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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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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초, 나는 회사의 자금운용 부서에서 일하며 외국계 은행에서 만든 3년 만기 이자율 스와프 상품을 검토하고 있었다. 당시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전례 없는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했다. 한국도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추고 시장에 돈이 돌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3개월, 6개월 단기 금리는 전에 볼 수 없던 수준으로 내려갔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이런 상황에 맞춰 저금리 관련 금융상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내가 고려한 상품은 기존에 우리 회사가 5.8%의 고정금리로 발행한 15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변동금리(CD금리1 + 2%p 수준)로 바꿔주는 것이었다. 핵심은 시장의 변동금리가 얼마만큼 수준에서 유지가 될 것인지, 과연 언제 다시 올라갈 것인지였다. 만약 한국은행이 계속 저금리 정책을 고수해 금리가 장기간 낮은 수준(CD금리 3.8% 이하)을 유지할 경우 이 상품을 사면 상대적으로 높았던 고정금리를 저금리로 전환하는 효과가 있어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반대로 예상보다 빨리 금리가 정상화돼 CD금리가 3.8% 이상으로 올라간다면 회사는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당시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나는 상당기간 저금리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 전망했고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 상품에 가입하지 않기로 했다. 팀 내 전반적인 의견은 ‘1년 이내에 금리가 정상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환율 상품은 손해볼 여지가 많다’는 것이었다. 이런 걱정도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당시 중소기업에 큰 피해를 줬던 키코(KIKO)라는 환율 헤징상품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보도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금융상품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들이 퍼져 있었다.
시간이 지난 뒤에 투자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그래도 나는 2012년 MBA로 떠나기 전 계산을 한번 해봤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저금리 정책은 오랜 기간 지속됐다. 만약 이 변동금리 상품에 가입했다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에 걸쳐 수십억 원의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회사가 비용을 줄일 기회를 놓쳐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럴 줄 알았지’라는 약간의 우쭐함도 느꼈다.
하지만 켈로그에 입학해 ‘켈로그 올해의 교수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미첼 피터슨(Mitchell Peterson) 교수의 리스크관리(Risk Management) 강의를 들으니 우쭐함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기업 리스크 관리의 목적이 무엇인가?” 피터슨 교수가 던진 첫 질문 때문이다. 그가 만난 대부분의 미국 기업 재무담당자들은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자금운용본부에서 일했던 나는 ‘자금조달 비용을 줄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피터슨 교수는 하나씩 이유를 들어가며 이런 생각들이 틀렸음을 밝혔다.
가정 1: 주가의 변동성을 줄인다?
주주들은 리스크를 싫어한다. 자산 대부분이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에 들어가 있는 중소기업 오너에게는 본인이 소유한 기업의 주식가치 변동성을 줄이는 것이 리스크 관리의 한 목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기업들은 주주의 구성이 다양하다. 특히 연기금, 펀드와 같은 기관투자가들의 보유지분이 매우 높다. 이들은 여러 회사와 산업으로 충분히 다변화, 분산화된 투자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개별 기업의 주가 변동성은 이들에겐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정 2: 수익의 변동성을 줄인다?
기업이 내는 이익의 흐름이 지나치게 출렁거리는 것을 막기 위해 헤징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미래 일어날 모든 현금흐름의 할인가치가 곧 주식의 가치라는 DCF 모델2 을 통해 생각해 보면 결국 위에 얘기했던 주식가치 변동성을 줄이는 것과 같은 얘기다. 한 해 한 해의 수익 변동은 장기투자자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주주와 기업 임직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가 발생한다. 주주와는 달리 임직원들은 기업의 단기 이익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기가 받을 월급과 보너스가 여기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임직원들은 자신의 소득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회사의 이익 변동성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서 헤징을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주주 이익이나 회사의 장기적 이익과는 무관하다.
가정 3: 자금조달비용을 줄인다?
