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대기업의 직군과 직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량과 인재상이 비슷했던 과거와 달리 앞으로의 직무는 레고 블록처럼 무한히 조립해 많은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크게 변화할 것이다. 이에 따라 오랜 연마와 수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본원적 역량’을 갖춘 전문가와 역량을 창의적으로 융합해 참신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전략적 역량’을 가진 전략가, 이 두 유형이 향후 기업 인재의 주력이 될 전망이다. 기업은 경직된 조직도와 업무 분장으로 격자 구조를 이루고 있는 현재 조직에서 두 인재의 협업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고민해야 한다.
기업의 변화에 따른 인재와 역량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인재에 대한 평가 기준은 요지부동인 것처럼 보인다. 과연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오늘의 기업 인재상은 크게 달라졌을까. 기술, 제도, 문화가 변해도 사람에 대한 평가는 더욱 완고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스포츠, 예술, 학문 등에서 사람이 갖춰야 할 역량을 키우는 데는 어떤 제품이나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유년기부터 시작해 한 사람이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데는 최소 20년에서 길게는 40∼50년이 걸린다. 한 세대는 사제 관계처럼 후대를 기르고 육성한다. 그런 점에서 인재와 역량은 어떻게 보면 시대 변화와 가장 크게 충돌하는 요소일 수도 있다. 인재의 역량은 기계의 성능이나 사양과는 다르다. 기술이나 제도가 변했다고 필요한 역량 역시 변해야 할까? 우리가 지금도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리더십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시대 불변의 역량에 대한 믿음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단기간에 압축 성장한 한국의 기업에서는 ‘삼류 기업일 때 입사한 경영자, 이류일 때 입사한 간부, 일류일 때 입사한 사원’이라는 시각과 ‘어려움 없이 풍족하게 자란 신세대들의 나약함’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서로 다른 세대가 조직의 위계를 구성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차는 곧 조직의 팀워크와 리더십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디지털 전환기까지 맞게 되며 인재상과 역량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기업 인재의 황금기판이 뒤흔들리는 격변기라도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디지털 전환기의 와중에도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한국의 교육과 노동시장이 그렇다. 고도성장기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낸다는 ‘우골탑’의 전통은 21세기에도 그리 낯설지 않다. 명문대 스펙과 전통적인 전문직이나 대기업 등 안정적 직업에 대한 선호는 철옹성과 같다. 스타트업 창업, 아이돌, 유튜버 등 새로운 진로가 부각되고 있지만 아직 대세와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집착은 과거의 패러다임이 그만큼 매력적이었음을 방증한다. 2차 산업혁명의 전성기였던 고도성장기, 한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해 한 세대 이상을 지속한 이 시기는 기업의 위계와 경력 사다리가 일치한 절묘한 균형의 시대였다. 즉, 기업의 위계 구조가 한 사람이 신입 사원에서 경영진이 될 때까지 생애 경력의 무대가 되는 절묘한 조화가 구현됐다. 기업 인재의 황금기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대였다. 새로운 길이나 대안을 고민할 필요 없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승진 시기가 도래하고, 적정한 경쟁률로 성장이 가능했다. 큰 과실이 없는 한 평생직장이 보장됐으며 경영진까지의 승진 연한을 총계하면 대략 근로 생애와 맞아떨어졌다.
이러한 구조가 유지되려면 위계의 아래쪽으로 갈수록 더 많은 구성원이 공급돼야 했는데 인구 증가는 자연스레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인구 증가와 시장의 확대는 노동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팽창시켰고 기업과 인재가 함께 성장하는 비옥한 토양이 형성됐다. 당시 인재들은 학업을 마치면 대기업에 입사해 대부분 경영진까지 승진하고 혹시 중도 탈락하더라도 자회사나 관련 회사로 전출하는 등 평생 커리어를 보장받았다. 기업과 인재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황금기였던 셈이다.
