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종합

CSV 장착한 자본주의 5.0이 답이다

122호 (2013년 2월 Issue 1)

 

 

편집자주

이 논문은 전문경영인연구 제15권 제3(통권 제32) 2012 12(pp. 23-48)에 게재된 “자본주의5.0시대의 경제민주화”를 일반대중에게 전파할 목적으로 저자의 동의를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두 가지 견해

헌법 1191  2항에 명시돼 있는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하지만 정책개발자들 간에 벌이는 토론에서 논점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있다. 찬반으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논쟁도 찾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어느 당이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 알 방법이 없어 혼란스럽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보니경제민주화를 이루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문제점을 극복해서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대안도 서로 다른 축에서 찾으려 하는 등 엇박자가 생긴 것이다.

 

보수진영은 경제민주화를 119 1항에 명시된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제질서, 즉 시장경제에 대한 보완적인 수단으로 인식한다. 이는 시장경제를 채택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민주적이지 못한 경제, 즉 경제적 평등2 이 깨지고 그 결과 소득 분배가 적정하게 이뤄지지 않는 문제, 즉 국민 간의 소득 격차가 발생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는 이와 같이 불평등한 경제를 시장경제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기 때문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으로 헌법 119 1항이 규정한 시장경제체제는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 대신 시장경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불평등한 경제를 해소하기 위해 주로 재정과 복지에서 사후적인 정책대안을 찾는다. 다시 말해 보수진영은 경제민주화를 국민 간의 소득격차 해소와 같은 것으로 보고 이미 발생한 소득격차를 국민이 소득을 수령하기 전에 줄여주는 재정정책, 국민이 이미 수령한 소득에서 발생한 격차를 다양한 복지수단으로 보완해주는 정책을 선호한다.

 

진보진영은 경제민주화를 시장경제와 대립적인 개념으로 인식한다. 시장경제와 경제민주화는 동시에 추구해야 하고,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 즉 두 가지 목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 결과, 진보진영은 불평등한 경제를 시장경제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지 않고 불평등한 경제가 원천적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시장경제를 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보수정책이 선택하는 재정정책과 복지정책을 쓰기 이전에 원천적인 대안으로 시장경제체제를 수정하는 정책을 선호한다. 시장경제는 부가가치 창출과 분배 메커니즘이고, 그 메커니즘은 기업, 가계, 정부로 구성된 경제 주체로 구성돼 있다. 진보진영은 불평등한 경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기업, 특히 재벌그룹으로 지칭되는 대기업을 지목하고 이들의 활동을 부가가치 창출 이전에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규제정책을 선호한다. 다시 말해서 진보진영은 국민 간 소득격차의 원인을 대기업의 시장 왜곡과 경제력 남용, 즉 한국 경제에 대한 재벌지배 문제로 해석하고 상호출자나 순환출자, 일감 몰아주기와 같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 관행은 원천적으로 불법화해야 하며, 여기서 더 나아가 금산분리, 독과점 규제, 출자총액 제한과 같은 부가가치 창출 이전 단계에 대한 산업적 규제에서 정책대안을 찾는다.

 

 

 

경제민주화의 개념

경제민주화에 대한 두 가지 대립하는 견해 중 어는 것이 맞는가를 이해하려면 경제민주화의 개념부터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경제민주화를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경제활동을 국민이 주도함’, 다시 말해서국민이 경제활동의 주체가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활동과 주체에 대한 해석에 따라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달라진다. 2300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가 가졌던 지혜를 빌려서 경제민주화를 제각기 다른 기준을 가진 다양한 학문으로 접근해보자.

 

경영학적 접근

주로 기업 내부를 연구하는 경영학자들은 기업을 통해 경제활동을 바라보고 지배구조라는 틀로 기업주체를 연구한다. 따라서 경영학에서는 경제민주화를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한다. 하나는 자본주의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주주자본주의(stockholder capitalism, 또는 shareholder capitalism)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표방하는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이해관계자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우리나라는 미국형 주주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나라 중 하나다. 다만 미국의 주주자본주의에서는 주주가 아닌 전문경영자가 경영권이 없는 일반 주주의 권익을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우리나라 대기업, 특히 재벌그룹에서는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와 경영권이 없는 소액주주 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기업지배구조는 주주-경영자(stockholder versus manager) 간의 갈등구조이고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는 소액주주-지배주주경영자(minority stockholder versus dominant stockholding manager) 간의 갈등구조다.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를 지배주주자본주의(dominant stockholder capitalism), 또는 지배주주경영자를 뜻하는 세속적인오너라는 용어를 빌려 오너 자본주의(owner capitalism)라고 부르기도 한다.3

 

경영학계에는 현실주의적 경영학자들과 이상주의적 경영학자들이 공존한다. (그림1) 현실주의적 경영학자들은 경제민주화를 존재하지 않는 허구로 보거나 존재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사치스런 발상이라고 본다. 재벌그룹 계열사들이 과감한 기술투자와 시장개척을 통해 세계기업이 된 성과를 높이 평가해줘야 하고 이런 성과 뒤에는 장기적인 비전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창업자와 가족으로 구성된 지배주주경영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이 괄목상대할 성과를 가져온 지배주주경영자들이 경영권을 계속 행사해야 한국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이 유지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재벌그룹 계열사 간의 상호출자, 순환출자,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주의적 경영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이상주의적 경영학자들은 왜곡된 지배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경쟁력은 오래 갈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이론과 현실이 일치되는 곳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반론을 편다. 이들은 한국 기업이 최고경영자 위험(CEO risk)을 회피하고 견제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최고경영자 위험이란 재벌그룹의 궁극적 CEO인 재벌 창업자와 그 일가가 가진 무소불위의 의사결정능력에 따른 탈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보이는 행태가 사회에 노출됐을 때 해당 기업이 처할 수 있는 위험이다.4 구체적으로는 경영권의 혈연가족 승계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 등의 변칙적 경영관행,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한 전문경영자 매수 및 충성 강요, 그리고 문제가 터졌을 때 이를 무마하기 위해 평소 권력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행위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들이 보는 한국의 경제민주화는지배주주경영자의 횡포를 견제하고 독재를 방지하는 기업지배구조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상주의적인 경영학자들은 다시 보수적인 경영학자와 진보적인 경영학자로 나뉜다. 보수적인 경영학자는 한국의 지배주주자본주의를 순수한 미국형 주주자본주의으로 복원하자는 제안을 하고 진보적인 경영학자는 아예 유럽형 이해관계자자본주의로 바꾸자는 대안을 제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궁극적인 기업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석에서 차이는 있지만 경제민주화를 인정하는 보수파 및 진보파 경영학자들은 상호출자, 순환출자와 같이 지배주주경영자의 경영권을 실제 지분 이상으로 부풀려주는 관행을 규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경제학적 접근

