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에서)
얼마 전 광화문 모 빌딩 현판에 붙은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잠깐 나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난 ‘그 모습’을 간직하며 잘 살고 있는가. 어릴 적 ‘나’란 아이는 미래의 모습을 꿈꾸며 살아갔겠지만 실상 어른이 된 ‘나’란 존재는 바쁜 일상에 허덕이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덕분에 ‘순수하고 행복했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며, 흐트러진 정체성에 반문을 하며, 스스로 치유할 시간을 잠시나마 갖게 된 것을 행복해 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에린 조 교수가 대한민국 사회에 불고 있는 ‘힐링’ 열풍을 ‘과거 지향적 현재’에 집중하며 자아를 형성하는 한국인의 국민성과 연관 지어서 설명한 부분에 상당한 공감을 느꼈다. 힐링 열풍은 개인의 희생이 만연한 풍토에서 ‘개인화돼가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는 트렌드로 바뀌다 보니 그동안 억압에서 벗어나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도 싶었다. 이런 관점에서 ‘힐링 열풍’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한강의 기적’의 이면에 담긴, 앞만 보고 달려 온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세태가 반영된 결과인지 사회 전반적으로 ‘힐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는 일환으로 문화계에서는 7080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복고 열풍’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방송가에서는 ‘힐링’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회자되곤 한다.
기업 또한 예외가 아니다. 상품기획의 측면에서도 GM의 사례처럼 ‘미래 지향적 기술 과시’도 중요하지만 과거 충족하지 못했던 욕구에 대한 정확한 인지를 통해 소비자의 불편함을 개선하거나 인간중심적인 배려가 담긴 ‘휴머니즘’을 토대로 아픔을 치유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했다. 한발 더 나아가 김미경 프로가 제시한 소비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브랜드(사후대응)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주는 브랜드(사전대응)가 돼야 한다는 새로운 접근법 또한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처럼 느껴졌다.
DBR 130호에서는 개인의 감성적인 미시적 트렌드로 묻힐 뻔했던 ‘힐링 열풍’을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마케팅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는 데에서도 흥미로웠다. ‘탐스슈즈’의 사례처럼 소비자와 제조사의 ‘상호 공감’을 전제로 하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DBR 117호에서 언급한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이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는 측면에서도 맞아떨어진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는 ‘힐링 마케팅’ 같은 수단을 통해 공유가치 창출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기업의 생존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러한 힐링 마케팅은 비단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포스코의 라면 상무와 프라임베이커리의 사례, 폭언과 협박을 일삼은 남양유업 직원과 같은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상호 간의 공감’을 전제로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 말이다.
천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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