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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고 이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가능하다. 여기서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의 디지털화를 넘어 전달 프로세스, 생산 및 운영 체제, 거래 등 모든 과정의 디지털화를 말한다. 이런 변화를 금융산업에서는 ‘핀테크’라고 부른다. 하지만 핀테크 산업은 여전히 ‘제3의 신뢰받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최근 금융산업에서 블록체인이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의 특성을 활용하면 진정한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지금 1000만 원이 필요하고 다음 주까지 갚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가정하자. 이런 내 조건에 맞춰서 싼 이자에 돈을 빌려줄 사람이 있을까? 혹은 사업을 하기 위해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은행에서는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 같을 때 투자를 받거나 돈을 빌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음 직한 질문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예금을 하거나, 대출을 받거나, 투자를 받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금융회사들은 고객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금융상품을 고객에게 팔아왔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금융회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모든 산업이 그렇다. 기업들이 고객의 필요를 예측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이를 고객에게 판매해 왔지,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형태로 원하는 시간에 제공해 온 것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이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상식이 깨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촉발한 다양한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성(hyper connectivity)과 초지능성(hyper intelligence)을 제공하는 다양한 기술들을 활용해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시간에, 필요로 하는 장소에서, 필요로 하는 형태로, 고객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장소에서 소비할 수 있는 ‘온디맨드 서비스 혁명’이 핵심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은 산업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복지, 의료 등 생활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오면서 산업 간 경계의 붕괴, 새로운 산업과 생활 양태의 출현 등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온디맨드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려면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사이버물리시스템(Cyber-Physical System), 빅데이터, 인공지능, 3D 프린팅,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신소재 기술, 에너지 저장 기술, 클라우드컴퓨팅, 자율주행자동차, 모바일 등이 대표적이다. 클라우스 슈바프(Klaus Martin Schwab)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그의 저서 『제4차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을 몰고 온 주요 혁신 기술들을 물리학 기술(무인 운송수단/ 3D 프린팅/ 로봇공학/ 그래핀), 디지털기술(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바이오기술(유전학/ 합성생물학/ 유전자 편집)이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을 요약하면 AICBMM(Artificial Intelligence, Internet of Things, Cloud computing, Big data, Mobile, Material)이라고 칭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을 촉발할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기술들이 어떻게 온디맨드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흐름이 ‘제품의 서비스화’나 ‘서비스의 제품화’란 이름으로 벌써 15년이 넘게 진행돼 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제품의 서비스화는 제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둘러싼 솔루션 등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서비스의 제품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가 마치 제품처럼 팔리는 것이다. 제품의 서비스화나 서비스의 제품화는 기본적으로 온디맨드 서비스에 대응하기 위해 나타난 현상으로 둘 다 디지털 기술에 의존한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기업들은 자원이나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고 모듈화한다. 자원 혹은 자원에 대한 정보가 표준화·모듈화돼 있어야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형태로 자원을 통합해서 고객이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 온디맨드(Video On Demand)를 보자. VOD의 시작은 카세트테이프에 담겨 있던 비디오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전달 프로세스가 디지털화함으로써 온디맨드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이제는 생산 체제마저 디지털로 바뀌고 있다. 여기에 블록체인의 등장으로 거래 프로세스도 디지털화하고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 전달 체계, 생산 운영 체계가 디지털화하면 이 기술들을 통해 온디맨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과 핀테크, 그리고 그 한계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의 디지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전환은 제품이나 서비스와 관련한 정보의 디지털화는 물론이고 제품이나 서비스 전달 프로세스의 디지털화, 생산 및 운영 체제의 디지털화, 거래의 디지털화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 IBM은 지난 2011년 디지털 전환을 ‘기업이 디지털과 물리적인 요소들을 통합해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시키고, 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는 전략’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2015년에 디지털 전환에 대해 ‘기업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제품 및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해 디지털 역량을 활용함으로써 고객 및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거나 이를 추진하는 지속적인 프로세스’로 정의했다. 컨설팅 기업 A.T. 커니도 지난 2016년 디지털 전환을 ‘모바일,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 인공지능, IoT 등 디지털 신기술에 의해 생겨나는 경영 환경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현행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거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으로 설명했다.
