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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엽편 소설: 우리가 만날 세계

메타 오피스의 스파이는 누구였을까?

이경 | 350호 (2022년 08월 Issue 1)
편집자주

올해 데뷔한 신예인 이경 작가가 SF 엽편소설을 연재합니다. SF 장르의 인기는 인공지능, 로봇과학과 같은 과학기술이 바꿀 미래에 대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보여주는 문화적 트렌드입니다. ‘콩트(conte)’라고도 불리는 엽편소설은 ‘나뭇잎 한 장’에 비유할 정도로 아주 짧은 분량에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문학 양식입니다. 짧은 스토리를 읽으면서 작가의 SF적 상상력을 따라가는 동시에 신선한 영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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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2년 6월22일

메타 오피스로 전면 출근한 지도 벌써 1년째가 되었다. 우리 회사 메타 오피스는 실제 사무실을 그대로 가상현실 내에 복제한 공간이다. 전면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청계천 뷰부터 사무실 전경, 심지어 데스크 배치까지도 똑같은 모양이라 로그인할 때마다 새삼 놀라곤 한다. 인적 교류에 의한 상호작용 시너지를 위해 아예 층별로 복제하는 시스템을 택했기 때문에 다른 팀 아바타들까지 복작복작한 거, 그래서 이 가상현실 안에서도 오고 가며 마주칠 때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 것도 똑같고 말이다. 그러니 메타 오피스 체제로 전환된 후 사실상 내 생활에서 바뀐 것은 지옥 같은 출퇴근길에서 벗어난 것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도 삶의 질이 이렇게나 비약적으로 상승하다니!

메타 오피스가 아니었다면 이곳 강릉에서의 한 달 살이도 영원한 버킷리스트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아침에도 강릉 교동의 제일 유명한 베이커리에 다녀왔다. 관광객이 몰리기 전 이른 아침, 아침거리로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갓 구운 크루아상을 사서 돌아오는 작은 행복. 여기서 한 달 살이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결코 맛볼 수 없는 행복이다.

1년 전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여긴 서울과 달리 하루가 여유롭게만 느껴진다. 오늘 퇴근 후에는 경포 해변에 앉아 저녁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따야겠다. 달맞이 맥주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 하루도 파이팅!


6월23일

망했다. 망했다. 망했다.

구현 가능한 표정이 제한돼 있는 모니터 속 아바타인데도 팀장님이 화내시는 건 너무 무서웠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하고 소리 지르셨을 땐 정말 스피커가 터지는 줄 알았다. 사실 오피스는 실제로 터졌지……. 팀장님이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메타 오피스를 강제 종료했으니까.

그런데 진짜 망한 건 내일 아침 9시 본사에 세팅된 긴급회의다. 진짜 망했다. 빨리 기차표를 예매해야겠다.

6월24일

이렇게 서울 관악구 7평짜리 원룸에 앉아 있자니 강릉에서 살았던 게 꿈같다. 정말 꿈이었나? 여기서 5년이나 살았는데 겨우 3주째 살고 있는 강릉이 원래 내 집 같이 느껴진다. 눈물이 난다.

스파이 사태가 빨리 해결돼야 내려갈 텐데… 솔직히 돌아가는 상황을 봐선 빨리 못 끝날 것 같다. 일본에서의 귀국편을 잡지 못해 오늘 회의에 출석하지 못한 김 선임님을 빼고는 모두 보안팀에 끌려가 진짜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털렸는데도 나온 게 없다. 아바타를 탈취당한 이 수석님은 아침부터 그렇게 털리고 취조당한 것도 모자라 오늘 저녁 가택 보안 점검(가택 수색이겠지)에 들어간다고 한다. 거기서 뭐가 안 나오면 사원인 나한테까지도 가택 보안 점검이 내려올 것 같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수석님 잘못이라고 할 순 없지 않나? 이 수석님이 스파이가 아닌 이상 아바타를 탈취해 들어온 그 미친놈이 원흉이지. 우리 팀원 중 아무도 그 미친놈이 이 수석님이 아닐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완벽했다. 우리 직급과 업무 분장 상황도 완벽히 알고 있었고, 평소 우리한테 대하는 태도나 어조도 똑같았고, 심지어 목소리도 완전 똑같았다. 그 재미없는 농담까지도! 그리고 딱 어제 다루기로 한 안건을 다 숙지하고 들어와선 진짜 이 수석님이 병행하고 있던 사내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상황을 보고하기도 했다. 그게 이 수석님이 아니라는 걸 팀장님이 알아차린 게 더 무서울 지경이다. 오늘 알고 보니 이 수석님은 그날 저녁까지 정신도 못 차리고 침대에 누워 계셨다고 한다. 아마 이 수석님 모르게 약을 먹인 것 같다고… 와, 생각할수록 미친놈이네.

최고 등급 방화벽이니 뭐니 해도 미친놈 공세엔 뚫린다는 사실만 증명된 꼴이라 보안팀은 어제부터 벌집 쑤신 듯 미쳐 돌아간다고 들었다. 제발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6월25일

와… 이건 진짜 망했는데.

