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의 교과서로 불리는 미국 GE가 올해 5월 ‘지속 가능한 경영’의 새로운 화두를 꺼냈다. 신흥 시장의 저소득층까지 고객층을 확대한 새로운 헬스케어 사업이다. 건강(health)과 상상력(imagination)을 조합한 ‘헬시매지네이션(heal-thymagination)’이 GE가 내놓은 청사진이다.
제프 이멜트 GE 회장은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60억 달러의 투자 계획도 밝혔다. 2005년 환경, 에너지, 수자원 분야의 성장 전략인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을 제시했던 GE가 이번에는 헬스케어 시장에서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
GE는 지난해 전체 매출액(1830억 달러)의 9.2%인 170억 달러를 헬스케어 사업으로 벌어들였다. 그런데도 이 사업이 새삼스럽게 눈길을 끄는 이유는 GE가 100년 이상 해온 헬스케어 사업을 재설정(reset)하는 전략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멜트 회장은 “헬시매지네이션은 헬스케어 사업의 리포지셔닝”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전략으로 기존 사업을 영점 조정 하겠다는 뜻이다. GE는 이전까지 100만 달러 이상의 고가 의료 장비인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컴퓨터단층촬영(CT) 스캐너 등 하이테크 분야에 주력했다. 이제는 기술 혁신을 통해 최소한의 필수 기능만 갖춘 저가 의료기기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깨끗한 물과 의사 및 병원 서비스에서 소외된 20억 명 이상의 인류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고, 기업도 함께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이 전략은 경영학 분야의 석학인 프라할라드 미시간대 교수가 제시한 ‘BOP(Bottom of the Pyramid) 전략’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프라할라드 교수는 기업이 소득 계층 피라미드의 밑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광범위한 저소득층의 잠재력에 주목할 때, 새로운 사업 기회와 빈곤 등 저소득층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GE가 헬시매지네이션을 내세우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 그라민 뱅크와 함께 개발도상국의 낙후된 도시 외곽 지역에서 산모와 유아 사망률을 20% 이상 줄이는 지속 가능한 보건 모델을 만들기로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GE의 이 계획은 금융위기 이전(before crisis)과는 다른 이후(after disaster)를 대비한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미국 국채와 같은 트리플A(AAA) 등급을 뽐내던 GE의 신용등급은 53년 만에 한 단계 내려앉았다. 주가도 18년 만의 최저치인 주당 6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수모까지 겪었다. 주주들 사이에서 “우리가 알던 GE는 없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
이멜트 회장은 올해 초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주의 신뢰를 회복하고 장기적인 방향에서 GE를 건설하기 위해 정진하겠다”며 “세계 경제와 자본주의가 재설정된 세계(reset world)에서 숨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겠다”고 말했다.
GE는 4년 전 에코매지네이션과 올해 헬시매지네이션 전략을 내놓으면서 각각 ‘환경은 돈이다(Green is Green)’ ‘건강이 자산이다(Health means Wealth)’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GE의 전략이 말처럼 금융위기 이후의 새로운 기회가 될지, 장밋빛 희망에 그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상상력과 혁신이 있다면 금융위기 속에서도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인류와 지구 환경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울림이 작지 않을 듯하다. 명확한 전략적 비전도 없이 지속 가능 경영을 녹색으로 덧칠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눈을 들어 GE의 행보를 지켜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