시장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기업을 정부, 가계와 더불어 시장을 구성하는 요소로 보고 기업 내부보다는 기업 외부, 즉 기업과 시장 간의 관계를 연구 주제로 삼는다. 그 결과 시장을 구성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중시한다. 구체적으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방식을 놓고 보수파 학자와 진보파 학자 간에 의견이 나뉜다. 전자는 시장 메커니즘 틀 속에서 이뤄지는 중소기업에 대한 간접 지원만을 용인하고 있고, 후자는 적극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을 주장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감세혜택이나 금융지원과 같은 재정금융정책은 보수파의 정책대안이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채택했던출자총액 제한’, 김영삼 정부가 채택했던업종 전문화’, 노무현 정부가 시도한소중대기업 상생협력’,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포함한동반성장과 같은 산업정책은 진보파의 정책대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대기업을 규제하는 산업조직을 만들기 위한 정책대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부가가치 창출 프로세스를 기준으로 해 사전, 과정, 사후라는 세 가지 범주로 나눠 정책대안을 살펴보자. (그림 2)

 

 부가가치 창출 프로세스의 왜곡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표적인 사전적 정책 수단으로는 재벌그룹의 지나친 다각화와 시장지배력 확대를 배제하기 위해 1987년에 시작해 채택과 폐기를 반복했다가 지금은 없어진 대기업 집단에 대한출자총액 제한정책을 들 수 있다. 다른 사전적 정책으로 1995년에 채택됐던대기업집단의 업종 전문화정책이 있는데 이는 재벌그룹당 신규 사업영역을 3개로 제한해 재벌그룹의 다각화를 막아보려는 조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제도를 통해 재벌그룹이 3개의 신규 산업에 경쟁 없이 진출하는 것을 정부가 공인하고 조장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부가가치 창출 프로세스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과정적 정책 수단으로는 노무현 정부에서 시도한소중대기업 상생협력과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 근절과 같은동반성장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현장에서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경영 프로세스를 미시적으로 파악해서 이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동반성장 정책이 근절하려는 타깃으로 삼은일감 몰아주기만 해도 (기존 외부 납품기업으로 구성된) 시장과 (일감을 몰아주는 기업의 지배주주경영자 가족이 배타적인 지분을 가진, 따라서 실질적으로 내부기업이나 다름없는) 기업 간의 비대칭적 정보접근능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시장보다 기업이 우월하다는 코스(Roland Coase)와 윌리엄슨(Oliver E. Williamson)의 기업 존재 논리5 를 증명하는 보편적 사례로 볼 수도 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기업의 전방 통합(backward integration)이라 부르며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한 정당한 전략수단으로 본다.

 

일감 몰아주기는 납품가격을 상승시킬 수도 있고 하락시킬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냐에 따라 사회적 비용이 다르게 발생하기 때문에 두 경우를 따로 보아야 한다. 우선 납품가격이 높아지는 경우에는 기업지배구조 문제가 발생한다. 즉 일감을 몰아주는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거래를 성사시킨 기존 납품업자와의 계약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일감을 몰아받는 기업과 계약을 하는 경우 그만큼 일감 몰아주는 기업에 손해를 입힌다. 이 경우에는 (납품가격이 높아진 데서 오는 이익감소를 흡수해야 하는) 소액주주와 (일감을 몰아받는 기업의 이익증가를 통해 그 기업의 배타적인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경영자 가족의 지분가치가 높아진) 지배주주경영자 간의 갈등을 가져오는 기업지배구조 문제가 된다. 따라서 납품가격을 높이는 일감 몰아주기는 공정거래법이 불법으로 규정한 잘못된 관행이다.

 

