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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잃어버린 20년?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어

손일선 | 121호 (2013년 1월 Issue 2)

2002년 일본의 우량 기업

패전 후 최근까지의 일본 경제성장률을 보면 고도성장기인 1956년부터 1973년까지는 평균 9.1%의 성장률을, 1차 오일쇼크 이후인 1974년부터 1990년까지는 안정성장기로 평균 4.2%의 성장률을 나타냈다. 버블경제 붕괴 후인 1991년부터 2011년까지의 저성장기에는 평균 0.9%의 성장률을 보였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지난 20년은 패전 후 일본이 겪은 가장 어려운 경제불황기였던 셈이다.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는 이러한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기업 재생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2002년 기업의 수익성(총자본경상이익률), 안전성(자기자본비율), 성장성(경상이익) 관점에서 우수 기업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연구책임자: 新原浩朗). 조사 결과 업계 평균보다 총자본경상이익률이 높은 우량기업은 도요타, 캐논, 카오, 매부치모터, 신에츠화학공업, 닌텐도, 야마코운수, 혼다, 세븐일레븐 등으로 나타났다. 저성장기의 우량기업은 첨단기술 쪽에 집중된 산업경쟁력보다는 기업경쟁력이 중요하다는 점과 국제무대와 상관없이 내수산업에서도 성공 비지니스모델이 많다는 점이 드러났다. 우량기업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잘 아는 분야가 아닌 사업은 분리했고 경영자는 현장감각을 가진 논리적 인물이었으며, 타 기업의 성공사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끝까지 고민하고 생각했고, 자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불합리한 점을 찾아냈으며,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꿨고, 주어진 자원 내에서 투자를 감행했으며, 사명감이나 윤리관에 기초한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 우수 기업들은 잘 아는 분야의 사업을 무리해서 확장하지 않고 우직하면서도 성실하게 심사숙고하면서 정열을 가지고 끝까지 임하는 기업이라고 이 조사는 결론을 내렸다.

 

일본 경제는 버블붕괴 이후 고용, 설비, 채무의 과잉문제를 해결하면서 2003년 이후 장기에 걸친 경기상승 국면에 들어가 경기가 회복되는 듯했지만 2007년 이후 원유가 상승, 2008년 리먼 쇼크에 의한 미국발 금융위기, 2010년 유로 위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다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한편, 이러한 경제적 요인 외에 일본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인구구조의 변화가 있다. 인구구조 변화의 특징은 저출산에 의한 국내 인구감소, 고령화, 도심화, 독신세대 증가 등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결국 기업들은 해외 진출, 의료를 포함한 고령자의 니즈 대응, 도심 집중, 독신세대 대응 등에 대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2002년의 우수 기업과 우수 기업의 공통점은 10년 후인 2012년에는 어떻게 변했을까. 일본 기업들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 리먼 쇼크 이외의 외부 환경요인들에 의해 우수 기업들의 면모도 많이 바뀌었다. 대내외 환경변화에서도 꾸준히 우량기업으로 건재한 일본 기업의 사례를 분석해서 자산 디플레이션 시대의 경영 전략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내수산업기업

(1) 사이제리아(Saizeriya)

외식업계는 저출산 고령화와 계속되는 불황, 과도한 경쟁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종업원의 급료조차 지불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시작한 사이제리아는 1973년 창업 이래 2012 8월 현재 1018개의 점포(국내 929, 해외 89), 매출액 1042억 엔으로 지속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사이제리아는 패스트패션 업체들이 도입한 SPA 비즈니스 모델1 의 영향을 받아 타사보다 철저한 효율화와 시스템 구축에 의한 코스트리더십(cost leadership) 전략으로 저가격 메뉴를 개발해 젊은 층과 가족 단위 고객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다른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1인분 양 줄이기, 질 저하, 임금 저하 등의 방법을 취한 것과 차별화했기 때문이다.

 

사이제리아는 종자의 품종개발(양상추 종자는 1호에서 현재 18호까지 품종개발 진행)부터 재배/수확, 생산가공, 가공조리까지 전부 계획생산에 의한 일관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계획생산을 하면 수확시기 조정이 가능하고 사전에 가격과 수량이 정해지므로 사전에 어느 정도 수익을 예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탈리안 요리 전문점인 만큼 토마토는 사이제리아에 가장 중요한 식재료 중 하나다. 맛있는 토마토를 확보하기 위해 사이제리아는 계약 농장에서 맛, , 식감, 배송 환경에 적합한 토마토를 직접 개발했다. 또 일명센트럴키친이라고 불리는 식품가공공장을 직접 운영한다. 센트럴키친에서는 식재료의 맛이나 신선도 등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점포의 주방에서 해오던 조리 일체를 처리해주기 때문에 개별 점포 주방에서 불이나 칼을 쓸 일이 없다. 계약농장도 4t의 냉장차가 농장으로 그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하는 등 사이제리아에 맞게끔 만들었다.