대퇴사의 시대그러나 황금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선진국에서는 지나치게 조화로운 기업과 인재의 균형이 20세기 후반, 한국에서는 21세기 초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제 성장이 정체하고 인구 증가가 멈추면서 노동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함께 수축하기 시작한다. 이는 저변이 넓은 피라미드형 조직 위계, 이에 기반을 둔 경력 시스템과 정면충돌했다.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이 승진 적체였다. 승진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한때 CEO를 꿈꾸며 입사한 신입 사원들이 과장, 차장 승진에서 좌초되기 일쑤였다. 무난하게 승진하더라도 대부분 부장에서 퇴직 시점을 맞았다. 꽤 오래전부터 신입 사원의 1% 미만이 대기업의 별, 임원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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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 정체에 이어 기업의 구조조정과 전산화가 가속되면서 조직 위계가 흔들리고 있다. 이제 한 기업이 매년 몇천 명씩 대학 졸업자를 공채로 받아들이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인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만이 아닌 선진국에서도 ‘대퇴사(great resignation)’가 뜨거운 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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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기에 상당 수준 고용을 조정한 기업들이 회복기를 맞으면서 다시 채용에 나서도 떠난 인력은 되돌아오지 않는데 이 현상은 기업과 노동 경제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는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지속적인 고용 조정, 조직 축소, 외주화 등 기업의 인력 수요 감축에 대한 노동자들의 ‘복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장기근속의 매력이 떨어지고 수지가 맞지 않게 된 결과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은 물론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무원 및 공기업에서조차 인력 이탈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대기업에서는 공공연하게 ‘탈○○(회사명)은 지능 순’이라는 말이 퍼지며 인력 확보와 유지 면에서 걱정해 본 적 없는 국책은행 등 소위 ‘신의 직장들’이 젊은 직원의 잇단 퇴사로 충격을 받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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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재의 황금기가 저물고 있다. 큰 조직에 입사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순조롭게 지위, 권한, 보상을 얻을 수 있던 ‘평생 일자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벨 보이가 호텔리어가 된 ‘샐러리맨 신화’는 옛이야기다. 언제 구조 조정될지 모르는 불안한 단기 일자리에 열정이 솟아날 리 없다. 기업과 동고동락하며 큰 성공을 위해 헌신하고 인내하는 자세도 기대할 수 없다. 최근 대기업 직원들은 성과에 따른 즉시 보상을 요구하며 급여와 상여금 등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였다. 이를 두고 젊은 세대에 팽배한 과도한 실리주의라고 비난하기 전에 기업이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장기 비전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직무의 해체와 재구성디지털 전환은 노동시장의 파편화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인공지능이 인간 능력을 전반적으로 능가하고 ‘무인화 산업’의 시대가 온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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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업은 더 이상 인재도, 아니 인간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일까. 기업의 완전한 무인화는 극단적인 예측이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직무’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지금까지 직무란 일하는 사람 개개인에게 의미 있는 일의 단위로서 단기적으로는 보람을, 장기적으로는 성장을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이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구성됐던 직무는 이제 기술적 효율에 의해 해체되고 소멸되거나 외주화된다.
직무는 더 이상 단순하고 쉬운 일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일로 나아가는 연속적인 사다리가 아니다. 업무들은 단절되고, 한 업무를 오래 경험했다는 점이 상위 업무로 가기 위한 자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미국 MIT대 폴 오스터만 교수는 1996년 발간한 책 『부러진 사다리(Broken Ladder)』에서 미국 기업 내 존재하던 경력 사다리가 붕괴됐다고 진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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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닥으로 곧게 뻗은 사다리처럼 직진하기만 하면 됐던 경력 경로가 여기저기 끊어진 험로로 바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과 인재 모두 각자 살길을 찾아야 한다. 기업은 직무를 해체하고 과업 단위로 재구성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대량 퇴사로 인한 구인난 시대의 인력 활용은 훨씬 더 치밀해질 수밖에 없다. 부가가치에 따라 과업이 세분화되고 그에 따른 외주화, 시스템화가 더욱 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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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한 역량을 지닌 소수 핵심 인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일자리가 유동화되고 이는 곧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다.
