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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다시 쓰는 디자인싱킹

넷플릭스도, 스타일러도, 못난이 과일도
문제를 재정의하니 해법도 달라져

정병익,정리=최호진 | 443호 (2026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혁신은 더 똑똑한 해법이 아니라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데서 시작된다. 많은 조직은 직면하는 문제를 매출 하락, 고객 이탈, 품질 문제 등 기존의 언어로 이름 붙여 그 안에서 해법을 최적화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는 기존 프레임의 연장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디자인싱킹의 핵심은 공감을 바탕으로 문제 자체를 다시 쓰는 데 있다. 못난이 과일 비즈니스는 과일의 외형이 아닌 ‘유통 기준’을 문제로 재정의하며 버려지던 농산물을 새로운 시장으로 연결했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 경쟁이 아닌 ‘콘텐츠 접근 경험의 불편’을 문제로 재정의해 스트리밍 시장을 열었고, LG전자는 ‘의류 관리의 공백’을 포착해 스타일러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혁신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제를 의심하고 사람의 맥락 속에서 다시 정의하는 힘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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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독자의 사고를 잠시 멈추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부터 성경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너무도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인다. 카인은 악, 아벨은 선. 누구도 의심치 않던 견고한 질서다. 그런데 데미안은 이 익숙한 도식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사람들은 카인을 두려워하며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에게 ‘악’이라는 이름을 덧씌웠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카인이 본질적으로 악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악으로 정의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 장면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지 문학적 반전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 문제와 비문제의 기준이 사실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해석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오늘날 기업과 조직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도 정확히 연결된다. 많은 조직은 이미 주어진 문제를 푸는 데 익숙하다. 매출이 하락하면 마케팅 문제라고, 고객 이탈이 늘면 가격이나 품질이 문제라고, 직원 저항이 커지면 변화 수용성의 문제라고 해석한다. 문제는 이미 이름 붙여져 있고, 남은 일은 그 문제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잘 해결하는지라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지금 해결하고 있다고 믿는 그 문제가 진짜 문제일까. 아니면 카인에게 ‘악’이라는 이름을 붙였듯 우리가 너무 빨리 현상을 해석하고 익숙한 문제명을 씌워버린 것은 아닐까. 바로 이 지점에서 디자인싱킹이 중요해진다. 디자인싱킹은 흔히 공감(Empathize), 문제 정의(Define), 아이디어 도출(Ideate), 프로토타입(Prototype), 테스트(Test)의 다섯 단계로 구성된다. 대중적으로는 공감이나 아이데이션(Ideation)이 더 자주 언급된다. 그래서 디자인싱킹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기법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디자인싱킹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두 번째 단계인 문제 정의(Define)다. 공감은 출발점이지만 혁신은 공감 그 자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공감을 통해 사람의 삶과 맥락을 충분히 들여다본 뒤 우리가 풀고 있다고 믿어온 문제를 새롭게 다시 쓰는 순간, 비로소 혁신의 방향이 바뀐다.

전통적인 문제 해결 방식에서 문제는 고객이나 시장으로부터 비교적 명확하게 주어진다. ‘북미 시장 점유율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MZ 세대 고객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고객 이탈률을 어떻게 낮출 것인가’와 같은 식이다. 이 경우 조직은 문제를 구조화하고, 선택지를 정리하고, 최적 안을 도출하는 수렴적 사고에 집중한다. 이는 로지컬 싱킹이 강한 영역이다. 그러나 디자인싱킹은 그 앞단에서 멈춘다. ‘정말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맞는가.’ 이 질문은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을 바꾼다. 문제 정의가 바뀌는 순간, 경쟁의 기준, 해결 방식, 고객을 바라보는 시선, 심지어 산업의 경계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디자인싱킹에서 공감 다음의 문제 정의 단계는 단순한 중간 단계가 아니다. 공감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하지만 문제 정의는 그 이야기 속에서 진짜 질문을 뽑아내게 만든다. 단순히 사람들의 페인포인트를 많이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불편함의 이면에 숨어 있는 더 본질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는 POV(Point of View, 관점) 문장이다. 이는 관찰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날카로운 정의로 압축하는 과정이다. 디자인싱킹의 핵심 도구인 POV 프레임워크 예시는 다음과 같다.