임원 보고가 7월10일인데 그때까지 본사의 공유 오피스가 풀 북(full booking)이란다. 석 달 만에 대면한 팀장님 얼굴에 살이 좀 올라 있었는데, 그 소식을 전하는 순간 볼이 푹 꺼지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팀은 이틀째 보안팀에 불려가 털리는 시간 아니면 앉아서 멍하니 허공이나 바라보았다. 재택 기반 근무 체제가 정착된 지도 3년째라 우리 작업 환경은 전부 자기 공간에 완벽히 세팅돼 있다. 보안 정책상 사전 등록된 아이피와 등록된 기기가 아니면 메타 오피스는 물론 회사 공유 클라우드나 하드에 접속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개인 메일이나 메신저를 이용한 자료 외부 반출이야 원래 엄격히 금지된 사항이었고….

즉, 우린 지금 본사에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미칠 노릇이다. 임원 보고가 펑크 나기라도 하면? … 있을 수가 없지. 임원 보고를 펑크내는 일은 세상이 두 쪽 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허접한 자료를 들고 가는 것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고. 그랬다간 우리 팀은 공중 분해될 것이다.


6월27일

어제 돌아왔을 땐 너무 지쳐서 일기도 못 쓰고 바로 잠들어 버렸다. 그래도 회사 앞 백반집에서 오랜만에 청국장과 계란 프라이를 앞에 놓고 대책을 강구한 결과, 오늘 아침엔 이렇게 다시 진한 아아메에 갓 구운 크루아상 향기를 맡으며 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강릉 최고!

팀장님이 보안팀을 들들 볶아 알아낸 바로는 현재 방화벽 수준으로 ‘그런’ 스파이 활동―사람을 약을 먹여 눕혀놓고 개인 생체 정보 인식을 통과해 아바타를 탈취해선 감쪽같이 연기하는 미친놈―을 원천 방어할 수 없다고 한다. 하긴 소프트웨어 방화벽이 우리가 사는 집까지 경호해줄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다고 이미 예약된 공유 오피스를 우리 팀 사정 앞세워 강탈할 수도 없고.

그래서 팀장님이 책임지고 메타 오피스 체제로 복귀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팀장님은 어쩌면 아이템을 빼돌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두 눈 빤히 뜨고 자기 팀 공중분해당하는 꼴을 보게 하는 게 그 스파이의 진짜 목적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스파이가 외부에서 왔는지 내부에서 왔는지 지금으로선 확인된 게 하나도 없다고.

와… 난 그런 쪽으론 생각도 못 했는데. 이래서 팀장님이 팀장을 달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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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8일

오늘 아침, 우리 팀은 각자 로그인 후 곧바로 메타 오피스 안 회의실에 모였다. 그리고 회의실 공유 기능을 이용해 날아온 사진 한 장을 판별해야 했다. 박 책임님이 보낸 사진에는 잔디밭에 앉아 있는 깜장 푸들이 찍혀 있었다. 까만 바둑알 같은 눈과 빨간 하네스. 한 번도 까미를 본 적 없는 나도 사진을 보자마자 그게 박 책임님이 키우신다던 까미라는 걸 알았다. 우린 각각 박 책임님에게 개별 메신저 창을 띄워 답을 적었고, 답을 다 확인한 박 책임님이 오케이를 하신 후에 일과를 시작했다.

솔직히 나는 박 책임님이 가끔… 진짜 솔직히 말하면 자주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품은 많이 드는데 성과는 별로 티 안 나는 일이 들어오면 매번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려 하고, 회의 때도 보면 같이한 건데 실수 커버 안 해주고 꼭 대놓고 팍팍 지적하고 그러는 게 나랑 성격 정말 안 맞는 사람이다 싶었다. 그런데 오늘 까미 사진을 보고 나니까, 박 책임님이 그렇게 재수 없이 굴 때 나도 모르게 예전보다 더 유하게 대응하게 되는 걸 느꼈다. 어휴… 그렇게 열심히 버신 돈으로 까미 영양제나 많이 사주세요, 노견인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전보다 짜증이 좀 덜 나는 거다.

흠… 그러고 보니 서로가 진짜 서로인지 확인하려면 아바타를 탈취한 놈이 조직도나 하드 자료처럼 오픈된 걸 조사해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 말고, 같이 시간을 보냈어야만 알 수 있는 사적인 부분을 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박 책임님이다. 의외로 예리하시구나.


7월2일

와, 바빠 죽을 지경이어도 이건 일기에 써야겠다! 오늘은 김 선임님이 ‘인간 방화벽’ 역할을 하기로 한 날인데, 점심시간 종료 직후에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지셨다.

문) 지난주 목요일 주간 회의 때 내가 요즘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니
같이 듣자고 틀어놓은 노래 제목은? 1분 내로 답하지 않으면 스파이로 간주함.