직무 해체라는 거대한 쓰나미 속에서 인재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해체되지 않는 역량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각자의 직무를 재구성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직무는 더 이상 기업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역량과 한 사람이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역량이 더 이상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시키는 일만 하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역량의 진화, 본원적 역량과 전략적 역량최근 기업 내에서 이뤄지는 직무 해체와 재구성은 레고 모형에 비유할 수 있다. 과거의 직무는 상당 부분 고정돼 있어 변형이 어려웠다. 대기업의 직군과 직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량과 인재상은 비슷하고 서로 통용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앞으로의 직무는 레고 블록처럼 무한히 조립해 많은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크게 변화할 것이다. 현재 메타버스 세계를 멋지고 풍성하게 만드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영화 OTT 플랫폼의 추천 메커니즘 작동을 위해 영화에 태그를 다는 태거(Tagger), 빅데이터를 분석해 유용한 정보를 추출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등의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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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기존의 역량을 디지털 세계에 접목해 재구성된 새로운 직무다.
중요한 점은 이 직업들이 과거 역량과 단절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응용미술, 문예창작, 영화학, 통계학 등 기존 학문과 역량이 레고 블록처럼 뼈대를 이룬다. 이러한 본원적 역량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요구하는 새로운 역량으로 재구성된다. 즉, 역량은 구성 요소에 해당되는 ‘본원적 역량’과 이들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전략적 역량’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본원적 역량에 대해 살펴보면 이것을 구축하는 데는 어떤 요령이나 비결이 없다. 넷플릭스에서 탁월한 태거가 되려면 수많은 영화를 보고 분석해야 한다. 미국의 아이웨어 전문 업체 와비파커는 참신한 D2C(Direct to Customer)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했지만 150년 전통의 이탈리아 안경 장인의 역량을 소싱한 것이 성공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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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이 되고 안경 장인이 되는 과정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다시 말해, 본원적 역량 자체는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달라질 리 없다. 달라지는 것은 역량을 활용하는 방법이지 역량 자체가 아니다. 경영 환경이 역동적으로 바뀌면서 학습의 민첩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오해해선 안 된다. 아무리 디지털 전환의 시대라고 해도 프로그래밍을 1달 만에, 반도체 공학을 3달 만에 속성으로 마칠 순 없다. 민첩성이란 이런 것이 아니다. 단 하나의 본원적 역량을 갖추려고 해도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오랜 학습 기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없다고 대충 흉내만 내서는 결코 경쟁력 있는 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다. 와비파커의 경쟁력 속에 150년 된 이태리 장인 정신이 버티고 있듯 말이다.
그렇다면 전광석화처럼 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장기간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 해답은 미래를 예측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미래는 예측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 구성의 대상이다. 앞으로 각광받을 역량을 추종하기보다는 자신의 영혼이 이끌리는 역량에 몰입하고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수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장기간 수련한 역량이 사회의 각광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환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역량이 발휘될 기회를 스스로 창출할 필요가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도장 명인들은 도장 자체가 사라지는 와중에 수제 낙관 스탬프를 주문 제작하는 비즈니스를 만들어냈다. 본원적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스스로 창출한 사례로 장기간 수련한 역량은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탁월한 본원적 역량을 많이 모은다고 무조건 탁월한 사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류 인재가 모인다고 일류 기업이 되지 않듯 말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본원적 역량은 전략적 역량을 만나 비로소 빛을 발한다. 전략적 역량이란 기존의 평범한 역량을 비범하게 결합시키는 능력이다. 일본산업기술연구소가 제작한 인공 반려동물 ‘파로’는 전략적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파로는 병을 앓고 있는 노인들의 심리 치료를 위한 인공 반려동물로 실어증 환자를 치료하는 등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파로 개발에는 의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역량이 동원됐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로봇의 형태를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닌 아기 바다표범으로 정한 발상의 전환이다. 파로 개발에 참여한 시바타 다카노리 박사는 로봇 형태로 강아지나 고양이를 택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처음에는 개와 고양이 모양을 생각했는데 진짜 개와 고양이처럼 달리고 구르고 행동하려면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디테일이 잘 알려져 있어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기대치를 맞추는 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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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가 아닌 바다표범을 택하는 발상의 전환은 기술과 사람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통섭 능력을 요구한다. 이는 의학, 로봇공학, 인공지능을 다루는 역량만으로는 발휘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스티브 잡스의 탁월함 역시 터치스크린, 미니멀한 디자인, 앱 생태계와 같은 특정 구성 요소에 있는 것이 아닌 이 모든 것을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장비(device)에 담아낸 디자인 역량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기존의 역량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전략적 역량이다.
