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전략

수익성만으로 생존하기 힘든 시대 기업의 핵심사업에서 정당성 확보하라

122호 (2013년 2월 Issue 1)

 

경제민주화 화두의 두 가지 불확실성

이번 대선에서 각축을 벌였던 박근혜 당선인과 문재인, 안철수 전 후보의 경제정책은 명확한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상생, 동반성장 등 1960년대 경제개발과 더불어 시작돼 1990년대 이래 심화돼온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과 배려를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내세웠다. 이런 정책방향의 근본적 의의와 중요성에 문제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IMF 위기 이래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결과 비정규직이 노동인구의 절반을 넘었고, 청년 실업이 매년 양산되고 있으며, 소수 대기업과 대다수 중소기업 간 격차가 심화돼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됐다. 따라서 세 후보가 경제민주화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정치역학적으로 표심을 잡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단순한 정치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원래의 의도대로 지속적으로 실천되려면 다음 두 가지 불확실성이 먼저 명확히 해결돼야 한다.

 

첫째, 경제민주화의 개념 자체가 지난 수개월간의 치열한 논쟁과 검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확실하다. 학문적으로 보면경제민주화라는 정립되고 공유된 개념이나 이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민주화는 경제보다는 정치에 주로 적용되던 개념이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이 강조한 경제민주화 공약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기업의 과도한 지배력을 규제하는독과점과 불공정경쟁 규제고용안정’,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대한 사회안전망을 다루는복지등 세 가지를 통합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만일 경제민주화가 대기업의 독과점/불공정경쟁 규제와 고용안정, 복지 등 세 가지가 핵심 내용이라면 우리는 그 성공적 실행을 위해 필요한 논리적 기반과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다른 나라들의 사례들을 이미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이 세 가지는 이미 20세기 초중반 이래 선진국들에서는 핵심 경제정책 이슈였고 학계와 정책담당자 사이에서 치열하게 논쟁돼왔다. 물론 그동안 숨가쁘게 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며 앞만 보고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세 가지 이슈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만일 경제민주화의 핵심 내용이 대기업 독과점/불공정경쟁 규제와 고용안정, 복지라면 정책실행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해 이 세 가지 주제들에 대한 기존 연구결과들과 선진 사례들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반면 만일 박근혜 당선인이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이 세 가지 20세기적 경제정책의 핵심 이슈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개념이라면 그 차이에 대해 국민들과 국가경제 운용담당자들에게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성공적 실행을 위해 필수 요건이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는 없다. 이제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만 보면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앞의 세 가지 전통적 경제정책 이슈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둘째, 경제민주화의 실천을 위한 자원계획에서지속가능성의 관점이 결여돼 있어서 일시적으로는 무리해서라도 증세와 다른 예산절감 등을 통해 실행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과연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가 일시적 구호가 아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정책의 한 축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적게는 20조 원 가까이, 그리고 많게는 40조 원 가까이로 추정되는 막대한 경제민주화의 재원을 지속으로 감당해줄 수 있는 세원의 확대가 필요한데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 중에는 세수를 오히려 줄일 버스 유류세 감면, 취득세 감면 연장, 중견기업 세제혜택 등의 감세 공약들이 동시에 포진돼 있어 마치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경제민주화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정책의 기조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 경제체제에서 세수 확대와 세출 대상 전환에만 초점을 맞추는 제로섬 게임식의 사고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유일한 방법은 21세기 창조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성장모델을 동시에 추진해 국부창출의 절대 양과 규모 자체를 획기적으로 새로 창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 21세기형 성장과 경제민주화는 상충이 아닌 순차적 상호보완 관계임에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21세기형 성장모델에 대해서는 여전히 뚜렷한 방향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성장모델에 대한 이런 불확실성은 경제운용에서 성장을 통한 가치창출과 창출된 가치의 적재적소 배분을 선행과 후행의 상호보완 관계로 보지 않고 상충관계로 보는 논리적 오류를 저지를 위험이 높다.

