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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벚꽃은 지면서 후회하지 않는다

정현천 | 118호 (2012년 12월 Issue 1)

 

친구 하나가 인생의 지혜로 삼을 만하다면서 들려준 얘기가 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고마워, 미안해 하는 말 외에는 하지 마라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교훈으로 삼기에 좋은 내용이다.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가 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라는 책에는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 1000명이 각자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가장 절절하게 후회하는 내용이 정리돼 있다. 그중 첫째가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이다. 둘째는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이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내용은 “∼했더라면으로 끝난다. “∼하지 않았더라면으로 끝나는 내용은 다섯 번째의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을 포함해서 서너 가지에 불과하다. 유태인들에게 지혜의 보물창고로 여겨지는 탈무드에도실패한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지도 못하고 후회하는 것이 훨씬 바보스럽다는 구절이 있다. 후회는 분명히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이다. 따라서 후회는 적을수록 좋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 일에 대해서도 후회하고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후회한다. 도대체 어떤 일로 후회하고, 언제 후회하며, 왜 후회할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

바로 그런 제목으로 심리학자들이 연구해서 발표한 논문이 있다. 코넬대 심리학과 교수 토마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 등이 쓴후회의 경험: 무엇을, 언제, 그리고 왜(The experience of Regret: What, When, and Why, 1995)’이다. 저자들이 1년 먼저 비슷한 내용으로 발표한후회 경험의 시간적 유형(The Temporal Pattern to the Experience of Regret, 1994)’이라는 논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후회는 세금과 같다. 거의 모든 사람이 겪는다. 인류 역사 가운데 어느 때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오늘날, 전혀 후회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일관되게 좋은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정말 통찰력이 뛰어난 비유다. 거의 모든 사람이 피하지 못하고 소득이 늘어날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것처럼 생활수준이 높아져서 선택의 폭이 늘어날수록 후회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로버트 프루스트의 시가지 않은 길과 같이 사람들은 두 갈래 길을 두고 한 갈래 길을 선택한다. 결국 택하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며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한숨 쉰다. 가상의 결과가 현실의 결과보다 더 나았으리라고 추정한 뒤 거기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이 바로 후회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어떤 결과를 놓고 느끼는 실망이나 비애감과는 다르다.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짧은 과거의 일 중에서는 했던 일을 주로 후회하는 반면 오래된 과거의 일 중에서는 했던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더 많이 후회한다.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그때 이 말을 꼭 했어야 했는데” “친구의 동업 제의를 뿌리치지 않았더라면등의 후회가 그것들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후회의 유형은 양자택일로 답을 하라고 할 때나 자유연상을 통해 답을 하라고 할 때나 거의 일관되게 나타났다. 왜 그럴까? 했던 일로 인한 고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거나 견딜 만해지는 반면 하지 않은 일로 인한 고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크게 느껴지며 더 자주 떠오르고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우선 했던 일로 인한 고통이 시간과 함께 줄어드는 이유를 보자.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이 잘못돼 문제가 되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처음 찾은 직장이 맘에 들지 않으면 새 직장을 구하고 남에게 거친 말을 해서 마음을 상하게 했으면 사과한다. 대개 했던 일로 인한 고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줄어들거나 없어진다. 또 사람들은 실패에서 스스로 교훈이나 위안을 얻을 방법을 찾는다. 실패를 통해서 중요한 것을 배웠다거나 고통을 참고 견딤으로써 나중에 더 큰 성공을 얻었다는 식이다. 무언가 시도했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와 관계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둘째, 하지 않은 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왜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까? 무엇인가를 망설이다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이유나 장애물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고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에 대해 차차 생각이 바뀐다. 첫사랑에게 고백을 하지 못한 사람은 거절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텐데 그 두려움은 차츰 잊혀진다. 고백하지 못한 사실만이 남아 왜 고백을 못했는지 자기 자신조차 의아하게 느껴진다. 했던 일로 인한 고통이나 손실은 확정적으로 발생해서 기껏해야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되거나 점점 잊혀지는 데 비해 하지 않은 일로 인한 고통이나 손실은 챙기지 못한 기회이익 같은 것이라서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그야말로가지 않은 길이 된다. 했더라면 생길 수 있었을 것 같은 좋은 일들의 목록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난다. 게다가 특정 시점이 아니라 누적적으로 일정 기간에 걸쳐 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충분히 기회가 있었는 데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밀려온다.