이와 같은 정의들은 디지털 전환을 기업 입장에서 풀이한다. 하지만 이런 정의들은 공통적으로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목적이 고객들이 가진 문제를, 고객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형태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임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은 사물과 사물의 커뮤니케이션, 정보의 실시간 축적 및 분석, 제품의 서비스화 및 서비스의 제품화를 가져오는 기반이 된다. 제품의 서비스화 혹은 제조의 서비스화는 제품만을 생산해서 제공하던 형태가 이제 그 제품을 통해 소비자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적, 즉 서비스라는 형태로 제공되는 것을 말한다. 제품의 서비스화 측면에서 보면 소비자가 자동차를 사는 행위는 단순히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 서비스를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별장을 사는 행위도 휴양 서비스나 숙박 서비스를 사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뤄져오고 있었는데 최근에 급격하게 진화하고 있는 네트워크 기술과 데이터 분석 기술에 의해 극대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 제조업이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 계획을 세우고, 미리 제품을 찍어내 고객에게 제공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제조업은 소비자의 다양하고 즉각적인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빅데이터, IoT,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등 다양한 기술을 결합해 제품이 아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네트워크화된 스마트공장이 있다. 아디다스가 독일 안스바흐에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완전 자동화된 조깅화 공장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자신들이 디자인한 신발을 주문하면 바로 생산에 들어가는 체제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제조업의 서비스화는 제조업 가치사슬이 서비스를 중심으로 재편되거나 확대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사물인터넷 기술의 확산으로 제품은 서비스 제공을 위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제조의 서비스화로 인해 미래의 모든 제품은 컴퓨팅 기능을 갖추고 네트워크에 연결돼 프로그래밍의 대상이 될 것이다. 과거 표준화되지 않고 제공자에 따라 다르며, 반복 생산이 불가능하던 서비스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제품화하면서 고객 맞춤 형태로 제공될 것이다. 로봇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표준화된 플랫폼 위에 맞춤형 모듈을 입혀 온디맨드 서비스가 제공되면 서비스 생산성은 극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트렌드가 금융산업으로 넘어오면서 핀테크(Fin-Tech)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핀테크는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인데 가장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금융 서비스에 가장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수단인 정보기술을 입혀 쉽고 간편하지만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말한다. 넓은 의미의 핀테크 서비스는 이미 널리 이용되고 있는 플라스틱 카드, 온라인 결제, 인터넷뱅킹, 스마트폰 뱅킹 등과 같은 금융 서비스가 포함된다. 하지만 최근에 나타난 핀테크는 금융 소비자의 이용 편의성과 활용성을 고려해 개발된 새로운 유형의 금융 정보기술 서비스인 크라우드 펀딩, 금융 데이터 분석을 통한 컨설팅 서비스, 그리고 디지털 화폐 등을 포함하는 스마트서비스 등을 말한다.
핀테크(Fintech) 산업은 전통적인 금융 산업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물리적인 점포와 지점에 기반을 둔 대면 서비스 위주의 관행을 비대면·모바일 중심으로 급격히 확장하고 있다. 실물화폐·신용카드 중심이었던 오프라인 결제 시장도 급속도로 스마트폰 기반의 결제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핀테크 기술이 가져오는 이러한 금융 서비스 혁신은 은행권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다. 지급 결제를 시작으로 보험·자산운용 등 모든 금융 서비스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차량에 센서를 달아 운전 습관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험료를 차등 적용하거나 빅데이터로 기업 가치를 분석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조언을 해주는 식이다. 또한 새로운 사업에 대한 자금 조달도 벤처캐피털이나 은행 외에 크라우드펀딩을 통해서도 가능해졌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관리하는 것도 이제는 자산운용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핀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 중의 하나인 컴퓨터 기반 인공지능 분석을 활용해서 손쉽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이미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고 실제로 활용되고 있다.
핀테크는 금융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첫째, 금융 거래에 관한 통제권 혹은 주도권을 고객들이 갖게 될 것이다. 모바일과 금융이 결합한 핀테크 세상에서는 금융회사가 아닌 소비자가 거래의 중심에 서게 된다. 과거에는 금융회사가 결정한 대로 따라가야 했다면 이제는 내가 필요한 서비스들이 나를 중심으로 모이고 이 가운데 필요한 것을 선택해서 사용하면 된다.
둘째, 금융 서비스의 형태가 대량 생산 체제에서 개인화된 형태로 바뀔 것이다. 기존 금융 상품은 거래조건, 수익률, 비용 등을 고려해서 금융회사가 일방적으로 상품을 만들었다. 제조업의 대량 생산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핀테크를 활용하면 금융 소비자 개인의 선호와 자산 상태를 고려해서 개인화된 형태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금융 거래 매개자로서의 금융회사의 역할이 축소된다. 이러한 변화는 인터넷이 상거래에 활용되면서 나타났던 생산자-소비자 간 직거래에 의한 산업구조의 변화와 유사하다. 고객들은 특정인이나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할 수 있다.
넷째, 금융거래의 실시간화다. 기존 금융 거래들은 금융회사의 내부 결재 절차나 신용확인 과정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반면 핀테크를 사용하는 금융 거래는 대부분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지금도 소액 거래들, 특히 소액 대출 거래는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다. 보안기술이 발달하고 빅데이터 등 개인신용 분석을 위한 기술들이 개발되면서 실시간 의사결정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금융 거래의 글로벌화를 들 수 있다. 알리페이, 구글페이, 애플페이, 삼성페이, 페이팔,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에는 특정 국가 내에서만 활용되던 것이 이제는 어느 국가에서도 사용 가능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화폐가 널리 활용되면 환율이나 환거래 위험을 고려할 필요 없이 세계 어느 곳과도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지역 화폐를 만들어서 커뮤니티 기반의 거래 플랫폼을 구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을 지역에서 지역 화폐로 거래하고 지역의 부가가치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배분될 수 있는 구조가 핀테크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완벽한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