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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투좌타 열풍의 이면

하정민 | 62호 (2010년 8월 Issue 1)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 마쓰이 히데키(LA 에인절스), 김현수(두산 베어스)는 모두 우투좌타(右投左打)다. 원래 오른손잡이인 이들은 공을 던질 때는 오른손을 사용하지만, 타격 시에는 왼손으로 공을 친다. 야구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최근 한국에서도 우투좌타가 늘고 있다. 특히 야구를 처음 시작하는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거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왜 우투좌타일까. 야구는 왼손 타자가 오른손 타자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는 스포츠다. 일단 좌타석은 우타석보다 1루 베이스에 가깝다. 타격 후 1루 베이스로 가야 하는 우타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야 하는 반면 좌타자는 자연스레 시계 방향으로 돈다는 점도 유리하다.
 
스즈키 이치로와 마쓰이 히데키는 일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슈퍼스타로 등극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발이 느리다는 이유로 고교 졸업 후 프로 지명조차 받지 못했던 김현수는 신고 선수로 두산에 입단한 뒤 2008∼2009년 연속 무려 3할5푼7리라는 놀라운 타율을 기록하며 한국 최고의 타자로 성장했다. 이에 멀쩡한 오른손잡이 자녀를 좌타자로 키워달라고 일선 지도자들에게 부탁하는 학부모도 점점 늘고 있다. 지도자들도 오른손 유망주에게 우투좌타를 권하는 일이 잦다.
 
문제는 이 우투좌타 열풍이 되레 좌타자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화 류현진, SK 김광현, LG 봉중근, 기아 양현종, 삼성 장원삼 등 현재 한국 야구계를 호령하는 투수들은 모두 좌완이다. 좌타자는 타격 메커니즘 상 좌투수의 공을 잘 칠 수 없다. 김현수는 올해 좌투수 상대 타율이 2할 초반에 불과해 ‘좌상바(좌투수 상대 바보)’라는 평까지 얻었다. 주전 대부분이 좌타인 LG트윈스는 올해 류현진에게 한 경기에 무려 17삼진을 헌납하며 대기록의 희생양이 됐다.
 
좌타자의 이점은 분명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치로나 김현수가 될 수는 없다. 특히 오른손 거포로 클 잠재력이 있는 선수가 유행을 좇아 좌타를 택했다면 더 치명적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포기하고 기약 없는 레드오션에 뛰어든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잦아든 후 많은 기업들이 신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업종과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대체에너지 등 소위 녹색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꼽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자사의 핵심 역량과 가치, 가용 자원 등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남들이 유망하다니까, 다른 기업이 이를 통해 돈을 벌었다니까 이 분야를 기웃거리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특별한 전략없이 유행을 따라간 기업이 녹색 사업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내기는 힘들다.
 
미국 코넬대의 마이클 해넌 교수가 ‘밀도 의존 이론(density dependence theory)’에서 밝힌 대로 유행에 동참하는 기업 수가 늘어나면 경쟁 강도가 높아진다. 남과 똑같은 전략이나 시스템을 택했다는 자체가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입지가 탄탄하고 이를 먼저 도입한 선두주자는 그나마 괜찮지만 후발주자는 치명적인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S급 선수가 되려면 능력도 뛰어나야 하지만 시장의 수급 상황도 중요하다. 좌타자가 득세하는 한국 야구계는 최근 오른손 거포 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에서 홈런왕을 하다 올해 일본으로 건너간 김태균, 롯데 자이언츠의 4번 타자이자 몇 년 후 일본 진출이 유력한 이대호는 모두 20대 후반이다. 두 사람과 맞먹을 만한 선수는 아직 없다. 때문에 김태균이나 이대호급 우타자가 나온다면 그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10년 동안 한국에서 한 번도 3할대 타율을 기록한 적이 없는 이범호가 3년 간 최대 65억 원대의 계약을 체결하며 일본으로 간 이유도 우타 거포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일본은 한국보다 좌타 거포의 밀도가 더 높기 때문이다.
 
유행을 거슬러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유행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흘러가고 만다. 단기적 시각에서 유행에 편승하는 행태는 기업에 큰 위험을 안겨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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