다면 더 빨리 신약의 문제를 공개하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라젠의 문제 요인

신라젠 사태가 발생한 2019년 8월2일 금요일은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였다. 문자 그대로 바이오 제약 업계에 들이닥친 암울한 날이었다. 이날 신라젠은 간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약 펙사벡의 글로벌 임상 3상(PHOCUS) 무용성 평가 결과, 독립적인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 Independent Data Monitoring Committee)가 ‘임상 중단’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개발이 한창인 약에 단독 치료제로서 가치가 없으니 임상을 지속하지 말라는 사망 선고를 내린 셈이다. DMC는 신라젠이나 미 FDA와 독립적인 그룹으로, 이들의 무용성 평가는 임상에 참여하는 환자들을 위해 마련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신라젠은 이 권고를 받아들여 8월4일 임상 3상 조기 종료를 발표했고, 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우두(백시니아) 바이러스 기반의 면역 항암제 펙사벡이 신라젠 시가총액뿐 아니라 주식시장의 바이오 붐을 뒷받침하던 기대주였던 만큼 사태의 파장은 컸다.



그러나 사실 시장에선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었다. 2015년 무렵, 1000억 원 규모의 제약펀드 투자를 위해 세메론 대표이사였던 故 진재호 박사 등이 자문위원회에서 심의를 맡은 적이 있다. 당시 신라젠에 대한 투자도 검토했지만 우두 바이러스는 살상 능력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절대 약이 될 수 없다는 강력한 논리를 가지고 투자를 진행하지 않았다. 당시 우두 바이러스가 생체 내(in vivo)에서 약효를 가진다는 것을 증명한 데이터는 신라젠 데이터가 유일했다. 제3의 기관이 수행한 연구도 아니었고, 이를 뒷받침할 다른 데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일 데이터를 근거로 계속 임상을 진행하는 것은 위험이 크다는 게 자문위원회의 판단이었다. 애초에 신라젠이 미국에서 펙사벡 후보물질을 사들인 것부터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석연치 않은 점은 이외에도 많았다. 항암 바이러스 분야는 전 세계적으로도 쉽지 않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다. 현재까지 미 FDA로부터 허가받은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도 단 하나, 2015년 출시된 암젠의 임리직(Imlygic)뿐이다. 임리직은 펙사벡처럼 종양 내에 직접 주입하는 약으로 종양세포의 괴사를 유도하는 동시에 체내 면역계가 종양을 공격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그러나 시판 중인 이 유일한 약마저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암젠의 임리직은 굉장히 위태로운 데이터에 기반해 간신히 명줄을 이어왔으나 시장에서 맥없이 풀썩 주저 앉았다(Amgen’s Imlygic, was greenlit on the back of extremely shaky data, and has been a market flop).”2 냉혹한 업계의 평가였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국내 시장에서는 신라젠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이 가득했다는 점이다. 의심하는 게 도리어 이상할 정도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신라젠의 주가가 무서운 속도로 올랐고, 2016년 말 코스닥에 입성한 뒤 2년간 시가총액이 5배나 뛰었다. 투자 자문회의가 소집될 때마다 ‘그때 (투자를 진행하지 않은)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위원들이 보지 못한, 뭔가 놓친 게 있지 않나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임상 중단을 앞두고 잇단 임원들의 지분 매각 등 의심스러운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9년 7월8일에는 신라젠의 현직 전무가 같은 달 1일부터 5일까지 주식 16만7777주를 장내 매도했다고 공시하면서 이튿날 주가가 급락했다. 주식시장에서는 펙사벡 임상 결과가 좋지 않자 임원이 주식을 판 것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다. 펙사벡 무용성 평가 결과를 앞두고 일련의 조짐들이 나오자 우려가 커졌다. 당시 경영진과 임직원들이 임상이 중단될 것 같다는 내부 정보를 알고도 주식을 팔았다면, 이는 명백한 도덕적 해이다. 그러나 설령 몰랐다 해도 ‘의심하지 않은’ 책임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이런 혼란 속에서도 국내 시장은 희망을 좇았고 신라젠 주가는 심지어 그 이후로도 올랐다. 반면 해외 시장 분위기는 진작부터 달랐다. 2019년 4월4일 글로벌 제약 데이터 분석 사이트 ‘Evaluate.com’에 애널리스트 제이콥 필레스(Jacob Pileth)가 실은 기명 기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레스는 8월4일 임상이 중단되기 무려 넉 달 전, 실명으로 ‘신라젠과 트랜스진은 항암 바이러스 광풍을 부활시키려 애쓰고 있다(Sillajen and Transgene bid to revive the oncolytic virus craze)’는 글을 실었다. 제목부터 부정적이다. 형용사 ‘crazy(미쳤다)’라는 의미의 명사인 ‘craze(광풍)’란 표현을 썼다. ‘잔치’가 영원할 수 없음을 예견했던 셈이다. 그는 신라젠이 임상 2상 데이터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임상 3상을 시작한 것을 최대 약점이자 임상 보류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붉은 깃발로 꼽았다. 이처럼 국내 시장 애널리스트와 글로벌 시장 애널리스트의 평가 사이에는 분명한 갭(gap)이 있었다. 한국에는 ‘투자해야 할 이유(BUY)’를 말하는 보고서는 많았지만 ‘투자하지 말아야 할 이유(HOLD)’를 말하는 보고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신라젠 사태는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데이터 기반 과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맹목적 믿음이 낳은 참사다. 펙사벡에 대한 이전 임상 연구는 확신을 주는 결과가 아니었다. 연구 결과가 좋지 않아 신라젠과 유럽 파트너사인 트랜스진이 서로 다툰다는 소문도 있었다. 물론 미국 FDA와 임상 2상 완료 미팅을 무사히 통과해 3상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FDA는 약물의 안전성을 위주로 임상을 계속 진행해도 될지 여부를 판단해 줄 뿐 3상의 결과까지 책임져 주진 않는다.