EQ, TQ, SQ,전략적 역량을 키우기 위한 3대 지능역량을 디자인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전략적 역량은 본원적 역량과 달리 전공이 따로 있지 않다. 각자 오랜 시간 연마해야 하는 특수한 능력인 본원적 역량과 달리 전략적 역량은 성장하면서 몸에 갖춰진 인성과 리더십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이유로 디지털 시대, 전문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닌 ‘인성’이라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흘러나온다. 구글은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좋은 인성을 드러내는 사람, 지적인 겸손을 갖춘 사람, 평범함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 등 인재상을 통해 윤리적인 덕목을 부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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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역량을 얻는 데 있어 힘들게 전공 공부에 매달리거나 자격증을 취득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먹는 대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면에서 선천적인 자질과 후천적인 노력이 결합돼 형성되는 지능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지능이라고 하면 인지적 지능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지능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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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역량을 좌우하는 지능은 3가지로 집약된다. 감성지능(EQ), 기술지능(TQ), 사회지능(SQ)이다.
감성지능이란 고객의 느낌을 공감하는 것이다. 감성지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를 만드는 힘이다. 고객의 상상력과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를 만들고 나면 그다음은 이익 원천을 파악하고 수지를 맞추는 정교한 데이터 독해력, 즉 기술지능이 필요하다. 이것은 스토리를 검증하는 동시에 경제성 있는 수익 모델을 설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 데이터 독해력은 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높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사회지능이다. ESG 경영으로 대표되는 오늘날, 아무리 성공적인 비즈니스라도 사회적 공감 없이는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해 ‘사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디지털 시대의 대표 기업이 됐다. 이제 자사만의 색깔을 지닌 사회적 가치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일류 기업이라고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이윤만으로는 비즈니스 성공을 보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온 것이다.
특정 분야에서 대체불가한 독보적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향후 5∼10년 내에도 그럴 것 같다면, 이 3가지 지능을 강화하는 것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옥을 가는 장인이 아닌 꿰는 장인이 되는 것이다. 3가지 지능을 겸비하려면 통섭의 노력이 중요하다. 문과라면 데이터 독해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지능에, 이과라면 스토리텔링 구사를 위한 감성지능에 신경 써야 한다. 경영자와 엔지니어는 더욱 긴밀한 팀이 돼야 하며 문과와 이과 사이에 언어 장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성공적인 안트러프러너는 언제나 두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3대 지능은 전문적인 학문이나 기술이 아닌 교양 과정에 가깝다. 제대로 갖추려면 한없이 심오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문외한인 사람도 없다. 한평생 배워가는 역량이다.
새로운 기업 인재상앞으로의 기업 인재상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인재상의 의미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인재상은 더 이상 따라야 할 표준 모델이 아니다. 모두가 비슷해져야 할 지향점이 아닌 출발점으로서 최소한의 요건이자 최대한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낮은 문턱이다. 또한 인재상은 기업과 동일시될 필요도 없다. 더 이상 ‘삼성맨’ ‘IBM맨’의 시대가 아니다. 기업의 경계는 낮아지고 개방적 혁신이 유력한 연구개발 전략이 되고 있다. 기업은 인재의 본적지도, 국적도 아니다. 기업은 인재들의 역량을 그때그때 엮어주는 비즈니스 플랫폼일 뿐이다. 기업은 인재에, 인재는 기업에 묶이는 평생직장의 개념은 적합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인재 유형을 구분해 보자. 가로축에 역량의 유형을 본원적, 전략적으로 구분하고 세로축에 인재의 유형을 회사에 특화된 스타일과 회사로부터 자유로운 스타일로 구분한다.(표 1) 회사에 특화된 인재 유형에는 비즈니스 설계자와 전략적 전문가가 있다. 여기서 비즈니스 설계자란 독립적인 스타트업과 달리 대기업의 틀 내에서 신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벤처(Corporate Venture)의 리더를 뜻한다. 