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사형을 받아 마땅한 뇌물 사건을 저지른 병조판서 조말생에 대해 직책을 빼앗고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 후 세종은 조말생을 함길도 관찰사에 제수해서 명나라와 여진족 사이의 복잡한 정세를 헤쳐나가도록 했다. 조말생의 청렴성을 문제 삼은 관리들의 상소에 대해 세종대왕은 “그대들의 말을 참으로 아름답게 여긴다. 그러나 말생을 보낸 뒤에야 함길도 백성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윤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대왕은 인재의 풀이 좁고 개국 초기 대내외적 어려움이 극심했던 상황에서 함길도 문제를 해결할 만한 적임자를 찾지 못해 조말생을 활용했다. 하지만 공을 세운 조말생이 후에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가 모함에 의한 것이므로 사면 해달라는 청은 끝내 묵살했다. 죄가 있더라도 쓸 일이 있었기에 그를 기용했고 능력과 공적에 대해 평가를 해주었지만 그가 저지른 죄를 덮고 가릴 정도로 넘치게 하지는 않았다. 세종대왕은 원칙에만 집착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사실에 입각한 포용 정책을 취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