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만 강조하는 시대에 우리가 잊고 지내왔던 것들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기에 인성이나 기본기 등을 강조하는 것은 고루하게 들립니다. 빠른 적응력, 파괴적 혁신에 대한 스마트한 대응,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 등을 중시하는 조직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DBR이 매년 기업 이외의 분야에서 통찰을 드리기 위해 사례연구를 해오고 있는데, 이번 호에 집중 분석한 학교 혁신 사례들은 인성이나 기본기 같은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유연성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에 인성 같은 원칙적인 요소들이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요.

교육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고 사람이 커가기 위한 기본 토대는 인성입니다. 인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면 아무리 훌륭한 지식과 기술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오래 가기 힘듭니다. 후보 선수들로 팀을 꾸려 전국대회 우승이란 놀라운 성과를 낸 원동중학교 야구부는 선수들이 힘들더라도 반드시 일반 학과 수업에 참여해 제대로 공부하게 했습니다. 야구부 감독이 학생들의 일반 수업에 참관해 열심히 수업을 받으라고 독려할 정도였습니다. 또 야구 기술보다 성실성이 돋보이는 학생에게 주장을 맡기는 등 인성을 중시하는 확고한 철학을 밀어붙였습니다. 세부적인 야구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고 끈질기게 기본기를 연마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인성과 기본기로 무장한 시골 중학교 야구부원들은 경기에 패하자 교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삭발을 하며 투혼을 불살랐고 이후 전국대회를 휩쓸었습니다.

의대나 병원도 없는데다 학교 브랜드의 후광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호서대 간호학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호사에게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인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직업 전선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교수진은 인성을 강조했고 실제 교육 내용에 이런 철학을 반영했습니다. 훌륭한 간호사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쓰게 했으며 선배 간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공부 1등이 아니라 환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최고의 간호사를 만든다’는 교훈을 체감하게 했습니다. 탄탄한 기본기와 인성을 갖춘 졸업생들은 현장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간디학교의 사례도 큰 울림을 줍니다. 간디학교는 자발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효율성’ 대신 ‘기다림’을 택했습니다. 실제 학내에서 도난사고가 생겼을 때 학생들끼리 지루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CCTV를 설치하자, 함정 수사를 하자, 경찰에 신고하자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교사들은 인내심을 갖고 아이들이 스스로 해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결국 한 아이가 어렸을 때 남의 물건을 훔친 경험을 고백했고, 다른 아이는 엄마에게 물건을 훔친 걸 들켰지만 엄마가 자신을 꼭 안아줬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모두가 서로를 껴안아주자고 제안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범인을 잡자’는 안건은 부결됐고, 무기명 쪽지를 돌려 돈을 가져간 학생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돌려놓을지 쓰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습니다. 이후 돈은 쪽지에 쓰인 곳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이기는 무서운 일반고’로 유명한 공주 한일고, 죽어가는 공교육 분야에서 희망을 쏘아올린 장곡중학교의 혁신도 한마음으로 뭉치면 어떤 기적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실증 사례로 손색이 없습니다. 꼴찌 산골마을 학생들의 기적으로 불리는 일본 아키타현의 교육 개혁 사례, 공감을 화두로 혁신의 역사를 써가고 있는 미국 공감학교 스토리도 영감의 보고입니다. DBR 경영전문기자들이 수천㎞를 달리며 취재한 학교 혁신 사례들은 이 시대의 경영자들에게 원칙과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입니다. 우리 조직의 원칙과 기본에 대해 돌아보고 이를 토대로 혁신을 선도하는 조직으로의 도약을 일궈내시기 바랍니다. 불확실성 시대에 대처하는 가장 탁월한 전략은 내부의 원칙과 기본기를 다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