사용자: ○○한 사용자는

니즈: ○○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이 필요하다.

인사이트: 왜냐하면 놀랍게도 ○○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마지막 문장, 특히 ‘놀랍게도’라는 어절 뒤에 오는 내용이다. 혁신은 대부분 이 한 문장에서 태어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유가 아니라 관찰과 공감을 통해 뒤늦게 드러난 진짜 이유가 문제 정의를 바꾸고 결국 해법까지 바꾸기 때문이다.


문제를 다시 쓰는 순간, 혁신은 시작된다

1. 공급자 중심의 표준을 의심해 발견한 ‘못난이 과일’ 시장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등장한 ‘못생긴 과일’ 비즈니스는 디자인싱킹의 문제 정의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많은 과일과 채소가 외형이 균일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유통망에 진입하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사료로 전환된다. 사과가 조금 찌그러졌거나, 당근이 곧게 뻗지 않았거나, 오렌지 표면이 고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겉으로 보면 이 문제는 매우 단순하다. 못생긴 과일은 소비자가 싫어하니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가격을 낮추거나, 가공용으로 돌리거나, 폐기 비용을 줄이면 된다.

그러나 이 시장을 새롭게 읽은 창업자들은 문제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들은 책상 위 시장조사 보고서 대신 농장으로 들어갔다. 수확 현장에서 어떤 과일이 선별되고 버려지는지를 함께 관찰했고 농부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들에게 귀 기울였다. 동시에 소비자도 만났다. 단순히 “못생긴 과일을 사겠습니까?”라고 묻는 설문이 아니라 장을 보고, 냉장고를 채우고, 식탁에서 음식을 소비하는 일상의 흐름을 관찰했다. 그 결과 예상과는 다른 사실이 드러났다. 많은 소비자는 과일의 외형보다 맛과 영양을 더 중시했고 멀쩡히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버려진다는 사실에 오히려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 정의가 바뀐다. 문제는 ‘소비자가 못생긴 과일을 싫어한다’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좋고 나쁜 과일의 기준이 소비자가 아니라 유통업자에 의해 오랫동안 정해져 왔다는 점이었다. 소비자는 선택할 기회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고 유통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을 자연스레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문제를 재정의하니 해결책도 달라졌다. 이들은 기존 유통망을 우회해 농장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더 싸고 못난 과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유통업자들의 기준으로 배제돼 온 과일의 가치를 다시 정의하는 모델을 만든 것이다. 문제는 못난 과일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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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보가 아닌 경험을 설계한 ‘유니세프’