납품가격이 낮아지는 경우에는 기업지배구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납품가격이 낮아진 만큼 소액주주와 지배주주경영자는 지분에 따라 비례적으로 이익을 배분받기 때문이다. 물론 지배주주경영자는 가족이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납품기업을 통해 기업가치 상승을 통한 기업 외적 이익을 얻지만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큰 문제를 삼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관행은 산업생태계 차원에서의 문제를 제기한다. 즉 기업이 가격효율성과 품질을 명분으로 전방 통합을 극단적으로 계속하게 되면 납품체계 사슬이 무너져서 그 산업에 존재하던 경쟁적인 생태계가 취약해진다. 이것은 일감을 몰아주는 기업을 포함한 전 산업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한 정부 규제기관은 일감 몰아주기가 사안별로 납품가격을 높이는지 낮추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기업 간의 납품계약은 가격뿐 아니라 가격지불 방법과 시점, 제품 품질, 하자 보증, 납기, 인도 조건, 장기거래 가능성, 그리고 납품기업의 신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준에 의해 좌우되는 종합적인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일감 몰아주기가 가격을 높였는지 낮췄는지에 대한 판단을 필요로 하는 규제정책은 시장 메커니즘을 간섭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정부가 시도할 수 있는 과정적 정책은 기업 간의 거래에 대한 사회적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다.실질적으로 공개적이고 투명한 입찰을 거친 기업 간 거래에 대해서는 국세청의 감사를 면제하고 거래세를 감액해주고, 실질적으로 그러한 관행을 확립하지 못한 기업에 대해서는 상시 감사와 고율의 거래세를 부과해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가격을 높이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를 저지른 기업에는 과거 5년간 거래에 대한 정밀감사를 통해 발견한 모든 위반행위에 중과세를 부과하는 사후적 정책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부가가치 창출 프로세스가 완료된 다음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사후적 정책수단으로는 이명박 정부에서 잠시 시도했던이익공유제나 급진적 학자들이 주장하는재벌 해체라는 극단적인 정책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두 정책은 모두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서 이를 해소하는 대안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몰락이라는 현상을 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대증요법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이익공유제가 채택되거나 재벌이 해체된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적으로 활동을 한 결과 대기업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반면 중소기업 몰락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면 중소기업이 몰락한 원인을 찾은 다음 이를 해소함으로써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약한 원인은 경쟁이 일어나는 시장조건의 불균형에 있다. 기업이 생산, 좀 더 엄밀하게 표현해서 부가가치 창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생산에 필요한 투입요소(input factor)를 시장에서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투입요소에는 자본과 인력, 그리고 정부정책이 있다.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자본시장에서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필요자금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대기업은 높은 신용수준을 바탕으로 낮은 이자를 적용받고 중소기업은 신용수준이 낮은 만큼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선진금융기업들이 가진 기업신용 평가능력을 충분히 쌓지 못했기 때문에 대기업에는 무차별적인 자금지원을 하고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흑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자금지원을 제한하거나 자금지원을 하더라도 담보금융이나 최고경영자의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은 필요 이상으로 고금리에 허덕이고, 특히 영세기업의 경우에는 제도금융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인력 역시 중소기업에는 넘지 못할 산이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은 근무조건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회피하는 고질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 또 중소기업이 어렵게 키워놓은 기술인력은 대기업에서 손짓만 하면 당장 달려간다. 물론 능력을 갖춘 중소기업 근무자가 대기업으로 이동하거나 대기업 인력을 중소기업이 파격적인 승진과 연봉을 주는 조건으로 끌어가는 현상은 인력의 이동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만 대기업이 가진 힘을 이용해서 관련 산업의 독점적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의 핵심인력을 뽑아감으로써 해당 중소기업의 사업기반을 붕괴시키는 현상은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정부의 정책 역시 기업으로서는 투입요소다. 정부는 재정, 금융, 행정. 정보, 보증으로 구성된 지원정책을 통해 기업을 지원하기도 하고 사업에 대한 인허가를 비롯해서 건강, 보건, 안전, 환경 등에 대한 규제정책을 통해 기업을 규제하기도 한다. 특히 규제라는 장애물은 중소기업의 시장경쟁을 제약하는 조건으로 등장한다. 정부규제가 기업 규모에 따라 비례적으로 규제라는 부담을 준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차별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규제는 절대적 기준으로 이뤄져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키다리 대기업에는 전혀 제약조건이 안 되는 반면 난쟁이 중소기업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된다.

 

이렇듯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자금, 인력, 정부정책이라는 투입요소에 대한 경쟁적 시장조건을 갖추지 못한 채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그 결과 제품과 서비스로 구성된 완제품시장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열세에 처하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이렇듯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지는 가장 큰 이유는 생산과정이 아니라 그 이전 과정인 생산요소 시장에서의 불균형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이익공유제는 원인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처참하게 진 결과만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즉 대기업이 올린 이익에서 일부를 중소기업에 제공함으로써 양자 간의 경제적 평등을 사후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익을 올린 다음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초과이익을 거뒀다는 지탄을 받고 이를 벌금 바치듯 중소기업에 넘기는 어리석은 대기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기업은 그런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부가가치 창출 활동을 우리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 이익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회계 조작을 통해 명목적 이익규모를 줄이거나,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켜서 실제 이익을 줄이거나, 극단적으로는 부가가치 창출활동 자체에 대한 노력을 포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을 길들이려다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하게 된다. 이렇듯 이익공유제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하는 기업의 생리를 너무나도 파악하지 못한 유치한 발상이고 시장경제의 근간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위험한 정책이다.

 

재벌해체는 찬반논쟁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책대안이다. 재벌해체에 대한 찬성론자는 경제정의에 입각해서 지배주주경영자인 재벌총수가 가진 만큼만의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반대론자는 경제효율성에 입각해서 재벌총수가 기업의 소유경영자로서 창업자정신(entrepreneurship)을 발휘하려면 충분한 지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에 대한 정답은 쉽게 내기 어렵지만 패러다임을 바꿔보면 오히려 쉽게 풀릴 수도 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경제사에는 빠짐없이 재벌그룹이 등장한다. 이들은 국가가 산업화, 즉 후진국에서 개도국,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대규모 시설 투자를 위한 자본집적 수단이었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재벌그룹은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모든 선진국은 자본이라는 제약조건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갖추는 과정을 겪었고 산업화 초기에 독점에 친숙했던 재벌그룹은 경쟁력을 가진 단위기업으로 분화됐다. 반면에 이런 변신을 이루지 못한 재벌그룹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지금 선진국 중 창업자 가족이 지배하면서 국가적으로 독점적인 힘을 행사하는 재벌이 남아 있는 나라는 없다. 반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직 선진화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창업자와 그 가족이 지배하는 재벌이 그대로 존속하면서 국가경제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선진화하는 과정에서 재벌그룹이 정부라는 권력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한 독점체제를 포기하고 경쟁력을 갖추면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뒤안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재벌해체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벌이 해체되는 과정이다. 재벌에 대한 대안이 없이 시도하는 재벌해체는 단기적으로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회학적 접근

사회를 연구단위로 삼는 사회학자들은 사회가치와 사회정의를 가장 큰 덕목으로 내세운다. 그 결과 국민소득 분포, 즉 부익부빈익빈의 배제를 위한 사전적 기회 평등과 사후적 소득 평준화를 사회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보고 이를 통한 사회정의 달성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내세운다. 실업문제 역시 사회 가치와 정의를 해치는 심각한 과제다. 소득격차와 실업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사회 양극화(Social Divide)를 초래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 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방향, 즉 소득격차 해소를 위한부자세를 포함해서양성평등, 육아, 사교육등의 노력과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공공사업활성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취업 장려금 지급, 실업자 카운슬링, 구직 멘토링등의 사회, 심리적 대책을 제시한다.