 

또한 사이제리아는 고품질 유지를 위해 골드체인이라고 불리는 야채의 유통체제를 구축했다. 야채는 수확 후 바로 냉장차에 보관되는데 이때 맛, 영양, 신선도를 감안해 샐러드에 가장 적합한 온도인 섭씨 4도로 식탁에 오를 때까지 유지된다. 이런 일관 생산, 센트럴키친, 골드체인 등의 시스템으로 사이제리아는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고정메뉴인 밀라노풍 도리아는 299엔의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는데 이 메뉴 하나가 전체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또 와인, 치즈, 우유 등 원재료의 고품질 저가 구매를 위해 해외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만, 중국, 홍콩 등 해외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2) 니토리

니토리는 2012 2월 연결매출액에서 전년 대비 5.3% 증가한 3310억 엔, 영업이익은 10% 증가한 579억 엔으로 25분기 연속 이익이 늘었다.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인테리어 생활용품전문점으로 출발한 니토리는 저가격대의 홈퍼니싱(가구, 홈패션) 분야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 일본 내 가구소매업계의 톱기업이다.

 

니토리는 가구인테리어에서 비용 절감과 고품질, 고기능을 유지하면서 저가격 판매, 집안 전체의 토털 코디네이터, 홈패션 등 세 가지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다. 고품질, 고기능 제품을 경쟁사 가격의 절반으로 제공하는 것이 니토리의 콘셉트다. 니토리의 최대 특징 또한 SPA에 의한 코스트 리더십인데 이는 유니클로와 맥락을 같이한다.니토리는 상품의 기획, 원재료 구입, 현지생산, 수입, 판매, 상품배송까지를 전부 자사에서 운영한다. 임금이 싼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직영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고 도매업체 등 중간상을 거치지 않아 코스트를 줄임으로써 낮은 가격으로 판매가 가능하다. 리빙, 부엌, 침실 등의 이미지를 통일한 집안 공간 토털 코디네이트로 세트판매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코디네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텐, 시트, 이불 등의 제품까지 취급함으로써 가구의 영역을 넘어선 토털 홈패션 매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이러한 저가 정책은 소비자의 니즈와 맞아 떨어져 높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지속적으로 고수익을 내고 있다. 2001년 만해도 가구업계의 톱은 오오츠카가구였으나 니토리는 순식간에 오오츠카를 따돌렸다. 니토리처럼 SPA 방식으로 전국에 체인을 전개한 가구소매업은 없기 때문에 세계를 무대로 한 이케아(IKEA)만이 경쟁기업인 셈이다.

 

이러한 니토리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는 운영시스템뿐아니라 창업자 니토리 아키오(似鳥昭雄)의 비전을 제시하고 달성해가는 기업가정신이 있었다. 니토리는 2020 1000점포, 매출액 1조 엔을, 2030 3000점포, 매출액 3조 엔을, 2040 1만 점포, 매출액 5조 엔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니토리가 이러한 원대한 목표를 갖게 된 데는 1973년 니토리의 미국 방문 영향이 컸다. 물자의 풍부함과 저가 전략에 놀란 니토리는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3분의 1 수준의 낮은 가격대에 토털 코디네이트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소매업이 원재료에서 제품까지 모두 직접 운영해야 한다는 힌트를 얻었다. 또 니토리는 다점포 전략 콘셉트로 전국의 도도부현2 과 해외에 모두 276개의 점포(2012 6월 현재)를 갖고 있다. 금후 테이진과 협력해 소재개발을 할 예정이며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3) 유니클로

불과 30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의류기업으로 성장한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 유니클로는 1974년 야마구치현에서 야나이 다다시(柳井 正) 회장에 의해 설립됐다. 유니클로의 성공요인은 의류소매업체(SPA)의 코스트리더십에 의한 저가격과 고기능성 제품차별화 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종래의 어패럴 메이커가 패션성만을 중시하는 점에 착안해 유니클로는 누구라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캐쥬얼웨어를 저가격으로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유니클로 상품개발의 특징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소재 메이커와 공동개발체제를 구축한 점에 있다. 대표적인 히트상품인 히트텍과 울트라다운은 유니클로와 토레이주식회사의 공동개발으로 탄생했는데 기존 의류에 없는 기능성을 가진 혁신적 신제품(블루오션 시장 개척)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타사와 차별화했다. 유니클로만큼 원소재에 집착한 소매업체는 없었다.

