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망치는 두 가지 유혹: 아첨과 동조
Based on “Set up for a fall: The insidious effects of flattery and opinion conformity toward corporate leaders” by Park, S. H., Westphal, J. D., & Stern, I.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2011년 vol. 56, no. 2: 257-302)
왜 연구했나
유럽발 경제위기로 온 세계가 들끓고 있다. 다양한 분석과 처방이 나오고 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가운데 심화되는 유럽 경제위기의 원인이 결국 각국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 문제라는 주장이 주목받고 있다. 각국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거제도로 뽑힌 능력 있는 지도자들이 위기 상황에서 왜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할까? 정치 지도자들 외에도 우리는 한때 뛰어난 경영능력과 통찰력을 보여주던 CEO들이 새로운 환경에 맞는 적절한 전략을 선도하는 데 실패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호령하던 노키아(Nokia), 사진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코닥(Kodak), 자동차 업계의 전설인 도요타(Toyota) 등 우량기업의 유명 CEO들의 몰락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노키아의 올릴라(Ollila) 회장을 비롯해서 과거 성공적인 리더의 표본으로 칭송되던 CEO들이 왜 전략적인 판단에서 실수를 범하는 것일까? 한때 경영의 천재로 추앙받던 잭 웰치(Jack Welch)가 온갖 추문과 냉정한 재평가의 시험대에 오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훌륭한 리더들을 망치는 어떤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을 연구했나
미시간대의 웨스트팔(J. Westphal) 교수 연구팀은 이 흥미롭고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두 가지 요인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이사회 멤버들(사외이사)과 동료 경영자들의 아첨(flattery)과 CEO 의견에 대한 무비판적인 동조(conformity)가 CEO 자신의 리더십 능력과 판단에 대한 과신(overconfidence)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편향된 의사결정을 낳는 과정을 연구했다. 구체적으로 연구팀은 어떤 조건의 CEO가 아부의 대상이 되는가를 그의 사회적 지위를 통해 알아봤다. 즉, 기업 지배구조 내의 위치와 학력배경이 더 좋은 CEO가 더 많이, 더 자주 아첨과 동조를 받는지 조사했다. 다음으로 이와 같은 아부를 받게 되면 CEO들의 자기향상(self-enhancing)과 자기과신이 커져서 자신의 회사 실적이 저조한 경우에도 전략상의 변화를 취하지 않게 되는 인지적 메커니즘이 있는지 규명하고자 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과신 편견에 대한 연구가 주로 개인의 특성이나 지적 수준 같은 요인에 머물러 있던 것을 확장해 CEO가 처해 있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확장시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연구했나
연구팀은 2002∼2007년 미국 내 매출액 100만 달러 이상 기업의 CEO 1350명과 이들과 같은 이사회에 있거나 다른 회사 이사회에 소속된 사외이사 및 고위경영자 7683명을 선정해 설문조사를 했다. 최종 응답자는 각각 451명의 CEO와 3135명의 사외이사 및 타사 경영자였다. 가장 중요한 변수인 아첨 및 동조행위는 연구팀의 선행연구에서 사용한 설문을 이용했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전략적 이슈에 관한 CEO의 통찰력을 약간 과장해 칭찬했다” 같은 항목들이 포함됐다.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 설문에 대한 응답을 CEO집단과 사외이사/고위경영자 집단 각각에서 받아 일치도(interrater agreement)를 구했다. CEO의 사회적 지위는 참여하고 있는 타사 및 비영리조직 이사회 수, 명문대 출신 여부 등으로 측정했고 자기과신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타인평가와 자기평가의 차이를 구했다. 기타 전략상의 변화, 기업 성과 등은 관련 연구와 유사한 방식으로 측정했다.