 

 

 

 

 

행정학 및 기업사적 접근

정부가 연구단위인 행정학에서는 정부가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의 민주화, 즉 공기업의 민영화와 민유화(民有化)가 화두가 된다. 이는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구분해 정부의 고유역할을 찾도록 하려는 학문적 성격이 반영된 결과다. 사실 현대사회의 민주화가 이뤄진 배경을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에서 찾는다면 정부가 장악하던 권력을 국민이 되찾는다는 점에서 공기업의 민영화와 민유화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취지에 가장 들어맞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재벌해체라는 대안이 사기업에 대한 정부역할의 강화, 그리고 재벌해체 결과가 금융기관을 비롯한 재벌그룹 계열사의 정부지배, 정부소유로 귀결될 경우에는 사기업의 공영화와 국유화라는 모순되는 효과를 낳게 된다. 이를 기업사적 시각에서 살펴보자. 재벌그룹이 1960∼1970년대에 태동하고 1980∼1990년대에 발전할 때만해도 재벌그룹은 정부가 부여하고 국민이 기대했던 국민기업으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온 이후 재벌그룹은 2세 상속의 과정을 완료하면서 사기업으로 모습이 변하고 이 과정에서 탈법승계와 같이 국민정서에 반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소위 국민들의 정서법에 편승해서 강력한 재벌규제 조치를 취했고 재벌의 공영화, 재벌해체라는 재벌의 국유화에까지 이를 수 있는 극단적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실천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문에 대한 분류작업을 한 이후 인간의 삶은 다양한 학문에 의해 제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됐다. 경제민주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경제민주화를 경영학으로 풀면 기업 내부의 지배구조 문제가 되고, 경제학으로 풀면 대중소기업 간의 산업구조 문제가 된다. 사회학으로 풀면 빈부격차 문제가 되고, 행정학과 기업사로 풀면 다소 엉뚱하게도 재벌그룹의 국민기업화가 이슈로 떠오른다. 이같이 경제민주화라는 하나의 이슈가 이에 대한 분석수단으로 선택하게 되는 학문의 성격에 따라 네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는 상황 때문에 정책개발자도 자신의 전공영역에 따라 제각기 다른 해법을 내세우게 된다. 물론 모든 해법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제각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양한 해법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우리는 중요성과 시급성을 따지게 된다.

 

해법 선택의 첫 번째 기준인중요성원칙은 문제점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관계를 파악해서 근본이 되는 원인을 해소하는 대안을 먼저 실시하는 것이다. 이는 상류의 물을 정화하면 하류 물이 자연적으로 깨끗해지는 것과 같은 논리다. 논의의 출발점으로인간은 종족유지라는 본능을 가진 동물이라는 생물학과 인류학적 추론을 전제로 하자. 이때 위에서 거론한 네 가지 이슈 중에 가장 먼저 발생하는 이슈는 기업의 지배구조라는 경영학적 과제다. 재벌총수는 동물적 본능에 입각해서 경영권을 가족에게 상속시켜주고자 한다. 그 결과 일감 몰아주기와 같이 소액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통한 변칙상속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경영학적인 지배구조 문제가 발생한다. 일감 몰아주기가 발생한 결과 재벌그룹의 경제지배력은 점점 높아지고6 일감을 뺏긴 하청 기업, 특히 재하청, 재재하청에 의존하던 중소기업이 몰락하며, 그 밑의 영세업자는 실업자가 되는 대중소기업 간의 산업구조 문제가 발생했다. 또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격차와 실업률 상승은 사회학적으로 치유해야 하는 문제로 등장했다. 경영, 경제, 사회적 문제 저변에는 재벌그룹에 대해 정부와 국민이 기억하고 있는 기업사적 시각이 있고 재벌그룹에 대한 인식과 재벌총수가 보이는 행태가 충돌하면서 행정학적 문제가 발생했다. 따라서 중요성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림 3>에 나타난 바와 같이 (생물학/인류학)→기업사/행정학경영학경제학사회학의 순서로 우선순위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해법 선택의 두 번째 기준인시급성원칙은 시간이 지나면 실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해법부터 실시하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당은 아무리 정책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바람직해도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아 정권을 창출하지 못하면 만사휴이(萬事携貳)가 된다. 따라서 사회학적인 문제, 즉 소득격차와 실업률이야말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정당이 해소해야 하는 첫째 과제다. 경제학적인 대중소기업 간의 산업구조 건전화는 소득격차와 실업률을 상당 부분 해소해주는 근본적인 정책이지만 응급대책은 아니다. 국민들에게는 부자세 같은 세제정책과 실업자에 대한 보편적 복지정책이 효과가 더 높다. 대주주 경영자의 전횡을 막는 지배구조 채택과 같은 경영학적인 접근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시급성에서는 뒤떨어지는 정책이다. 행정학적, 기업사적 접근은 근원적인 이슈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해결이 돼야 할 과제이지만 국민의 정서법에 의존하지 않는 한 선거를 앞두고 선택할 정책은 아니다. 따라서 시급성만 가지고 정책대안 간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면 중요성에서 본 우선순위와 정반대로 <그림 4>에서 보듯이 사회학경제학경영학행정학/기업사생물학/인류학의 순서가 된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치가의 판단

그럼 중요성과 시급성이라는 두 가지 정책 우선순위의 기준을 두고 정치가라면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 성향에 따라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가와 현실을 강조하는 정치가가 있다. 이때 전자는 중요성을, 후자는 시급성을 따질 듯하다. 다만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가보다는 현실을 추구하는 정치가가 압도적으로 많을 듯하고 그 이유는 유권자의 수준과 관련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외도 존재한다. 일례로 1865년 영국 런던에서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나는 국가와 인류의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겠고 우리 지역에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입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유권자는 압도적인 지지로 화답했다.