 

기능성 내복인 히트텍의 경우 2003년 발매 이후 2012년 현재 누계 29900만 장이 팔렸는데 이는 일본인 두 명 중 한 명이 히트텍을 보유하고 있는 꼴이다. 초경량 신소재로 얇고 가볍고 따뜻한 히트텍은 연구개발력이 뛰어난 토레이와 소매상인으로 머천다이징과 마케팅에 뛰어난 유니클로가 소재개발부터 최종 상품판매 단계까지 모두 협력을 추구한 덕에 탄생했다. 2008년 이후 유니클로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로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해외시장에서 달성했으며 그중에서도 아시아권의 비율이 70%를 초과하고 있다.

 

일본 내수시장을 중심으로한 사이제리아, 니토리, 유니클로에 대해서 살펴봤다. 세 기업은 모두 제조판매업(SPA)의 비지니스모델을 가진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비용 절감에 의한 저가격 전략으로 원재료의 유통 상류부터 하류까지 일관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상류에서는 고품질의 원재료나 품종개발, 소재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 기업들은 소비자의 니즈를 찾아내 신제품을 개발하고 전국에 점포를 확대해 나감과 동시에 해외 진출에서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또한 세 기업 모두 고부가가치의 신제품을 저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제공해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기업가정신이 내재돼 있었다.

 

모든 소매점들이 코스트리더십에 의한 저가격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맥도날드는 저가격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실패한 예다. 1990년대 후반 맥도날드는에브리데이 로프라이스를 캐치프레이즈로 햄버거 세트가격을 대폭 내렸고 타사가 이를 쫓아가면서 가격 전쟁에 돌입했다. 일시적으로 햄버거는 65엔으로 내려가 패스트푸드업계뿐아니라 외식업계 전체가 영향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2001년 엔고, 저가격에 의한 객단가의 저하로 업적이 악화돼 저가격정책은 실패로 끝났고 현재는 중가격 제품과 저가격 제품을 양립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4) 이토엔(伊藤園)

이토엔은 위에 소개한 기업들과는 달리 코스트리더십보다는 거래업체와의 장기 신뢰 관계 속에서 신제품 개발로 성공한 경우다. 일본식 비즈니스의 모델형 기업으로 알려진 이토엔은 창업 이래 녹차음료의 톱메이커로 녹차의 상품화와 녹차시장을 개척했다.

 

1966년 창업 당시 녹차는 무게를 달아서 파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이토엔은 처음으로 녹차를 진공팩으로 만들어 상품화했다. 이후 순조롭게 매출이 증가했으나 1970년 이후 음식 문화가 서구화하면서 캔에 든 코카콜라 등 수입음료에 대한 선호가 늘어나 녹차 수요는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캔 녹차 상품화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하지만 캔 녹차 개발은 쉽지 않았다. 색이 변하거나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등 9년 동안 연구를 했으나 난항을 거듭해 제품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거래처인 캔 메이커로부터 산소를 빼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힌트를 얻어 결국 제품화에 성공했다. 1985년 캔 녹차가 발매됐으나 발매 후 4년이 지나도 매출이 늘어나지 않자 이토엔은 캔 녹차의 이름을오이오차로 바꾸고 판매처도 도시락가게로 확대했다. 이렇게 일본 식사문화에 맞춰 도시락을 먹으면서 녹차를 마시는 세트상품으로 판매를 시작하자 대히트를 쳤다. 이로써 1989년 전년 대비 3배 이상으로 매출이 늘어나 1995년에는 매출액이 271억 엔에 이르렀다.

 

2000년에 경쟁사인 기린이 단맛과 향기를 가미한 나마차(生茶)를 발매하면서 1차 녹차전쟁이 시작됐다. 당시 차게 마시는 패트병 녹차는 여름에만 팔았으며 겨울에는 따뜻한 녹차가 없었다. 이에 혼조 사장은 기린 나마차의 대항마로 겨울에 마실 수 있는 페트병 녹차 개발을 지시했다. 따뜻한 녹차를 패트병에 넣어 파는 것은 무리라는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페트병 제작사를 물색하던 중 협력업체의 도움으로 열과 산소에 강한 페트병을 개발하고 완성시켰다. 겨울용 페트병이 개발되자 이번에는 판매처들이 뜨거운 녹차병을 보관할 온장고를 대부분 갖고 있지 않다는 문제점에 봉착했다. 혼조 사장은 온장고 쇼케이스 10만대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했다. 200010월 핫타입의 발매로 기린의 나마차와 함께 2000년 녹차 음료시장은 2171억 엔 시장으로 폭발적으로 커졌다.