무엇을 발견했나
구조방정식(SEM)을 통한 분석결과는 예상과 같이 CEO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그를 향한 아첨과 동조는 더 많아졌다. 이러한 결과는 아첨을 보내는 사외이사/고위경영자의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더 뚜렷했다. 또한 자신에 대한 아첨과 동조가 강할수록 해당 CEO는 자신의 전략적 판단능력과 리더십 역량을 과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울러 이 경우 회사의 성과가 좋지 않은데도 CEO가 필요한 전략변화를 시도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증가함을 보여줬다. 이는 아첨과 동조행위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귀인 오류(attribution bias)’를 증폭시켜서 현재의 저성과를 자신의 전략상의 잘못이 아닌 산업 전반의 문제 혹은 거시경제 환경의 문제로 귀인하는 오류를 범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나아가서 아첨과 동조를 많이 받는 CEO는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도 필요한 전략상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게 됨으로써 회복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의 실수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위 조사대상 응답기업에 대한 추가조사에서 아첨과 동조행위의 총량이 결국 해당 CEO의 사퇴(CEO dismissal)로 연결된다는 파괴적인 결과도 확인했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던 CEO의 몰락은 주로 개인적인 특성으로 설명돼 왔다. 실제로 몰락한 CEO들은 과거 자신의 성공에 스스로 도취되는 자아도취적(narcissistic) 인물이거나 특정한 개인적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기존 조직행동 연구에서 지적 능력이 낮은 사람은 과신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교육수준이 낮은 입지전적 인물들이 우연한 성공을 이뤘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CEO의 개인적 특성들을 모두 통제하고서도 아첨과 동조의 부정적 효과를 명확히 보여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CEO의 몰락과 실수를 만드는 주된 요인은 CEO 자신이라기보다는 이사회 내의 사외이사들이나 함께 어울리는 타사 경영자들의 근거 없는 아첨과 무비판적인 동조라는 점이다. 비록 그것이 해당 CEO를 격려하려는 순수한 동기의 사소한 아첨이었다 하더라도 여러 사람들의 일치된 아부와 동조는 미래에 CEO의 사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치명적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결과는 국내에서도 경제위기 때마다 거론되는 사외이사들의 올바른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사외이사와 CEO의 사회적 지위 차이가 클수록 불필요한 아첨과 동조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자격이 불충분한 사외이사를 경영능력이 아닌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선발, 임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한편, CEO 스스로도 자신의 의사결정과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이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구결과가 보여주듯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CEO는 매력적인 아첨 상대가 된다. 따라서 화려한 배경과 업적을 자랑하는 CEO일수록 항상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나는 아부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CEO들을 자주 본다. 그러나 연구결과는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첨과 동조는 기본적으로 대상자에게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며 여러 사람이 같은 방식의 아부를 하게 되면 이른바 ‘합의 휴리스틱(consensus heuristic)’이 작용해 해당 인물의 정보처리 과정을 지배하게 된다. 또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아첨과 동조는 어렵지 않게 판별해내지만 자신에 대한 아첨은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훨씬 줄어든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결과는 자신에게 돌리고 나쁜 결과는 외부에 돌리려는 인지적 편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한테 아부하는 사람은 벌을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CEO들도 머지않아 많은 아첨꾼들로 둘러 쌓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첨은 사실의 왜곡이나 정보의 과장이다. 진정으로 회사와 CEO를 위하는 경영자나 이사회 임원이라면 CEO의 의사결정의 적절성이나 결과를 왜곡과 과장 없이 검토하고 논의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CEO 역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을 만들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사외이사나 타사의 경영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진정한 전략적 통찰을 줄 수 있는 외부 네트워크를 의도적으로 개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잭 웰치는 생전의 피터 드러커(P. Drucker) 교수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자신의 전략과 경영상의 판단에 자문을 구했고 이것이 GE 혁신의 원동력이 됐다고 알려져 있다. 성공적인 CEO의 인간관계 특성을 연구한 인시아드(INSEAD)의 이바라(H. Ibarra) 교수가 ‘전략적 네트워크(strategic network)’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정명호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 myhoc@ewha.ac.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방문교수 등을 거쳐 현재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된 연구 분야는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네트워크, 인력다양성 관리, 창의성과 집단성과 등이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