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名에서 使命을 읽다
16세기 중반, 일본 전국 통일을 꿈꾸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특권상인제도를 폐지했다. 상거래의 독점권을 폐지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무렵 오사카, 교토를 중심으로 일본의 3대 상인이 부상하는데 오사카(大阪) 상인, 오미(近江) 상인, 이세(伊勢) 상인이 그들이다(우리나라 개성상인처럼 지역 이름을 따서 불렀다).
이들 가운데 미쓰이 다카토시(三井高利)라고 특출난 자가 있었다. 1622년생인 그는 51세가 되던 1673년에 미쓰이에치코야(三井越後屋)라는 포목점을 도쿄 니혼바시에 연다. 그 주변에는 이미 유사한 점포들이 있었는데 후발주자였던 그는 기존의 판매방식을 분석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다. 당시 옷감은 초부유층에게만 팔리는 상품이었다.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으로 일 년에 두 번 정도 몰아서 지불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판매 단위는 필(16m 정도)이었다.
그는 누구(customer)에게, 어떤 가치(value)를, 어떤 경로(channel)로 제공할지 고민했다. 일단 고객층을 확대해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 되면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려면 소량 구매가 가능하도록 해야 했다. 그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개념인 조각 판매를 실시했다(수박을 4등분해서 1쪽씩 파는 식이다). 여기에 판매가격을 낮췄는데 정찰제를 도입해 현금만 받았고 이를 통해 회전율을 높였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도입은 성공적이었다. 점포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주변의 다른 가게들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못된 경쟁자는 에치코야 앞에 오물을 뿌리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뒤늦게 자리 잡은 주제에 손님을 다 빼앗아 갔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에치코야의 장사 수완은 금세 막부(幕府, 쇼군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무사정권)의 귀에 들어갔고 막부는 물품을 대는 어용상인으로 에치코야를 선정했다. 주변 경쟁자들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었다. 에치코야를 건드리는 것은 막부에 대드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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