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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감옥> 저자 니콜라스 카 인터뷰

디지털 네트워크, 생각을 멈추게 해. ‘생각에 대한 생각’을 다시 묻다

장윤정 | 230호 (2017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기계에 대한 맹신에 경고를 던지며 세상의 주목을 받아온 디지털 사상가 니콜라스 카는 컴퓨터를 거부하고 파괴하자는 ‘러다이트 운동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자꾸 인간만의 가능성, 인간적인 가치를 포기하다 보면 삶도, 우리의 생각도 ‘성숙’할 수 없다며 적절한 거리 두기를 권한다. 그는 “인간이란 힘들고, 어려운 일에 부딪히고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만이 비로소 풍부한 재능을 키울 수 있다”며 “기술에의 과잉 의존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술적 한계와 인간적 성숙의 원천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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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소개

니콜라스 카는 <이코노미스트>지가 뽑은 글로벌 CEO 132인, 가 선정한 IT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 디지털 사상가다. 다트머스대와 하버드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메르세르 경영컨설팅 회사의 대표를 지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파이낸셜타임즈> <가디언> 등 수많은 매체에 글을 발표하며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저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유리감옥> 등이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신지원(고려대 영문·경영학과 4학년) 씨와 고은진(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4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거주하는 한 남자가 길 가던 74세 노인을 살해하는 과정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했다. 끔찍한 영상은 2∼3시간 만에 웹사이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굳이 먼 미국의 사례를 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의 피의자인 10대 소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른 10대 소녀를 만나 살인에 대한 상상을 키웠다.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네트워크가 보다 더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를 만들어 주리라던 우리의 믿음은 이미 흔들린 지 오래다. 디지털 사상가 니콜라스 카는 미국 보스턴글로브 기고문에서 “클리블랜드 살인사건 등 소셜네트워크상에서 잇따라 일어난 사건들은 ‘디지털 네트워크가 보다 평화적인 세계를 만들어 인류를 한데 뭉치게 해준다’는 실리콘밸리의 약속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디지털 네트워크가 평화로운 세계는 담보하지 못하더라도 더 폭넓은 인간의 사고, 더 자유로운 인간의 상상에는 과연 기여했는가. 문제는 그마저도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하루 종일 뉴스를 체크하고, SNS로 유명 논객들의 생각을 접하고, 메신저로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침대에 머리를 뉘었을 때 생각나는 단어라곤 없다. 눈만 침침할 뿐. 예전에는 몇 시간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책 한두 권은 집중해서 읽어내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책 한 권은커녕 한 챕터를 읽기도 버거워졌다. 스마트폰 화면 속 짧은 텍스트에 익숙해져버린 머리와 눈이 이제 일정 길이 이상의 텍스트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필자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스마트폰 없이는 전화번호와 일정을 기억하지 못하고, 스마트폰 배터리가 나가는 순간 공황상태에 빠진다. 서너 살짜리 아이들은 스크린만 보면 손가락부터 갖다 대고 넘기려고 한다. 스마트폰, 태블릿, 인터넷 환경에 둘러싸여 자연스레 디지털 기기를 체득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책의 종이 감촉 자체가 이질적일지도 모른다.

도발적인 디지털 사상가인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유리감옥> 등을 통해 위와 같은 현실과 관련해 현대인이 디지털 스크린에 포획돼 더 이상 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못하는 마비 상태가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파편화된 정보가 난무하는 ‘유리감옥’을 탈출하려면 자동화의 폐해를 인정하고 맹목적인 디지털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온 니콜라스 카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유리감옥>을 통해 인터넷과 자동화의 폐해를 우려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실제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며 빠른 속도로 AI, 사물인터넷 등이 도입되고 있는데 ‘유리감옥’에 대한 당신의 우려는 여전한가, 오히려 더 높아졌는가.