 

정치가는 머리를 하늘로, 다리를 땅으로 향하는 존재다. 모든 정치가는 이상적인 중요성과 현실적인 시급성을 적절히 조합해야 한다. 조합의 비율이 그 정치가의 철학과 성향을 결정한다. 다만 선거를 앞둔 정치가는 자신의 철학 및 성향에 관계없이 공통적인 행태를 나타낸다. 즉 선거까지는 시급성을 강조하고 중요성을 배경에 까는 성향을 보인다. 그러나 진정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가라면 선거에 승리한 다음을 위해서 중요성을 전제로 한 정책집행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치가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선거에 이긴 다음 해야 할 것을 준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가는 시급성 기준에 따라 세제정책과 복지정책을 앞에 내세워서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확실히 하되 중요성 기준에 따른 기업지배구조와 산업정책을 배경에 깔아서 자신의 철학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는 선거공약을 내세워야 한다. 그후 선거에 이기고 나서 집권한 다음에는 배경에 깔아뒀던 중요성 기준에 따른 재벌그룹 지배구조 개혁과 같은 경영학적 해법,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등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시장조건 형성과 같은 경제학적 해법을 실천해 기업사와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벌그룹을 이끌어가야 한다.7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다섯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 등장한 선거공약과 선거 이후에 채택된 정책을 보면 같은 양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자신의 철학에 입각한 중요성과 시급성에 대한 판단 없이 오로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정책 대안을 총동원해서 승리한 다음에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책과 중소기업경쟁력강화 방안과 같은 근본적 해법을 실천하지 못한 채 보편적 복지와 같은 대증요법에만 의존했다.그 결과 2013년의 복지예산은 100조 원을 돌파해 국방비와 교육비를 합친 것보다 더 커진 반면 경제민주화에 대한 경영학적, 그리고 경제학적 문제는 계속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현명한 국민은 정치가들의 정책에 중요성과 시급성의 조화가 이뤄져 있는지에 대해 점검하고 판단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선택된 차기 대통령은 자유경제라는 이상을 핵심가치로 추구하되 경제민주화라는 국민의 열망, 즉 모든 국민이 평등한 기회를 가지고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는 의지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도록 5년간 국가를 잘 이끌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5가지 유형

기업경영자는 국민이나 대통령후보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 후보만 잘 판단하면 되고 대통령 후보는 국민의 현명함을 잘 판단하면 되지만 기업경영자는 국민의 성향변화와 대통령 후보의 자질을 모두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후보들의 수준과 함께 국민들의 현명함이 결합돼 나타날 것이므로 기업경영자는 두 가지 그룹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새로운 경제질서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미래지향적, 선도적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더 빠른 성장을 한다. 이제 앞으로 성공기업의 조건에 하나 더 추가할 조항은 원칙에 충실한 경영, 사회의 근본적 기대를 충족하는 기업이다. 그러면 사회의 기대를 충족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1917년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이 주도한 러시아 대혁명에서 시작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USSR) 1991년 고르바초프(Mikhail Sergeyevich Gorbachef, 1931∼) 시대에 와서 해체되기까지 20세기 100년 중 70여 년간 자본주의와 함께 세계를 양분했던 공산주의는 21세기에 들어오기도 전에 종언을 고했다. 반면 1776년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가 저술한 국부론을 시발점으로 한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지난 250여 년간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기간 동안 자본주의는 네 차례 변화를 통해 그때그때의 사회에 적응하면서 세계경제는 물론 정치, 문화,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쳐왔다. 이 네 번의 변화에 의해 나타난 다섯 가지 모습의 자본주의에 1.0에서 5.0까지 숫자를 붙여보자.

 

자본주의 1.0에 해당하는 초기 자본주의는 1776년부터 1929년 미국 대공황까지다. 이 당시 자본주의는 자유방임(laissez-faire),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작동되는 시장이 우리가 가진 제한된 자원을 배분해 최선의 성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을 전제로, 정부 간섭을 일체 배제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산업혁명을 선도해 경제대국이 된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한 초기 자본주의에 입각한 자유무역주의는 1860년대 이후 독일, 미국, 일본 등 후발주자들이 주장한 유치산업보호(protection of infantile industries)를 위한 보호무역주의로부터 도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다시 세계무역질서를 자유무역주의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고전자본주의(classic capitalism)라고도 불리는 초기 자본주의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 두 가지, 즉 경쟁심과 탐욕을 기반으로 했다. 사회학자인 베버(Maximilian Karl Emil “Max” Weber, 1864∼1920)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윤리(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1905)>에서 이익 추구와 그로 인한 자본축적을 도덕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초기자본주의를 복원시켜줄 것으로 기대됐던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자유시장에 입각한 초기 자본주의는 한계를 나타냈다. 1917년 제정러시아가 무너지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 미국에서 전국적인 노동조합이 활성화되면서 전 세계 노동자들의 힘이 계속 커졌고 민주주의가 확산돼 과거 식민지가 속속 독립을 하고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확산되는 민주화 현상으로 인해 세계경제는 더 이상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됐다.

 