2상 완료 미팅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졌고 FDA가 어떤 견해를 보였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그러나 어떤 내용이 오갔든 임상 3상 진행 여부에 대한 판단은 경영진의 몫이었다. 결국 경영진은 진행하는 쪽을 택했고, 투자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굳건한 믿음을 보냈다. DMC 무용성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칫 환자들 안전에 문제가 될 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암시하는 데도 불구하고 회사 안팎에서 문제 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지금도 되풀이되는 중이다. 최근 딜메이킹(deal-making)을 보더라도 여전히 항암 바이러스에 대한 높은 관심과 달리 관심을 뒷받침하는 임상 데이터는 거의 없다.


공통적인 시사점

두 기업의 실패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내부 프로세스를 잘 시스템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 내부의 자체 검증은 물론이고 임상수탁기관(CRO) 등 제3자의 대조 검토도 활용해 이중삼중 확인해야 한다. 경영진이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규제기관에 모든 서류를 제출하기 전에 다각도로 데이터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종교의 문화처럼 자사 제품에 대한 믿음이나 희망에 기대거나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 의사 결정을 하면 이런 사태를 또 겪게 될 것이다. 외국에서도 임상 3상 실패 사례를 보면 주로 이전 단계에서 데이터가 미비했음에도 강행한 경우가 많다. 경영진은 잠재적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 측면에서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가며 결정해야 한다.

