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통령 선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에 새로운 큰 흐름이 생겼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공동체 지향성’의 강화라는 물결이다.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설립의 열풍이 분다든지, 기초연금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 다른 나라에서는 수십 년이 걸려 단계적으로 추진된 사회보장 패키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이념 논쟁과 정책 갈등은 지난 대선 때 양 진영의 샅바 싸움으로 치달았으며 후보들은 앞 다투어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의 목표와 유사한 공약들을 쏟아냈다.
‘공동체 지향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협동조합은 세계화에 따른 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서민들의 일자리 창출과 자립을 돕는 사회통합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기업 형태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경영에 대한 경험과 전문지식, 역량이 부족한데다 사회적 인지도도 낮아 설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하는 등 실패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더욱이 조합원들이 ‘협동조합 정신’을 공유하지 못해서 조합원 간 의견 충돌로 좌초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하고 있는 ‘공동체 지향성’의 원조는 독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은 1차 대전 후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첨예한 좌우 이념 갈등과 노사 간 극한투쟁, 정부의 무능과 경제정책의 연이은 실패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이라는 국난을 겪으면서 극우 나치당 집권의 길을 열어줬다. 히틀러의 제3제국 시절, 좌와 우, 노와 사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생산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했다. 패전 후 피폐해진 환경 때문에 두 양극 집단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분열과 극한투쟁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패전의 멍에를 함께 지고 ‘사회적 파트너’로서 협력을 선택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하에서 1950년 서독에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파트너십 기업 진흥을 위한 공동체(AGP)’가 결성됐다. 경제 재건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공동체적 ‘파트너십’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후 독일 기업의 파트너십 운동은 근로자의 경영참가(이익참가 및 자본참가)와 노사동반자 의식 함양에 크게 기여했으며 독일 사회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1950년대 초 모든 업체에 ‘종업원평의회(Betriebsrat)’가 결성됐고, 광산근로자를 위한 ‘공동의사결정제도(Mitbestimmung)’가 시행됐으며, 1976년에는 ‘신공동의사결정법’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독일은 모든 업종의 대기업에서 이사회를 관장하는 감독이사회에 노사 동수가 참여해 공동으로 경영 의사결정을 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됐다. 독일의 파트너십 경영은 일본에도 수입돼 일본 특유의 공동체 기업이 탄생하고 발전하도록 공헌하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에 파트너 정신에 입각한 공동체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귀결이며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독일과 일본의 파트너 기업이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을 견뎌올 수 있었던 것은 노와 사가 상대방을 타도해야 할 적이 아닌 사회적 파트너로 간주해 운명 공동체 안에서 공존공영을 도모하는 ‘파트너 정신’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한국식 공동체 기업의 성패는 바로 이런 파트너 정신이 생산현장에 얼마나 뿌리를 내리고 꽃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본의 영세성이나 경영 능력 미숙이라기보다는 이 같은 끈끈한 공동체 정신의 결여에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요소보다는 비물질적인 공동체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성원 스스로에 의해 자생적으로 조직되며 분명한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출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구성원 상호 간의 연대정신이야말로 공동체 기업의 지속성장 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요소다.
김성국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장 skima@ewha.ac.kr
김성국 학장은 서울대 인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만하임대에서 인사관리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전문위원 등 사회활동을 했고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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