 

성장은 경제적 가치창출에 관한 것인 데 비해 경제민주화는 창출된 가치의 배분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성장은 기업들에 의해 주로 이뤄지는 데 비해 경제민주화는 정부가 기업 등 경제행위자들이 창출한 가치를 세입을 통해 획득한 후 이를 경제적 약자들을 위해 지출하는 세출 정책에 의해 달성된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동시에 상호보완적으로 시행돼야 온전한 국가경제 모델이 될 수 있다. 즉 성장 없이 경제민주화에 필요한 재원을 창출할 수 없듯이 경제민주화가 없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렵다. 박근혜 당선인은 물론 대선에 출마했던 다른 후보들도 후행단계인 자원배분에 대해서는 경제민주화라는 똑같은 비전을 제시한 데 비해 그 필수 전제 조건인 21세기형 성장모델에 대해서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 두 가지 중 경제민주화는 국가재원을 어디에 배분할 것인가의 이슈이므로 재원만 충분히 확보되면 선택의 문제이지 오히려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성장은 고도의 전략적 사고와 역량, 비전을 필요로 한다. 특히 현재 세계 경제는 저성장 국면으로 급속하게 접어들고 있고 동시에 21세기 창조사회는 초경쟁 환경으로 불릴 정도로 경쟁이 날로 치열해져서 2008년 미국 경제위기나 2011년 유럽 경제 위기, 그리고 GM이나 코닥, 소니 등과 같은 전통적 초일류 기업들의 급속한 몰락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국가와 기업이 상시 생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민주화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가경제와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과 성장역량이 그 이전보다 배가돼야 함은 물론 21세기형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반열에 접어들었고 대부분 산업에서 상위권에서 경쟁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20세기 후반 고속성장 시대의 방식으로 선진국 제품을 모방해 저임금으로 생산하는패스트 팔로어전략으로는 더 이상 경쟁할 수는 없을 뿐 아니라 또 이런 산업사회적 모델은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20세기 경제정책의 핵심 화두이던 독과점/불공정경쟁 규제, 고용안정, 복지 등 세 가지 기존 이슈들과 차별화되는 21세기 경제운용의 특수한 접근으로서의 경제민주화 개념을 확립하고 또 이를 지속가능하게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21세기형 경영모델인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CSV)’창조경영의 결합 사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즉 미시적인 기업 수준에서 사회적 문제의 해결과 기업 성과/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CSV 사례는 거시적 국가 수준에서 경제민주화와 신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창조적 모형의 도출에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CSR의 역사적 진화: CP에서 CSV로의 전환

원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법적 한계 내에서 사적 이윤을 극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종업원들에게 일자리와 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을 제공하고 창출된 이윤 중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기업들이 단순히 세금 납부를 넘어서서 다양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관점이 대두됐다. 폭넓은 의미에서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 관점으로서 기업이 눈앞에 있는 단기적인 이윤추구를 넘어서는 사회적인 기여나 가치를 제공하는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CSR이라는 명칭 자체가 나온 지는 얼마 안 됐고 ISO26000을 통해 CSR을 표준화하려는 노력도 최근 시도됐으나 이런 활동은 오래 전부터 계속 존재해왔다. 기업이 눈앞의 이윤극대화와 직접 상관없는 사회적 역할을 담당한다또는기업이 보다 포괄적인 사회적 책임을 진다는 관점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한 세기 전에 대두됐고 그동안 수많은 연구가 있었다.

 