 

셋째, 했던 일에 비해 하지 않은 일이 더 자주 떠오르고 기억되는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마무리 지은 일보다 끝내지 못한 일이나 실현되지 않은 목표를 더 잘 기억한다. 수행해야 하는 임무나 해결해야 하는 쟁점이 있으면 심리적 긴장이나 강박관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러시아 심리학자의 이름을 따서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또는미완성 효과라고 한다. 어쨌든 했던 일은 과거에 속하는 데 비해 하지 않은 일은 미완성이라는 점에서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속해 있으므로 더 자주 떠오르고 오래 기억된다.

 

 

리얼옵션 기법

이처럼 여러 이유로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많은 심리학자들은 나이키의 광고문구 ‘Just do it’처럼 차라리 저지르는 것이 낫다고 권고한다. 앞으로 나가는 것과 뒤로 물러서는 것 중에서 선택한다면 그냥 앞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시애틀 퍼시픽대 심리학과 래스 패롯 교수는 <후회의 심리학>에서 그 이유를 이솝우화여우와 포도나무의 배고픈 여우의 예를 들며 설명한다. 여우는 탐스럽게 열린 포도를 따려고 여러 번 시도하지만 결국 못 따고 배를 채우지 못한다. 여우는저 포도는 시어서 먹지 못해. 먹으면 배탈 날 거야라며 포기한다. 사람들은 시도했지만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자기합리화를 시켜 상처받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망설이다가 결국 행동하지 않는 경우는 그 기억이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힌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자기 합리화를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찾아와서 자신을 괴롭히는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망설이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의 오츠 슈이치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벚꽃도 지면서 후회를 할까?” 그리고는 스스로 답한다. “정말 찰나를 살다간 그들이지만 슬픔이나 미련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그건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리라. 시간에 관계없이 꽃을 피운다는 소명을 완전히 이루었기 때문이리라.”

 

기업에서도 후회를 줄이기 위해 일단 저지르고 보는 방법이 통할까? 저지른다는 것은 시간과 자원을 들이고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우리는 왜 광고를 대대적으로 하지 않았을까?’ 등의 후회는 의미가 없다. 자기 한 사람만을 책임져도 될 때는 저지르는 것이 나을지 모르지만 기업 경영자는 투자가들이 맡긴 재산을 선량한 청지기로서 잘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경영자의 심리적 만족이 청지기로서의 책임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업에서는 무작정 저지르고 볼 수 없다.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리얼옵션(Real Option) 기법을 활용하면 된다. 리얼옵션은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하나의 대안을 선택해 집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대안에 대해 소규모 투자를 해서 일단 여러 군데 발을 걸쳐 놓는 것이다. 신약 개발이나 IT 분야처럼 어떤 대안이 성공할지 예측이 어려울 때 많이 활용되는 경영기법이다. 여러 대안에 조금씩 투자하면서 기술을 익히고 한 곳에 대한 집중투자는 최대한 미룬다. 그러다가 적절한 시점에 옵션별 성공가능성과 투자수익률을 다시 평가해서 확신이 생기면 투자를 확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중단한다. 그러면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기업에 비해 중요한 변곡점이 찾아왔을 때 훨씬 빠르게 대처하고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환경 변화에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자원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남들이 성공한 후에 그것을 바라보며 뼈아픈 후회를 하지 않을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개인과 달리 선량한 관리의무를 지닌 기업 경영자에게는 후회할 권리가 없다. 리얼옵션은 특정 산업 분야에서만 쓰일 수 있는 경영기법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의사결정을 통해 선택을 잘하고 그것을 실행할 책임이 부여돼 있는 경영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일종의 사고체계다.

 

 

정현천 SK에너지 상무 hughcj@lycos.co.kr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1986 SK그룹에 입사해 회계, 국제금융, 투자가 관리, 구조조정, 해외사업, 전략수립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SK에너지 상무로 근무 중이다.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다독가(多讀家)이며 변화 추진을 위한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포용을 주제로 한 <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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