*힌트: 6월 3주 차 싱글 차트 1위 곡

딱 메시지가 날아왔는데 머리가 새하얘졌다. 왜냐하면, 답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평소에 김 선임님한테 별로 관심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김 선임님이 분명 무슨 그룹을 좋아하신다는 건 알고 있었다. 메타 오피스 안 김 선임님 책상에도 그 아이돌 그룹 사진이 작게 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맹세코 그 노래를 들은 기억이 안 나는 거다! 우리 메타 오피스는 회의 시 항시 스피커 ON 정책이기 때문에 김 선임님이 노래를 같이 듣자고 틀었다면 못 들을 수가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난 그게 기억이 안 나는 거다! 그래서 부랴부랴 6월 3주 차 싱글 차트 1위 곡을 찾아 틀었는데, 어라? 내가 이름까진 못 외워도 김 선임님이 좋아하는 건 보이그룹이란 걸 아는데 이건 걸그룹 노래인 거다.

10, 9, 8, 7

머리가 완전히 새하얘졌는데 급기야 메신저 창에선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이대로 있다간 내가 꼼짝없이 스파이로 몰릴 거고, 그럼 강제 종료와 가택 수색과 보안팀 심문과 4년을 같이 일한 동료에의 무관심에 대한 비난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진짜 입이 막 바짝바짝 말랐다.

5, 4, 3

할 수 없이 난 개별 메신저 창에 절박한 답을 보냈다. ‘진짜죄송해요잘모르겠어요근데전진짜진짜들은기억이없어요’라고.

그리고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잠시 후, 스피커를 통해 파하하하 하는 김 선임님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게 신호가 된 것처럼 다들 앞다퉈 자기는 스파이가 아니라고 한꺼번에 호소했다. 그랬더니 김 선임님은 한참 웃다가 지금 여기 스파이는 없다고 그랬다. 자긴 그런 적 없다고. 회의 시간에 노래 틀고 같이 듣자고 한 적 자체가 없다고 그러는 거다. 다들 모르는 게 맞는 답이라고!

난 김 선임님이 그냥 재미없는 오타쿠(?)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좀 웃긴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의미로 웃긴 사람 말이다.


7월11일

드디어 무사히 끝났다! 그동안 임원 보고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일기도 띄엄띄엄했는데, 이 고생도 다 끝났다! 일단 지금은!

팀장님 목소리도 한결 가벼워지신 듯했고, 다른 팀원들도 다들 한시름 던 기색이다. 스파이 사태 때문에 보고 준비 일정이 다 꼬여서 다들 엄청 예민했지만, 그래도 오버타임까지 연일 찍어가며 달린 보람이 있었다.

그동안 보안팀은 스파이의 정체를 알아냈다. 외부의 산업스파이였던 모양인데, 자세한 신상 명세는 밝힐 수 없다고. 그리고 등록된 기기 접속 시 통과하는 개인 인증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보안을 강화한다는 통보도 해왔다. 이제 메타 오피스에 출근하려면 지문 인식에 더해 실시간 3D 체형 스캔까지 통과해야 한단다. 새로 지급될 업무용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면 체형 정보가 1주일마다 업데이트될 거라나. 으… 회사가 내 신체 치수까지 수집할 권한이 있나 싶지만… 그건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자.

우리 팀이 수립한 ‘인간 방화벽’ 시스템은 당분간 쉬기로 했다. 서로 사적인 정보를 캐묻는 건 이 정도로 됐다는 게 팀장님 판단이다. 그런데 솔직히, 나 스스로도 놀랍지만, ‘인간 방화벽’이 끝난다니까 조금 아쉽기도 하다. 나만 그런가?

그동안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우리 팀에 뭔가, 예전보다 조금 더 끈끈한 연대감 같은 게 생겼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뭐 ‘가족 같다’ 그런 케케묵은 얘기는 아니지만, 뭔가… 뭐라 해야 하나. 서로 대하는 게 약간 유해졌다고 할까? 오늘만 해도 갑자기 김 선임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그룹 콘서트 티켓을 기적적으로 구했다며 내일 휴가를 낸다고 했는데, 팀장님이 웬일로 더 캐묻지 않고 재깍 결제를 해주셨다. 물론 임원 보고가 끝난 직후라 팀장님 기분이 좋기도 했겠지만, 나한테는 왠지 ‘그래, 그으렇게 좋아하는 그룹 자알 보고 와라’ 하고 끌끌 웃는 팀장님 얼굴이 아바타 뒤로 보인 것 같았다.

맡은 일이나 잘하면 된다. 협업을 위해 동료와 개인적으로 친해질 필요까지는 없다. 친구들 말로는 요즘 어딜 가도 회사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그렇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 ‘인간 방화벽’을 해보니까, 돈독해질 필요까진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적으로 알고 싶지도 않다고 먼저 차단부터 할 필요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박 책임님은 재수 없고 김 선임님은 재미없지만, 그게 또 이 스파이 사태 이전만큼 그렇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금은 박 책임님도 가끔 따뜻하고 김 선임님도 가끔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팀장님은 보안이 불안하다고 판단되면 불시에 언제든 ‘인간 방화벽’ 시스템을 부활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내가 다음 ‘인간 방화벽’도 무사히 통과하는 사원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때쯤은 승진했으면 좋겠는데.


이경 소설가 plumkyung22@gmail.com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고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로 2022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가작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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