CSR의 실천 모델은 역사적으로 진화해왔는데 최근까지 가장 대표적인 것은기업자선활동(Corporate Philanthropy·CP)’ 모델이었다. CP 모델은 기업이 자신의 본업에서 이윤극대화를 통해 창출한 수익의 일부를 본업과 상관없는 장학, 빈민구제,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자선활동이나 기부 활동, 비영리 활동 등을 통해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CP는 선진국에서 대량 생산중심의 산업사회 도래로 기업들이 역사상 유례없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20세기 초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대공황 이전까지의 기간 동안 카네기 등의 기업가들을 필두로 기업자선 활동이 매우 활발했는데 이런 경영방식을자선적 경영(Philanthropic Management)’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21세기 창조사회의 도래와 함께 CSR의 실천 모델의 중심이공유가치 창출(CSV)’ 모델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예를 들면, 최근 세계 경영학계의 핵심 화두가 되고 있는 마켓 3.0, 최하층인구에 대한 기여(BOP·Bottom of the Pyramid),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 고객자본주의(Customer Capitalism) 등은 모두 CSV와 유사한 개념들이다. 그렇다면 왜 21세기 창조사회의 도래와 함께 CSR의 핵심 실천 모델이 CP에서 CSV 쪽으로 전환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박근혜 당선인의 핵심 정책공약인 경제민주화의 지속가능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CSR의 실천 모형이 최근 CP에서 CSV로 바뀌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요소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도대체 CSR과 같은 기업의 비영리 사회기여 활동이 왜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다. 법경제학의 거장인 예일대 법대의 핸즈먼(H. Hansmann) 교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비영리 부문이 존재하는 이유로 시장과 공공 부문이라는 양대 축의 실패를 지적한다. 즉 시장이 잘 담당하는 사회적 기능이 있고 반대로 공공 부문이 잘 담당하는 기능도 있지만 반대로 시장, 공공 부문이 둘 다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제3의 영역이 있다. 즉 비영리 부문은 시장실패와 공공실패가 동시에 일어난 영역을 담당하기 위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영리 부문에서 사회적 기여의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자선단체와 같은 비영리조직이나 사회적 기업이 아닌 영리추구가 원래 목적인 기업이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CSR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따라서 CSR과 관련해기업이 왜 본업과 상관없어 보이는 비영리 사회기여 활동을 시간과 비용을 들여 수행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와튼경영대학원의 유심(M. Useem)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비영리 부문에 투입되는 재원을 분류해보면 기업들의 기여가 단연 가장 크다. 그러나 기업은 본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또 그런 영리활동이 법적으로 보장되는데도 왜 비영리 활동에 시간과 노력, 자원을 투자하는가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비영리 부문을 연구하는 조직이론가들에 따르면 기업의 비영리 활동에 대한 가장 중요한 동기는계몽된 이익추구(Enlightened Self Interest)’.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윤극대화가 기업이 눈앞의 이익을 좇아 불법만 아니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관점인데 비해 계몽된 이익추구(Enlightened Self Interest) 개념은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기업에도 이익이 되는 행동은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인데 바로 기업의 비영리 사회기여 활동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단기적으로는 일종의 비용인 사회적 기여와 자선 활동을 통해 기업들이 추구하는 계몽된 이익추구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조직이론의 신제도이론은 그 대답으로 정당성(legitimacy)을 강조한다. 기업이 자신의 단기적 이익과 상관없는 사회적 기여나 자선과 같은 바람직한 행동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기업의 정당성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기업의 장기생존과 성과에는 정당성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들이 생각보다 장수하거나 장기적으로 높은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런 기업들은 수익 창출은 잘하고 효율성은 높지만 사회적 정당성이 낮기 때문에 소비자, 협력업체, 채권자, 규제기관 등 주변의 이해 관련자들이 이들에 대해 기회가 있으면 제재를 가하고 부정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제도이론은 기업들이 이해 관련자들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생존과 성과 창출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과 지원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의 사회적 정당성을 높이는 방법으로서 기존의 기업자선활동(Corporate Philanthropy·CP) 모델에서는 장학, 복지, 문화 등과 같이 각 기업의 본업과 상관없는 분야에 집중해왔다. 예를 들면, 자동차나 TV 만드는 것과 복지나 장학 사업은 아무런 직접 관련성이 없는데도 사회적 기여 차원에서 투자해온 것이다. 즉 기존 CP 모델에서는 기업들이 그 본업의 핵심 영역(Technical Core)이 아니라 단순히 가시성이 높은 분야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다 기업 성과의 부진이나 경기침체로 여유 자원이 줄어들면 급속히 CP에 대한 기여도 급속히 감소한다. , CP 모델은 본업과 상관없는 분야이므로 환경변화에 의해 심하게 영향을 받아서 장기적 지속성이 낮은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선경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활발했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기업들의 CP 활동이 1920년대 후반에 들어 급격하게 줄어들어 거의 소멸되다시피하는데 바로 대공황 때문이었다. 대공황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기업들은 장기적 정당성 확보보다 단기 생존이 훨씬 더 급박한 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CSR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CP 모델을 통한 CSR은 장기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었지 사회적 기여 그 자체에 대한 진정성(authenticity)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더구나 최근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기업 내부의 경영과정을 감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증가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자선이나 복지를 외치면서 내부에서는 비윤리적 경영을 하는 기업들에는 더 이상 비영리 활동 그 자체만으로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게 됐다. 이런 문제들이 겹치면서 기업들은 이제는 본업 따로, 비영리활동 따로라는 방식은 정당성 확보에 효과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대안으로 기업경영의 본업에서 정당성을 추구하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CSV) 모델의 탄생 배경이다. 기업의 본업이 수익을 창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CP모델은 장학, 복지, 문화 등 본업과 상관없는 분야에서 사회적 기여를 통해 정당성 확보를 시도하다 보니 본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악화되면 즉시 사회적 기여도 같이 소멸했다. 이에 반해 CSV 모델에서는 기업 본업의 핵심 영역에서 정당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해 사회적 기여와 성과창출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하는 접근이다. CSV를 통해 정당성의 대상이 주변부에서 기업 경영의 핵심 영역으로 전환됐으며 그 결과 이전의 잠재적 상충관계가 해결되고 기업 경쟁력과 사회적 정당성의 추구가 하나로 통합된 것이다.