자본주의 2.0으로 불리는 두 번째 자본주의는 미국이 대공황에 빠진 1929, 그리고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1931년에 시작돼 1970년대 말까지 약 50년간 진행됐다. 이 당시 영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한 결과 세계경제에서 주도권을 상실했다. 반면 미국은 불황에 빠진 경제를 부흥하기 위해 대대적인 정부개입 정책을 채택했다. 그 당시 대표적인 정책이 1933년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에 의해 주도된 뉴딜(New Deal) 정책이었고, 그 일환으로 미국 전역에서 대형 인프라를 건설하는 공공사업이 시작됐다.8 미국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그후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라는 걸출한 경제학자에 의해 이론으로 정교화됐다. 케인스는 1936년 발간된 <고용, 이자 및 화폐 간의 관계에 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불완전 고용상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유효수요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존 자본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을 가했다는 의미에서 이 당시 자본주의를 수정자본주의라고도 부른다. 미국 정부는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Theory of effective demand)에 입각해보이는 손(visible hand)’으로 경제에 깊숙이 간여하면서 시장 기능을 대폭 축소시켰다.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경제정책과 함께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국은 큰 땅과 많은 인구, 그리고 전쟁에서 연합군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방대한 생산능력을 구축해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슈퍼파워(Super Power)가 됐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기능에 과잉 의존하게 된 미국은 냉전체제를 지나치게 오래 끌고 가면서 베트남 전쟁을 시발점으로 전 세계 각지의 명분 없는 전쟁에 개입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고, 그 결과 막대한 재정적자를 발생시키는 동시에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됐다. 특히 1971년 금태환 중지선언과 1973년 석유위기는 물가상승과 실업률 증가가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가져왔다. 이제 자본주의 2.0이 존재감을 잃게 됨에 따라 세계는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3.0으로 불리는 세 번째 자본주의는 두 번째 시기에서 정부 관료들이 민간 부문의 자율적 기능을 침해하면서 재정적자를 비롯해 물가상승, 실업률 증가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 데 대한 국민들의 분노로 나타났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1979년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1925∼)가 이끄는 보수당이 집권했고 미국에서는 1980년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이 대통령으로 당선했다. 이 시대 지도자들은 시카고대 교수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9 과 그를 따르는 신고전학파 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통화량에 대한 조정을 통해 경제안정과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통화주의를 채택했다. 정부 개입을 지양하고 시장 역할을 복원하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소득세 인하, 공기업 민영화, 노조에 대한 강력한 대처 등을 통해 시장메커니즘을 복원했다. 그 결과 미국 증권시장을 선도로 전 세계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같은 1980년대에 개발된 인터넷을 기반으로 시작된 IT산업이 정보 혁명을 일으키면서 전 산업으로 파급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정보 혁명은 세계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다시 기업활동의 세계화를 촉진했다. 이제 한 나라에만 기반을 둔 기업들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디지털화, 세계화라는 대세 속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닷컴 회사10 를 창업하는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수많은 창업자들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창업자인 게이츠(William Henry “Bill” Gates III, 1955∼), 아마존닷컴(Amazon.com, Inc.) 창업자인 베조스(Jeffrey Preston “Jeff” Bezos, 1964∼), 오라클(Oracle Corporation) 창업자인 엘리슨(Lawrence Joseph “Larry” Ellison, 1944∼) 같은 신세대 영웅들이 나타나고 신산업, 신기술이 기존 산업, 기존 기술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시장 지배자가 되는 신화가 탄생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3.0을 신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화려하게 부활하는 모습을 본 동독 국민들과 소련 국민들은 1989년과 1991년 각각 자국의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다. 이제 자본주의는 적대적 경쟁자가 사라진 가운데 거칠 것이 없는 절대적 가치가 됐다. 이렇게 긍정적인 결과를 영국 국민들은 대처리즘(Thacherim)으로 명명하며 대처 수상을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던 빅토리아 여왕에 견주었고 미국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워싱턴과 링컨 대통령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20세기 말의 사회상은 고전적인 자본주의 1.0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인터넷이 촉발한 디지털화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즉 디지털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실업자로 내몰았고 대기업을 공룡으로 만든 세계화는 여기 참여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을 몰락시키고 만 것이다. 이러한 갈등구조를 파악한 런던 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교수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 19983의 길(The Third Way)’이란 개념을 소개했다. 그 내용은 경제적 약자가 요구하는 복지사회를 경제적 강자가 추구하는 시장자본주의로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3.0’으로 지칭된 이 주장은천사모습을 한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여러 나라에서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11 한국에서도 뉴라이트 운동을 비롯해서 보수 성향을 가진 NGO들이 이 취지에 찬동했고 이명박정부도 이 노선을 채택했다.12

 

자본주의 4.0은 자본주의 3.0의 성공에서 배태됐다. 21세기 들어오면서 외부적으로 견제하거나 신경 쓸 대상이 없어진 자본주의 3.0이 균형과 절제라는 덕목을 잊어버리고 조화를 포기하면서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그 위기의 발원지는 제정로마, 프랑스 절대왕정을 비롯한 모든 절대주의 국가들이 그랬듯이 내부에서 발생했다. 절대적인 힘을 내세워 자본주의 3.0을 구가하던 미국이 절대적인 오만의 늪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끊임없이 성장해온 부동산 경기를 낙관한 미국 정부는 담보력 없는 서민들을 위해 부동산대출금융을 부동산 가치 이상으로 제공해줘 비우량 금융상품 판매를 용인했고 금융권 역시 부적절한 파생상품을 개발하고 이를폭탄 돌리기식으로 거래했다. 이러한 비상식적 관행은 결국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나타났고 미국 영향권 아래 있는 유럽을 포함한 수많은 국가들이 함께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엔론(Enron)을 비롯한 일부 대기업들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윤리관마저 상실한 채 불법적인 행위를 한 사례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그동안 경제를 이끌어왔던 가진 자들에 대한 비판이 2011년에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이라는 급진적 행동으로까지 나타나고 말았다. 금융권을 지배하는 세력을 공격하는 소외된 군중이 벌인 이 운동은 대중이 대거 동참하는 가운데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밀튼 프리드먼이 제시한 신자유주의, 즉 자본주의 3.0에 입각한 주주자본주의는 기업에 다양한 모습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버지니아대 교수 에드워드 프리먼(R. Edward Freeman, 1951∼)의 이해관계자자본주의로부터 도전받은 것이다.13 그는권한과 책임은 함께 간다. 사회적 권한을 가진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Power and responsibility go together. The firm with social power should have social responsibility)”고 말했다. 즉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조직이 가진 사회적 권력과 사회에 대한 책임은 동전의 앞뒤와 같이 등가관계라는 것이다. 1979년 대처리즘에서 시작돼 30년간 전성기를 구가하다 2008∼2009년 금융위기까지 지속된 자본주의 3.0에 대해 경제학자 칼레스키(Anatole Kaletsky, 1952∼) <신경제의 탄생(The Birth of a New Economy)>이라는 그의 저서에서따뜻한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통해 자본주의 3.0이 천사의 모습을 한 악인들의 포장술에 불과했고 1%에 불과한 악인들에 의해 지배되는 대기업들이 99%에 해당하는 서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에 거시경제에 입각한 금융규제를 강화하면서 대기업의 탐욕을 억제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요구했다.14 이제 사회는 대기업이 마지못해 제공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중을 근간으로 한 대중 자본주의(mass capitalism)적인 자본주의 4.0 운동은 구체적인 정책대안이 개발되지 못한 채 73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이제 자본주의 5.0이 등장할 조건이 갖춰진 듯하다. 사회적 전환기에 나타난 새로운 움직임이 포터(Michael E. Porter: 1947∼)와 크레이머(Mark Kramer)가 주창한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CSV)’이다(Porter & Kramer, 2011). 이 운동은 기업이 더 이상천사의 모습만 보이지 말고 사회를 마음속으로 영접하는 진실된 인간들이 중심이 돼천사의 마음을 가진 자본주의를 이끌어나가자는 것이다. 이 운동의 핵심가치는기업의 가치와 기업이 속한 사회의 가치를 동시에 증진하자는 것이고 이 운동의 기본전제는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업기회 중에는 반드시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이 있게 마련이라는 믿음이다. 드러커(Peter F. Drucker’ 1909∼2005)는 자본주의 변형이 논의되기도 전인 1970년대에 인간중심 자본주의(people-centered capitalism)라는 이상사회를 제시하면서오늘날 사회적이고 세계적인 모든 이슈는 숨겨진 사업기회이다(Every single social and global issue of today is a business opportunity in disguise)”는 표현으로 CSV의 도래를 예견했다.