모든 과학적 결과는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한다. 그리고 합리적 의심을 넘어 설명이나 실험적 결과를 제공해야 한다. 신약 개발을 하는 회사 입장에서 이를 해석하면 개발사에 ‘입증 책임(burden of proof)’이 있다.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도록(beyond reason of doubts)’ 각종 자료와 실험 결과를 통해 설명하고 대답하고 증거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임상 실패의 책임은 신약을 개발하는 주체인 임상 스폰서(sponsor)의 몫이지 일을 맡은 CRO의 몫이 아니다. 최근 바이오 업계 ‘옥석 가리기’의 틈새에서 라이선스 아웃 등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브릿지바이오 등 벤처들을 잘 보면 여러 CRO의 교차 검증을 통해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고 입증 책임을 다하는 데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회사가 직접 제조했을 때처럼 다른 기관에 제조를 맡기더라도 결과가 그대로 나올 것이라 믿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확률적으로 봤을 때 맞는 생각이다. 그러나 과학에서의 검증도 결국 실험을 하는 사람의 손을 거쳐 이뤄지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실수나 오류 등에 열려 있다. 그래서 이중, 다중의 검증 프로세스를 시스템화하지 않고는 리스크 극복이 어렵다. 결국 확률 싸움이기 때문에 확률을 최대한 높여야 하는 것이다. 다중 검증을 하는 데 단기적으로는 더 비용이 들겠지만 임상이 진행될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을 고려하면 처음에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는 게 장기적으로는 비용을 절감하고 실패 위험을 낮추는 방법이다.

그리고 리스크가 현실화했을 때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 등 규제기관이 바이오 투자 흐름을 철저히 감시해야 하며, 미국처럼 엄격하게 ‘한 번 걸리면 끝’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또 바이오 제약은 인간의 생명과 보건에 관련된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인 만큼 국민 건강 증진을 책임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등도 의약품 허가 및 규제에 대한 심사기준을 더 까다롭게 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들도 늘 감시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지난해 10월1일, 글로벌 투자 컨설팅회사 플레인뷰(Plainview LLC)의 애널리스트 아론 웨들룬(Aaron Wedlun)이 쓴 보고서가 공개되자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넘어 바다 건너 한국 바이오 증시까지 충격에 휩싸였다. ‘NKTR-214: Pegging the Value at Zero’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전 세계 바이오텍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으로 주목을 받은 넥타 테라퓨틱스의 지속형 인터루킨-2(IL-2) 신약 임상 성공 가능성이 0%라는 과감한 주장을 내놨다. 이 보고서 하나로 인해 ‘인터루킨’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신약을 개발하는 국내 바이오텍 제넥신 등의 주가가 줄줄이 급락했다. 이처럼 외국에는 기명 보고서를 통해 자기 이름을 걸고 투자자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애널리스트들이 존재한다. 반면 한국에는 보고서 하나로 기업의 주가를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부정적 의견을 소신 있게 내놓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 최근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의 전문성이 높아지고 Ph.D와 M.D 심사역들도 나오고 있는데, 이런 ‘묻지마 투자’에 경종을 울리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늘어나야만 제2의 코오롱생명과학과 제2의 신라젠을 막을 수 있다.

바이오 기업의 성공을 위한 과제

바이오헬스 산업은 정부가 정한 3대 신산업이다. 그러나 바이오 제약을 단순 ‘산업’으로만 보긴 어렵다. 미래 먹거리, 돈을 버는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약 개발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아픈 환자들을 살리는 데 있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back to BASIC’, 즉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영리를 좇지 않을 수는 없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산업이기에 계속 갈 때와 멈출 때를 알아야 한다. 붉은 깃발을 휘두를 수 있는 용기, 역량이나 경험의 부족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해관계자에게 공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 바이오텍이 스폰서가 돼 글로벌 임상 3상을 독립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글로벌 제약사가 되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에 한국 기업이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해 라이선스 아웃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임상 3상은 엄청난 비용이 든다. 2상보다 돈 액수에 ‘0’이 하나 더 붙는 과정이다. 임상 2상엔 400억 원이 드는 과제라면 3상엔 4000억 원이 든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자본이나 경험이 부족한 대다수의 벤처는 라이선스 아웃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기업이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한다고 하면 과연 기술 이전을 ‘안’ 한 것인지 ‘못’ 한 것인지 역으로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라이선스 아웃과 글로벌 임상 3상을 다 경험한 국내 제약사가 있다. 바로 SK바이오팜이다. 바이오산업이 위기라고 할 때일수록 SK바이오팜의 성공 사례를 재조명해 벤치마킹해야 한다. 국내 다른 제약사들과 달리 SK그룹의 SK바이오팜은 오직 신약 개발만 목적으로 1993년부터 한 우물을 파 왔다. 복제약 유통 등에 눈을 돌리지 않고 26년간 오로지 중추신경계 질환 신약 개발에 매진해온 것이다. 그 결과 이 회사가 미국 제약사 재즈파마슈티컬스에 기술 이전한 기면증 치료제 ‘솔리암페톨’은 올해 3월 FDA에서 신약 판매 허가를 따내며 7월 시장에 출시되는 쾌거를 거뒀다. 국내 기업이 만든 신약이 FDA 승인을 받은 것은 2003년 LG화학의 ‘팩티브’ 이후 16년 만이다.