 

21세기 창조경영과 CSV의 지속가능성

그런데 CSV 모델이 사회적 정당성과 경제적 성과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려면 과거처럼 기업의 비영리 활동이 단순한 사회적 기여에만 그치고 기업에는 비용으로만 남아서는 불가능하다. 반드시 기업 본업의 핵심 영역에서의 정당성 확보가 기업의 성과와 생존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메커니즘이 확보돼야 지속가능한데 이 딜레마를 해결해준 것이 바로 21세기형 창조경영이다. 창조경영은 기존 시장 내에서 경쟁에서 이겨서 수익을 창출하려던 전통적 제로섬 게임의 관점을 넘어서서 창조적 혁신을 통해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창조해서 경쟁우위를 달성하는 21세기형 경영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창조경영과의 결합된 CSV에서도 기업들이 자기 본업 영역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들을 창조적 혁신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사회적 기여와 본업에서의 성과를 동시에 달성하자는 것이다.

 

21세기형 창조경영과 결합된 CSV 관점에서 보면 전체 사회가 바로 잠재 고객이다. 즉 창조경영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은 미래지향적 개념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회의 모든 영역, 자신들과 관련된 모든 사회문제, 모든 사람들이 기업들의 잠재 고객이라고 보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CSV 관점에서는 과거의 비고객을 고객으로 새롭게 보게 된다. 대표적으로 고 프라할라드(C.K. Prahalad) 교수의 BOP(Bottom of Pyramid) 개념이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기업들이 전통적으로는 전혀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던 소득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존재하는 70%의 인구들도 훌륭한 미래 고객이 될 수 있으며 이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면 전체 시장도 늘어나고 사회의 빈곤 문제도 해결될 뿐 아니라 기업에는 엄청난 성과창출과 성장의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를 창조적 혁신을 통해 해결하면서 동시에 기업도 급성장한 대표적 사례로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혁신 기업 중 하나인 인도의 Vortex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Vortex 3M처럼 혁신을 모토로 하는 기업으로 12억 인도 인구 모두에게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비전으로 수립했다. 인도 인구의 약 80%가 은행 서비스를 못 받고 있기 때문인데 이들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속한 사람들은 저축할 돈이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외진 지역에 살며 대부분 문맹이었다. 비참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빈민층들이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도록 하려면 저축이나 대출 등 금융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한데 문제는 은행들이 이들을 고객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거주하는 외진 지역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은행을 세울 인센티브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Vortex는 은행지점 대신 모든 인도 빈민마을에 현금입출금기를 설치하겠다는 대안을 도출했는데 이번에는 전기공급이 안 되는 지역이 대부분이어서 벽에 부딪혔다. 더구나 그 지역 거주자들이 대부분 문맹이라 일반적인 현금입출금기 화면에 나오는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이 난관을 창조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Vortex는 전기도 필요 없고, 문맹도 쓸 수 있는 입출금기를 새로 개발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문맹 인구들을 위해 자판을 모두 그림으로 대체해서 화면에 손바닥만 찍으면 신원이 확인되게 했다. 또 전기공급이 없어서 발생하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반 현금입출금기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부분인 지폐를 아래서 위로 쳐서 올라가게 만드는 모터를 제거하고 대신 현금입출금기 윗부분에 지폐보관공간을 설치해 중력의 힘으로 모터 없이 돈이 떨어지게 하는 절전낙하형 지폐 출납방식을 개발했다. 여기에 여전히 약간의 전기가 필요한 것은 자동 충전되는 태양열 전지로 해결했다. 창조적 혁신을 통해 개발된 이 새로운 현금입출납기를 실제로 인도 전역에 보급해서 빈곤 타파에 엄청난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Vortex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CSV를 통해 사회적 문제 해결과 기업 성장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 글로벌 기업들의 최근 추세도 마찬가지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기업인 GE환경친화적 상상력(Ecomagination)’이라는 비전을 중심으로 인류공동체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인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익성 높은 기존 사업들을 대부분 버리고 친환경, 물정수, 신재생 에너지 등 환경 관련 분야로 핵심 사업을 변경했다. 또한 세계 최고 화공기업인 Dow ‘Breakthroughs to World Challenge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환경, 보건, 안전, 식량, 물 등 인류가 당면한 다섯 가지 핵심 문제영역에서 2015년까지 세 가지 혁신적 돌파구를 마련해 이를 Dow의 미래 핵심 사업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또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가 최근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고졸자들을 특별 채용했다. 원래 계획은 사회기여 차원에서 150명 정도의 고졸자를 채용하려고 했는데 지원자들을 보니 정규 채용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출중한 인재들이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사회기여보다는 인재발굴에 초점을 맞춰 고졸자 특채 인원을 700명으로 늘렸는데 그 결과 선발된 사람들은 정규 채용으로 뽑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우수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단지 고졸이기 때문에 뽑히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고졸자 특별 채용을 통해 삼성전자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라는 사회적 목적과 우수 인재발굴이라는 비즈니스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한 CSV를 실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장품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유방암 등과 같은 여성 질환 연구에 대규모 지원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사의 주고객들인 여성의 건강과 미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할 수 있어서 경쟁력도 강화시킨다. 이런 것이 모두 넓은 의미에서 CSV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문제 해결과 새로운 미래 창조의 동시 추구가 필요하다