앞서 우리 회사에서 검토했던 이자율 스와프 상품의 목적은 고정금리로 발행한 회사채를 변동금리로 바꿔 이자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보통 이런 금융 상품의 가격은 그 시점에서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데이터와 시나리오를 확률적으로 고려해서 형성돼 있다. 리스크에 대한 추가 부담 없이 남들보다 더 싸게 자본 조달을 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모르는 시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미래 예측을 남들보다 더 정확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시장보다 더 나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주관적 판단으로 이자율 스와프와 같은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것은 리스크 관리를 위한 헤징이 아니라 투기적 거래(speculation)다.
회사는 기업가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한다. 리스크 관리 역시 회사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결국 두 가지 통로뿐이다. 기존 사업의 현금흐름을 개선하는 방법과 수익성 있는 신규사업을 발굴하는 것이다. 만약 수익성 좋은 프로젝트를 발견했는데 이자율, 원자재 가격과 같은 금융 리스크로 인해 현금흐름이 부족해 실행될 수 없다면 이는 기업가치에 큰 악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기업의 재무적 위험관리는 수익성 있는 프로젝트가 실행될 시기에 이를 받쳐주기 위한 충분한 현금이 흐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한다. 즉, 돈을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리스크 관리는 기존 사업의 현금흐름 특성과 환경에 대한 이해 없이 재무적인 기준에서만 논하는 리스크 관리는 의미가 없다.
피터슨 교수는 GM 사례를 들었다. GM은 1990년대 자동차 판매 감소로 악화된 현금흐름을 개선하기 위해서 재무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이자율 파생상품을 검토했다. 기존에 갖고 있던 고정금리 발행채권에 대한 이자비용을 변동금리로 바꾸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GM의 영업 및 현금창출 환경을 고려하면 가장 적합한 위험관리 수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왜일까? GM의 매출은 자동차 할부금리와 관련이 높다. 금리가 높을 때는 자동차 할부금리도 높아지므로 사람들이 차를 잘 사지 않아 판매가 줄고 회사의 현금흐름도 악화된다. 반대로 금리가 낮을 때는 자동차 할부금리도 낮아져서 판매가 늘고 현금흐름도 좋아진다. 따라서 GM의 재무적 헤징은 시중금리가 높을 때(차량 판매가 줄어들 때)는 현금흐름을 개선하고, 시중금리가 낮을 때(차량 판매가 늘어날 때)는 일정 부분 리스크를 가져가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다.
이런 자동차 할부 영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단순히 금융비용 자체를 줄이기 위한 파생상품들은 GM의 상황을 악화시킨다. 채권의 이자비용 감소만을 위해서 고정금리를 변동금리로 바꾸는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면 금리가 상승할 때 자동차 판매량도 줄어드는데 이자비용까지 상승해 설상가상이 된다.반대로 금리가 낮을 때는 자동차도 잘 팔리는데 이자비용도 줄어들어 금상첨화가 된다. 헤징이 아니라 수익 혹은 손실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수업을 들으며 느낀 점이 많았다. 2009년 당시 나 역시 이자율 스와프 상품 자체와 금리 전망에만 관심을 가졌지 이 상품이 궁극적으로 우리 회사의 기존 영업 현금흐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다만 최고경영자를 꿈꾸는 MBA 학생으로서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경영자라면 결정적인 큰 실수를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기업들에서 벌어지는 의사결정상의 실수들을 수업으로 배울 수 있는 MBA 과정은 그런 측면에서 훌륭한 경영자가 되기 위한 좋은 리스크 관리 수단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권기범 Kellogg School of Management Class of 2014 kkwon2014@kellogg.northwestern.edu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한화케미칼에서 4년 동안 금융팀 자금운용 부서에서 일했다. 켈로그 MBA 2학년에 재학 중이다.
1908년 문을 연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Kellogg School of Management)은 MBA 최초로 팀 프로젝트와 동료 평가를 도입해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여성 학장인 샐리 블라운트(Sally Blount)가 주도해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마케팅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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