전략적 전문가란 대기업의 연구개발(R&D) 담당자로 기업에 특화된 기술 개발을 주도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회사에 특화됐다’는 것이 기존의 ‘회사 인간’, 즉 한 회사에 뼈를 묻는 장기근속을 전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경력 비전과 회사의 비전이 일치해 회사를 경력의 닻(anchor)으로 이용하는 ‘잠정적 장기 근속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스타트업 창업가와 프리랜서 전문가들은 시장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기회에 따라 이합집산하겠지만 대기업을 이끌어가는 인재들은 혁신 프로젝트의 핵심에서 전체 생태계를 주도해나갈 것이다. 특히 전략적 역량을 보유한 인재들은 대규모의 신사업을 설계하는 비즈니스 리더인 동시에 ‘전략적 전문가(Strategic Expert)’가 될 가능성이 높다. 테슬라의 엔지니어였던 제프리 B. 스트라우벨은 전략적 전문가의 대표 사례다. 그는 기계, 우주항공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엔지니어다. 그는 2003년 페이팔을 매각한 일론 머스크를 만나 1000마일을 갈 수 있는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2004년 테슬라의 CTO가 된 그는 2019년까지 지속적인 배터리 혁신으로 위태롭던 테슬라를 지켜냈다. 머스크는 “그가 없었다면 테슬라도 없었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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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우벨은 엔지니어로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테슬라의 비전을 구체화할 뿐 아니라 타 산업과 연계된 에너지 생태계 전체를 새롭게 그리는 데 일조했다.
기업은 근본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빅 텐트가 돼야 하며 여기서 전략가와 전문가는 긴밀하게 융합돼야 한다. 머스크와 스트라우벨, 제프 베이조스와 AWS의 리더였던 앤디 제시, 스티브 잡스와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였던 조너선 아이브가 대표적이다. 네트워크의 발달과 거래 비용의 감소로 독립 생산자(makers), 스타트업 창업자, 프리랜서 전문가의 영역과 역할이 확대되고 기업 역시 이들을 중요한 파트너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 프리랜서와 비교했을 때 대기업의 신사업 창출은 그 무게감과 파급력의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려면 비즈니스 설계자의 전략적 역량과 전략적 전문가의 본원적 역량이 융합돼야 한다. 향후 기업은 인재를 이 두 유형으로 나눠 생각하되 이들이 용광로에서 융합될 수 있는 인재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머스크의 화성 정착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상상을 넘어선 거대한 프로젝트들이 대기업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대기업을 이끌고 갈 인재는 과거의 꼼꼼한 분석형, 관리형 인재와는 달라야 한다. 일각에서는 인재상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급진적인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는 논리적인 좌뇌형 인재에서 감성적인 우뇌형 인재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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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인간을 추월하는 ‘특이점’ 이후 인간은 기계와 결합해 슈퍼휴먼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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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이고 화려한 주장이지만 필자는 인재의 역량이 이처럼 요란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인재는 의외로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처럼 오랜 연마와 수련을 통해 본원적 능력을 갖춘 전문가와 이들을 창의적으로 융합해 참신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전략가, 이 두 유형이 기업 인재의 주력이 될 것이다. 기업은 경직된 조직도와 업무 분장으로 격자 구조를 이루고 있는 현재 조직에서 두 인재의 협업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을 이용할 줄 아는 전략가, 전략을 이해하는 전문가를 찾아내 양성하는 것이 먼저다. 자신의 분야를 개척하는 비즈니스 리더, 자신의 역량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역량들과 협력하는 전문가를 키울 때 이들이 기업의 체질을 바꿔나갈 것이다.
김은환 경영 컨설턴트•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장 serikeh@gmail.com필자는 경영과학과 조직이론을 전공한 후 삼성경제연구소(현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25년간 근무했다. 근무 중 삼성그룹의 인사, 조직, 전략 분야의 획기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현재 삼성 계열사 전체가 사용하고 있는 조직 문화 진단 툴을 설계하기도 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 및 컨설턴트로서 저술 활동과 기업 및 공공 조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2019년에는 저서 『기업 진화의 비밀』로 정진기언론문화상 경제•경영도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격변기를 맞아 기업과 전략의 변화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