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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삼성과 애플은 2011년부터 세계 각국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대한 디자인 특허 소송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DBR 116호에서는 파슨스 전략디자인경영학과 에린 조 교수가 미국 법원의 판결을 살펴보고 미국 디자인 특허제도의 특징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이번 121호에서는 고려대 법대 김기창 교수(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EU 법원에서의 판결을 해석하고 이를 통해 유럽 디자인 특허제도의 특징과 한국 기업에 시사점을 알려줍니다.
삼성과 애플의 유럽 소송전은 어떻게 진행됐나
2011년 4월에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시작한 ‘디자인 전쟁’은 애플이 연루된 지적재산권에 관한 여러 분쟁들 중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두 회사 사이에는 현재 50개가 훨씬 넘는 사건이 미국,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 여러 법정에서 진행 중이다. 글로벌 IT 대기업들 간의 기술 특허 분쟁은 어차피 양측이 이런 저런 기술 특허를 서로 침해하는 상황이 불가피하므로 결국은 협상을 통해 타협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0년 모토로라와 애플 간의 특허침해 맞고소 사건에서 보듯이 반복되는 소송에 법원마저도 염증을 느낀 나머지 배심원 재판 단계까지 가기 이전에 법원이 아예 원고와 피고의 청구를 모두 각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 특허가 아니라 디자인권(Design Right), 혹은 디자인특허권(Design Patent)1 에 관한 애플과 삼성의 분쟁은 매우 다르게 전개됐다. 애플이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에 대해 제기한 소송이 애플의 홈 그라운드 격인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소재 연방 법원에서 진행 중이던 2012년 7월, 애플은 독일의 특허법원(뒤셀도르프 소재)에 삼성의 태블릿PC인 ‘갤럭시탭’ 제품들의 판매를 유럽 전역에서 금지하는 가처분을 삼성에 예고 없이 신청했다. 자사의 ‘iPad’의 디자인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었다. 애플이 제출한 이 신청서면에 근거해 독일 법원은 삼성에 방어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유럽 전역에 걸친 판매금지 가처분2 을 2011년 8월9일에 부여했다. 삼성 태블릿 제품이 유럽에서 판매가 금지됐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보도됐고, 이로 인해 갤럭시탭에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반격에 나선 삼성은 애플의 iPad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반박해 일단 급한 대로 판매금지 가처분을 독일시장에 한정하는 것으로 축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인 2011년 9월8일에 ‘침해사실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본안 소송을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세 나라 법원에 동시에 제기했다. 이 세 나라 중 영국 법원이 가장 먼저 2012년 7월9일에 본안에 관한 종국 판결을 내리면서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권을 침해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또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애플 홈페이지(영국)에 6개월간 게시하고 영국 주요 일간지에 같은 내용을 애플이 광고하도록 명령했다.
EU(유럽연합)에 등록된 디자인권에 대한 분쟁은 EU 회원국 각각의 특허법원이 EU 전역에 효력을 가지는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돼 있다. 독일 법원이 EU 전역에 걸친 가처분을 명령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본안 사건에 관해서는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중 어느 법원이라도 EU 전역에 효력이 있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영국의 특허법원이 가장 먼저 본안 판결을 내리고 그 본안 판결 결과를 애플이 널리 알리도록 명령한 것이다.
애플은 이 판결에 항소하면서 광고 명령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영국 항소법원은 7월26일 애플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서 항소심 판결이 날 때까지는 광고게시를 안 해도 되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항소심 절차가 진행 중인 동안에도 애플은 삼성 갤럭시탭의 판매금지 가처분 명령을 EU 전역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를 독일에서 계속했다. 독일의 항소법원은 삼성의 손을 들었던 영국의 특허법원과는 “견해를 달리한다”고 하면서 2012년 7월24일 갤럭시탭7.7에 대해 유럽 전역에 걸친 판매금지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가처분 사건을 처리하는 독일 항소법원이 이 분쟁의 본안에 대한 영국 특허법원의 종국판결을 무시하는 좀 이상한 모습이 연출됐던 셈이다.3
두 달 반 뒤인 2012년 10월18일에 영국 항소법원(Court of Appeal)은 애플의 항소를 기각했다. 또 그동안 집행이 정지돼 있었던 일간지 광고 게시명령을 약간 수정해 집행하도록 판결했다. 수정된 명령에서는 애플이 1심뿐 아니라 항소심에서도 졌다는 사실을 추가해 주요 일간지에 공지하되 그런 공지 내용을 애플의 웹사이트 홈페이지에 전부 다 적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링크를 1개월간 게시하도록 했다. 영국에서는 대법원(Supreme Court)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상고를 허락한다. 따라서 항소법원의 판결은 사실상 최종 판결에 가깝다. 애플이 불복을 포기하여 이 판결은 이제 확정됐다.
미국과 유럽의 디자인 특허제도
미국은 디자인 특허권(Design Patent) 제도가 있고 EU에는 디자인권(Design Right) 제도가 있다. 양자는 대체로 비슷하다. 유럽연합의 디자인 등록 과정에는 심사가 아예 없지만 미국의 디자인 특허 출원에 대한 심사 역시 매우 간단한 것이므로 등록 과정에서 심사가 있느냐 여부가 중요한 차이점이 되기는 어렵다. 또 원고가 자신의 디자인(특허)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면 피고 측에서는 거의 언제나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원고가 주장하는 디자인(특허)권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까지 함께 제기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디자인(특허)권은 신규성(novelty)이 있어야 하고, 해당 제품의 당연한 모습이 아닌 특별한 디자인적 요소가 있어야 하고(non-obviousness), 기능성과는 무관한 부분에 한해서만 보호받을 수 있다. 예전에도 이미 존재한 잘 알려진 디자인(prior art)이라면 아무리 애플이 등록해본들 보호받지 못한다. 태블릿 PC의 스크린이 편평하다거나 사각형이라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부분일 것이다. 물론 곡선 스크린, 원형 스크린, 삼각형 스크린을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해온 휴대용 전자기기들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편평한 사각형 스크린 자체는 당연해 보인다. 또한 휴대용 전자기기의 모퉁이가 둥글다는 점은 휴대기기를 낙하 등의 충격에서 보호하는 ‘기능적’ 측면이 당연히 있으므로 ‘디자인권’으로 보호받을 여지는 없다.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미국에서는 ‘일반인 기준(ordinary observer)’, 유럽에서는 ‘관찰력이 있는 소비자 기준(informed user)’에 의한다고 정의한다. 양자는 대체로 유사한 기준이라고 평가되며 디자인의 전체적 인상(overall impression)이 비슷한지, 다른지가 판단의 핵심이다. 특정 부분들에 차이가 있더라도 전체적 인상이 비슷하면 침해로 볼 수 있고 부분적으로 이런저런 동일함이 있더라도 전체적 인상이 다르면 침해가 아니다.
단, 복제(copying) 여부는 디자인권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과는 전혀 무관하다. 베껴서 비슷하게 되었건, 우연히 비슷하게 되었건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적 인상이 다르다면 이런저런 부분을 ‘베끼는 것’도 디자인권 침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고 정당한 경쟁의 한 방법이다. 시장에 팔리는 모든 물건들이 순전히, 전적으로 독창적인 디자인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는 허황되고 그릇된 환상일 뿐이다. 디자인권 보호 법제는 그런 잘못된 환상에 근거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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