 

2004년에는 산토리가 오차와 교토의 전통 이미지를 부각시킨 이에몬(伊右衛門)을 발매하면서 2차 녹차전쟁이 시작됐다. 이에 이토엔은 정면 대결로 녹차에 향기를 더한 제품을 대항품으로 개발했다. 위와 같은 두 차례의 녹차 전쟁을 거치면서 이토엔은 더 강해졌다. 혼조 사장은 라이벌의 도전에 정면으로 대항하면서 신제품을 개발했고 새로운 경쟁사의 도전은 오히려 녹차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는 순방향으로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녹차시장은 2004 4470억 엔으로 커졌다.

 

이와 같이 이토엔이 수십 년 동안 녹차시장 1위 기업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녹차를 상품화시킨 신제품과 신시장 개척, 혼조 사장의 녹차음료에 대한 상품 콘셉트가 명확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 이는 녹차 전문메이커로서 고품질 제품개발에 대한 집념과 협력업체나 거래처와의 장기 신뢰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온장고 10만 대 무료 배포를 결정하면서까지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린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에 의해 조직결속력은 더욱 강해졌고 이토엔뿐 아니라 녹차시장 전체가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5) 세븐일레븐 재팬

일본 편의점 대표주자인세븐일레븐의 2012 2월 매출액은 32490억 엔(전년 비 10.2% 증가), 영업이익은 1800억 엔(전년 비 6.4% 증가)으로 모두 과거 기록을 경신했다. 세븐일레븐의 2011년 말 국내 점포 수는 13232점으로 타사의 점포 수를 크게 웃돌고 있다. 세븐일레븐의 경쟁력은 특정 지역의 집중 출점전략과 제조와 물류의 효율화,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꾀한 데 있다.

 

경쟁업체인 로손이나 패밀리마트는 47개 도도부현에 전부 출점하고 있으나 세븐일레븐은 39개 도도부현에만 출점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 등 관동지역만 보면 타사에 비해 세븐일레븐의 점포 수는 압도적으로 많다. 세븐일레븐의 지역집중형 다점포전략은 인구구조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11년 동일본 지진 이후 편의점 이용자가 여성과 고령자로 확대돼 점포당 평균 고객 수와 객단가가 크게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은 고령자와 독신세대 증가에 따라 도시 지역에서 식사대체 용품, 데일리푸드, 디저트 제품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도시로의 인구집중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세븐일레븐은 도심에 조리완성품을 강화한 소규모 슈퍼형 점포인 신형점 출점을 서두르고 있다.

 

이어 내수산업이 아닌 국제경쟁력을 갖춘 B2B 수출 중심 기업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일본의 경쟁력- 부품, 소재, 화학, 기계 산업

소재, 부품, 화학, 기계 분야에는 세계적으로 높은 점유율을 갖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많다. 이는 20년 전 버블이 붕괴될 때 대부분의 일본 기업은 세계 톱클래스 기업과 규모면에서 격차가 컸기 때문에 규모 경쟁보다 기술에 의한 차별화 전략을 채택한 덕분이다. 차별화 전략으로 일본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자동차나 전자부품 중에서 가격 경쟁이 치열한 범용품보다는 부가가치가 높은 특수품 분야로 사업구조를 재편한 것이다. , 구조조정이나 비용절감보다는 기술경쟁력을 쌓아 생산/조립 등의 하류 부문보다 부품소재의 상류 부문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확보하도록 했다.

 

2011년 동일본지진 이후 전 세계는 일본이 갖고 있는 부품소재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확인했다. 반도체에 사용되는 실리콘웨어, 자동차용 마이콘 등 세계적으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진 일본산 부품이 지진으로 생산되지 못하자 이 여파로 전 세계 기업들이 생산차질 등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부품소재산업은 수익률이 높다. 2012 3월 파나소닉 9000억 엔, 샤프 3000억 엔, 소니 2200억 엔 등 가전업계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반면 토레이, 쿠라레, 일본매체, 하마마쯔홋토닉스 등은 최고의 이익을 냈다. 1990년대 이후 철강, 시멘트, 석유제품 등의 소재산업은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과 소재산업 재편으로 가격하락과 이익률 저하 국면에 진입했다. 이때 소재기업들은 과잉설비나 과잉인원 등에 대해 구조조정을 했고 합병이나 업무제휴를 통한 업계 재편으로 소재산업의 국제경쟁력은 상승했다.