 

최근 CSV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자본주의를자본주의 5.0’이라고 부르자. <그림 5>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1.0과 자본주의 2.0은 각각 오른편과 왼편에서 극단적으로 시장만능, 정부만능적 관점을 택했다. 자본주의 3.0과 자본주의 4.0은 각각 오른편과 왼편에 위치하고 있지만 기업과 사회 시각에서 자본주의 1.0 2.0보다 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유가치 창출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5.0은 이 스펙트럼의 한가운데에서 시장과 정부가 서로 조화로운 협력관계를 이루고 기업과 사회 역시 균형된 시각으로 서로에게 접근하는 모델이다. 미래를 지향하는 기업이라면 자본주의 5.0을 받아들여 기업가치와 사회가치를 조화롭게 발전시켜나가는 공유가치 창출을 핵심전략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5.0은 자본주의 3.0과 자본주의 4.0를 조화롭게 융합하는 가운데에서 나왔지만 그 내용인 공유가치 창출, CSV는 자본주의 2.0에 해당하는 CSR,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4.0에서 주장하는 CSV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2.0에 해당하는 CSR의 근거가 되는사회의 가치사슬이론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 즉 자연인과 기업, 즉 법인은인간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한 원천에 있어 사람과 법인은 다르다. <그림 6>에서 보듯이 사람의 인권은 민주주의사회가 받아들이는천부인권’, 즉 하늘이 준 반면 기업의 인권은 사람이 생존에 위협을 주는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사회가 구성원들 간의 질서 유지와 편의성 증대를 도모하기 위해 만든 법, 그중에서도 상법이 준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하늘에 대한 책임은 있을지언정 사회에 대한 책임, 사람의 사회적 책임은 가질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장 자크 루소(Jean Jack Rousseau)가 주장한 사회계약설이다. 만일 사람의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있다면 그것은 히틀러가 이끈 나치집단과 다름없다. 책임의 대상에 있어 기업은 인간과 다르다. 기업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제공해준 사회에 무한 책임이 있고 이를 우리는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 부른다.

 

먼 훗날 인간사회가 로봇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될 때 만일 로봇이 인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로봇을 인간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자본주의 1.0,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경구도 결국은 사회가 그렇게 지정했을 따름이다. 사회는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도록 허용했지만 그 이익을 사회에 관계없이 쓰거나 극단적으로 사회에 반하는 방법으로 쓰는 것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는 기업에 1차적으로 이익을 창조하게 한 다음 창조된 이익을 사회를 위해 쓰도록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익추구는 기업의 1차적 목적이자 사회가 기업을 통해서 얻고자 한 수단이고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궁극적 목적이자 사회가 기업을 통해서 추구하는 목적인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이익 간의 관계는 아시모프(Isaac Asimov) 1950년에 발간한 소설인 <아이로봇(I, Robot)>에서 로봇의 행동에 관한 3가지 원칙으로 명시돼 있다.

 

법칙 1.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 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다치도록 방관해서도 안 된다. (Law I - A robot may not injure a human being or, through inaction, allow a human being to come to harm.)

법칙 2.법칙 1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Law II - A robot must obey orders given it by human beings except where such orders would conflict with the First Law.)

법칙 3.법칙 1, 2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Law III - A robot must protect its own existence as long as such protection does not conflict with the First or Second Law.)

법칙 1 2를 지키지 않고 법칙 3만 지키는 로봇이 있다면 그 로봇은 파괴돼야 하는 것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이 있다면 사회는 그 기업을 해체해야 한다.

 

 

 

경제민주화 시대의 기업전략: ‘기업의 사회적책임(CSR)’공유가치 창출(CSV)’

여기서 잠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자본주의가 1880년대 JP 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1913)으로 대표되는 금융자본주의에서 1900년대 초반 이후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로 대표되는 기업자본주의로 본격화된 후 기업은 사회, 환경, 그리고 경제와 관련된 대부분의 부문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기관이 됐다.

 

기업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지만 이를 사회구성원과 공유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가치창출을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가장 중요한 소비자들이 가진 진정한 요구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그들의 장기적인 사회적 목표를 간과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발생하는 복잡미묘한 모든 요구를 다 감당할 수 없다고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기업들이 하나둘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사회로부터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사회에 대해 소극적인 기업들이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모습을 본 대기업은 다양한 사회적 공헌 활동을 실행했다. 그러나 기업이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갈수록 사회 역시 끊임없이 기업의 역할에 대한 기대 수준을 높여갔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잠재울 수 없었다. 그 결과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할수록 자발적인 기업의 사회적 공헌은 사회의 요구에 의한 사회적 책임으로 변질됐다.