CSV는 사회적 가치와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가 동시에 달성될 수 있는 창조적 모델이 제시돼야 기업들의 비영리 사회기여 활동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해결책은 결국 기업의 핵심 사업 영역 내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인 동시에 신성장 전략이 되도록 만드는 창조경영이며 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 가치가 동시에 극대화되는 양수겸장 접근이다. 21세기 창조경영과 결합된 CSV는 기업들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경제적 성과와 경쟁력을 달성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직이나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변화와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려는 변화다. 이 두 가지 변화는 서로 다른 원리를 가지고 있다. 현재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은 기존 패러다임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높이려는 단기적 시도인 데 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행동은 존재하지 않던 경쟁우위의 기반을 창조하려는 장기적 전략이다. 따라서 모든 조직이나 사회는 이 두 가지 변화를 항상 동시에 시도해야 하나 대부분은 기존 패러다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단기적 접근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추구는 불확실성과 실패 위험이 높고 또 성공하더라도 이익은 장기적으로 실현되는 반면 현재 패러다임의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은 불확실성과 실패의 위험이 낮고, 또 이익이 단기간에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많은 조직이나 사회가 현재 문제의 해결에만 몰두하는 근시안적 변화의 덫에 빠져 몰락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경제민주화 공약들은 양극화 해소, 복지확대 등 지난 20여 년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결과 발생한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문제의 해결과 새로운 미래의 창조는 반드시 동시에 제시돼야 할 경제의 두 바퀴로서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CSV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창조적 혁신을 통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달성되도록 만드는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경제민주화가 일시적 구호가 아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운용원칙으로 자리잡을 수 있느냐를 결정할 것이다.

 

 

신동엽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등 유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경제민주화의 전제조건은 분배를 하기 위한 부를 성장을 통해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무한경쟁의 폐해를 막기 위해 이제는 과거의 한정된 부를 놓고 다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지금까지 없던 가치를 새로 만들어내는 창조경영형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으로 지난 세기에 유행했던 CP(Corporate Philanthropy) 21세기에는 Creating Shared Value(CSV)가 대체하고 있듯이 경제민주화 역시 창조적 혁신을 통해 현재의 문제해결과 새로운 미래의 창조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dshin@donga.com

신동엽교수는 연시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등 유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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