 

소재는 여러 가지 공정이나 재료, 온도조절 등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에 공정단계별 원료의 양이나 성분을 섞는 방법, 온도조절의 타이밍 등 하나하나가 전부 노하우다. 소재의 제조과정은 단순한 숫자나 이론, 설계도만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변수가 많아 같은 설비와 같은 재료로 만들더라도 동일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기술력을 축적한 일본 소재 분야 업체들은 모방하기 힘든 독점적 경쟁력을 갖게 됐다.

 

(1) 토레이

1970년대에는 가장 활황을 이루던 업종이 섬유였으나 1990년대 후반 이후 급성장하는 중국이나 인도에 밀려 일본의 섬유산업 시장은 2000년의 155000억 엔 시장에서 2008년에는 125000억 엔으로 줄었다. 그러나 토레이는 중국 등 신흥국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섬유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섬유 연구개발을 계속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이러한 노력은 발열성, 신축성, 흡수성 등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신제품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일본 섬유업계에서는 사업재편이 계속되고 있다. 테이진은 2003년에 나일론 사업에서 철수했고 아사히카세이도 아크릴 사업에서 철수했는데 리먼쇼크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심해져 현재 3대 합섬섬유 소재를 전부 커버하는 곳은 토레이밖에 없다.

 

토레이의 경쟁력은 고부가가치 제품생산, 일관 생산에 의한 비용절감, 거래처와의 장기신용거래 등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중국이나 인도 기업과는 가격경쟁면에서 불리하다는 인식하에 토레이는 가격경쟁이 아닌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토레이는 토레이의 근간이 섬유기술이라는 인식하에 사업성이 있는지, 그 분야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이길 수 있는지를 판단해 사업영역을 선택한다(주간동양경제 2012. 3. 17일 토레이 사장 닛카쿠 아키히로 인터뷰 중).

 

토레이의 기술로 만든 제품으로는 이미 언급한 히트테크나 탄소섬유가 있다. 탄소섬유는 철의 10배 강도를 가지지만 무게는 4분의 1 수준으로 꿈의 소재로 불린다. 1980년대 구미의 여러 기업이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했으나 사업화는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토레이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포기하지 않고 연구개발을 계속했다. 탄소섬유는 자동차와 비행기 제작에도 사용되는데 자동차 부문에서는 세계 탄소섬유의 40%를 토레이가 생산하고 있다. 2011년에는 보잉 787 기체 제작에 탄소섬유가 50% 사용됐다. 처음부터 탄소섬유가 자동차나 기체소재로 사용된 것이 아니고 초창기에는 골프채의 소재로 사용됐는데 40여 년에 걸친 기간 동안 1000억 엔 이상의 자금을 투자하면서 연구를 이어갔다. 반면 이 기간 다른 업체들은 시장에서 철수했기 때문에 이제 경쟁사들이 토레이와 같은 수준으로 따라오기가 어렵다.

 

토레이는 원사부터 천 제조, 염색, 봉제 과정까지 일관 생산 체제를 갖고 있어서 이러한 소재개발이 가능했다. 토레이의 시장 전략은 기능성 의류 시장에서의 신제품 개발과 중국, 인도 아세안 등의 신흥국 해외 시장 진출로 요약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는 일본 국내 의류시장과는 반대로 히트텍 등의 기능성 의류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또 신흥국은 매년 3∼4% 이상의 시장확대가 예상되고 경제성장으로 도시 중산층이 늘어나면 섬유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토레이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화에 힘쓰고 있다.