유니세프(UNICEF)는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국제기구다. 그런데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물 문제를 이야기해야 할 때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뉴욕 시민에게 물은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게 깨끗하며, 수도꼭지만 틀면 언제든 얻을 수 있는 자원이다. 이들에게 “매일 수천 명의 아이들이 더러운 물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는 메시지는 충격적인 사실일 순 있어도 감정적으로는 크게 공감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의 삶 속에는 이 문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9년 뉴욕 맨해튼 유니언스퀘어에서 진행된 유니세프 ‘Dirty Water Vending Machine’ 캠페인의 출발점은 시민을 냉정하거나 이기적인 사람들로 보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돕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일상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문제에는 감정이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했다. 특히 뉴욕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에서는 수많은 메시지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간다. 유니세프는 문제를 다르게 정의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몰라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그 문제가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재정의는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얼마나 더 충격적인 숫자를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설계해야 남의 문제가 내 문제처럼 느껴질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됐다. 그 결과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뉴욕 거리의 ‘더러운 물 자판기’다. 평소라면 시원한 음료가 나올 법한 자판기 안에는 탁하게 변색된 물병이 들어 있었고 각 병에는 말라리아,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같은 질병명이 적혀 있었다. 시민은 1달러를 넣고 병을 뽑을 수 있었고, 그 돈은 깨끗한 물을 위한 기부로 전환됐다. 자판기에는 이런 문구가 함께 적혀 있었다. “당신은 이 물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이 순간 정보는 경험이 된다.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잠시 멈추고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불쾌감과 충격을 느낀다. 현실을 이해하고 마침내 행동한다. 호기심, 충격, 이해, 공감, 기부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이 하나의 짧은 인터랙션 안에 설계된 것이다. 이 사례의 핵심은 충격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 문제를 정보 부족이 아닌 ‘경험의 부재’로 정의했기에 해결책도 메시지가 아닌 경험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캠페인은 약 7500명의 시민 참여를 이끌어냈고 TV·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3300만 회 이상의 미디어 노출 효과를 기록했다. 단순한 기부 캠페인을 넘어 ‘깨끗한 물이 없는 삶’을 시민이 직접 체감하게 만든 대표적인 경험 디자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3. 문제 재정의로 산업 경계 바꾼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성장 역시 문제 정의의 전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플랫폼이자 콘텐츠 기업으로 인식되지만 시작은 DVD 우편 대여 서비스였다. 당시 시장의 상식은 분명했다. 사람들은 DVD를 빌려 영화를 봤고 경쟁은 더 많은 타이틀, 더 빠른 배송, 더 효율적인 반납 시스템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시장 안에서 문제를 정의하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DVD 대여 사업을 더 잘할 것인가’가 된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바로 그 문제를 풀고 있었다. 재고를 늘리고, 매장을 확장하고, 반납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정말 DVD를 원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보고 싶은 콘텐츠에, 자신이 원하는 순간, 가장 마찰 없이 접근하고 싶은 것인가.’ 이 질문은 문제의 중심을 완전히 바꿨다. 문제는 더 좋은 DVD 대여 서비스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콘텐츠 접근 경험의 불편함이었다.

이는 경쟁자를 다시 정의하게 했고, 자산의 의미를 바꾸게 만들었으며, 향후 산업의 경계를 새롭게 그리게 했다. 만약 넷플릭스가 자사를 DVD 대여 회사로 끝까지 정의했다면 더 훌륭한 대여 회사가 됐을지언정 지금의 넷플릭스가 될 순 없었을 것이다. 스트리밍으로의 전환은 기술 진화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앞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물리적 매체가 아닌 콘텐츠 접근성’이라는 문제 정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디자인싱킹의 관점에서 보면 넷플릭스는 더 나은 해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4. 새로운 카테고리를 탄생시킨 LG 스타일러

한국 기업 사례로는 LG 스타일러가 매우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가전 산업에서 옷과 관련된 문제는 대부분 세탁기와 연관된 문제로 이해돼 왔다. 더 잘 세탁되는지, 더 빨리 탈수되는지, 더 다양한 코스를 제공하는지 등이 경쟁의 핵심이었다. 이 프레임 안에서는 해답도 늘 비슷했다. 더 성능이 강력한 세탁기, 더 똑똑한 세탁기, 더 효율적인 세탁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사용자들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세탁기로 설명되지 않는 불편이 꽤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가령 하루 입은 정장은 세탁기에 돌리기엔 과하다. 회식 후 냄새가 밴 재킷, 먼지가 묻은 코트, 구김이 간 셔츠는 ‘세탁이 필요한 옷’이라기보다는 ‘관리되지 않은 옷’에 가깝다. 많은 사람은 바로 이 회색지대에서 반복적으로 불편을 겪는다. 하지만 전통적인 가전 프레임 안에서는 이 불편이 문제로 잘 포착되지 않는다. 가전 산업은 계속 세탁만을 문제로 정의해왔기 때문이다.

