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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갑오(甲午)년 말띠 해다. 말에 얽힌 속설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말띠 해에 태어난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2년마다 말띠 해가 돌아오면 출산율, 특히 여아 출생 비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종종 나타나곤 했다. 여자가 드세면 남자, 더 정확하게는 남편의 기를 짓눌러 좋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말띠 여성에 대한 편견은 일제 강점기에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에 흘러들어 온 근거 없는 속설이라고 한다. 민속학자는 물론 많은 역술인들조차 말띠 여성에 대한 편견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진 현대사회에선 생동감 넘치고 활동적인 기운을 타고 난 말띠 여성들이 오히려 경쟁력 있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대표적 페미니스트로 꼽히는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1882년생), ‘무티(Mutti, ‘엄마’를 뜻하는 독일어) 리더십’으로 주목받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1954년생), ‘빙판 위의 여제’라 불리는 김연아 선수(1990년생) 모두 말띠 해에 태어났다.
말띠 여성은 팔자가 세다는 식의 사고방식 근저에는 어느 한쪽의 성별이 다른 쪽 성별보다 우세해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일찍이 영국의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가 말했듯이 “위대한 마음은 양성적(a great mind must be androgynous)”이다. 더욱이 21세기는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적 특성과 남성적 특질 간 균형을 이룬 양성성의 가치다.
창의성 분야의 대가로 꼽히는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엘리스 폴 토랜스(Ellis Paul Torrance)는 수많은 실증 연구를 통해 창의성 발현을 위한 양성성의 가치를 입증했다. 흔히 여성적 덕목으로 여겨지는 ‘감수성(sensitivity)’과 남성적 가치로 간주되는 ‘독립성(independence)’이 균형을 이룰 때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다는 게 그의 핵심 주장이다.
토랜스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물을 이리저리 조작해 보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어린이들의 성향이 창의성의 기초가 된다고 보고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실시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간호사 구급상자, 소방차 완구 등의 장난감을 나눠준 후 그것들을 더욱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요청했다. 대부분 남자 아이들은 소방차 완구에는 관심을 보였지만 간호사 놀이세트에 대해선 “나는 남자니까 이런 것들을 가지고 놀지 않아요!”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창의성이 높은 남자 아이들은 이를 의사 놀이 세트로 바꿔놓고는 요리조리 만져보면서 여러 가지 개선점들을 생각해 냈다.
토랜스는 이런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교육 과정에서 성역할(性役割)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많은 재능, 특히 창의적 재능을 개발하는 데 심각한 장애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사내 녀석이 돼서…” “여자애가 어떻게…” 등의 말은 창의성 계발에 독이 된다는 뜻이다. 남자에겐 감수성을, 여자에겐 독립심을 북돋워 양성성의 균형을 맞춰갈 때 창의적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게 토랜스의 연구가 시사하는 바다.
개인 차원에서만 양성성이 중시되는 건 아니다. 팀 차원에서도 양성 간 조화가 이뤄질 때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아니타 울리(Anita Woolley) 교수와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토머스 말론(Thomas Malone) 교수가 2011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그룹의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은 팀 구성원들의 IQ 총합과는 그다지 큰 상관관계가 없지만 여성 팀원의 비율과는 높은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즉, 똑똑한 팀원이 많다고 해서 해당 팀의 과업(브레인스토밍, 의사 결정, 퍼즐 맞추기 등) 성취도가 크게 높아지지는 않았지만 여성 팀원이 많아질수록 과업 수행 능력이 확연하게 높아졌다. 그 이유에 대해 연구자들은 대개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사회적 감수성(social sensitivity)이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과거보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부쩍 늘었고 대한민국도 여성 대통령을 맞이했지만 아직도 많은 조직은 남성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에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개인과 조직 차원을 막론하고 여성적 특징을 계발하고 여성들의 활동을 더욱 장려하는 양성적 사고방식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한다. … 창조적 예술이 이뤄지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외침은 비단 예술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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