 

 

(2) 쿠라레이(Kuraray)

쿠라레이는 1926년 레이온 국산화를 위해 설립됐다. 쿠라레이의 대표 제품으로는 인공피혁 책가방의 쿠라리노, 기능성 수지 에발, 쿠라레이포발 등이 있다. 쿠라레이는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자 화학업체로 전환했는데 지금은 업계 최고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매출액이 3632억 엔으로 타사에 비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아사히카세이, 토레이, 테이진이 6∼7%인 데 비해 쿠라레이는 14.6%로 절대적으로 높다. 쿠라레이의 경쟁력 원천은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의한 세계적 독점상품의 보유다. 액정TV에서 빼놓을 수 없는 편광판, 핵심이 되는 광학용 포발필름 생산에서 쿠라레이는 세계 80%의 점유율을, 식품포장재와 가솔린스탠드에서 사용하는 에발은 65%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LED TV 반사판 용도의 제네스타는 쿠라레이가 전 세계 10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어느 업종을 막론하고 소재 메이커는 연료가격의 급등과 최종제품의 저가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쿠라레이는 경쟁력 있는 상품군을 갖고 있어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쿠라레이의 포발필름 기술개발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 쿠라레이는 세계 선두주자로 합성섬유 비닐론의 원료로 포발생산을 개시했다. 당시 회사 자본금은 25000만 엔에 불과했으나 쿠라레이는 비닐론 설비투자에만 14억 엔을 들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비닐론이 의류로서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나면서 타격이 컸다. 당시 토레이가 도입한 나일론이 스타킹이나 스포츠웨어로 시장이 확대되며 아크릴, 폴리에스테르와 함께 3대 합성섬유로 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80년대 플라자합의 등으로 원유를 재료로 수출을 주로했던 섬유산업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쿠라레이는 섬유를 근간으로 하는 기술을 살려 화학산업으로 축을 다각화했다. 이 과정에서 타사보다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쿠라레이는 양보다 질로 승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980년대에는 생산거점인 쿠라시키 공장에서 사업철수가 거론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섬유산업의 매출이 전체의 50% 이하가 돼 화학중심으로 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 2000년 이후에는 더욱 이익을 중시하는 경영체제로 바뀐다. 이를 위해 2001년 사업재평가기준을 도입, 총자산이익률이나 영업 캐시플로가 최저기준을 넘지 못하는 비수익 부문은 과감하게 축소하거나 관련 분야에서 철수했다.

 

이런 구조조정으로 2000년대 이후 성장의 전기가 마련됐다. 포발의 분자구성이 특정 방향만 빛을 통하는 편광판이 소재로서는 최적으로 밝혀져 TV의 액정디스플레이에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당시 포발을 제조하는 경쟁사는 별로 많지 않아 쿠라레이는 순식간에 시장을 휩쓸었다. 보통 화학소재 분야에서 히트 상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나 쿠라레이는 50년의 세월을 기다린 셈이다. 포발 관련 상품은 현재 쿠라레이 영업이익의 90%를 넘는다. 정리하면 쿠라레이는 본사의 핵심기술을 살려 섬유산업에서 화학산업으로 관련 다각화를 하고, 수익이 날 분야에 집중투자를 한 후 오랜 시간을 기다리면서 신제품으로 승부를 한 결과 높은 수익율을 올릴 수 있었다.

 

(3) 신에츠화학공업

미쯔이, 미쯔비시, 스미토모의 3대 재벌계 화학회사들을 제치고 계속해서 화학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는 기업이 신에츠화학공업(이하 신에츠)이다. 2000년대 초반 모든 화학회사의 이익률이 떨어질 때도 2005년 원료 나프사 가격의 급등으로 전부 수익이 떨어질 때도 신에츠만은 고수익을 냈다. 신에츠는 원래 벌크케미컬 회사로 염화비닐을 만드는 기업이다. 일찍 염화비닐을 만드는 미국의 회사를 매수해 규모의 경제도 확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업의 가장 큰 수익원은 실리콘웨이퍼(silicon wafer).

 

신에츠는 타사보다 일찍 해외로 진출했다. 1941년 일제시대 정부의 요청으로 우리나라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1960년에는 해외사업부를 편성하고 1973년에는 염화비닐을 제조하는 미국 회사를 인수하는 등 일찍부터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했다. 버블경제기에 동종업계 경쟁사들이 부동산투자에 뛰어들 때도 신에츠는 본업 외에는 투자를 하지 않았고 타 화학회사들이 모두 갖고있는 의약품 분야에도 진입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신에츠는 선택과 집중에 의해 핵심기술인 실리콘을 중심으로 한 응용 분야에만 관련 다각화 전략을 전개했다.신에츠의 사업은 기능재료, 전자재료(실리콘), 유기·무기화학품(염화비닐수지)의 세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세 분야가 상호보완적이어서 한 부문에서 가격경쟁이 심해져도 다른 부문에서 보완해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고수익을 내고 있다. 또 사업영역을 염화비닐수지로 대표되는 범용품과 고부가가치의 반도체 실리콘의 특수품으로 나눌 수 있는데 범용품에서 특수품까지 골고루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4) 아사히글래스(旭硝子)