LG는 바로 이 지점을 포착했다. ‘사람들은 정말 더 좋은 세탁기를 원하는 걸까. 아니면 세탁과 보관 사이, 세탁기와 드라이클리닝 사이에 존재하는 의류 관리의 공백을 채워줄 새로운 방식을 원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문제를 완전히 다르게 보게 만들었다. 문제는 세탁 성능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의류를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 사례는 POV 형식으로 재구성하면 문제가 더 분명해진다.

“매일 정장을 입는 직장인은 매번 드라이클리닝을 맡기지 않고도 옷을 관리할 더 나은 방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옷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옷에 밴 미세한 냄새와 구김이 주는 ‘심리적 찜찜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 재정의로 탄생한 제품이 바로 LG 스타일러다. 스타일러는 세탁기를 개선한 제품이 아니다. 스팀, 탈취, 주름 관리, 보관 기능을 묶어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한 제품이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혁신은 더 고도화된 기술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론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을 문제 정의 아래 새롭게 묶고 통합하는 데서 나오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LG 스타일러는 기술의 진보라기보다 문제 정의의 진보를 보여준 사례였다.


공감은 시작일 뿐…
문제 정의로 혁신을 완성하라


이 네 가지 사례는 서로 전혀 다른 산업과 맥락에 속해 있지만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전한다. 혁신은 더 똑똑한 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언제나 사람의 삶과 맥락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힘에서 시작된다. 디자인싱킹에서 강조하는 첫 단계인 공감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을 깊이 이해하고도 여전히 익숙한 문제 프레임 안에 머문다면 결국 해법도 기존 해법의 변형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혁신을 위한 진짜 전환은 두 번째 단계인 문제 정의에서 일어난다. 바로 이 단계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우리가 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문제인가. 사용자는 이 상황을 같은 방식으로 느끼고 있는가. 혹시 지금의 문제는 현상일 뿐이고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숨어 있는 기준, 경험, 구조, 감정의 층위에 있는 것은 아닌가.

19세기 영국 런던에서 콜레라가 퍼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원인을 ‘나쁜 공기’라고 믿었다. 모두가 같은 문제 정의 위에서 움직였다. 공기를 정화하고, 냄새를 없애고, 환경을 소독하는 것이 해답처럼 보였다. 그러나 의사였던 존 스노는 문제를 다르게 봤다. 문제는 공기가 아니라 물일 수 있다고 봤고, 발병 지도를 그리며 런던 소호의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를 의심했다. 결국 사람들이 물을 퍼가지 못하도록 펌프 손잡이를 제거함으로써 전염 확산을 막는 결정적 전환을 만들어냈다. 스노가 특별했던 이유는 답을 빨리 찾아냈기 때문이 아니다. 모두가 같은 문제를 풀고 있을 때 혼자 다른 문제를 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혁신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리더는 정답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남들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를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정의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런 리더가 판을 바꾼다. 데미안이 카인을 새롭게 해석했듯, 존 스노가 콜레라의 문제를 다시 정의했듯, 디자인싱킹의 본질도 결국 답을 찾기 전에 먼저 문제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조직이 너무도 당연하게 풀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며, 과연 누구의 정의인가. 어쩌면 문제 자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 전제를 흔들 시점이다.
  • 정병익byungik.jung@andersenconsulting.com

    앤더슨 컨설팅 파트너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인시아드(INSEAD)에서 MBA를 취득했으며 현재 IE 비즈니스스쿨에서 사회적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DBA 과정을 밟고 있다. 삼정 KPMG,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이후 LG전자에서 글로벌 전략 핵심 과제를 주도했다. 우송대 솔브릿지국제경영 전략 및 국제개발 디렉터, 동명대 부산국제대학(BIC) 초대 학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앤더슨컨설팅에서 교육 부문을 총괄하며 교육 혁신, 글로벌 전략, 리더십 혁신 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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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최호진hojin@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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