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트리즈(TRIZ)는 창조적 문제 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모든 발명 과정에는 공통되는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믿음하에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B분야에서의 문제 해결책을 참조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TRIZ입니다. 쉽게 말해 ‘재발명을 통한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간 TRIZ 컨설팅 외길을 걸어 온 송미정 박사가 TRIZ를 활용해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심한 가뭄이 든 여름날, 목마른 까마귀가 숲 속에서 샘을 발견하고 서둘러 다가갔다. 애석하게도 오랜 가뭄에 샘도 말라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우가 샘 곁에서 깊이가 매우 깊은 물 항아리를 발견했다. 쇠로 만든 이 항아리는 입구가 너무나 좁고 깊어 물이 있는 곳까지 도저히 입을 넣을 수 없었다. 까마귀는 어떻게 하면 물을 마실 수 있을까?
이솝우화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능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를 해보자면 물이 입이 닿는 곳에 있어야 물을 마실 수 있는데 물의 높이가 너무 낮아서 마실 수가 없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생각해보자. 바로 물이 입이 닿는 곳까지 옮겨진 상태일 것이다. 이를 위해선 주어진 조건보다 물의 높이가 높아져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빨대를 이용하는 것이지만 주변에 빨대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매개물 X가 있어야 이것이 가능할까? 우화에 나온 답은 ‘조약돌’이다. 지혜로운 까마귀는 조약돌을 큰 항아리 안에 옮겨 넣어 수위를 높인 후 물을 마셨다.
매개물 X를 찾아가는 메타 사고
언젠가 어린이 한 명에게 이 문제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 아이는 금방 정답을 얘기했다. 하지만 이 어린아이는 스스로 답을 생각해 낸 게 아니라 이 우화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해 올바른 대답을 한 것이었다. 이 어린이처럼 답을 알고 있는 문제를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에서는 조약돌이라는 정답을 외우는 건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완전히 동일한 문제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약돌’처럼 문제 해결로 이끄는 매개물 X 를 생각해 낼 줄 아는 ‘메타 사고’다.
메타사고란 통상적인 생각보다 한 차원 위에서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다스리는, 즉 ‘생각을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발상에 있어서는 발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발상을 도출하는 데 관건이 된 것을 한 차원 위에서 바라보면서 스스로의 사고 과정을 제어하고자 하는 사고다. 트리즈의 40가지 발명의 원리는 기실 문제 해결안에 대해 메타 사고를 진행해 정리한 내용들이다. 문제 해결의 역사 속에는 직접적인 기능이나 작용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조약돌 같은 매개물 하나가 꽉 막힌 모순 문제를 단번에 풀어버리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출현한다.
조약돌로 대변되는 매개물 X를 문제 해결책으로 활용한 사례로 흔히 대형 할인마트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쓰는 쇼핑카트를 꼽을 수 있다. 흔히 장바구니 크기가 클수록 고객들의 구매액수는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무의식적으로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바구니가 커지면 고객들이 팔이 아프니 곤란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바로 밀고 다닐 수 있는 장바구니인 바퀴 달린 쇼핑카트다. 카트를 만들면 크기가 커서 장바구니처럼 나도 모르게 들고 가는 일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카트에도 나름의 문제가 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카트 정리를 하는 일이 고생스럽다. 자동차에 물건을 싣고 나면 고객들은 카트를 정리하는 게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므로 그냥 놓고 가버린다. 마트의 직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카트를 정리하느라 힘이 든다. 마트 경영진 입장에서는 비용 증가의 요인이 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 해결을 위한 트리즈의 4단 사고법
트리즈의 4단 사고법인 ‘모순 인식→이상해(理想解) 설정→자원 분석→자원변환(매개물 도입)’을 적용한다면 매우 쉽게 문제 상황을 재구성하고 해결안의 단초를 잡아갈 수 있다.
① 모순 인식: 마트에 카트를 도입하면(approach), 구매촉진과 함께 분실의 위험이 줄어들지만(good), 정리를 위한 공간 비용 외에도 여기 저기 분산된 카트 정리를 위한 시간과 비용이 증가한다(bad).
② 이상해 설정: 모순이 없어진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마트에 카트를 도입하고(approach), 구매촉진과 함께 분실의 위험이 줄어들며(good→good), 정리를 위한 시간과 비용의 증가를 최소한으로 하면서(bad→good) 시스템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스스로 동작하는 X가 있는 경우다. 그렇다면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의 주요 자원은 무엇이 있을까?
③ 자원 분석: 쇼핑을 위한 카트는 바퀴가 있고 손잡이가 있으며 부피는 장바구니의 네 배며, 성인이 잡기에 적절하고, 철제 망으로 만들어져 튼튼하며 차곡차곡 옆으로 쌓아두기 편하도록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손님은 정리된 카트를 쇼핑을 위해서 가져오고, 카트에 쇼핑한 물건을 담고, 쇼핑을 마친 후에는 카트에서 짐을 내려서 차에 정리한다고 생각한다.
④ 매개물을 이용한 자원 변환(이상해로부터의 문워킹): X는 매우 간단하고 누구나 가진 매개물로서 손님이 ‘스스로’ 카트 정리를 하고 싶도록 변화시킨다고 해보자. 자, 이 X가 무엇이 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