액정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아사히글래스는 급속히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영향으로 고수익을 내고 있는 기업이다. 아사히글래스의 경쟁력의 원천은 글라스 기술을 핵심으로 화학품이나 세라믹사업에도 진출한 덕분에 글라스 기술과 화학품 기술을 융합해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8년 리먼쇼크로 납입처가 감산으로 돌아섬에 따라 아사히글래스의 경영도 악화됐다. 전 세계가 코스트다운을 외칠 때 이시무라 사장은 이러한 불황을 찬스로 생각하고 철저한 인재교육과 근본적인 조직개혁에 착수했다. 연구소의 제조기술 담당자를 공장으로 보내 연구소가 개발한 신기술을 공장에서 만들어보도록 했다. 발주가 전혀 없음에도 제품을 만들고 부수고, 또다시 만드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연구개발과 현장과의 기술 노하우를 축적해 나갔다. 이는 미국의 R&D가 주로 벤처기업에서 시작하는 것과 달리 일본 제조업의 기술력 확보는 R&D 부문과 생산현장이 일체가 되어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인재교육은 현장인 공장에서도 소집단활동을 활성화해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작업훈련이 계속됐다. 또한 이제까지 자동차용 유리부서와 판유리부서로 2원화됐던 내부조직을 통합시켜 내실을 강화했다. 이런 대응으로 아사히글래스는 불황에서 바로 V자 회복선을 그리며 고수익기업으로 복귀했다. 앞으로 아사히글래스는 이러한 글라스 기술을 중심으로한 관련 신제품, 환경 관련 제품, 신흥국 공략의 세 가지 측면에서 매출을 확대시키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5) 아사히카세이(旭化成)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 모바일 제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형이면서 가벼운 리튬이온전지다. 최근에는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의 동력원으로도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온전지를 구성하는 부극재, 세퍼레이터, 전해액, 정극재의 4개 부재는 전부 화학을 축으로 하는 일본 소재메이커가 세계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사히카세이는 세퍼레이터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이다. 각 재료 분야에서 강한 메이커는 과거부터 계속 축적시켜온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이 기술을 전지재료에 응용했는데 세퍼레이터 기술은 아시히카세이의 핵심기술인 분리막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아사히카세이는 원래 소재메이커였으나 리튬이온전지를 개발 판매하면서 전기제품업체가 됐다. 리튬이온전지 개발에는 기초, 개발, 응용연구에 각각 5년씩 1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1981년 연구실험을 시작해 15년이 지난 1995년에야 시장화가 된 것이다. 15년 전인 1981년에 지금과 같이 휴대전화가 보급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도전성고분자연구를 하던 중 뭔지 모르지만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에서 이 분야 연구가 계속됐다. 리튬전지 개발자인 아사히카세이의 요시다아키라(吉田彰)는 종래의 과제를 크리어해서 차별화된 핵심기술을 가지고 있던 중 당시 소니 담당자가 계속 공장을 방문해 이 제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결정적으로 사업성을 예측했다. 소니는 VHS방식 비디오전쟁에서 패한 후 다음 연구로 8㎜ 비디오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본체의 소형화는 가능한데 고화질과 전지의 소형화가 과제였다. 앞으로의 전자산업은 LSI, 디스플레이, 전지 개발이 필수인데 세 분야 중 전지 개발이 늦어진다는 것을 듣고 요시다는 사업성을 확인했다.

 

, 정확한 미래의 시장 예측은 어렵지만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바뀔 것이고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은 예측할 수 있다. 이는 사내 토론에서 의견이 분분할 때도 소니 담당자를 불러 앞으로의 사업 전망을 가늠해 정보를 공유했다. 이와 같이 아사히카세이의 성공은 새로운 소재개발의 연구에서 차별화된 핵심기술을 찾아낸 뒤 세상의 흐름을 읽고, 권리를 획득한 다음, 사업화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데 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20년에 걸친 장기불황은 일본 기업의 행동을 바꾸어놓았다. 1980년대 버블경제기에 확대된 설비, 고용, 채무는 버블 붕괴 후 줄여 재무상태를 건전하게 하면서 인수합병에 의한 업계 재편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어느 정도의 체질개선이 이뤄졌다. 사업 분야도 기존의 문어발식 비관련 다각화보다 핵심기술을 중심으로한 관련 다각화에 집중했는데 이때 장래 수익성 여부, 자사의 핵심기술 보유 여부, 타사와의 경쟁력 등의 기준으로 사업을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했다.