사람들이 인터넷과 컴퓨터를 활용하는 방식이 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작성하던 2008년∼2009년과 비교했을 때 그새 또 엄청나게 변화했다. 우리는 현재 스마트폰을 통해 항시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을 보유, 사방에서 쏟아지는 짧은 메시지와 알림들에 끊임없이 허우적대고 있다. 이 같은 2가지 트렌드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지적했던 우려들을 확실히 더 증폭시켰다. 이제 우리는 지속적으로 주의력을 방해받는 환경에 살고 있고,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에 100∼200번씩 폰을 체크하고 있다. ‘주의력’과 집중을 요구하는 깊이 있는 생각의 방식, 사색적인 사고를 연마하기란 더 어려워졌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은 그들의 기술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게끔 부추겨 돈을 벌었는데 그들은 우리들이 ‘넋’을 잃고 뭔가에 빠져들게끔 만드는 데 굉장히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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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의 폐해를 지적한 <유리감옥>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최근에 펴냈는데 그래서인지 큰 틀에서 바라봤을 때 책이 출간되던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핵심은 동일하다. 자동화가 우리를 ‘행위자’에서 ‘관찰자’로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처리할 때 우리는 혼자 어떤 과제나 업무를 수행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정신적 과정을 밟는다. 소프트웨어로 인해 일에 대한 참여도가 낮아지고, 관찰자나 감시자 같은 수동적인 역할을 맡게 되면 더 이상 우리의 머리는 깊은 인지활동을 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이 우리 대신 생각해주는 데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자신의 머리보다는 소프트웨어에 기대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애써 머리를 쓸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의미이며, 곧 우리가 배우고 알게 되는 게 줄어들고, 우리의 능력 또한 같이 감퇴할 것이란 얘기다. 자동화가 우리 고용시장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공포’는 과장돼 있지만 자동화는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과 사람들이 일하는 대가를 받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우리는 이미 이를 목도하고 있다.



인터넷과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이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지만 직군별로 영향력이 다를 것이다. 당신은 어떤 직군에 가장 큰 피해가 있으리라 예상하는가. 전문직은 물론 작가, 예술가 등 ‘창조성’을 핵심으로 삼는 직업들마저 위기에 처할 것인가.

아티스트들의 작업마저 당장 자동화에 의해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예술가들의 창조적 작업이 ‘온라인’을 통해 배포됨에 따라 예술적인 생기가 떨어질 순 있겠지만 컴퓨터가 제작한 예술작품은 여전히 인간의 것보다 별로이지 않은가.

자동화에 따른 위협에 더 노출되는 직업들은 아무래도 잘 짜인 지표들에 따라 분석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업들이 될 것이다. 의사, 변호사, 매니저, 정부 관리자는 물론 창조적인 영역에서도 건축설계와 같은 영역은 자동화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머신러닝과 같은 AI 기술과 광대한 양의 디지털 데이터의 결합에 따라 컴퓨터들도 이제 절묘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는 오직 인간만의 영역이었는데 말이다.



인간은 디지털 기술과 어떻게 협업해야 할 것인가. 디지털 기술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의 가치를 잃지 않는 등 ‘협업’에 성공한 기업 사례는 없는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식과 인지 분야에 있어서는 컴퓨터에 비해 처질 수밖에 없는데 컴퓨터가 그런 결함들을 보완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처방을 내릴 때, 의사들이 컴퓨터 분석을 활용해 다른 의견을 구하거나 미처 본인이 알지 못하고 있던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컴퓨터는 상식적인 부분, 맥락적 사고(contextual thinking)나 영감 같은 부분에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은 인간적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컴퓨터에 지나치게 의존적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 컴퓨터 분석의 이점만 취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인간적 재능을 자꾸 포기하고 컴퓨터에 기대기 시작하면 종국에는 큰 후회를 맛보게 될 것이다.

다행히 근래 들어 기계를 조작하거나 기계와 상호작용하게 될 인간이 가진 장점에 중점을 둔 ‘인간 중심 자동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연방항공청(FAA)은 인간 공학에 관심을 집중하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해당 프로젝트의 목표는 “인간이 가진 능력에 적응하고, 그 능력을 보충 및 보강하는 항공우주 시스템을 창조”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속적으로 자동화의 위험성을 경고해오고 있다. 자동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보는가.