더 큰 성과는 최근에 나왔다. 지난 11월22일 SK바이오팜이 직접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한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가 미국 FDA 품목 허가를 받은 것이다. 국내 제약사가 신약 후보 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FDA 신약 허가 신청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이번 승인은 의미가 크다. 임상 도중에 해외 제약사에 기술 이전을 하지 않고 상용화에 성공한 국내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SK바이오팜은 신약 하나는 라이선스 아웃, 다른 하나는 독자적인 글로벌 임상 3상을 통해 상업화를 추진한 것일까? 그 해답은 경험의 유무에서 찾을 수 있다. 2008년 SK바이오팜은 존슨앤드존슨(J&J)과 함께 뇌전증 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 임상 3상을 진행하고 미국 FDA 허가까지 신청했다가 시장 진입 문턱에서 좌절을 맛 봤다. 통상적으로 임상 3상을 마치면 신약의 승인 확률이 70%, 허가 신청까지 완료하면 확률이 91%까지 높아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뼈아픈 실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면서 SK바이오팜은 글로벌 제약사 J&J로부터 뇌전증 치료제 개발 전략 수립과 상업화 준비에 필요한 노하우를 습득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새로운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 개발에 직간접적인 도움이 됐고, 이번 성공의 발판으로 작용했다. 반면 뇌전증 치료제와 달리 기면증 치료제의 경우 회사가 개발에 필요한 경험과 역량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에 직접 개발을 하기보다는 이 분야 1위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는 게 스마트한 전략이었다.

이처럼 SK바이오팜은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것과 파트너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판단해 전략을 택해 왔다. 그리고 이런 행보는 효과적이었다. 지난 26년 동안 신약 개발 외길을 걸어 온 SK바이오팜의 의사결정사(史)는 한국 바이오텍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눈에 보이는 지금의 성공도 과거 숱한 실패의 경험이 누적된 결과이고, 이렇게 오랜 기간 신약 개발에 매진해 오고 SK그룹의 든든한 재정적 지원을 받는 기업조차 모든 과제를 독립적으로 진행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그렇지 않은 기업이라면 무리하게 신약 개발을 강행하기보다는 더 잘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거나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바이오가 정말 위기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9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서 추락한 회사들의 실패를 딛고 다른 기업들은 계속 전진해야 한다. 다만 한 가지를 당부해 보자면, 냉정하라. 주주들은 투자하기 전에, 경영진은 과제의 다음 마일스톤을 결정하기 전에 냉정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신약 개발은 끝이 전부다. 바이오 의약품은 초기 디자인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기 때문에 처음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할 때부터 FDA 허가 이후의 미래까지 담아야 한다. 많은 이가 코오롱생명과학과 신라젠에 희망을 걸었듯이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잘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간 경로에서 여러 미래 예측 시스템을 가동하고, 리스크 관리 전략, 백업 플랜 운영은 필수다. 단호하게 멈춰야 할 때도 알아야 한다.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멈추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약 개발은 끝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배진건 배진바이오사이언스 대표 jinkeon.pai@gmail.com
배진건 대표는 1974년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약리생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셰링프라우에서 23년간 수석 연구위원으로 일했으며, 2008년 귀국해 JW중외제약 R&D 총괄 전무, C&C 신약개발연구소 대표이사, 한국아브노아 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한독 상임고문,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상임고문 등을 지냈으며 항암제 연구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현재는 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이자 컨설팅 회사 배진바이오사이언스의 대표로 신약 개발 자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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