 

내수산업에서 같은 업계의 경쟁사보다 이익률이 높은 기업들을 보면 SPA 체제에 의한 코스트리더십을 선택한 기업들이 많다. 이 기업들은 철저한 품질개발, 소재개발에 의한 고품질, 고기능, 저가격 전략을 택하거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신제품 개발에 힘쓴 기업이었다. 또한, 이런 기업들에는 거래처와의 장기신뢰거래에 의한 시너지효과와 기업의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기업가정신이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제품은 전국에 걸친 다점포망뿐아니라 일본 경기와 상관없는 새로운 해외 진출을 통해 판매를 확대했다. 내수시장의 장기침체, 인구감소 등의 환경변화 요인을 볼 때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도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은 필수적이다. 일본의 저성장기에도 미국이나 아시아 등의 해외시장은 성장국면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해외 시장에 진출해 있던 기업의 경우 경이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최근 일본 기업들의 해외 진출 전략은 기존의 성숙된 구미 선진국보다는 앞으로 성장할 신흥국 시장에 집중돼 있다.

 

일본이 소재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은 차별화된 핵심기술을 집중, 응용해 더욱 심화시킨 덕분이다. 이러한 경쟁력은 장래 수익성에 대한 신념을 갖고 끊임없이 고품질 고기능성을 추구하면서 오랜 세월을 기다린 결과로 나타났다. 버블경제기에 성장확대 전략으로 기업의 본업과 전혀 상관없는 비관련 다각화로 부동산까지 사업의 영역을 넓혔던 기업들은 버블경제가 붕괴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기업이 보유한 핵심기술을 찾기 시작했다. 타 기업과 차별화되는 핵심기술을 가지고 장래 사업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때는 정확한 미래의 시장예측은 힘들지만 세상이 변화하는 흐름을 잘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장 경쟁력이 있고 사후 사업성이 있는 핵심기술을 찾아 선택과 집중에 의해 나머지 사업은 다 접었다. 그리고 이 핵심기술을 중심으로 인수합병이나 수직적 통합 등을 통해 관련 다각화를 했다.

 

산업 전체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데 적시에 성장동력으로의 관련 다각화를 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그 갭을 줄이기가 매우 힘들다. 예를 들어, 캐논이 엑스선 촬영카메라를 발매한 것은 1940년대지만 이후 70년간 캐논은 의료기기 분야에서 디지털카메라그래피와 안저카메라의 두 제품 라인 외에는 진전이 없었다. 한편, 올림푸스가 내시경, 인공골보경제, 외과처치구 등에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의료기기 메이커로 도약하고, 후지필름은 엑스선화상진단, 내시경, 의약품에 특화하고 있는 데 비해 초기 단계에 카메라 기술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각화 지연과 인재 부족으로 캐논은 의료 분야에서 타사보다 5년에서 10년 정도 뒤처졌다.

 

불황기에지금은 모든 것을 참을 때다라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 불황기는 다음 회복기의 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보고 경영전략이 필요한 때다. 아사히카세이의 경우, 발주량이 절대적으로 줄었을 때 종업원의 구조조정이나 연구개발비를 줄이지 않고 회복기를 대비해 적극적으로 이론과 현실을 겸비한 인재를 키웠다. 연구소와 현장인 공장을 연계해 실험을 반복하고, 기술을 축적하고, 공장에서는 소집단 활동을 통해 현장의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회복기를 대비했다.결국, 저성장기의 우수 기업은 세상의 변화에서 필요로 하면서,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술 중 핵심기술을 선택하고, 적시에 관련 다각화를 하면서, 장시간에 걸친 연구개발과 현장의 협력을 통해, 고부가가치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고수익률을 창출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일선도쿄대 특별연구원 son629@hotmail.com

필자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일본경영사 전공) 학위를 받았으며 계명대 국제학부에서 조교수를 지냈다. 현재 도쿄대 대학원 약학계연구과 의약정책학에서 특별연구원으로 있으며 일본 사이타마대학, 학습원대학, 아오야마학원대학, 일본약과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 연구 테마는 유통, 경영사, 의약품산업과 의료제도, 한일경제 등이다.

 

 

 

  • 손일선 | - 도쿄대 특별연구원
    - 계명대 국제학부 조교수
    - 도쿄대 대학원 약학계연구과 의약정책학에서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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