현명하게 사용할 경우 자동화는 우리가 힘들고 단조로운 일에서 벗어나 보다 도전적이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제는 우리가 자동화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거나 자동화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충분하다’ 내지는 심지어 ‘잠시만 멈춰’라고 말해야 할 시기를 모른다. 경제적, 감정적으로 자동화의 장점에만 흠뻑 빠져든다.

사실 일이 사람 손을 떠나서 기계에 맡겨졌을 때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쉽게 평가할 수 있다. 기업들은 설비투자 비용을 계산한 다음에 자동화가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을 정확한 비용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인건비 감소, 생산성 향상, 작업 처리와 완료시간 단축, 이윤 확대 등이 그런 것들이다. 반면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다고 해서 대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실제로 존재한다. 어떤 일을 컴퓨터에 맡기고, 어떤 일을 직접 할지에 대한 선택들은 우리의 삶과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자동화로 인해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동화의 ‘위험성’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힘든 일을 덜어주는 기술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에 부딪치고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풍부한 재능을 키울 수 있으며 복잡한 기술을 익혔을 때 깊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기술에의 과잉의존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술의 한계와 인간적 성숙(human flourishing)의 원천을 이해하는 것뿐이다.

저항한다고 해서 자동화를, 더 나아가 기술을 거부하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발전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컴퓨터 전문가들이 사랑하는 영화 ‘스타트랙’에는 “저항은 부질없는 짓이다”라는 상투적이지만 멋진 문구가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과는 정반대다. 저항은 결코 부질없는 짓이 아니다. 우리의 활력원이 ‘활동적인 영혼’이라면 우리의 고귀한 의무는 제도적, 상업적, 기술적 힘 중 우리의 영혼을 나약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어떤 힘에라도 저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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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당신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며 단순한 작업들을 AI, 로봇이 대체하면 인간은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더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한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긍정적인 면만을 보자면 기술이 인간을 따분하고 반복적인 업무로부터 해방시켜 더 흥미로운 업무에 몰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사실이다. 자동화 시스템을 디자인할 때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보여주듯이 기계화와 자동화라고 하는 것은 역효과를 가져온다. 그들은 숙련된 기술자들을 단순한 기계 사용자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이 같은 ‘de-skilling(단순화)’ 효과를 컴퓨터 자동화가 적용된 다양한 영역에서 목격하곤 한다.

예를 들어 베테랑 파일럿들이 사라지고 파일럿들은 점점 오토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만의 조종 스킬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는 소프트웨어 장치가 고장 나는 등의 비상상황에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실제 예를 들어보겠다. 2009년 12월 콘티넨털항공의 연계 항공사인 콜건항공 소속의 여객기 한 대가 뉴저지주 뉴어크를 떠나 뉴욕주 버펄로를 향하고 있었다. 당시 조종사들은 수동 조종으로 봄바디어 Q400기를 이륙시킨 후 비행기가 정상 비행하자 자동 조종으로 전환했다. 문제는 Q400기가 버펄로공항으로 진입하면서 착륙기어를 내리고 날개를 펼쳤을 때 발생했다. 갑자기 기장의 조종간이 굉음을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자동 조종이 중단됐다. 문제는 조종간을 잡은 기장이 빠르게 대응하긴 했지만 ‘제대로’ 조종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실속(失速) 상태를 막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종간을 앞쪽으로 밀어야 했다. 하지만 조종사는 반대로 뒤쪽으로 조종간을 당겼고, 비행속도는 급감했다. 기장이 실속을 막기는커녕 실속을 일으켰던 셈이다. 결국 탑승객 49명 전원과 지상에 있던 한 명이 사망했다. 사실 이 추락 사건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의 조사 결과, 기체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고 조종사의 과실로 결론 내려졌다. 조사관들은 경고음이 울리면 기장은 자동적으로 대응해야 했지만 오히려 ‘놀라움과 혼란’만을 드러냈다고 보고했다.