 

그러나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올리는 매출액에서 10% 남짓한 금액에서 이 중에서 다시 1%에서 0.1%, 경우에 따라서는 0.01%도 안 되는 자금을 떼어내서 이를 사회적 목적에 쓰는 행위로 인식돼왔다. 그러다 보니 <그림 7>에서 보듯이 그 자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거나, 기업메세나와 같은 사회공헌활동을 직접 선정해서 자금을 제공하는자선활동으로 처리하거나, 기업 내부에 소수 인력을 배정해서 직접 사회봉사활동을 수행하면서 비용으로 처리하는 행위, 또는 구성원들이 직접 참가해 사회봉사활동을 수행하는사회봉사의 내부화활동으로 제한돼왔다.

 

이런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은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 효과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과 이에 따른 사회의 기대 수준에 비해 현저히 적었고, 그래서 사회가 기업에 대해 느끼는 갈증을 좀처럼 해소할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 CSV. 기업이 기업 스스로의 가치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과정을 뜻하는 CSV <그림 7>에서 보듯이 세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

 

첫째는피라미드 기저(Bottom-of-the-Pyramid·BOP)’라고 부르는 단계다. 전 세계에 걸쳐 연평균 소득 1500달러 이하의 빈곤층이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넘는 45억 명에 달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 유수 기업들은 빈곤층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빈곤층은 비록 소득은 적지만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마케팅을 통해 신제품 개발의 혜택을 받고 싶어 한다. 대기업들도 세계 인류의 태반을 차지하는 빈곤층이 구매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싸게 제품을 공급한다면 이들의 소비를 통해 사회가치와 기업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2007년 방글라데시에 있는 그라민은행(Grameen Bank)의 유누스(Muhammad Yunus, 1940∼) 총재가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이다. 사회적기업은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과 다를 바 없지만 일반 기업이 추구하는 이익극대화라는 사적 목적과 사회적 조직이 추구하는 사회구성원들의 후생극대화라는 공적 목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BOP가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한 부문으로 존재하는 데 반해서 사회적기업은 조직 전체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좀 더 발전한 모델이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업 자체의 존립근거가 되는 사적 목적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500여 개 기업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했지만 이 중에서 손익분기점(BEP)을 넘기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공적 목적과 사적 목적에 대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지속경영기업이 CSV의 세 번째 단계이자 가장 발전된 모습이다.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이라는 제목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논문에서 포터와 크레이머는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진보 사이에 상충관계(trade-off), 즉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여부를 가지고 CSV를 설명했다. 단순히 자금적 여유가 있는 기업들이 사회의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여유의 일부분을 사회에 이전해버리는 제로섬적인 행동은 기업과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가 아니고 경영자가 기업가적 사고방식을 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기업과 사회와 공유하는 가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발전과 기업의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그래서 사회와 기업이 공유하는 가치는 기업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 구성원 누군가가 입는 피해 속에서 자신의 이익창출에만 집착하던 대기업들, 특히 제품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는 소비자로 하여금 맹목적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만들었던 기업들이 이제는 달라지고 있고 사회와 공유하는 가치의 중요성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제품과 시장에 대해서 재구상하고,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생산성을 재정의해보며, 지역 클러스터(local cluster) 단위의 개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업들은 공유하는 가치를 현실화하는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공유가치를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는 모든 기업에 동등하게 주어진 것이기에 기업은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공유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찾아냄으로써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CSR CSV를 비교해보자. < 1>은 두 가지 활동을 일곱 가지 기준에 따라 비교하고 있다. 첫째, 가치에 있어 CSR은 생산, 판매와 같은 전통적인 기업고유 활동과 별개로 진행되는 선행(doing good)인 데 반해 CSV는 투입 비용에 대비해서 사회경제적 가치가 높은 기업 고유의 활동이다. 둘째, 활동 내용에서는 CSR는 시민의식을 전제로 한 자선활동인 데 반해 CSV는 기업과 공동체 모두를 위한 가치창조 활동이다. 셋째, 사회적인 인식에 있어 CSR은 이윤 극대화와 관계없는 활동으로 인식되는 데 반해 CSV는 이윤극대화를 위한 필수요소로 인식된다. 넷째, 예산에 있어 CSR는 가장 적극적인 기업의 경우에도 매출액 대비 1% 남짓한 CSR 예산으로 운영되는 데 반해 CSV는 기업 전체 매출액 100% CSV 개념을 반영할 수 있다. 다섯째, 진정성에 있어 CSR는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회사가 하는 경우가 하도 많아 사회에서도 다소 냉소적인 입장을 보이게 되는 반면 CSV는 사회가치 창조활동이 고유사업에 녹아 있으므로 사회가 긍정적인 평가를 해준다. 여섯째, 지속성에 있어 이익의 일부를 떼어내어 진행하는 CSR는 기업 손실이 발생하는 순간 올스톱이 될 수밖에 없으나 CSV는 그때그때의 이익 손실에 관계없이 진행하는 활동이다.

 

자본주의 5.0은 드러커가 표현한 대로 인간중심 자본주의(people-centered capitalism)이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화두인 경제민주화의 핵심내용이다. 더 이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익의 일부를 할애해서 사회봉사를 하는 협의의 개념으로 보지 말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해서 공유가치 창출로 보자. 그리하여 사회가 기업을 창조한 이유에 부합하는 모습,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조직으로 기업을 거듭 태어나게 하자. 1863년 게티스버그 연설을 남긴 링컨의 정신을 오늘날 계승해 기업에 적용하는 노력이야말로 경제민주화 시대를 만난 기업 경영자가 능동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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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2005. 쾌도난마 한국경제. 서울: 부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중국 장강대 초빙교수)

조동성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세계 7대 석유메이저 중 하나인 걸프오일에서 근무한 뒤 1978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해 경영전략과 국제경영, 디자인경영 분야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수행했다. 국내외 학술지에 95편의 논문을 실었고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과 한국경영학회 회장, 지속경영학회 창립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 핀란드 명예총영사, 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직을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