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거울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아테네의 정치 지도자 솔론은 탁월한 입법으로 3개 분파로 나뉜 아테네 사람들의 힘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 솔론의 애민(愛民) 정신은 로마의 집정관 푸블리콜라에 의해 열매를 맺는다. 모두 네 차례나 로마의 집정관에 올랐던 푸블리콜라는 현자 솔론처럼 로마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파격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네의 솔론보다는 로마의 푸블리콜라에게 더 큰 찬사를 보냈다. 왜 그랬을까. 솔론은 임종의 순간에 행복하지 않았다. 참주제를 몰아내기 위해 천신만고의 노력을 다했는데 자신이 해방시킨 평민이 오히려 참주가 돼 아테네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푸블리콜라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행복했다. 로마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나라로 만들고 싶어 했던 그의 평생소원과 노력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
편집자주
고전의 지혜와 통찰은 현대의 지성인들에게 여전히 큰 교훈을 줍니다. 메디치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과 마키아벨리 연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군주의 거울’을 연재합니다. 인문학 고전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깊은 통찰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오, 솔론! 솔론! 솔론!
‘솔론의 개혁’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솔론의 개혁은 기원전 593년부터 591년까지 ‘아테네의 현자’로 불렸던 솔론(Solon, 기원전 638∼558년 추정)이 추진한 아테네의 정치 개혁이었습니다. 아테네를 건강한 사회로 만들고 이른바 ‘지속가능한 체제’로 정착시키기 위해 사회구조를 개혁한 것이지요. 얼마 전에 법제처장을 지냈던 원로 법조인을 뵌 적이 있습니다. 제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자 당신께서도 학창 시절에 <영웅전> 중에서 ‘솔론’ 편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법제처장으로 재직하실 때도 늘 ‘솔론의 개혁’을 떠올리며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면 건강한 사회로 만들고 지속가능한 체제로 정착시킬지 늘 고민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의 의회 건물 벽면에도 솔론의 조각상이 전시돼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미국의 입법 기관도 늘 ‘솔론의 개혁’을 모범으로 삼으며 자기 나라를 건강한 사회, 지속가능한 체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테네의 정치가 솔론은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란 책에도 잠시 등장합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가 전쟁에 패해 화형을 당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리디아는 지금의 터키 지역입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에게 제압돼 당시 관례에 따라 화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사형 집행인이 쌓아놓은 장작에 불을 붙이려고 하자 크로이소스 왕은 “오, 솔론, 솔론, 솔론!”이라고 외쳤습니다. 처형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키루스 대왕은 사형 집행을 중지하고 왜 솔론의 이름을 그렇게 애타게 불렀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크로이소스 대왕은 아테네의 현자 솔론과 나눴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솔론은 아테네에 새로운 법을 창제한 다음 10년간의 외유(外遊)를 선택했습니다. 새로 제정된 법률 때문에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줄기차게 법의 개정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솔론은 자신이 공들여 만든 새 법이 개정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장기간 외유를 떠나 이런 시도를 저지하기로 합니다. 아예 자리를 비워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솔론은 크레타와 이집트, 리디아를 차례로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아테네의 현자가 자기 나라를 방문한다고 하자 내심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보물창고를 솔론에게 보여줍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다스리던 리디아에서 막대한 양의 금이 출토돼 많은 금은보화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막대한 재원으로 크로이소스 왕은 궁궐을 화려하게 꾸몄고 많은 용병을 고용해 막강한 군대를 거느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크로이소스 왕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많은 금은보화를 가졌고, 태평성대를 지켜줄 막강한 군대도 보유하고 있으니, 남 보기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크로이소스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테네의 현자 솔론이여,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크로이소스는 “폐하, 리디아의 왕이시며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계신 폐하께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옵니다”란 대답을 기대했겠지요. 그런데 솔론은 “용감하게 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던 텔로스란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한편으로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섭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재차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럼,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자 솔론은 “어머니 헤라 여신을 모시고 열심히 달려 축제 장소에 도달한 뒤 평화롭게 죽었던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이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크로이소스 왕은 화를 내면서 솔론에게 그 이유를 따져 물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자신보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이 왜 자신보다 행복한 사람인지 설명하란 것이지요. 그러자 현자 솔론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하, 인간이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옵니다. 전하는 거부(巨富)에다 수많은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옵니다. 하지만 저는 전하께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전하의 물음에 답할 수 없사옵니다. 누가 죽기 전에는 그를 행복하다고 부르지 마시고 단지 운이 좋았다고 하소서.”
니콜라우스 크눕퍼(Nikolaus Knüpfer), ‘크로이소스 왕 앞에 선 솔론’ 1650년대 작품, 폴 게티 박물관 소장. 크로이소스 왕은 솔론에게 “누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가?”라고 질문했다.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의 1장 32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전쟁에 패해 장작불에 타 죽게 된 크로이소스는 최후의 순간에 솔론이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자신이 누렸던 엄청난 부와 권력은 모두 ‘우연의 산물’일 뿐이었고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솔론의 경고를 새겨듣지 않았던 자신이 후회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불타오르는 장작불 위에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 자신의 불우한 운명을 돌아보며 솔론의 이름을 그토록 애절하게 외쳤던 것입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말입니다. 오, 솔론! 솔론! 솔론!
솔론, 그는 예고편일 뿐!
솔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아테네의 현자’라 불릴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솔론은 그냥 ‘예고편’일 뿐이었습니다. 솔론을 현자로 치켜세웠던 헤로도토스, 늘 솔론을 기억하며 공직에 임하셨다는 전 법제처장님, 그리고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을 모두 머쓱하게 만드는 평가지요. 아테네의 현자 솔론은 예고편이었을 뿐이고, 로마의 입법자 푸블리콜라(Publius Valerius Publicola, 기원전 503년 사망)가 진짜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솔론의 진정한 가치는 푸블리콜라의 로마 입법을 통해 그 역사적 실체가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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