사실 소프트웨어가 매 순간 비행기를 통제하게 되면서 조종사는 육체노동에서 벗어나는 수혜를 입었다. 하지만 문제는 위 사례에서 보듯 조종사가 수동 조종을 해야 하는 드물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의사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의사들이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데 있어 컴퓨터 탬플릿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면 그들은 점차 의사로서의 가장 중요하고 미묘한 능력인 환자들의 상태를 읽는 기술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기계화가 우리를 자연스럽게 더 높은 기술에 도달하게 만들어줄 것이란 생각은 확실한 오류다. 오히려 이는 때때로 우리가 기술을 성취하는 것을 방해하고, 결국에 기술을 보조하는 부차적인 역할과 같은 덜 흥미로운 일들로 우리를 몰아넣을 수 있다.



한국은 압도적인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하는 국가다. 업무상 스마트폰이나 SNS를 멀리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유리감옥’에 갇히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하루 종일 우리들의 폰을 통해서 소통된 정보나 대화 대다수는 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정보의 흐름이 우리를 계속해서 상습적으로 폰을 확인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지 않고, 설령 무의미한 것이라고 해도 메시지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폰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이렇게 핸드폰의 노예가 되는 것은 특히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당신이 비판적으로, 창의적으로, 개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SNS를 사용함으로써 훈련되고, 뭔가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극히 이례적이고, 흥미로운 커리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본다. 어떤 새로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신이 지금 바로 이를 접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은 개인적으로 인터넷이나 스마트 기기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인터넷이나 SNS 사용을 조절하고 있는가.

나도 스마트폰이 있지만 항상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를 때때로 사용하지만 페이스북은 사용하지 않으며 다른 소셜미디어나 메시징 서비스도 웬만하면 피하고 있다. 나는 내가 이런 디바이스나 서비스에 노출되면 굉장히 중독되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거리 두기’를 선택했다. 물론 나처럼 거리 두기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당신이 깊이 있는 사고와 예민한 주의력, 그리고 세상에의 참여를 중시하고 그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그 같은 기술이나 서비스에 ‘No’ 할 줄 알아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사용시간만이라도 줄여야 한다.



인재를 선발해야 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고민스러운 지점이 있다. ‘지속적인 산만함’에 익숙하고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 아니면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해 얕은 지식을 탐색하는 데는 좀 느리더라도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 중 어떤 이를 선발해야 할까.

기업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몰입할 줄 알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걸러낼 줄 아는 사람들은 갈수록 귀해지고 있다. 그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와 반대로 멀티태스커들이나 빠르게 정보들을 확인해내는 스키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찾아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조차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다. 디지털 시대의 인재 육성, 교육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어린이들에게 있어 사람, 세상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며 ‘교류’를 하고, 각기 다른 경험을 하며 사회적, 지적 발전을 이루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핵심적인 일이다. 그런 어린아이에게 작은 스크린만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게 한다는 것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물리적인 개체들을 직접 탐험하며 성장할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다. 결국 성장을 저해하거나 성장기회를 좁힐 수 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는 집중력을 기르고 스스로 생각함을 즐길 기회들을 앗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는 풍성하고, 흥미로운 ‘멘탈 라이프’의 핵심이기도 하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인간적인, 인간만의 능력이란 무엇일까.

우리를 진정 똑똑하게 만드는 것은 문서들로부터 사실을 끌어내거나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로부터 통계적 패턴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살면서 관찰하고 경험한 것으로부터 얻은 지식을 나중에 어떤 과제나 도전이 주어지더라도 적용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풍부하고 유동적인 이해로 엮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이 논리와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개념적, 비판적, 은유적, 명상적이고 재치 있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의식적 및 무의식적 인식과 이성과 영감을 아우르는 ‘유연한 사고력’이다.

퓨터가 우리의 자유의지나 사고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거나 우리가 관념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인간만의 능력이다. 아무리 우리 세상이 컴퓨터화되고 자동화되더라도 우리는 이 같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지키고 키워나가야 한다. 우리가 창조해야 할 세상은 로봇이 아니라 인간에게 적합한 세상이어야 한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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